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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보라(3) 날마다 십자가를 바라보라(갈2:20.3:1)
김필곤목사 (yeolin) 조회수:3900 추천수:3 220.120.123.244
2020-03-15 07:40:01

바라보라(3) 날마다 십자가를 바라보라

갈2:20.3:1

 

우리는 3월에 바라보라는 주제로 하나님의 말씀을 계속 살펴보고 있습니다. 첫주일에는 하나님과 관계에서 믿음 생활에서 승리하려면 믿음의 주요 우리를 온전케 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한다고 말씀을 전했습니다. 우리는 믿음 생활에 승리하려면 신천지 이단의 교주를 바라보면 안 됩니다. 늘 변화하는 사람을 바라보면 믿음 생활에 실패합니다. 아무리 친한 사람도, 자신이 섬기고 있는 목사도, 자신에게 생명처럼 귀중한 사람도 믿음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사람은 그저 사랑의 대상은 될 수 있어도 믿음의 대상은 될 수 없습니다.

두 번째 주일은 우리가 평생 일과의 관계를 맺고 사는데 일에서 성공하려면 소명의 땅을 바라보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내게 주신 소명을 발견하고 평생 그 소명을 이루면 인생은 성공한다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부를 때 구원만을 위해 부른 것이 아니라 이 땅에 살면서 각자 주어진 하나님의 이루시도록 불렀습니다. 우리 믿음의 사람 누구에게나 크고 작은 소명이 다 있습니다. 얼마나 큰일을 이루었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소명을 이루어드리면 인생은 일에서 성공하는 것입니다.

오늘은 세 번째로 신앙생활에서 자신과의 문제에 대하여 말씀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사람은 자신과 싸움에서 승리해야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습니다. 프랑스의 유명한 소설가 빅토르 위고는 인생에는 세 가지의 싸움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첫째, 인간과 자연과 싸움입니다. 둘째, 인간과 인간과 싸움입니다. 셋째, 자기 자신과 싸움입니다. 인간의 마음은 진실과 거짓, 불의와 의가 싸우는 전쟁터입니다. ‘믿는 나와 믿지 못하는 나’, '부지런한 나와 게으른 나', '경건을 좇는 나와 쾌락을 좇는 나', '용기 있는 나와 비겁한 나', '감사하는 나와 불평하는 나', '만족하는 나와 불만족한 나', '너그러운 나와 잔인한 나'가 끊임없이 싸우는 전쟁터입니다. 이 싸움에서 승리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토마스 A. 캠퍼스는 "자신을 완벽하게 이길 수 있으면 다른 어떤 것도 쉽게 통달할 수 있다. 자신을 이겨내는 것이 가장 완벽한 승리이다."라고 했습니다. 이 싸움에서 이기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손자병법에 지피지기(知彼知己)면 백전백승(百戰百勝)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번을 싸워도 이긴다는 말입니다. 적을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나를 알아야 합니다. 나는 누구인가? 이것을 모르니까 자신과 싸움에서 근본적으로 실패합니다. 이것을 모르니까 이 땅에서 지옥 생활을 하고 죽어 지옥에 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나를 아는 것이 쉽지가 않습니다.

 

독일의 염세 철학자 쇼펜하우어가 "나는 누구인가" 하고 고민하면서 길을 걷고 있었답니다. 너무 골똘히 생각하며 걷다 옆에 사람이 있는 줄 모르고 부딪혔답니다. 그 사람은 화가 나 쇼펜하우어에게 "당신은 도대체 누구인데 길도 보지 않고 다니는 거요?" 하고 화를 버럭 냈답니다. 그때, 쇼펜하우어는 "나도 내가 누구인지 알았으면 참 좋겠소."라고 말했답니다. "네 자신을 알라"라는 명언을 남긴 소크라테스도 "사람들은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알지 못한다. 그러면서도 사람들은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알지 못하는 그 사실을 알지 못한다. 그러나 나도 내가 누구인지 알지 못하지마는 나는 내가 누구인지 알지 못한다는 사실만은 알고 있다."라고 말했답니다. 내가 누구인지 평생 탐구한 소크라테스의 결론은 바로 "나는 내가 누구인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다윈의 진화론을 믿는 사람들은 인간은 단지 유인원에서 진화한 고등동물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만물의 근원을 물질로 보고, 모든 정신 현상도 물질의 작용이나 그 산물이라고 주장하는 유물론자에게는 인간은 단지 물질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리처드 도킨스 같은 사람은 유전정보를 실어나는 그릇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우리는 그들의 말처럼 나는 고등동물이나, 물질 덩어리나 유전전보를 전달하는 그릇에 불과할까요?

