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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마음(10) 모든 사람이 예수님이 구세주인 것을 믿기를 원하십니다(요14:6)
김필곤목사 (yeolin) 조회수:5163 추천수:4 112.168.96.71
2016-11-06 11:12:00

 

하나님의 마음(10) 모든 사람이 예수님이 구세주인 것을 믿기를 원하십니다

요한복음14:6

 

지난 한 주간 동안 “우리에게 복주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이라는 주제로 특별 새벽기도회를 했습니다. 날씨가 추워져 본당을 따뜻하게 하기 위해 새벽 2시에 일어나 불을 지펴 놓았습니다. 한 주간 동안 제 방 쇼파에서 칼잠을 자면서 아침저녁으로 주먹밥 하나씩 먹으며 기도회를 인도하였습니다. 온풍기가 화요일 고장이 나 서비스 센터에서 왔는데 천장 환풍기 필터에 먼지가 쌓여 과부화로 센서가 나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토요일 봉사하러 나오신 성도님들과 교역자들이 함께 환풍기 필터 청소를 하였습니다. 천장이 높기 때문에 의자를 치우고 탑을 쌓고 올라가 필터 청소를 다 했습니다. 지하층에서부터 3층까지 청소를 다 한 후 전 장로님이 식사를 하러 가자고 했습니다. 수고한 분들 다 함께 식당에 가서 생태찌게를 아주 맛있게 먹었습니다. 저는 일주일 동안 제대로 된 밥을 먹지 못했는데 참 맛있게 먹었습니다. 그리고 교회에 와서 혼자 생각해 보았습니다. “왜 내가 이렇게 살지? 환갑이 넘은 나이인데 새벽 2시에 일어나 불을 켜 놓고, 제대로 된 잠도, 밥도 못 먹으면서 왜 이렇게 살아야 하지? 듣기 싫어하고 아무리 전해도 변하지도 않는 설교 왜 수험생처럼 열심히 준비를 해야 하나? 돈 벌려고 하는 것도 아니고, 명예를 얻으려고 하는 것도 아니고, 잘 먹고 잘 살려고 하는 것도 아닌데” 혼자 생각해 보았습니다. 결론은 제가 예수님을 진짜 구세주로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영원한 천국이 있다는 사실을 믿고 그 날 주님을 만난 것이라는 확신이 저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스스로에게 질문해 보았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베드로에게 “이 모든 것보다 네가 나를 더 사랑하느냐고 물어 보았는데 저에게 그런 질문을 한다면 어떻게 대답하겠는가?” 저는 주님을 그 무엇보다 사랑합니다. 돈보다, 명예보다, 권력보다, 가족보다 더 사랑합니다. 험한 세상 살면서 마지막 숨멈추는 순간까지 이 신앙 이 고백이 변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주님만 사랑합니다. 주님만 사랑합니다. 예수님만 예수님만 언제나 사랑합니다. 주님만 의지합니다. 주님만 의지합니다 예수님만 예수님만 언제나 의지합니다. 주님만 따라갑니다 주님만 따라갑니다. 예수님만 예수님만 언제나 따라갑니다.” 우리 성도님들 주님을 진정 구세주로 고백하고 주님을 정말 사랑하는 성도님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저는 예수님을 구세주라고 믿는 후 인생이 달라졌습니다. 요즈음은 목회자도 예수님을 구세주로 진짜 믿지 않는다고 해서 어떤 사람이 교회 목사님을 만나 “목사님 예수 믿으세요.”라고 전도했다는 말을 들었는데 저는 예수님을 진짜 구세주로 믿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저뿐만 아니라 우리 성도님이나 모든 인류가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우리 성도님들 진짜 예수님을 나를 위해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구세주로 믿습니까?

 

어느 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물어 보았습니다.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라고 물어보았습니다. 그 때 제자가 말합니다. ‘더러는 세례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합니다’ 예수님은 다시 제자들을 향하여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고 질문했습니다. 그 때 베드로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우리 성도님들은 예수님이 지금 물어 보면 이런 고백을 하시길 바랍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가식적 고백이 아니라, 형식적 고백이 아니라, 습관적 고백이 아니라 진실한 고백이 되시길 바랍니다. 생명을 거는 고백이 되시길 바랍니다. 총칼을 들이대면서 예수님이 누구냐라고 물어 보아도 “예수님은 나의 구세주입니다.”라고 고백하시길 바랍니다. 순교자들은 죽음 앞에서도 이 고백을 하고 순교를 하였습니다.

