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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난 김정문 알로에
열린교회 (yeolin) 조회수:3400 추천수:20 112.168.96.71
2014-11-26 10:18:19
내가 만난 김정문 알로에
- 이강근 집사 -

김정문 알로에를 창업한 김정문 회장을 이야기하는 것은 그분의 공로에 비하여 내 스스로 아는 것이 너무 빈약하기 때문에 매우 주제 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확실히 믿고 싶은 것은 내가 열린교회에서 김정문 집사님을 만나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니고 하나님의 섭리라는 사실이다.

3년쯤 되는 짧은 기간에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고마움도 크지만 그분의 과거와 오늘의 삶을 바라보면서 나는 젊은 시절부터 이 나라의 진실한 기업인으로 늘 존경받아오던 고(故) 유일한 박사의 생각을 곧잘 떠 올리게 되었다. 3여년 동안 같은 교회에서 신앙생활하면서 두 분은 여러 면에서 공통점이 많은 것을 느끼곤 했다. 이미 세상에 꽤 알려졌듯이 고(故) 유일한 박사는 일제 시대부터 열악한 국민 건강 개선을 위하여 유한양행을 설립하고 의료사업에 헌신해 오면서 복지 및 구제 사업과 육영사업을 함께 해 왔다. 그분은 사업을 하면서 이 나라에서 가장 정직한 납세자로 알려졌었고 한국 최초의 기업 공개와 사원주주제를 실천한 분이다. 소박하고 검소한 크리스천으로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여 1970년대 초 그가 세상을 떠날 때는 친자식에게 단 한 푼의 유산도 남기지 않는다는 유서가 공개되어 세인들을 감동시켰다.

두분 모두 의료사업에 뜻을 둔 것이나, 정직한 기업관, 구제사업에 헌신한 점과 검소하고 신실한 신앙생활 등등 공통점이 많다. 수많은 질병과 난관을 극복하고“알로에”에 평생을 헌신해 오면서 빈민들을 위한 범 세계적인 구제 활동을 펼쳐온 김정문 집사님이 세상에 더 많이 알려져야 할 분이 아닌가 생각한다. 김정문 집사님에 대하여 보다 잘 알게 된 것은 중학교 1학년짜리 내 외손주 태훈이가 급성 백혈병으로 고도 위험군에 분류되어 사경을 헤맬 때부터였다. 김집사님은 손자의 어려운 사정을 알게 되었고 알로에를 주어 복용하게 하였다. 손자는 기적적으로 건강을 회복하였고 1년 만에 다시 학교에 복학하게 되었다. 어느날 사랑하는 내 아내 한이순 권사가 희귀병으로 현존하는 의술의 한계를 벗어난 상태에 놓이게 되었다. 테니스도 하고 수영도 하며 건강하게 살았던 아내였다. 김집사님은 이 사실을 알고 알로에뿐 아니라 김정문 알로에에서 생산되지 않은 약까지 구입하여 복용하게 하여 아직까지 생명을 유지하고 있다.

주변에 그의 도움을 받은 사람들이 우리만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아직도 이 땅엔 불치의 병으로 신음하면서도 가난 때문에 제대로 치유받지 못한 환자들이 많이 있는 것 같다. 진정 약자를 생각하며 사회 정의 구현을 몸으로 실현하고 하는 김정문 집사님 뜻이 펼쳐져야 할 곳이 많이 있는 것 같다. 하나님의 은혜로 오래 사시면서 유일한 박사보다 더 좋은 기업과 더 큰 이웃사랑의 족적을 남겨주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다.“내 평생 소원 이것 뿐 주의 일 하다가 이 세상 이별 하는 날 주 앞에 가리라”대표기도 때 그분이 불렀던 찬송의 여운이 모든 사람의 뇌리에 오래 오래 간직되기를 기원해 본다.


< 아버지의 선물>

아버지는 월남전 참전용사였습니다. 중년이 되자 아버지는 트럭 한 대를 생계 밑천으로 장만했습니다. 낡은 트럭 한 대에 이 짐 저짐 싣고 팔도를 누비는 일이 참 고단해도, 그래봐야 밥벌이는 시원찮아도, 언제나 휘파람을 불며 다녔습니다. 어느 날은 둘이 들기에도 무거운 현금 출납기를 혼자서 옮기다가 발등이 깨진 적도 있었는데 피가 흥건하게 번지도록 큰 상처를 두루마리 휴지로 둘둘 말고는 남은 물건들을 마저 다 배달했다는 아버지...... 그런 아버지가 병원에 간 것은 지병인 당뇨가 심해져 더 이상은 방치할 수 없게 된 뒤의 일이었습니다. “아주 안 좋다면 어쩌지.” “아빠 괜찮을 거야” 그 끔찍했던 월남전에서도 끄떡없이 살아 돌아온 기억을 훈장처럼 달고 사셨던 아버지가 두려움에 떠는 것을 본 것도 그때가 처음이었습니다. 여러 날 입원 치료를 한 끝에 집으로 돌아오시던 날 아버지는 우리 남매를 불러 앉혔습니다. “혜영아, 동욱아 지금부터 이 아빠 말을 잘 들어라. 너희들에게 아빠가 줄 것이 있단다.” “네 아빠! 무슨 말인데?” 아버지는 장롱 깊숙이서 빛 바랜 봉투 하나를 꺼내 놓으며 말했습니다. “만일 말이다. 만일 아버지가 어떻게 되거든 이 봉투를 열어보거라. 사는데 도움이 될거야.” “아빠! 왜 그런 말을 해......” 마치 유언처럼 들리는 비장한 당부와 함께 아버지가 우리 남매 손에 쥐어 주신 봉투 속에는 무료사진 촬영권, 놀이 동산 할인권, 그런 표조각이 국가유공자증서와 함께 들어 있었습니다. 아버지의 병은 곧 완치되어서 그 알량한 할인권들을 쓸 일은 없었지만 그것은 그 시절 가난한 아버지가 우리 남매에게 남길 수 있는 최선의 유산이었습니다.

-TV 동화 행복한 세상 5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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