우리가 외출할 때 내 모습을 보려면 거울을 봅니다.

우리가 누구인가를 알아보려면 거울이 필요합니다. 내가 생각하는 나는 그 거울이 타인이 됩니다. 어릴 때 어머니가 너는 천재야 라고 말하면 ”아 나는 천재구나”라고 자신을 생각합니다.

쿨리(C.H. Cooley)라는 학자는 이것을 거울 자아(looking-glass self)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은 거울을 통해 자신을 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 신앙인은 나를 정확히 알려면 십자가라는 거울을 보아야 합니다. 십자가를 바라볼 때 정확히 나를 알 수 있습니다. 십자가를 보지 않으면 인간은 정확히 내가 누구인지를 알 수 없습니다. 십자가를 바라보고 정확하게 나를 알아야 평생 치루는 나와의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십자가를 바라보고 알게 된 나는 누구입니까?

 

1. 나는 옛 자아가 십자가에 죽은 사람입니다.

오늘 성경에 보면 무엇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 ‘내가’라는 말에 자신의 이름을 넣어 읽어 보십시오. 이것을 인정하십니까? 이것을 믿습니까? 세상은 이것에 대하여 두 종류의 사람으로 나누어집니다. 세상은 이것을 믿고 인정하는 사람과 믿지 않고 인정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이것이 진짜 신앙인인지 아닌지를 구별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자신과 싸움에서 승리하는 사람인지 실패하는 사람인지를 구별하는 기준점이 되는 것입니다. 못 박혔다는 것은 문법적으로는 완료 수동형입니다. 과거 어느 때에 십자기에 못 박혀서 지금까지 못 박힌 상태로 있다는 말입니다. 단회적 사건으로 과거도 그렇고 현재도 그렇다는 것이고 미래고 그렇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이 무슨 뜻인지 좀더 잘 이해하기 위해 5:24를 찾아 읽어 보겠습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나와의 싸움에서 끊임없이 실패하게 만드는 정욕, 탐심을 이미 십자가에 못을 박아 버렸습니다.

로마서 6장 6절은 이 사실을 이렇게 자세히 말씀합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서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10절에서는 "그가 죽으심은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심이이요" 11절에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 죽은 자요... 여길지니라"라고 말씀합니다.

바로 거짓된 자아, 옛 자아, 지옥의 형벌을 받아야 할 옛 사람, 육에 속한 사람, 죄에 속한 자아가 죽은 것입니다. 죽음을 상징하는 물세례로 이미 십자가를 통해 세례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내 스스로 죽은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과 함께 죽은 것입니다. 예수님이 2천 년 전 십자가에서 육체적으로 죽으실 때, 우리도 죽었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나를 위해서' '나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나'를 위한 대속의 죽음입니다. 때문에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 나도 거기서 죽었습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 죄인인 나도 함께 죽었습니다. 실제로 바울이 십자가에서 죽었습니까? 우리가 실제로 십자가에서 죽었습니까? 아닙니다. 그런데 왜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고 했겠습니까?

그 답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주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구절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주신"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하여 내 대신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내 대신 십자가에 못 박히셨기 때문에 나도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와 미국이 자유무역협정(FTA: Free Trade Agreement)을 했습니다. 내가 협정을 한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그 법을 다 적용받습니다. 우리의 후손들도 다 적용을 받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신비적, 영적으로 연합되어 있습니다.

이것을 믿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결혼한 남편이 잘 해주는 예쁜 자매에게 음욕이 일어나면 이미 그 음욕을 십자가에 못박아 버린 십자가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자존심 싸움할 필요가 없습니다. 누군가 나쁜 놈이라고 말하면 그때 자꾸 자기를 바라보거나 비난하는 사람을 바라보지 말고 십자가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래 그 나 나쁜 사람이었어 그런데 그 사람 이미 십자가에 못박았어,”라고 십자가를 바라보고 말하는 것입니다. 속상한 일을 당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십자가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속상해하던 옛사람 십자가에서 죽었습니다. 상처받을 때도 십자가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상처받아 고통스러워하던 옛 사람 십자가에 죽었습니다. 밤잠 설치게 하는 원한과 분노로 가득 찰 때도 십자가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밤잠 설치게 하는 원한과 분노로 가득 찬 옛사람 십자가에서 죽었습니다.