 

그리스도라는 말은‘기름부음 받은 자’라는 말입니다. ‘메시아’, 곧 ‘구원자’‘구세주’라는 말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말은 곧 하나님이라는 말입니다. 히브리 말에서는 ‘누구의 아들’이라는 표현은 아버지와 본질이 같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요한복음10:31에 보면, 예수님은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라고 말했고, 제자 빌립이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주옵소서’라고 했을 때,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요14:9)라고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만세 전부터 계신 하나님이시며(미 5:2), 영존하시는 아버지이시며(사9:6), ‘알파와 오메가’가 되시며, ‘시작과 끝’이 되신 분이십니다(계 1:8). 창세 전에 계셨고(요한17:5),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골1:15)이며, 근본 하나님의 본체이십니다(빌2:6-11)

 

오늘 예수님이 이 자리에 찾아와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라고 질문한다면 무엇이라고 대답하겠습니까?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라고 대답하겠습니까?

 

예수님 당시에도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반대한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자칭 하나님이라고 말한다고 생각했습니다(요10:33) 사기꾼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을 가장 가까이에서 보았던 예수님의 육신적 가족은 예수님을 어떻게 생각했습니까? 성경에 보면 "이는 그 형제들이라도 예수를 믿지 아니함이러라(요 7:5), 예수의 친속들이 듣고 붙들러 나오니 이는 그가 미쳤다 함일러라(막 3:21)"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의 식구들은 적어도 아홉 이상이 되는 대 가족이었습니다.(마13:55,56) 예수님은 장남입니다. 그런데 자신이 메시야라고 하나님이라고 주장하고 다닙니다.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같이 먹고 자고 뒹군 형님이, 아들이, 오빠가 이러고 다니니 미쳤다고 할 만합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지 않았습니다.

만약 예수님이 자신이 어떤 존재인 줄 모르고 스스로 메시야라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외치고 다녔다면 그들의 주장처럼 미치광이에 불과할 것입니다. 정신병자 말입니다. 그렇지 않고 예수님 스스로 자신이 메시아가 아닌 줄 알고 있으면서도 하나님의 아들, 메시야로 주장했다면 유대인들의 주장처럼 사기꾼이었을 것입니다. 인류 최대의 사기꾼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정신병자이겠습니까? 사기꾼이겠습니까? 그의 교훈은 정신병자로서는 도저히 말할 수 없는 심오한 것입니다. 그의 삶은 사기꾼으로서의 삶이 아니라 목숨까지도 내어놓는 희생적인 삶이었습니다. 그렇게 고상한 말씀을 전할 수 있었겠습니까?

정신병자도 사기꾼도 아니라면 예수님은 예수님의 주장대로 메시아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와 부활로 그 사실을 증명해 주었습니다. 부활을 목격한 사람들은 예수님에 대한 그들의 견해가 달라졌습니다. 예수님을 따라 다니던 제자 중 하나였던 도마는 예수님이 죽자 도망갔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고 그는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다"(요20:28)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가족도 마찬가지입니다. 미쳤다하던 가족들이 이제 예수님을 메시야로 생각하고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기도합니다(행1:14). 야고보서를 기록한 야고보는 예수님의 동생입니다. 유다서를 기록한 유다도 예수님의 동생입니다. 그런데 이들은 예수님을 형님이라고 하지 않고 나의 주라고 고백합니다. 그리스도 메시아라고 고백합니다.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은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니까 다 도망갔는데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후에는 모두 그리스도를 메시야로 소개하다가 순교를 당하였습니다. 초대교회 수많은 순교자들이 사자 앞에서, 십자가 앞에서, 화형대 앞에서 예수님은 구세주라고 고백하고 순교하였습니다. 예수님은 구세주이십니다. 메시아이십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오늘 예수님이 예수님 스스로를 누구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까?

6절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그렇습니다.

첫째는 예수님은 우리를 아버지의 집 천국에 갈 수 있도록 하시는 길입니다.

예수님은 길이라고 스스로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길을 통해 아버지께 갈 수 있다고 말씀합니다. 어떤 분은 천국을 말하면 유치하다고 말씀하시는 분이 있습니다. 하등 종교에서, 과학이 발달 되지 않은 미신적 사고가 지배할 때나 하는 이야기지 요즈음 같이 과학이 발달된 시대에서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천국을 이야기하면 조금 교양적이 아닌 사람으로 취급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천국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오늘 언급하고 있습니다. 상징적인 천국이 아닙니다. 실존적 천국, 실제적인 천국입니다. 우리 마음 속에 이루어지는 천국 말고 우리가 죽은 후에 영원히 거하는 하나님의 나라가 있습니다.

