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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인생(1) 하나님의 바람(요한삼서1:2)
김필곤목사 (yeolin) 조회수:3469 추천수:6 220.120.123.244
2020-06-07 14:43:06

건강한 인생(1) 하나님의 바람

요한삼서1:2

 

엔리코 카루소는 이탈리아 테너 가수입니다. 아름다운 음색과 정확한 기교, 연기력으로 명성을 얻었고, 자신의 음성을 음반으로 남긴 최초의 음악가라고 합니다. 당대 최고의 출연료를 받는 세계적으로 가장 인기 있는 가수였답니다. 그러나 그는 1921년 48세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21명의 자녀를 낳았지만 3명만 살아남고 18명은 어린 아기 때 죽었답니다.

10세 때 그의 아버지는 카루소를 학교에 다니지 못하게 하고 공장에 보냈지만 어머니는 맨발로 다니며 그를 성악가로 만들기 위해 갖은 고생을 다 하였답니다. 15세 때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이후 그는 평생 어머니의 초상화를 늘 지니고 다녔답니다. 갖은 고생 끝에 그는 세계적인 오페라 가수가 되어 엄청난 갑부가 되었지만 오래 살지 못했습니다. 그는 이탈리아 농민이 품고 있던 온갖 미신을 믿었답니다. 죽는 날 당일에도 '사악한 눈(쳐다보면 나쁜 일이 생긴다는 사람의 눈)을 두려워했답니다. 점성술사와 상담을 먼저 하지 않고서는 바다 건너 외국에 가지 않았답니다. 사다리 아래를 지나가지 않았으며 금요일에는 새 옷을 입지 않았답니다. 목요일이나 금요일에는 어느 누가 권유를 해도 여행을 떠나거나 새로운 일을 시작하지 않았답니다. 의상실에서 화장을 하는 동안에도 담배를 피웠답니다. 흡연이 목소리에 해롭지 않느냐고 사람들이 물으면 그저 웃을 뿐이었답니다. 공연 때마다 무대에 오르기 직전에 위스키와 소다를 한 모금 마셔 목을 씻어냈답니다. 그렇게 산 그는 오랫동안 극심한 두통을 앓아 감각이 둔해지고 고통으로 울부짖었답니다. 군중들의 환호성은 멀어졌고 마침내 혼자 쓸쓸히 생각에 잠긴 채 신문 스크랩을 하느라 시간을 보냈답니다. 만약 성도님의 아들이 카루소라면 이렇게 살기를 원하겠습니까? 사람은 창조하신 하나님은 우리가 어떻게 살기를 원하시겠습니까?

오늘 본문 2절 말씀을 다시 읽어 보겠습니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바라는 바람일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건강한 인생이 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 땅에서 병들고 재앙 가운데 고통받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예레미야 29장 11절에서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건강한 삶을 원합니다.

 

요즈음 코로나 19로 세계인들이 힘들어 하는데 세계인의 건강을 위해 만든 세계보건기구는 1948년 4월 7일 건강을 정의하기를 “질병이 없거나 허약하지 않을 뿐아니라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으로 안녕한 상태”라고 정의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육체적, 정신적, 사회적, 건강 뿐 아니라 영적 건강을 원하십니다.

 

90세가 넘은 요한이 사랑하는 가이오를 위해 기도할 때 단순히 육체적인 건강이나 경제적 혹은 사회적 성공만을 위해 기도하지 않습니다. 우선 “네 영혼이 잘 됨같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사랑받는 신앙인이 육신적으로 건강하게 사는 것 하나님의 바람입니다. 하나님의 사랑받은 성도가 범사에 잘 되는 것 하나님의 바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무엇보다 영혼이 잘 됨으로 육신적 건강이나 범사에 복을 받는 건강한 인생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바람은 우리가 영혼이 건강하기를 원하십니다. 앞에서 이야기한 카루소의 근원적인 문제는 무엇이었겠습니까? 영혼이 건강치 못한 것입니다. 그는 엄청난 갑부가 되었지만 온갖 미신을 믿었습니다. 점성술사와 상담을 먼저 하지 않고서는 바다 건너 외국에 가지도 못할 정도로 영혼이 건강치 못했습니다. 사다리 아래를 지나가지 않았으며 금요일에는 새 옷을 입지 않을 정도로 사단에 사로잡혀 살았습니다. 영혼이 잘 못되니까 정신적 육체적 건강도 망가지는 것입니다. 아무리 육체적, 정신적, 사회적 건강이 있다고 해도 영혼이 병들었다면 하나님 편에서 볼 때 건강한 것이 아닙니다.

