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60:21-22
지난주 남북 정상이 평양에서 회담하고 백두산에 오른 것을 TV 화면을 통해 보았을 것입니다. 이런 것을 보면서 어떤 사람은 앞으로 핵 문제가 잘 해결되어 남북이 전쟁하지 않고 평화와 번영의 길로 갈 것이라고 낙관적으로 보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똑같은 사건이지만 아주 비관적으로 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북한의 살라미 전술에 이용당해 북한이 핵을 이용해 동결, 유예, 불능화, 봉인 등 다양한 개념을 개발해 단계적으로 경제적 이익만 챙겨갈 따름이지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심하게 말하는 사람은 국방을 해체하고 항복문서에 대통령이 서명했다며 좌파 대통령이 헌법을 어겼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어떤 일이든 사람들은 다 똑같이 생각하지 않습니다. 컵에 물이 반이 차 있는 것은 사실적 사건이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어떤 사람은 "어, 컵에 물이 반이나 남았네?"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어, 컵에 물이 반밖에 안 남았네?"라고 말합니다. "어, 컵에 물이 반이나 남았네?"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낙관주의자라고 합니다. "어, 컵에 물이 반밖에 안 남았네?"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비관주의자라고 합니다. 비관주의자와 낙관주의자 중에 누가 더 행복하게 살겠습니까? 어떤 사람이 더 희망을 가지고 살겠습니까?
초등학교 4학년 학생 150명을 대상으로 실험을 해 보았답니다. 설문지를 통해 생각을 알아보았는데 "나는 가치 있고 능력 있다. 좋은 일이 있어나고 미래는 밝을 것이다"라고 낙관적으로 생각하는 아이들이 희망지수가 높았답니다. 반면에 "나는 능력이 없다. 나에게는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날 거야, 내 미래는 흐릴 거야"라고 자신을 비관적으로 생각하는 아이들은 희망지수가 낮았답니다. 일주일 뒤 희망지수가 높은 아이들 5명과 보통인 아이들 5명을 선발하여 과제를 주었습니다. 두 명씩 짝을 지어 발을 묶게 한 후 상자를 주고 20분 안에 10층 탑을 쌓게 했습니다. 평균 아이들은 서로 불평하고 잘 쌓지 못했습니다. 어느 정도 쌓자 실험자가 쌓은 탑을 일부러 무너뜨리고 어떻게 하는가를 보았습니다. 그들은 원망하며 포기하며 다시 쌓지 않았습니다. 결국, 2층만 쌓았습니다. 그런데 희망지수가 높은 아이들은 신속하게 힘을 모아 쌓아 올렸습니다. 실험을 진행하는 사람이 실수인체하며 역시 같은 방법으로 무너뜨렸습니다. 이들은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최선 다했습니다. 결과에 만족해하며 타인을 배려하였습니다. 다시 쌓아 올렸습니다.
그래서 왜 똑같은 아이들인데 어떤 아이는 희망지수가 높고 어떤 아이들은 희망지수가 낮을까를 실험해 보았습니다. 일곱 아이와 일곱 엄마를 선발하였습니다. 공을 바구니에 넣는 게임을 시켰습니다. 아이는 눈을 가리고 공을 던지면 엄마가 위치를 알리며 공을 바구니에 받게 하였습니다. 결과는 다섯 팀은 12개 이상 넣었고 두 팀은 7개밖에 넣지 못했습니다. 왜 그런 차이가 생겼는가를 녹화된 비디오를 통해 보니 7개밖에 넣지 못한 팀은 어머니가 게임하는 동안 내내 계속 "안 돼, 아니"라는 부정적인 말을 계속 반복하였습니다. 공을 많이 넣은 아이들의 어머니는 "잘하네, 괜찮아" 등이라고 반복하여 말했습니다. 엄마의 낙관적이고 긍정적인 말이 아이들에게 할 수 있다는 낙관적이고 긍정적인 생각을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늘 같은 사건이지만 긍정과 부정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어떤 일이든지 비관과 낙관은 항상 동시에 존대합니다.