우리 스스로는 죽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서 죽었습니다. 죽은 사람에게는 아무리 나쁜 놈이라고 욕해도 저질이라고 모욕을 주어도 반응하지 않습니다. "그래 내 옛 자아 십자가에 이미 죽었어" "그래, 나 고집불통, 내 교만, 내 욱하는 성격 다 십자가에서 죽었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옛 자아가 죽어야 죄에서 자유로움을 얻습니다. 율법의 속박으로부터 자유함을 얻습니다. 그러므로 그 누구도 행위를 가지고 우리를 정죄할 수 없습니다. 자신과 싸움에서 승리하려면 나의 옛 자아, 정욕과 탐심을 못 박은 십자가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정욕과 탐심이 불일 듯 일어나면 십자가를 바라보십시오, 머리에 정욕이 생기면 가시면류관을 쓰시고 피를 흘리시는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의 머리를 바라보십시오. 탐심으로 손이 움켜쥐려고 하면 십자가에 달려 못에 박혀 피를 흘리고 계시는 예수님의 손을 바라보십시오. 발이 정욕의 길로 향하면 나를 위해 발에 못을 박히고 피 흘리고 계신 십자가를 바라보십시오. 그러면 우리는 평생 치러야 하는 우리 자신과 싸움에서 백전백승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 8:1-2)."

 

2. 나는 그리스도가 주인된 삶을 사는 사람입니다.

두 번째 우리가 나와의 싸움에서 이기는 방법은 무엇이겠습니까? 그 답은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라는 말씀에 나와 있습니다. “내가, 내 안에” 자신의 이름을 넣어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런즉 이제” 어떻게 산다는 것입니다. 내 안에 내가 살며 싸우면 자신과 싸움에서 승리할 수 없습니다. 내 안에 계시는 예수님으로 살 때 예수님의 능력으로 자신과 싸움은 이길 수 있습니다.

이제는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자기가 왕이 되는 사는 사람과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고 사는 사람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진짜 신앙인인가 가짜 신앙인인가를 분별하는 두 번째 기준입니다. 십자가를 바라보아야 내 인생의 주인이 내가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하게 됩니다. 내가 싸우면 실패하지만 예수님이 싸우면 승리합니다. 거룩하게 사는 힘을 예수님이 주십니다. 희생하며 살 수 있는 힘을 주십니다. 능력있게 사는 힘을 주십니다. 자신을 이길 수 있는 힘을 예수님이 주십니다. 내 인생의 삶의 주인을 바꾸면 삶도 바뀌게 됩니다.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의 보고, 십자가를 통해 자연계를 보고, 십자가를 통해 정치를 보고, 십자가를 통해 사람을 보고, 십자가를 통해 원수를 보고, 십자가를 통해 질병을 보고, 십자가를 통해 고난을 보고, 십자가를 통해 교회를 보고, 십자가를 통해 가족을 보고, 십자가를 통해 세상을 보는 힘이 생깁니다.

사업을 해도, 운동해도, 공부해도, 취업해도, 운전해도, 자녀 교육을 해도 예수님이 주인이 되는 인생을 사는 것입니다. 나의 무능함이 인생을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전능하신 예수님이 우리를 다스리는 것입니다. 미움과 시기가 가득한 내가 내 인생을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를 지시기까지 하신 예수님의 사랑과 용서가 나의 마음을 가득 채우는 것입니다. 절망하기 쉬운 내가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어떤 경우도 희망을 주시는 예수님이 나를 다스리는 것입니다. 나는 나의 능력, 나의 인격, 나의 지혜, 나의 실력, 나의 경험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능력, 그리스도의 인격, 그리스도의 지혜, 그리스도의 실력, 그리스도의 경험으로 살게 되는 것입니다. 질병에 걸려도 예수님이 나오고, 실패해도 예수님이 나오고, 흔들어도, 짓밟아도, 무시당해도, 멸시를 받아도, 자존심이 상해도 예수님이 나오는 것입니다. 오직 예수. 오직 예수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로마서 14장 8절의 말씀처럼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는 것입니다.