 

영혼이 건강해야 할 이유는 사람은 영혼의 존재로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영혼으로 번역된 "프쉬케"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는 생명을 말합니다.

창세기 2장 7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처음 사람을 만드실 때 흙으로 빚어서 몸을 만드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셨습니다. 그리고 나서 '생령이 된지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곧 사람이 영혼을 가진 존재가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영혼에 대하여 마태복음 10장 28절에서 명쾌하게 설명해 주시고 있습니다.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고 했습니다. 인간에게는 동물에게 없는 영혼이 있습니다. 육신과는 별도로 우리의 속사람 내면의 자아가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만나는 실체가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다윗이 시편 42편 1절에서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라고 고백했듯이 하나님을 찾아 갈망하는 내면의 자아가 있습니다.

 

영혼 존재의 부정하니까 영혼의 건강에 대하여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육체와는 별개로 영혼의 존재를 믿습니다. 과학이 발달된 현대에도 약 93%정도가 영혼이 있다는 것을 믿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신앙을 갖지 않은 많은 신경과학자들은 지난 100년 동안 온갖 실험을 통해 영혼이 있다는 것을 부정했습니다. 영혼이라는 것은 비물질적인 가설일 뿐이고 정신 작용들은 뇌의 생물학적 반응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세로토닌 같은 뇌 속 신경전달물질의 양을 바꾸고, 전전두엽처럼 특정 뇌영역에 전기 자극을 줌으로써 정신의 조절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은 물질에 의해 구성되었다고 믿는 진화론자들은 인간의 영혼은 단지 추상적인 언어에 불과하고 실제적으로는 없다고 말합니다. 영혼이나 마음이나 정신은 뇌의 작용에 불과한 것이고 생존과 번식에 도움되는 대로 진화된 진화의 산물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영혼은 있습니다.

<스푸크>(파라북스, 2005)라는 책이 있습니다. 영혼의 존재를 추적했던 학자들의 이야기를 쓴 책입니다. 이 책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미국 메사추세츠주에서 이름 높던 외과의사 덩컨 맥두걸은 인간에게 영혼이 있는가를 증명하기 위해 4년간 준비해 실험을 했답니다. 사람이 죽는 순간 무게의 변화를 측정하여 영혼이 육체에서 빠져 나가면 몸무게가 변화될 것이라고 실험을 한 것입니다. 실험 대상은 결핵으로 죽어가는 환자들이었답니다. 결핵환자들은 죽는 순간에도 움직임이 거의 없어, 저울에 영향을 줄 만큼 흔들리지 않는다고 합니다. 몸무게가 매우 가볍고 무엇보다도 몇 시간 전에 사망 시각을 예측할 수 있어 죽는 순간 무게의 변화를 측정하기에 더없이 적절한 환자라고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맥두걸은 동료 의사들과 함께 3시간 40분 동안 첫번째 환자가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답니다. 관찰해 보았더니 죽는 순간 몸무게가 21 그램이 줄어들더라는 것입니다. 동물을 실험해 보니 동물은 무게가 변화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영혼이 있는 영적 존재이고 영혼의 무게가 21그램이라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이 실험은 다른 과학자들이 재현하려고 노력했으나 재현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많은 과학자들이 영혼의 존재를 파헤치려고 땀을 흘리며 연구해 보았지만 증명할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세계적인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은 ‘인간의 뇌가 죽으면 영혼도 함께 죽는다’고 말하며 “천국은 없다. 사후 세계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믿음은 죽음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을 위한 동화일 뿐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마지막 순간 뇌가 깜빡거림을 멈추면 그 이후엔 아무것도 없다. 뇌는 부속품이 고장 나면 작동을 멈추는 이다”라고 주장합니다.

세상에는 임사경험을 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죽었다 살아난 사람들입니다. 이런 것도 영혼을 부정하는 과학자들은 단지 뇌의 작용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뇌가 만들어낸 허상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뇌의 물질적, 화학적 변화에 따라 무작위적으로 움직이는 기계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의식이 뇌에 의해서 만들어진 현상이나 환상에 불과할까요? 물질이 어떻게 의식을 발생하게 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라고 했는데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무신론자들은 아무리 과학적으로 연구해 보아도 알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영혼이 우리에게 의식을 갖게 한다는 단순한 진리를 아무리 연구해도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만약 의식이 물질적이기만 하다면 물질인 컴퓨터를 고도화 시키면 컴퓨터가 의식을 가지겠습니까? 물질인 컴퓨터를 아무리 고도화 시킨다고 비물질인 1인칭 나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자아의식이 생기겠습니까? 의식은 다섯가지 감각, 생각, 믿음, 욕구,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물질인 컴퓨터를 고도화 시키면 컴퓨터가 의식을 가지고 감각, 생각, 믿음, 욕구, 자유의지를 가질 수 있겠습니까?