우리 성도님들은 낙관적 태도를 가지고 사는 것 같습니까? 비관적 태도를 가지고 살고 있는 것 같습니까?
오늘 성경을 보면 우리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향하여 아주 낙관적인 말씀을 주고 있는 것을 봅니다. 이사야가 사는 시대에는 정치와 경제에 있어서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보다 훨씬 어렵고 힘들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이 비관할 수 밖에 없는 환경이었습니다. 우리나라처럼 남북이 분단되어 있었고 그가 활동하던 시대(BC 740-700년경)에 북쪽 이스라엘은 앗수르에게 멸망당하였습니다(B. C 722년). 남쪽 유다도 북쪽에 있는 앗수르와 남쪽에 있는 애굽, 신흥 바벨론 사이에서 언제 나라가 망할지 모르는 위태로운 상태에 있었습니다. 이 때 이사야는 계속 하나님보다 동맹국을 의지하면 멸망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비관적인 말을 합니다. 그의 예언대로 유다는 바벨론에게 처참하게 멸망당하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역사를 비관적으로 끝내지 않았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바벨론에게 멸망당한 유다가 회복될 것을 예언한 말씀입니다. 경기 둔화 정도가 아닙니다. 불경기 정도가 아닙니다. 북핵 위기 정도가 아닙니다. 나라를 잃어버려 모든 경제가 초토화된 백성입니다. 실업 정도가 아닙니다. 부모를 잃고 포로로 잡혀간 백성, 전쟁으로 모든 재산을 다 잃어버리고 노예처럼 살아가는 백성입니다. 자부심을 가지고 하나님을 믿는 백성이라고 자랑하는 민족이 사람들에게 짓밟히고 조롱받는 백성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들에게 어떤 나라를 만들어 주겠다고 약속하고 있습니까?
15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전에는 네가 버림을 당하며 미움을 당하였으므로 네게로 가는 자가 없었으나 이제는 내가 너를 영원한 아름다움과 대대의 기쁨이 되게 하리니” 얼마나 희망적인 말입니까? 얼마나 낙관적인 기대를 주시는 말씀입니까?
풍성함이 있는 나라(17), 화평과 공의가 통치하는 세상(17), 구원받는 자의 찬송이 있는 나라(18), 하나님이 영영한 빛이 있는 나라(19), 슬픔의 날이 마치는 세상이 오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20). 본문의 예언은 예수님을 통해 이루어질 신약교회 공동체를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궁극적으로는 영원한 천국에 대한 예언입니다. 물론 이것은 메시아 예수님을 통해 임할 하나님 나라, 새롭게 태어날 교회 공동체를 말씀하지만 우리 시대에도 우리의 가정, 우리의 회사, 우리의 교회, 우리의 나라에 어떤 태도를 가지고 살아야 할지를 교훈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 신앙인을 비관적 낙관주의라고 합니다. 고통의 과정을 거치지만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입니다.
이 영광스러운 나라에 사는 사람들은 어떤 상태에 있을 것이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까?
21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첫째, 그들은 모두 의로워진다는 것입니다. 모든 슬픔과 불행의 근원은 죄인데 이 죄 문제가 해결되어야 의롭게 된다는 것입니다.
둘째 그들은 영원히 존립이 보장된다는 것입니다. 이제 바벨론 포로로 잡혀가 땅을 잃지 않고 영원히 땅을 차지하리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그 땅을 차지한다는 것입니까? 이사야 57장 13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하나님을 의뢰하는 자가 땅을 차지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셋째, 그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리라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이 심어 놓은 가지이고 하나님이 지으신 자이기 때문입니다.
22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그 작은 자가 천 명을 이루겠고 그 약한 자가 강국을 이룰 것이라 때가 되면 나 여호와가 속히 이루리라”
넷째, 그들은 영향력이 막강해진다는 것입니다. 교회 시대에 이스라엘 뿐 아이나 열방의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 돌아 오게 될 것을 말씀합니다. 60장 4절을 보세요. 5절을 보세요.