영원한 나라(벧후 1:11) 하나님의 나라(눅 21:31) 낙원( 고후 12:4, 눅 23:43) 하나님의 집(히 10:21) 새 하늘과 새 땅(계 21:1, 벧후 3:7,13)이라고 일컬어지는 천국이 실제합니다. 천국은 사망과 애통과 곡하는 것이 없습니다(계21:4) 하나님과 영원히 사는 나라입니다. 이솝우화에서 나오는 "개구리와 메뚜기, 하루 살이" 이야기가 있습니다. 하루 살이는 내일을 알 수 없습니다. 메뚜기는 봄을 알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내일이 없고 봄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차원의 문제이지 비이성 비논리가 아닙니다. 초이성입니다. 초논리입니다.

이 천국에 가는 길이 바로 예수님이시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을 통해서만 이 천국에 이를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 (행 4:12)”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이 죄인이 하나님께 이르는 길입니다. 여러 길 중의 한 길이 아니라 유일한 길입니다. 이 사실을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이 믿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둘째, 예수님은 우리를 자유케 하시는 진리입니다.

진리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역사적 진리가 있습니다. 이순신 장군이 왜군을 물리쳤다는 것은 역사적 진리입니다. 수학적 진리가 있습니다. 1+1=2라는 사실은 수학적 진리입니다. 과학적 진리가 있습니다. 지구는 돈다라는 것은 과학적 진리입니다. 상식적 진리가 있습니다. 해가 동쪽에서 뜬다는 것은 상식적 진리입니다. 과학적 진리와는 맞지 않는 것이지요. 해가 뜨는 것이 아니라 지구가 돌아서 해를 본 것입니다. 그 외에도 철학적 진리, 종교적 진리가 있습니다. 진리는 시간과 공간에 제한을 받지 않고 항상 참된 것이어야 합니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것은 변합니다. 성경에서 영원히 변치않는 진리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세례 요한이(요 5:33) 예수님을 진리라고 소개하였는데 바로 예수님이 메시야로서 오신 그 진리라는 말씀입니다. 자신을 진리고 소개하고 있는데 바로 그 진리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케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하리라”(요8:36)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요 8:32)"

진리이신 예수님은 우리를 죽음의 공포로부터 참된 자유를 줍니다. 죄의 노예로부터 자유를 줍니다. 율법의 구속으로부터 자유를 줍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모시면 참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셋째, 예수님은 우리의 생명이십니다.

예수님은 곧 생명이십니다.(요14:6, 11:25,5:26, 6:4, 8, 53-54)

예수님만이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생명의 양식이 되십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성경은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계 3:1)"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죽음이란 하나님과의 단절을 말합니다. 우리의 영혼이 하나님과 단절된 것을 영적 죽음이라고 합니다. 우리의 육신과 영혼이 단절되는 것을 육적 죽음이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영원히 하나님과 단절되는 것을 영원적 죽음이라고 말씀합니다. 모든 것이 죄의 결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마땅히 죽어야 할 우리를 대신하여 돌아가심으로 우리에게 새생명을 주었습니다. 어떤 것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죽음의 문제를 해결해 주었습니다.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십니다.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요 10:10)"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요11:25-26)"라고 하십니다.

박효진 장로님의 간증을 듣고 책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은 아무도 포기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고치지 못할 사람은 없다”라는 책을 쓰셨습니다.

