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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향기가 흐르는 당신에게
열린교회 (yeolin) 조회수:2128 추천수:19 112.168.96.71
2014-11-25 11:04:09
여보 !
당신을 첨 만났을 때의 그 겨울이 생각이 나. 동숭동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얼떨결에 대타로 자리했던 나 그리고 당신, 한 자락의 꾸밈도 없는 풋내 나는 모습으로 우리의 어설픈 웃음들이 수줍게 들썩거리며 허공을 간질이던 그 만남이 말이야. 그리고는 16년이 지났지만 왠지 난 과거에 대한 별 기억이 없어. 그저 앞서 뛰어가던 두 살 박이 인영이의 통통한 기저귀 담긴 엉덩이와 지평선까지 닿아있을 듯 망망한 잔디풀밭.... 그건 그렇고 .....이 늦은 밤 오늘도 당신은 변함 없이 내 옆에 없구나. 어디서 무얼 하고 있는지 밥은 제때 먹고 다니는지.....하지만 무소식이 희소식이라지..

하나님을 만난 후 끼 많은 피가 흐르고 있던 난 당신보다 더 멋진 차인표가 눈앞에 실제로 어른거려도 당신만을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을 알았어. 밀가루 반죽같이 끈끈한 죄성 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생각밖에 아주 쉽고 간단한 일이었고 그 작은 마음 하나 바꾼 것으로 나는 더 행복해 질 수가 있었지. 행복의 열쇠가 아주 사소한 일상에서 발견되어진다는 사실은 나를 소스라치게 놀라게 했어.

요즘 들어 오분의 일쯤은 소풍간 듯한 당신의 머리카락...얼마 전 잘못 팔을 디뎌 머리카락 두 알 뽑아 트린 것 이 자릴 빌어 사과 할게. 정말이지 내 기분도 수만마리중 두 마리의 새끼양을 잃은 기분이었어. 아무튼 그 머리카락 위에 아까운지 모르고 뿌려지는 헤어 케어 약, 내게 은폐시키려고 잔뜩 발가락을 움크리지만 늘상 음미되는 발 고린내, 당신이 매일같이 미워하는 배나 꽃 같은 조강지처 놔두고 담대히 밖으로만 나도는 한심한 방랑벽 ....

하나님께 난 정말 감사해. 지금 있는 모습 그대로의 당신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셨으니 말이야. 생각해 봤는데 만약 내 인생에 하나님이 찾아오지 않으셨다면 인간이 무엇 때문에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회의로 예민한 나의 삶이 아주 힘들어 졌을 것 같아. 나의 사소한 것과 더러운 습관조차 의미부여를 해 주신 하나님은 진정 나의 구세주야.

여보! 요즘 많이 힘들지? 지쳐 보이는 당신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물론 하나님이 지켜주실 것을 알면서도 너무 걱정될 때가 많아. 아내에게 걱정을 끼치는 남편은 착한 남편 아니지? 어제까지는 없던 주름살과 부쩍 희어진 당신의 모습에 일순 안타까움도 번지지만 또한 그 모습에서 나의 모습과 우리의 세월을 번갈아 읽으며 당신과 함께 할 수 있었던 수많은 시간에 깊이 감사해.

' 인생은 예행연습 없는 마라톤' 이라는 어느 책제목처럼 하나님 안에서 재지 않고 따지지 않고 그저 당신과 열심히 인생의 마라톤을 경주할래. 하나님이 허락하신다면 당신과 함께 이곳에 오래 머물고 싶어. 모진 폭풍우 속에서도 흐트러짐 없이 고목이 된 소나무처럼 세월이 흐를수록 더 강해지는 우리의 사랑을 자랑해가며 말이야. 여보 우리 아이들 열심히 키우며 한번 자알 살아 봅시다.

가을 향기가 흐르는 당신에게 /고미경 집사



친정에 모처럼 갔을 때였다. 책장 한 쪽에 새 앨범이 가지런히 꽂혀 있었다. 빈 앨범인가 싶어 빼어 열어 보니 옛날 사진이 잘 정리돼 있었다.“엄마, 이거 엄마가 새 앨범 사다가 꽂아 둔 거야?”하는 내 말에 “앨범이 너무 낡아서 지저분하기에 버리고 새로 사다 꽂았다.”하시는 엄마. 혹시 내 사진도 있을까? 내 앨범은 결혼할 때 다 가져갔었는데 그 보다 더 어린 시절의 사진이 남아 있을까? 궁금함해하며 한 장 한 장 앨범을 넘기다 보니 웃음이 나왔다.

그 곳엔 우리 가족의 지나온 추억이 살아 숨쉬고 있었는데 마치 시간을 거꾸로 되돌린 듯했다. 사진 속의 아빠와 엄마는 지금보다 20~30년은 더 젊었다. 너무 젊고 건강하신 모습이어서 눈물이 났다. 동생들과 내 모습도 찾을 수 있었는데 아기 때의 동생 모습을 보니 그 시절로 돌아간 듯 했다. 놀러 가서 찍은 사진, 우리들의 입학식과 졸업식, 운동회 때 찍은 사진... 그러다가 깜짝 놀랄 만한 사진 한 장을 발견했다.

멋있게 그려진 배경을 뒤로하고 말 위에 앉아 찍은 것은 분명 나였다. 세 살 때라고 한다. 그 시절엔 사진기가 구해서 그렇게 사진을 찍어 주는 사람들이 동네를 다녔다고 한다. 나는 어찌나 인상을 쓰고 있던지 성질이 사나워 보였다. 불만스런 얼굴과 헝클어진 양 갈래 머리, 콧물도 보였다. 내 어린 날의 실체에 가슴이 뜨끔했다.“너 키우기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 날마다 울고 짜고, 내려놓으면 난리를 치고, 이 사진이 다 말해준다.”하면서 앨범 속의 사진을 툭툭 치시는 엄마.

그 사진을 빼서 소중히 품안에 모시고 왔다. 그리고 액자에 끼워 책상 위에 올려놨다. 내게도 저렇게 어린 시절이 있었음을 느끼며 갑자기 이 순간이 소중하게 다가온다. 흑백사진 속의 나는 울고 있지만, 사진 밖의 나는 웃고 있다.

흑백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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