이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할까요?
그 답은 바로 그 밑에 있는 61장을 읽어 보면 금방 알 수 있습니다. 1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여호와의 영이 임하신 분은 누구를 말씀하겠습니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해주고, 상한 마음을 고쳐주시고, 포로된 자를 자유케 하시는 분이 누구시겠습니까? 여호와의 영이 임한 내는 누구겠습니까?
성경에서 그 답을 알려 주시고 있습니다.
누가복음 4장 17-19절을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드리거늘 책을 펴서 이렇게 기록된 데를 찾으시니 곧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21절을 보세요. 바로 예수님이 자신에 대하여 하신 예언이라고 가르쳐 주었습니다(21).
예수님을 통해 사람들의 신분이 이렇게 회복될 것을 말씀해 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우리가 바로 죄용서를 받고 믿음으로 의로워지고, 구원받은 후 영원히 천국을 소유하게 되며,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그 작은 자가 천 명을 이루겠고 그 약한 자가 강국을 이루는 영향력을 가지고 살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고 오순절 성령받고 이루어지는 예루살렘 교인들과 예수님 재림할 때까지 살아가는 이 땅의 성도가 이렇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누가 이룬다는 것입니까?
22절 하반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가 속히 이루리라” 하나님이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사람의 노력으로 되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과학이 이루는 것이 아닙니다. 경제가 이루어 주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열심히 이루어 주는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하나님은 이 사실을 계속 강조하고 있습니다.
두 군데만 찾아보겠습니다. 이사야 9장 7절을 보십시오.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왕좌와 그의 나라에 군림하여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지금 이후로 영원히 정의와 공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
이사야 37장 32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이는 남은 자가 예루살렘에서 나오며 피하는 자가 시온 산에서 나올 것임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이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나님이 이루셨는지 성경에서 찾아보겠습니다.
성경에는 3대 완성이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다 이루었다고 선포하시는 완성입니다.
첫째는 창세기 2장 1절에 나와 있습니다. 찾아 읽어 보겠습니다.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어지니라” 우주가 빙백에 의해 만들어 진 것이 아닙니다. 인간이 진화에 의해 만들어 진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다 완성하신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진화론의 허구를 이렇게 비유합니다. “진화론은 윌리엄 셰익스피어가 알파벳을 수만 개 적어서 큰 자루에 넣고 한 시간 동안 막 흔들었더니 그 알파벳들이 서로 결합되어 <로미오와 줄리엣>이라는 희곡이 나왔다라고 주장하는 것과 같이 터무니 없는 논리이다” DNA 하나만 해도 셰익스피어가 쓴 모든 희곡들보다 더 많고 복잡한 염기들이 질서정연하게 결합되어 있습니다. 그 자루를 수십억 년 흔든다고 <로미오와 줄리엣>이라는 작품이 나오겠습니까? 하나님이 세상을 만드시고 하나님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인간을 만드신 것입니다.
둘째는 요한복음 19장 30절에 나와 있습니다. 찾아 읽어 보겠습니다.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 타락하여 지옥 갈 인류를 구원하는 구원 사역을 완성하신 것입니다.
세 번째는 계시록 21장 6절에 나와 있습니다. 찾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을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 알파와 오메가 되신 예수님께서 새 하늘과 새 땅의 완성을 선포하시는 것입니다.
로마서 9장부터 11장까지 인류의 역사을 소개하면서 로마서 11장 36절에 한 마디로 이렇게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
우리가 어떻게 이런 사람이 될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우리가 의롭게 됩니까?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롬1:17)”
어떻게 우리가 영원한 존립하게 됩니까?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요6:40)”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일지라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에서 끊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3:16)”
어떻게 우리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살 수 있습니까?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롬4:20)”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히11:6)”라고 말씀하십니다. “믿음을 따라 하지 아니하는 것은 다 죄니라(롬14:23)”라고 말씀하십니다.