물질은 비물질이 될 수가 없습니다. 뇌과학이 우리가 어떤 생각을 할 때 어떤 부위가 자극된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그 부분은 자극하면 그 생각이 똑같이 나타날까요? 아닙니다. 뇌의 명령이 전달되어 우리의 자유의지가 생기는 것이 아니라 자유의지가 발동하여 어떤 부분에 어떤 현상이 일어날 뿐입니다. 일치성은 원인과 결과와는 다른 의미입니다. 불이 나면 항상 열이 발생하지만 불과 열은 다른 것입니다. 뇌 과학자들의 연구 결과가 특정한 생각을 할때 뇌의 특정한 부분에 전기 활동(electrical activity)이 있거나 심지어 뇌의 특정한 부분에 전기 자극을 주어 특정한 생각을 나게 한다고 하더라도, 그 전기 활동이 특정한 생각과 동일한 것은 아닙니다. 의식이란 “1인칭의 관점에서 갖는 인지”입니다. 뇌가 의식이 아닙니다. 영혼이 있기 때문에 의식도 있는 것입니다. 영혼은 의식을 담은 비물질적인 존재입니다. 의식은 담고 있는 육체에 생기를 불어 넣은 비물적인 존재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생기를 집어 넣어 생령이 되게 만든 것입니다. 비물질적인 의식이 있다는 것은 비물질적인 존재가 비물적인 의식을 집어 넣었다고 추론하는 것이 더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추론이지 않겠습니까?

3단 논법으로 간단하게 논리적으로 생각해 보십시오. 만약 하나님이 없다면 의식의 지향성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의식의 지향성은 존재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존재합니다. 인간은 초인적인 존재 하나님을 전제하지 않으면 단지 기계에 불과한 것이 되어 버리고 맙니다.

 

그래서 성경은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 지니라.(요한 복음 4:24)”라고 말씀합니다.

성경은 영혼은 뇌의 기능이 아니며, 정신적 속성과 육체적 속성은 동일하지 않고 영혼이 육체와 분리되어도 계속해서 살 수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영혼은 뇌가 죽은 후에도 여전히 보고 듣고 생각하며 기억할 수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물리적인 속성으로 설명되지 않는 비물질적인 영혼이 물리적인 속성인 무게를 가질 리 없고 물질을 대상으로 연구하는 과학이 어떻게 비물질인 영혼을 증명할 수 있겠습니까?

 

인간은 영혼이 있고 죽으면 끝이 아닙니다. 이것은 물질을 다루는 과학적 논증의 문제가 아니고 비불질적 세계에 대한 하나님의 계시는 믿느냐 믿지 않느냐의 믿음의 문제입니다. 영혼이 영원히 사는 영원한 나라 천국이 있습니다. 믿음을 가진 사람들의 개별적 경험의 문제입니다. 영혼을 부정하는 과학자들도 죽었다 다시 살아난 사람들 중에서 10~20% 정도가 영혼이 육체 이탈 경험을 것을 알고 있습니다. 과학적으로 믿지 못한 사람도 자신이 경험하게 되면 믿게 되는 것입니다.

하버드 신경외과 의사인 이븐 알렉산더(EBEN ALEXANDER, M.D.)는 영혼을 믿지 않은 사람이었습니다. 하버드대 교수로 과학 학술지에 150여 편이 넘는 논문들을 게재했고, 국제의학컨퍼런스에서 200회 이상의 연구 발표를 하는 등 뇌와 의식의 작용에 관해 뛰어난 업적을 쌓은 세계적인 뇌의학 권위자였습니다. 그런데 이 분이 유명 신경외과 의사로서 이름을 떨치던 어느 날 혼수상태에 빠져 동료 의사들이 치료를 중단하는 생물학적 사망 판정을 받은 것입니다. 그런데 7일 째 되는 날, 이론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 기간에 사후 체험을 하고 <나는 천국을 보았다>라는 책으로 펴냈습니다. 천사 같은 존재를 만나고 초물리적 존재계의 가장 깊은 영역으로 안내되었다고 합니다. 뇌기능 매핑 연구를 한 그는 의식이나 자유의지 혹은 비물질적 영혼의 존재를 믿지 않았답니다. 지상에 있는 물질이 유일한 현실이고 나머지 모든 것들(생각, 의식, 관념, 감정, 영혼)은 그로부터 만들어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즉, '의식'이라는 것은 뇌의 생화학적인 기능에 의해 발생하는 산물로 받아들였답니다. 임사체험도 극도의 스트레스 하에서 뇌가 만들어내는 환상에 불과하다고 받아들였답니다. 그러나 이제 그는 죽음 이후 영혼이 가는 천국을 증거하는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임사체험은 뇌가 만들어내는 환각이 아니라 '완전한 실제(Ultra-Real)'라고 말합니다. 천국, 하나님, 영혼에 관한 그 어떤 이야기도 의학적인 지식과 양립될 수 없다고 생각했지만 자신이 직접 경험한 후 하나님과 영혼이 실재하며 죽음이란 다만 다른 상태로의 전이 과정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의학적으로 뇌가 작동하지 않는 상황에서 임사체험을 했다는 것은 임사체험이 뇌가 만들어내는 환각이나 망상이 아니라 뇌와는 완전히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의식의 세계가 있다는 것을 말해 준다는 것입니다.