박효진 장로님은 윤도형이라는 사형수에게 “너 죽을 준비되었나?”라고 전도했답니다. 그가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했답니다. 사형 집행일에 믿음 좋은 11명의 교도관이 함께 참여했답니다. 어떤 사람은 그 짧은 거리인데도 죽음이 두려워 신발을 벗어놓고 다시 되돌아가기도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윤도형이 사형을 당하는데 할렐루야 하면서 걸어오더라는 것입니다. 집행관이 죄를 나열하자 “ 모든 죄를 인정합니다. 하나님을 모를 때 지은 죄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죄를 용서해 주었습니다. 그 더러운 죄를 읽어 주지 않으면 좋겠습니다.”라고 하며 얼굴이 밝아지고 해처럼 빛났다고 답니다. 소장이 유언을 말하라고 하자 “소장님, 검사님 직원 여러분 모두가 제가 믿는 하나님을 믿으시길 바랍니다.”라고 전도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시신 기증하고 무상으로 나누어 주라고 하였답니다. 자신의 몸 전체는 의과대학에 기등한다고 했답니다. 두건 쓰여지고 밧줄이 내려 오자 모두가 참혹한 광경을 보지 않으려고 눈을 돌렸는데 그 때 “하늘 가는 밝은 길이 내 앞에 있으니”라고 찬양을 드리더라는 것입니다. 29명의 사형수를 보았답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은 두려워하며 욕하고 죽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친다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 믿는 사형수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답니다. 죽음 앞에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스스로 질문을 하였습니다. 목사님들이 초대 교회 성도들이 사자 앞에서 손발이 찟기면서 찬양해다는 말을 들으면 믿어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믿는 사람들이 사형대 앞에서 찬양하며 죽는 모습을 보며 성령충만하면 얼마든지 그럴 수 있겠다고 믿어졌답니다. 예수를 구세주로 믿으면 죽음도 천국에 들어가는 과정에 불과합니다. 영원한 천국에 대한 기대와 소망을 가지게 됩니다.

이 예수님을 믿습니까? 예수님이 우리 성도님의 구세주라는 사실을 믿고 있습니까? 예수님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는 사실을 믿고 있습니다.

 

이 사실을 믿으면 어떻게 됩니까?

주는 그리스도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하는 베드로에게 무엇이라고 예수님은 말씀합니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마 16:17)

 

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무슨 복입니까?

 

첫째는 구원받는 복입니다. 천국가는 복입니다. 영생을 누리는 복입니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롬10:9)

이것이 바로 음부의 권세를 이기는 복입니다.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마 16:18)”

 

둘째는 아들의 권세를 누리는 복입니다.

주는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하는 베드로에게 예수님은 바로 말씀하시길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마 16:19)”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내가 하지 못한 일을 예수님의 능력으로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믿고 기도하면 응답해 주신다고 했는데 기도하여 응답받는 복을 누리게 됩니다. 연말에 이루어질 일을 놓고 기도하는데 이번 주에도 하나님이 응답해 주시는 것을 체험했습니다. 다음 주부터 2주 동안 인도와 네팔 만만만 선교지를 돌아 보고 올 것입니다. 우리가 해외에 100개의 교회를 건축하기 위해 목표를 세워 일하고 있습니다. 인도에 교회를 건축하고 하려고 했는데 여의치 못해 건축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만만만 생명운동에 동참하는 교회가 만만만에 교회를 건축해달라고 헌금을 하였습니다. 3개의 교회를 건축하여 헌당식을 하게 되어 헌금한 교회 목사님과 함께 갑니다. 네팔 지진 때 우리가 헌금을 하였는데 여러 교회들이 같이 참여하여 네팔에 고아원을 만들어 아이들을 돌보고 있습니다. 무에서 유가 나오는 것입니다.

믿는 자에게 능치 못할 일이 없다고 했는데 믿음으로 능력을 나타내게 됩니다.

 

셋째는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변화의 복입니다.

주는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하는 베드로에게 예수님이 십자가에 지실 것을 말씀합니다. 그러자 베드로가 항변하여 그러지 말라고 예수님께 강청합니다. 그 때 예수님은 사탄아 물러가라고 합니다. 베드로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않고 사람의 일을 생각하다고 책망합니다. 그러면서 하신 말씀이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라”고 했습니다. 진정 예수님을 믿으면 예수님처럼 살려고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처럼 성품이 달라집니다. 예수님의 생각으로 우리의 생각이 변합니다.

“나를 변화시키지 못하는 복음은 복음이 아니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정말 구세주로 믿으면 변화될 수 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을 아는 것과 믿는 것은 다릅니다. 러시아의 스탈린은 근세 세계 역사에서 가장 악랄한 사람으로 히틀러와 함께 사람을 가장 많이 죽인 사람입니다. 재임 중에 거의 130만 명의 사람을 죽였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가 신학공부를 한 신학생이었습니다. 동방정교회 신부가 되기 위해 4년간 공부했지만 예수님에 대해서 알았을 따름이지 예수님을 구세주요, 길이요, 진리요, 생명으로 믿지 않았습니다. 성경에 대하여 예수님에 대하여만 알 뿐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으면 반드시 열매가 맺히게 되어 있습니다. 열매가 없다면 그것은 가라지에 불과합니다.

 

예수님은 누구십니까?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이사야 9:6).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이 정녕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행 2:36)"

열린교회/김필곤목사/2016.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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