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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응답의 연관성
열린교회 (yeolin) 조회수:2311 추천수:19 112.168.96.71
2014-11-26 10:03:41
"주님! 나를 청와대로 보내주십시오" 이것이 그때 나의 막무가내 기도 제목이었다. 나는 두 가지 논리로 하나님을 설득했다. 하나는 영적사역의 측면이고, 또 하나는 애국적 측면에서 달란트에 관한 것이었다. "샬롬 공동체를 섬기는 사역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 저는 반드시 서울로 와야 합니다. 그리고 의대교수와 예방의학자로서 군에 와보니 별로 효율적으로 쓰임을 받지 못하는 것 같았습니다. 환경 문제와 국민 건강 문제 등이 산적한 이때에 제가 가진 전공을 가장 잘 활용하여 조국과 사회의 발전을 최고 정책 결정 분야에서 일하고 싶습니다. 그러니 주님, 저를 청와대로 보내주십시오." 가끔 청와대에서 군이나 정부 기관에서 필요한 사람을 빼간다는 사례를 언뜻 들은 적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청와대 착출 케이스로라도 서울로 갈 수있게 해달라고 기도한 것이다. 세 달째 기도를 하고 있는데 어느 날 출근을 해보니 두툼한 서류 봉투 하나가 내 책상 위에 놓여 있었다. 발신은 '서울 지구병원'이었다. 처음 들어보는 병원이었다. 그래서 수소문을 했더니 그 병원은 대통령과 그 가족을 위한 전용병원이라는 것이었다. 그 병원에 처음으로 예방의학과가 신설되는데 그 초대과장으로 군에서 예방의학 전문의와 의학박사 학위를 가진 세 명이 추천되었다는 것이다. 내가 그 중 한 명으로 추천되었으니 서류를 제출하라고 했다. 나는 엘리야가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 850명과 대결했던 갈멜산의 기도 응답을 연상하게 되었다. 3년 6개월 동안 비가 오지 않는 절박한 상태에서 땅에 꿇어 엎드려 기도했더니 손바닥만한 작은 구름이 일어났더라는 성경 본문이 생각나면서 이 서류 봉투야말로 손바닥만한 구름과 같은 하나님의 사인이 아닐까 하여 더욱 열심히 기도하게 되었다. 청와대로 들어가게 해달라고 밑도 끝도 없는 기도를 드렸는데 이제까지 그 존재도 알지 못했던 대통령 전용 병원에서 서류를 제출하라고 연락이 왔으니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결국 서류 제출 6개월만에 나는 서울 지구병원 초대 예방의학 과장으로 부임하여 서울로 오게 되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내가 임기를 마치고 후배 한 명이 내 자리를 이어받게 되었는데 그 친구를 끝으로 예방의학과는 폐지되고 그 자리는 없어지게 되었다. 나는 그 사실을 전해듣고 '없는 자리까지 만드시고 다시 폐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다시금 절감하게 되었다. 이 사건을 통해 나는 기도에는 제한이 있을 수 없음을 알게 되었다.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 앞에 거침없이 기도하라. 하나님은 정직한 기도를 기뻐하신다. 나중에 알고 나니 그 기도 응답은 나 혼자에게만 임한 것이 아니었다. 나의 인사 이동에는 또 다른 간절한 기도의 배경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서울 지구병원의 진료부장으로 있던 분이 뜨거운 크리스천으로 그 병원 내에 사병들을 위한 교회를 설립하고 아침마다 진료부 내의 과장들과 QT모임을 갖기 시작했으며, 수요일 점심때는 병원장을 비롯한 병원 직원과 보안사 핵심 요원들과 같이 참여하는 성경공부를 인도하고 있었다. 그렇게 그 병원에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고 있던 시점에서 그분이 다른 병원의 병원장으로 승진 발령이 났다. 그래서 자신을 대신할 영적 지도자가 후임으로 오기를 간절히 기도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나님의 거대한 섭리의 네트워크에는 우연이 있을 수 없다. 사실상 서울지구병원의 형제들이 드렸던 간절한 기도의 응답으로 나의 인사 이동이 결정된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하나님의 기도 응답은 단순히 나의 필요를 채우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 계획과 세계 복음화에 어떻게 기여하느냐 하는 광활한 시각에서 이루어짐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그 응답이 동시에 이웃들의 필요를 채우느냐 하는 '상승작용'과 '연관성'의 관점에서도 파악되어야 함을 알게 되었다.

-황성주/낮은 울타리 2004년 9월 호중에서-

어머니의 저금통

감수성이 아주 예민한 정명훈이 15살이 될 무렵, 친구를 만날 시간도 없이 피아노 연주에 매달려야 하는 자신의 생활을 견디기 힘들어했다. 그래서 피아노 연습에 소홀해지고 레슨을 빼먹기 일쑤였다. 어머니는 아들이 가장 가지고 싶어하는 그랜드 피아노를 사주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그랜드 피아노를 살 돈이 없었다. 어머니는 식당에 웨이트리스로 일하기 시작하면서 팁으로 받은 동전을 저금통에 모으기 시작했다 일년 동안 모은 돈이 칠백 오십 달러나 되었지만 아직 그랜드 피아노를 사기에는 모자랐다. 크리스마스 선물로 그 저금통을 아들에게 선물했다. "너는 엄마가 식당에서 웨이트리스로 일한다고 싫어했지. 하지만 나는 네가 제일 가지고 싶어하는 그랜드 피아노를 사주기 위해 하는 일이라서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 아직 이 백 오십 달러가 모자라지만 곧 채워질거야." 그날 밤 피아노 앞에 앉은 명훈의 연주는 여느 때와는 분명 달랐다.-광야 2004년 9월 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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