우리는 나와의 싸움에서 내 안에 살아계신 예수님의 능력으로 이길 수 있습니다. 내 힘으로 내가 싸우려고 하면 실패의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습니다. 내 안에 사시는 예수님이 우리를 의롭게 만들어 주십니다. 기쁨의 근원 되신 예수님이 우리를 어떤 절망 가운데서도 소망을 주십니다. 내가 용서 못 할 것 예수님이 용서하게 하고, 내가 이해 못 할 것을 예수님이 이해하게 하고, 내가 사랑 못 할 것을 예수님이 사랑하게 하는 것입니다. 내가 치유 못 할 것을 예수님이 치유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십자가에서 용서하시고 치유하시고, 사랑하신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고 날마다 십자가를 바라볼 때 우리는 매일 이루어지는 나와의 싸움에서 승리하는 것입니다. 주기철 목사님이 손양원 목사님이 자신의 힘으로 이긴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를 바라보고 목사님들 안에 살아계신 예수님의 힘으로 이긴 것입니다. 살아있는 순교자 안이숙 사모의 간증을 들어보았을 것입니다. 감옥에서 고문과 영양실조가 겹쳐서 머리카락이 다 빠지고, 손톱이 다 빠졌답니다. 그런데 감옥 속에서 다른 사람을 감동하게 합니다. 감옥에서 배가 매우 고팠지만, 한 번도 배고프다고 울어본 적 없었답니다. 혹독한 겨울 추위에 감옥에서 밤새 오돌오돌 떨면서도 울지 않았답니다. 그런데 자신을 위해 하나님의 아들이 십자가에 돌아가셨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울었답니다. 사모님 안에 왕이 되신 예수님께서 그 험한 고통과 수모, 모멸을 이기게 한 것입니다. 타협하고 편안하게 살고 싶어 하는 자신과 싸움에서 승리하게 하신 것입니다.

“내 안에 사는 이 예수 그리스도니 나의 죽음도 유익함이라 나의 왕 내 노래 내 생명 또 내 기쁨 나의 힘 나의 검 내 평화 나의 주 내 안에 사는 이 예수 그리스도니 나의 죽음도 유익함이라”

 

3. 나는 삶의 원리가 믿음이 된 사람입니다.

나와의 싸움에서 이기는 세 번째는 무엇이겠습니까? 믿음 안에서 사는 것입니다.

 

진짜 신앙인이가 가짜 신앙인인가를 분별하는 세 번째 기준은 매사 믿음 밖에서 사는가 믿음 안에서 사는가 입니다. 믿음은 일회적 거래가 아닙니다. 지속해서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날마다 매 순간 모든 상황에서 "믿음 안에서" 살아가는 삶입니다. 믿음이란 십자가를 바라보고 십자가 안에서 사는 사람들의 삶의 방식입니다. 믿음의 대상은 누구입니까?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입니다.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세 가지로 말씀합니다. 첫째는 나를 사랑하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사람은 다 자기 좋을 때 사랑하고 자기 필요 없으면 버리는 것이 인간입니다. 그러나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은 내가 죄를 지을 때도, 내가 무능할 때도, 내가 토라질 때도, 내가 나태할 때도 끝까지 나를 버리지 않는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환난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나 그 어떤 것도 끊을 수 없는 사람으로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둘째는 위하시는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언제든지 우리 편에 서서 우리를 위해 주시는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사람은 위해 주는체하지만 조금만 자신에게 피해를 주면 적으로 돌려 죽이려고 합니다. 그러나 십자가에 달린 우리 예수님 언제나 우리의 편이 되어 주십니다. 셋째는 자기를 십자가에서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사람은 이익이 있을 때 희생을 합니다. 그러나 십자가에 달리신 우리 예수님은 아무런 조건 없이 우리를 위해 피와 물을 다 쏟으시고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 생명을 바쳤습니다. 우리는 이 예수님을 믿음으로 자신과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갈라디아 교인 가운데는 어리석게도 이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3장 1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 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

우리는 평생 살면서 갈등과 선택의 문제가 따라옵니다. 그래서 바울은 본문에서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육체를 가진 모든 인간은 믿음으로 하지 않으면 이 싸움에서 실패합니다. 믿음 안에 있지 않을 때 아브라함도 자신과 싸움에서 아내를 누이라고 속이는 실패를 했습니다. 엘리야도 권력자들 앞에서 두려워 나무 아래서 죽기를 구하기도 했습니다. 모세도 하나님도 인정할 만한 온유를 가졌지만 80년이나 훈련을 받았는데 자신과 싸움에서 120세에 혈기를 부렸습니다. 그만한 나이가 되면 원숙하게 자신과 싸움에서 이길 것 같은데 실패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나이가 성숙을 보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성질 급한 베드로 성급한 성질 잘 바꾸지 못했습니다. 성군인 다윗도 간음죄와 살인죄를 저질렀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고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해서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가고 있지만, 아직 죄성(罪性)이 남아 있습니다. 죄의 책임으로부터 해방된 자유인이지만 여전히 노예의 근성은 남아 있는 것입니다. 바울이 고백한 것처럼 원하는 선은 행하지 않고 원하지 않는 악을 행하는 죄의 근성이 남아 있습니다(롬7:19). 그래서 평생 자신과 싸움에서 이기려면 매일 매일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어떤 갈등 상황에서도 믿음으로 이길 수 있습니다.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요일 5:4)"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복음서에서 예수께서 병자들에게 "내가 너를 위하여 이것을 할 수 있는 줄 믿느냐?"(마9:28)

"네 믿은 대로 되라"고 말씀했습니다.(마8:13)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함이 없다"(막9:23) 고 말씀하였습니다. 내 안에 매일 불일 듯 일어나는 악한 성질, 좋지 않는 습관, 분노하기 쉬운 성질, 미움과 질투, 원망과 시비 이길 수 있습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주께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라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어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눅 17:6).

