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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이야기
열린교회 (yeolin) 조회수:3074 추천수:22 112.168.96.71
2014-11-26 09:46:22
죽음 이야기 - 이강근 집사 -

인간은 한번 태어나면 반드시 한번은 죽어 그 인생이 마감된다. 태어나는 것은 아이를 가진 후 예측하여 비슷하게나마 알 수 있지만 죽는 것은 아무도 그 때를 예측할 수 없다. 평소 내가 존경하는 장로님 한 분은 우리 인간의 오복을 수(壽) 부(富) 강(康) 령(寧) 고종명(考終命)이라고 말하곤 하였다. 장수하고 부를 누리며 건강하게 평안하게 사는 것 외에 죽음의 복을 잘 타고나야 인간의 완전한 복을 누린다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험한 세파에서 침몰되지 않고 살기 위해 몸부침 치다보면 사는 것에만 온통 정신이 붙들려 있지 인생을 마감하는 죽음에 대해서는 잊고 살 때가 많다.

생각하기도 싫은 것이 죽음이지만 그러나 생각하지 않는다고 피해 가는 것도 아니고 더디 오는 것도 아니다. 누구에게나 언젠가 문득 찾아 올 텐데 추한 모습으로 자기의 일생을 마감하지 않았으면 하는 소망은 사람마다 다 마음 속에 잠재되어 있는 것 같다. 죽음도 여러 종류가 있다. 이순신 장군 같은 분의 장렬한 죽음, 얼마 전 한강에 투신자살한 모 건설사 사장과 같은 허무한 죽음, 요즈음 젊은이들이 자살 사이트에서 만나 함께 죽은 것 같은 어리석은 죽음, 형장에서 최후를 맞는 사형수들의 죽음과 같은 인과응보의 당연한 죽음 등 저마다 사연이 있고 모양이 있다. 그러나 좀더 가치있는 죽음을 맞이하여야 한다.

이순신 장군 같은 장렬한 죽음을 마지하지 못할지라도 일생을 마감하면서 큰 과오 없이 일생을 마감하기를 원하는 것이 소박한 소시민의 소원일 것이다. 누구나 큰 업적은 못 남겨도 추한 모습을 남기지는 않기를 원하고 조금 더 바란다면 후손들에게 불명예와 짐이 덜 되게 하는 죽음을 마지하기 원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장례절차나 분묘를 간소하게 하자는 운동이나 수의를 단체로 저렴하게 준비하는 일 등은 의미가 있는 일이라 할 수 있다. 다음 주로 고난주간을 맞는 우리는 성경에 기록된 감동적이고 충격적인 죽음의 모습들을 새삼 떠올리게 된다. 우리를 대속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셔서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은 우리의 필설로 표현할 수 없는 많은 감동을 준다. 로마 군병들의 모진 고문과 형벌, 무지한 민중들의 조롱, 예리한 화살처럼 마음을 괴롭히는 종교 지도자들의 냉소적 미소 등을 다 참으며 외치는 십자가 상의 언어들은 감히 사람으로 상상하기 힘든 언어들이다. 힘겨운 고통 가운데서도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다. 다 이루었다”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은 감히 누구도 흉내내기 어려운 것이다.

예수님과 함께 달려 예수님의 최후의 모습을 본 두 사형수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전율과 같은 감동을 준다. 예수님의 죽음을 보고 조롱하는 사형 수를 향하여 한 사람이 같이 달린 행악자를 향하여 “우리가 지은 죄는 당연하나 예수께서 행하신 일은 옳지 않은 일이 없다”고 꾸짖고 나서 “예수여 당신의 보좌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눅24:32)라고 간구하는 모습은 죽음 앞에선 우리의 모습이 어떠 해야 할 것인가를 보여준다. 그의 애원은 정직하고도 절실한 구원의 간구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예수님은 그를 향하여“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눅24:43)고 구원을 선포해 주셨다. 참으로 극적인 구원의 장면이 아닐 수 없다. 부족하고 연약한 삶이지만 내 생명 마감하는 날을 생각해 본다. 언제 인생의 종착역에 다다를지 모르지만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생각해 본다. 언제가 본향에 돌아가는 날 진정 예수님과 함께 낙원에 있기를 이 고난주간에 다시 한 번 경건히 간구해 본다.

2004. 3. 26일 아침



< 하나님의 지혜 우리의 지혜 >

하나님이 우리에게 지혜를 주신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그것은 마치 운전하는 법을 배우는 것과 같다. 당신은 왜 길이 좁아졌는지 혹은 그처럼 심하게 구불구불한지 묻지 않는다. 당신은 단지 나타나 있는 실제 상황을 제대로 보고 행하려고 애쓸 뿐이다. 운전을 잘하기 위해서는 눈을 크게 뜨고 앞에 무엇이 있는지를 정확하게 지켜보아야 한다. 우리는 세상이나 세상에 처한 우리의 삶을 실제 있는 그대로 보지 않는다. 그러나 지혜롭게 살기 위해서는 냉정할 정도로 명민하고 현실적으로 인생을 있는 그대로 보아야 한다. 지혜는 유토피아적 환상들, 그릇된 감상 또는 장미빛 안경을 쓰는 것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죄로 말미암은 이러한 고질적인 비현실주의는 우리가 지혜를 갖지 못하는 한 가지 이유이다.

- 하나님을 아는 지식/제임스 패커, /IVP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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