어떻게 우리가 막강한 영향력을 끼치며 살 수 있습니까?
“이르시되 너희 믿음이 작은 까닭이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마17:20)”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막9:23)”
공통적으로 말씀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말씀을 들으면 믿음이 생깁니다. 그러나 말씀을 듣는다고 다 믿음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을 받으면 성령의 사람이 되고 믿음으로 능력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믿음으로 의롭게 되고 믿음으로 영원한 천국에 들어갈 뿐 아니라 믿음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며 살 수 있습니다. 믿음으로 하나가 천을 이루며 약한 자가 강국을 이루며 살 수 있습니다.
작은 자가 천을 이루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믿음입니다. 둘째는 성령 충만입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그 예수님의 피로 내가 의롭게 되었다는 사실을 믿는 것입니다. 그러면 불가능했던 죄의 문제가 해결되어 죄인에서 의인으로 기적적인 변화가 일어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이 땅에 살면서 갖가지 죄를 짓고 살지만 우리 하나님이 예수님 때문에 우리를 영원히 버리지 않고 우리와 함께하여 영원한 천국에 이르도록 만들어 주십니다.
예수님의 부활의 능력을 믿으면 믿음의 능력으로 하나가 천을 이루며 약한 자가 강국을 이루며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믿음이 작은 자가 천을 이루게 합니다. 믿음이 약한 자가 강국을 이루게 만들어 줍니다. 성령 충만을 받는 것입니다.
베드로를 보십시오. 아주 지극히 약한 자였습니다. 심력이 그렇게 뛰어난 자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을 부인한 자였습니다. 많이 배워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무식한 어부였습니다. 20억대 30억 대 집이 있는 부자가 아니었습니다. 가난한 어부로 장모를 모시고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오순절에 성령을 받은 후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믿음으로 복음을 외칠 때 3천 명, 5천 명이 예수님을 믿고 돌아옵니다. 성령의 권능을 받으면 똑같은 사람이라도 이런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힘으로 못하고 능으로 못하는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1당 천이 되는 것이 아니라 일당 3천, 일당 5천, 일당 만 명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 성령의 사람 베드로 한 사람을 통하여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주님께 돌아왔겠습니까? 앉은 뱅이가 일어납니다. 죽은 자가 살아납니다. 옥에 갇히지만 풀려납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믿음의 사람들을 통해 수많은 사람들이 주님께 돌아오는 것입니다.
덴마크를 살린 그룬트비히 목사님은 작은 자였지만 절망하는 덴마크를 믿음으로 살려 세계에서 가장 모범적인 낙농국을 만들었습니다. 작은 자에 불과했던 링컨은 믿음으로 노예해방을 하고 통일된 미국을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믿음으로 다윗을 골리앗을 무너뜨렸고 요나단은 믿음으로 부하 한 사람과 함께하여 해변의 모래같은 블레셋을 이겼습니다. 엘리야는 믿음으로 갈멜산에서 850명의 이방신을 섬기는 사람들과 대결하여 승리하였습니다. 에스더는 죽으면 죽이리라는 믿음으로 기도하여 민족을 살렸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요14:12)"
사도 바울은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빌 4:13)"라고 말씀하십니다.
고린도전서 1장 27절 이하에서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라고 말씀하십니다. 믿음으로 살면 30배, 60배, 100배의 결실이 맺혀지게 됩니다(마13:8). 겨자씨 한 알 같지만 자란 후에는 공중의 새들이 깃들고 나그네들이 머물게 됩니다. 믿음으로 하면 오병이어로 오천 명을 배불리 먹이고 12 바구니를 거두는 기적이 나타납니다.