믿음으로 놋뱀을 바라볼 때 살아난 것처럼(민21장) 믿음의 눈으로 십자가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혈루증 앓은 여인이 믿음으로 예수님의 옷자락를 붙들고 고침받은 것럼 믿음의 손으로 예수님을 붙잡고 가는 것입니다. 수가성 여인이 예수님을 만나 믿의 발로 사마리아 성에에서 예수님을 전했듯이 믿음의 발로 세상에 나아가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연세대 영동 세브란스 병원의 암센터 소장인 이희대 박사님이 <희대의 소망>이라고 하는 책을 썼습니다. 2003년도에 대장암이 발병이 되어 암세포가 간과 골반 뼈에 전이되어 암4기, 말기 암 상태라고 합니다. 본인이 암센터 소장입니다. 암4기는 암 말기입니다. 이 정도 되면 보편적으로 3개월에서 6개월 산다고 합니다. 그런데 8년이 지나도록 환자를 돌보았답니다. "암이 허락 없이 와서 돈도 안내고 전세 살고 있다고." 말합니다. 암은 하나님을 만나게 채 주었기 때문에 그 분에게는 차라리 축복이었답니다. 기독교 학교도 나왔고 성경을 접한 적도 있었지만, 수박 겉핥기에 불과했답니다. 그런데 암을 통해서 철저히 낮아짐으로써 비로소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답니다. 2003년 6월에 이미 4기였답니다. 자신과 싸움을 하는 것입니다. 그때 죽는다, 죽는다 했더라면 진짜 죽었을지도 몰랐답니다. 그러나 십자가를 바라보고 자신과 싸움에서 자신을 사랑하시고 위하시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믿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적인 치료 외에 영적인 치료를 허락하셔서 새로운 생명으로 태어나게 해주실 것을 믿은 것입니다. 그래서 절망 속에서 만난 하나님은 믿음으로 암을 극복할 수 있도록 해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의사로서 의술도 중요하지만 의술을 뛰어넘어 하나님을 믿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되었다고 합니다.

 

지금 나와의 싸움에서 해결하지 못한 문제가 무엇입니까? 질병의 문제가 있습니까? 용서하지 못한 문제가 있습니까? 원한과 증오의 문제가 있습니까? 실패와 좌절의 문제가 있습니까? 가정에 문제가 있습니까? 자녀의 문제가 있습니까?

나는 누구입니까? 믿음으로 이 모든 것을 이길 수 있는 자입니다. 십자가를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누구라는 답이 나옵니다.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며 사랑하시는 눈으로 우리를 바라보고 계시는 예수님께서 어떤 고난도, 어떤 질병도, 어떤 절망도, 어떤 문제도, 어떤 아픔도, 어떤 괴로움도, 어떤 슬픔도, 어떤 좌절도 외면하지 않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가 우리의 아픔 상처를 싸매 주실 것입니다. 예수님의 그 십자가의 보혈이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 주실 것입니다. 그 십자가의 보혈이 우리 마음과 우리 교회와 우리 직장과 우리 민족에게 넘쳐흘러 치유해 주실 것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다시 한번 읽겠습니다.

 

나와의 싸움에서 우리는 어떻게 승리할 수 있겠습니까?

세상을 바라보거나, 사람을 바라보거나 문제를 바라보거나, 자신을 바라보는 것보다 십자가를 바라볼 때 답이 나옵니다. 십자가를 바라보면 나는 옛 자아가 십자가에 죽은 사람인 것을 알게 됩니다. 첫째, 내가 십자가에 죽었다는 것을 믿고 인정하면 자신의 정욕과 싸움에서 이길 수 있습니다. 둘째 내 인생 내가 왕이 아니라 예수님이 주인이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할까 생각하면 나와의 싸움은 이길 수 있습니다. 십자가를 바라보면 나의 삶의 주인은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믿게 됩니다. 셋째 십자가를 바라보면 믿음이 생기고 그 믿음으로 나와의 모든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열린교회/김필곤목사/202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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