10여 년 동안 1300여 명의 임사체험자를 조사한 미국의 종양학 전문의 제프리 롱 박사는 그의 저서 <죽음 그 후>에서 임사체험자들이 공통적으로 경험하는 것은 의식이 몸 밖으로 나오는 유체이탈 체험이라고 주장합니다. 예수님은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를 통해 죽음 이후 천국과 지옥이 있다고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영혼이 분명히 있습니다.

 

영혼이 건강하게 잘 되는 방법은 무엇이겠습니까?

 

첫째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가이오가 영혼이 잘 되기를 기도하면서 요한은 가이오에 대하여 어떤 말씀을 해 주시고 있습니까? 3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네가 진리 안에 행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보면서 심히 기뻐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4절에 보면 진리 안에 행한다는 말을 듣는 것보다 더 기쁜 일이 없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진리란 무엇이겠습니까? 요한복음 14장 6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라고 말씀합니다. 먼저 영혼이 잘 되려면 진리이신 예수님 안에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 안에 있다는 말은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는다는 것이 전제되는 것입니다. 건강한 인생을 살기를 바라는 하나님의 바람은 가장 우선되는 것이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요6:40)"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믿으면 영혼이 영원한 천국에 가서 살지만 믿지 않으면 지옥에 가 형벌을 받습니다. 건강한 인생은 바로 이 영혼이 잘 되어야 합니다. 세상에 부귀영화를 누린다고 한 들 지옥에 간다면 얼마나 불행하겠습니까? 이 땅에서도 영혼이 잘 되어야 합니다. 이 본문을 직역하면 "네 영혼이 좋은 길로 인도 받는 것처럼 "이라는 말입니다. 영혼이 먼저 잘되고 건강하고 범사에 형통하는 것이 하나님의 바람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영혼이 구원을 받습니다.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벧전 1:9)"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뒤로 물러가 침륜에 빠질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 (히 10:39)"라고 말씀합니다.

성경에 나오는 부자를 보십시오.(눅12:16-21) 밭에 소출이 풍성하였습니다. 사업이 잘 된 것입니다. 매출이 늘어났습니다. 창고에 곡식을 쌓아 둘 곳이 없을 정도로 많은 재물을 벌었습니다. 곡간을 짓고 크게 짓고자 계획을 세웠습니다.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기를 원했습니다. 이 때 하나님은 무엇이라고 말씀하십니까?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눅 12:20)"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말씀합니다. “저가 사모하는 영혼을 만족케 하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이로다(시107:9)”

 

둘째는 예수님 말씀대로 사는 것입니다.

여기서 ‘진리’는 문자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가이오가 진리 안에서 행했다는 말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뜻입니다. 믿음 안에서, 말씀 안에서, 예수 안에서 살았다는 말입니다. 요한복음 8장 32절에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고 말씀합니다. 진리를 아는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진리 안에서 살았다는 것입니다. 당시에는 각 교회를 돌아다니며 복음을 전하는 순회전도자들이 있었습니다. 요한사도는 가이오가 있는 교회에 들러 복음을 전하고 돌아온 순회전도자들로부터 가이오와 또 함께 한 모든 교인들의 이런 모습을 전해 듣게 되었고 크게 기뻐한 것입니다. 요한1-2서가 쓰여진 배경에서도 살펴본 것처럼 당시에는 진리를 왜곡하는 거짓 교사들이 잘못된 가르침으로 교회를 어지럽히고 있던 상황입니다. 그런데도 가이오와 함께한 성도들은 온갖 위협에도 불구하고 의연하게 주님의 말씀을 지킬 뿐만 아니라 복음 안에서 주님의 가르침을 끝까지 실천했습니다. 이것이 요한 사도에게 말할 수 없는 큰 기쁨이 되었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행했습니까?

