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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리 부모를 하는 이유
열린교회 (yeolin) 조회수:1851 추천수:17 112.168.96.71
2014-11-25 13:35:55
9월의 마지막 금요일은 유아원에 다니던 제레미의 특별한 날이었다. 그 날 제레미는 자신이 가장 아끼는 장난감을 가져와서 보여주며 친구들에게 소개하고 또 선생님이 읽어 주실 책을 골라서 가져가야 했다. 나는 제레미의 엄마로서 딴 아이들에게 줄 간식을 준비해야 했다. 하지만 제레미의 특별한 날은 다른 식으로 진행이 되었다. 특별한 그날에 제레미는 장난감과 책, 그리고 간식을 갖고 유아원에 가지 못했다. 그 대신 아침 7시에 알지 못하는 남자가 낯선 차를 타고 우리 집에 도착했다. 그 차에는 '뉴저지 주'라고 크게 쓰여 있었다.

그 남자가 제레미의 옷 가방을 차 트렁크에 던져 넣을 때 제레미는 막 잠에서 깨어나 눈을 비비고 있었다. 그 다음에 남자는 제레미의 동물 인형과 장난감 차와 아이가 아끼는 다른 물건들을 담아 놓은 상자 두 개를 차에 실었고, 마지막으로 제레미를 태웠다. 낯선 남자의 품에 안겨 나가는 제레미의 얼굴에 담긴 표정을 나는 결코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제레미에게 펜실베이니아에 계신 할아버지와 할머니와 함께 살러 간다고 말했지만 제레미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네 살 난 제레미에게 있어서는 내가 바로 엄마였고 남편은 아빠였으며, 우리 아이들인 캐더린과 마이클이 그의 누나와 형이었던 것이다.

단지 제레미가 알고 있는 것은 웬 낯선 사람이 찾아와서 낯선 자동차에 자신을 태우고 어디론가 데려 간다는 것뿐이었다. "아빠한테 갈래." 울부짖는 제레미의 잿빛 눈에서 눈물이 흘러 부드러운 뺨을 적셨다. "누나 어딨어?" 사회 복지사가 그를 좌석에 앉혀 벨트를 매자 제레미는 울음을 터뜨렸다. "싫어, 싫어, 싫단 말야" 제레미의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차가 떠나서 눈에 보이지 않을 때까지 우리는 이별의 손을 흔들었다. 남편과 내 눈에도 눈물이 고였다. 제레미의 마지막 말들을 떠올리며 겨우 내가 한마디했다. "우리 집에 올 때에 비해서 말이 많이 늘었네.' 그 말은 사실이었다. 제레미가 우리 집에 왔을 때는 거의 말을 하지 못했다.

우리는 제레미의 대리 부모였다. 제레미는 1994년 6월 20일에 우리 집에 와서 9월 30일까지 머물렀다. 만약 할 수만 있었다면 우리는 제레미를 입양해서 영원히 우리와 함께 살도록 했을 것이었지만 뉴저지 주는 제레미가 70대의 노령인 조부모와 함께 살아야 한다고 결정했다. 누구 말씀이라고 거역할 수 있었겠는가? 제레미가 대리 부모의 손에 오게 된 데는 많은 이유가 있었지만 간단히 말하면 그가 버려진 아이였기 때문이다. 우리 집에 처음 왔을 때 할 줄 아는 말은 스물다섯 단어도 채 안되었다. 스스로 옷을 입거나 먹을 줄도 몰랐고 변도 가리지 못하는 상태였다.

밤이 되면 우리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제레미는 몇 시간 동안이나 소리를 질러 댔고 불이 켜져 있거나 사람이 곁에 없으면 잠들지 못했다. 하지만 여름이 끝날 무렵 제레미는 완전히 다른 아이가 되어 있었다. 키는 5cm나 자랐고 몸무게가 1kg이나 늘었다. 우리는 제레미에게 비타민과 함께 영양 식단을 짜서 주었고 유아원에도 보냈으며 언어 치료도 받도록 했다. 제레미의 어휘력이 증가했고 문장으로도 말 할 수 있게 되었다. 어두움을 더 이상 무서워하지 않게 되면서 밤 8시 반이 되면 기꺼이 잠자리에 들었다. 어떤 때는 그동안 배운 '피곤해'라는 말을 하고는 더 일찍 자러 갈 때도 있었다. 이제 그런 제레미는 가버리고 없었다.

사람들은 우리가 왜 대리 부모가 되었는지 묻는다. "친자식들도 있잖아요."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왜 고생을 사서 하세요? 아이들이 떠날 때 앞으로 그 인생이 어떻게 될지 생각하면 견디기 힘들텐데요? 보낼 때 가슴이 찢어지지는 않으세요?" 사실 그렇다.

그러나 이렇게라도 그 아이들을 돕지 않으면 우리 가슴은 더 찢어질 것이다. 제레미가 우리 집에 처음 왔을 때, 우리 아이들을 돌보며 동시에 제레미가 가진 많은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를 고민하면서 나는 많이도 울었다. 그때 나는 남편에게 이렇게 물었다. "왜 우리가 사서 이 고생을 하는 걸까요?" 남편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사실 우리 둘 다 왜 우리가 대리 부모를 하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남편에게 그런 질문을 한 몇 달 후 교회 예배에서 성경 말씀 한 구절이 우리의 귀를 울렸다. "어린 아이 하나를 데려다가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안으시며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요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면 나를 영접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함이니라." 그때 남편이 내 옆구리를 슬며시 건드리며 속삭였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대리 부모를 하는 이유야."

내 질문을 떠올리며 나는 남편의 대답을 결코 잊을 수 없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앞으로도 계속해서 대리 부모를 하는 이유가 될 것이다.

조앤 내허니/사랑하는 가족에게 읽어 주고 싶은 이야기-두란노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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