히브리서 11장에서는 믿음의 사람들을 소개합니다. 그러면서 히브리서 11장 38절에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느니라”라고 말씀합니다. 믿음으로 이기고, 믿음으로 의를 행하고, 믿음으로 약속을 받고, 믿음으로 사자의 입을 막고, 믿음으로 불의 세력을 멸하고, 믿음으로 죽음을 이기고, 믿음으로 조롱과 채찍과 결박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궁핍과 환난과 핍박과 학대를 넉넉히 감당하는 것입니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고 나는 놈 위에 붙어가는 놈 있다고 말합니다. 믿으면 예수님께 붙어 천국도 가고 예수님의 능력에 힘입어 세상을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 꽃씨도 바람에 붙어가면 하늘을 날고 강을 건너갈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여의사는 김정동이란 여성입니다. 딸 넷 가운데 셋째 딸로 태어났습니다. 가난하였습니다. 무지했습니다. 스크랜턴 선교사가 난로 옆으로 오라고 하니까 " 저 여자가 드디어 나를 구워먹으려는구나"라고 생각했을 정도였답니다. 그러나 그가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김에스더'로 세례를 받았습니다. 마부와 결혼하였습니다. 미국에 가서 의학공부를 하였습니다. 존스홉킨즈 대학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받고 한국인 최초 여성 의사가 되었습니다. 한국 여성이 한국 여성을 진료하는 새로운 시대를 열었습니다. 서울 보구여관과 평양 기홀병원을 오가며 진료활동을 폈고, 평양 맹아학교와 간호사 양성원 그리고 전도부인을 양성하는 여자성경학교 교수로서도 섬겼습니다.
한국인 최초의 외과 의사는 박서양이라는 분입니다. 그의 아버지는 백정 박성춘이었습니다. 그들에게는 이름도 없었고, 일반인 집에 용무가 있어서 가면 마당에서 꿇어앉아 말을 해야 했습니다. 박성춘은 백정의 아들로 태어나 백정마을에서 백정의 딸과 결혼하여 낳은 아들이 봉출인데 그가 바로 박서양입니다. 아버지가 허가받지 않는 소를 몰래 잡아 주었다는 이유로 군관과 포졸들에게 체포되었습니다. 그때 어머니는 결사적으로 막으려다 그들이 휘두르는 육모 방망이에 맞아 죽었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 동생까지 병으로 사망하였습니다. 아버지도 전염병에 걸려 거의 죽게 된 지경에 선교사를 만나 치료받고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그의 은혜를 갚기 위해 박성춘과 아들은 곤당골 교회에 출석하였습니다. 양반 교회에서 교회도 나오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믿음으로 이겼습니다. 그 백정이 1911년 승동교회 초대 장로가 되었습니다. 그 후 선조 임금의 11대손 왕손인 이재형이 승동교회에서 1914년에 장로가 되어 한 당회에서 백정과 왕손이 같이 교회를 섬기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장로가 된 박성춘은 당시 내각총서로 있던 유길준에게 '백정차별금지법'을 만들어 백정들도 갓과 망건을 쓸 수 있도록 해달라는 장문의 탄원서를 보냈습니다. 결국, 박성춘은 조선 500년 동안 신분의 차이로 쓰지 못하던 '망건과 갓'을 제일 먼저 쓴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가 갓을 쓰던 날 너무 기뻐서 잠잘 때도 갓을 벗을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백정의 아들 박서양은 예수 믿고 세브란스 의학교에서 에비슨에게 의학을 배워 제1회 졸업생되어 간도에 병원을 세우고 민족교육기관인 숭신학교를 세워 교장이 되었습니다. 독립운동 단체인 대한국민회에 적극 참여 하였고 군사령부의 유일한 군의로서 독립운동에 크게 기여해 2008년 광복절에 '대한민국건국포장'을 받았습니다. 예수 믿으면 이런 가문의 변화가 일어납니다. 성령 충만하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추석 명절을 맞이했습니다. 우리가 예수 믿고 성령 충만하면 작은 자가 천이 되고 약한 자가 강국을 이루는 역사가 일어날 줄 믿습니다.
열린교회/김필곤목사/2018.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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