5절을 보십시오. 신실하게 형제들에게 행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대조적으로 영혼이 건강하지 못한 디오드레베는 어떻게 행했습니까?

9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으뜸 되기를 좋아했습니다.

영혼의 암은 교만입니다. 교만은 영혼을 건강하지 못하게 만듭니다.

오늘의 시대는 '자기 피알(PR) 시대'입니다. 여배우 데임 시트웰가 "교만은 항상 내가 좋아하는 미덕 중 하나였다...나는 인간의 교만을 위축시키는 모든 것을 경멸한다."고 말 했듯이 자기 숭배, 자기 피알은 생존의 필수 요인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토마스 아퀴나스는 이것 중 '교만은 모든 죄악의 어머니다'라는 표현했습니다. 교만은 죄의 한 특성이라기보다는 죄의 본질입니다. 에덴동산에서 인간은 하나님과 같이 되려 함으로써 교만을 드러내었습니다. 하나님 보다 높아지려는 영적인 암이 교만입니다. 교만은 보이지 않지만 인간 마음에 자리 잡고 있다가 때가 되면 드러납니다. 돈과 권력, 명예, 지식, 미모 등이 주어지면 추한 옷으로 노출됩니다. 지나치게 거드름을 피우게 됩니다. 이기심, 거만, 방자. 자기 본위, 허영심, 자고함, 건방짐, 무시, 독선, 자랑, 잘못된 자부심, 자기만족, 자기중심주의 등등의 누더기 옷을 입고 거리를 활보합니다. 그래서 안하무인이 되어 자기 외에는 다른 사람을 무시합니다. 다른 사람의 말에 귀를 닫습니다. 지도자의 권위를 인정하기 싫어하고 자신이 최고의 권위를 갖습니다. 하나님의 존재를 무시하고 하나님의 은혜도 막아 영적 장애자인의 자리에 머물면서도 다 되었다고 착각하게 합니다. 자신을 내세우고자 하는 과도한 욕심이 스스로 긴장과 피곤을 가져다줍니다. 자신의 교만을 꺾는다든지 받아주지 않으면 쉽게 분노하고, 다른 사람을 무시하여 상처를 줍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며 멀리 하십니다(잠16:18, 벧전5:5, 약4:6). 하나님은 그들에게 무시무시한 여호와의 날, 곧 심판의 날을 예비하셨습니다(겔31:10, 사2:12-17). 성경은 말씀합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잠16:18)" 교만은 이 세상에 들어온 첫 번째 죄이지만 그것은 또한 정복되어야 할 마지막 죄이기도 합니다. 교만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서는 어떤 인간도 진정한 영적 건강을 누릴 수 없습니다. 교만은 끊임없이 스타가 되라고 유혹합니다. 그 유혹에 넘어가면 영적으로 병이듭니다. 예수님을 보십시오. 오병이어의 기적 때 왕으로 삼으려는 군중의 인기에 예수님은 영합하지 않았습니다(요6:15). 왕이 되게 만들어 주겠다는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습니다. 베드로나 바울도 자기들을 향해서 절을 하거나 경배하려는 스타의 유혹에 빠지지 않았습니다(행10:26,14:15).

 

10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악한 말로 지도자들을 비방했습니다. 교만하면 자동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잠언 21장 23절에 “입과 혀를 지키는 자는 그 영혼을 환난에서 보전하느니라”고 했는데 비방을 즐겼습니다. 그리고 형제를 맞아 들이지도 않고 오히려 맞아들이고자 하는 자를 금하고 교회에서 쫓아 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영혼이 잘 되려면 어떻게 하라고 말씀합니까? 11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악한 것을 본받지 말고 선한 것을 본받으라고 말씀합니다. 12절에 보면 데메드리오는 디오드레베와 달랐다고 말합니다.

교회 생활하면 디오드레베를 본받는냐 아니면 데메드리오를 본받느냐에 따라 영적 건강은 많은 차이가 납니다. 누구를 모방하느냐에 따라 인생의 미래는 달라집니다. 영혼이 건강한 인생을 위해 누구를 본받고 있습니까? 우리가 평생 따라가야 할 진정한 모델은 누구이겠습니까?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히12:2)" 인생을 성공적으로 살았던 바울은 말씀합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고전11:1)"라고 말씀합니다.

영적으로 건강하게 평생 동안 살려면 예수님을 끊임없이 본받아야 합니다.

 

셋째는 기도해야 합니다.

요한은 가이오의 영혼이 잘 되기를 위해 기도합니다. 영혼이 건강하려면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영혼이 병들게 되어 있습니다.

 

열린교회/김필곤목사/2020.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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