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열린마을 열린이야기

열린이야기

게시글 검색
푸짐한 국수
열린교회 (yeolin) 조회수:3457 추천수:22 112.168.96.71
2014-11-25 16:59:53
푸짐한 국수

앤 코긴스 서드레스, 노스 캐롤라이나 주 샬롯
페이 이모는 온 가족을 모으는 데 재주가 있었다. 이모는 크리스마스 때마다 50명이나 되는 코긴스 일가를 한자리에 모아 놓고 잔치를 벌이곤 했다. 잔칫상의 하이라이트는 바로 페이 이모가 손수 만든 국수였다. 닭고기 즙으로 보글보글 끓여서 만든 그 국수는 너무나 맛있었다. 나는 두 번째 그릇을 먹을 여유를 남겨 두려고 디저트를 마다하곤 했다. 때때로 이모는 말린 초벌 국수 한 상자를 내게 들려 보내기도 했다. 페이 이모가 돌아가신 후, 나는 우리의 연례 모임이 어떻게 될까 걱정스러웠다. 나는 손수 음식을 만드는 이모의 전통을 어떤 식으로든 이어 가고 싶었다. ?올해는 내가 페이 이모의 국수를 만들어 볼게요. 그러면 이모가 아직도 우리 곁에 있는 것 같을 거예요.? 나는 자원하고 나섰다. 그러나 크리스마스가 다가올수록 그 임무는 어마어마하게만 느껴졌다. 나는 페이 이모만큼 훌륭한 요리사가 아니었다. 수년 전, 내가 아직 어렸을 때 이모는 국수 만드는 법을 내게 알려 주었지만 이미 까맣게 잊어버린 지 오래였다. 내게는 요리법조차 없었다. 초조해진 나는 부엌을 헤집고 다니면서 요리법이 어디 없나 찾아보았다. 옛날 요리책을 손에 닿는 대로 샅샅이 훑어보았다. 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난 부엌 의자에 주저앉아 기도했다. ?하나님, 제발 페이 이모의 요리법을 조금만이라도 제게 알려 주세요.? 나는 누렇게 퇴색된 마지막 요리책의 책장을 휙 넘겼다. 책의 마지막 페이지에는 국수를 만드는 완벽한 요리법이 적혀 있었다. 그것은 우리 이모인 페이 코긴스가 기고한 것이었다.
-가이드 포스트 2003년 2월 호 중에서-


마지막 경례

?영결 나팔?에 대한 주제로 쓰게 될 책 자료를 수집하다가, 나는 퇴역 군인인 탐 데이에 관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해병대 출신이었던 그의 아버지는 탐 데이가 막 걸음마를 떼자마자 그를 군악대에 들여보냈고, 그곳에서 그는 북과 나팔 소리에 맞춰
장송곡을 배웠다. 고향 마을 일리노이 주 벌윈에서 이웃의 장례식이 있었는데, 한국전쟁 참전자인 그 군인을 위해 그 유명한 24음의 곡조를 연주했을 때가 그의 나이 열 살이었다.?고인의 가족이 얼마나 감격했었는지 결코 잊지 못할 겁니다.? 그는 말한다. 결국 그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자신도 군에 입대했다. 그는 베트남에서 전사한 몇몇 전우들을 위해 ?영결 나팔?을 불었고, 그 후 아버지의 장례식에서도 그 곡을 연주했다. 지난 봄 그가 친하게 지내던 어느 가족의 장례식에서 연주를 하고 있는데, 다른 장례식의 의장대가 다가와 물었다. ?저희를 위해서도 ?영결 나팔?을 불어 줄 수 있습니까? 저희 CD 플레이어가 고장 났거든요.?매년 세상을 떠나는 오십만 명 이상의 군인 중 많은 이들의 장례식에서 전통 멜로디를 녹음판으로 틀었다는 사실을 그는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탐 데이는 ?전미 나팔수 모임?을 결성하고, 군인의 장례식에서 ?영결 나팔?을 연주할 500명 이상의 트럼펫 연주자를 전국에 걸쳐 모집했다. 그는 또한 낡은 군복을 찾아내고 트럼펫을 수리했다. 그 모든 것은 직장에 다니면서 한 일이었다. 왜 탐 데이는 그토록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것일까? ?퇴역 군인은 영웅입니다. 그들은 카세트 플레이어 이상의 대접을 받을 만한 권리가 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 리처드 H. 슈나이더, 편집자
-가이드 포스트 2003. 1월 호중에서-


여고 시절로의 여행

나에겐 결혼 생활 30년 동안 꼭 한 번 해 봐야지 하고 미뤄만 두었던 일이 하나 있다. 바로 친구들과의 여행이다. 고등학교 시절 사총사였던 나와 훈자, 영숙이, 주란이는 결혼 후에도 우리의 우정은 변치 말자고 굳게 약속했었다. 그 약속은 지금까지 잘 지켜지고 있지만 ?언젠가는 꼭 우리들끼리 제주도로 여행가자.?던 또 하나의 약속은 아직껏 실천하지 못했다. 지난 세월 동안 서로들 살림하랴 아이들 키우랴 바빴기에 4명이 한 자리에 모이기도 힘들었고, 모여 봤자 누군가의 집에서 실컷 수다를 떠는 것이 고작이었다. 이제 건망증도 점점 심해지고 허리도 슬슬 뻐근해 오는 우리들이기에, 조금 더 있다가는 그 여행 약속을 지키기가 영 힘들어질 것만 같다. 그래서 올해는 꼭 친구들과 제주도로 떠나 보려 한다. 그곳에서 남편 걱정, 자식 걱정 모두 잊고 꿈 많던 여고 시절로 돌아가 보고 싶다. /신정자
-가이드 포스트 2003년 1월 호 중에서-

댓글[0]

열기 닫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