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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의 고백
열린교회 (yeolin) 조회수:1830 추천수:19 112.168.96.71
2014-11-25 13:20:20
17년간 아프리카 IITA(국제 열대농업연구소) 에서 연구관으로 근무하는 동안 맞이했던 크리스마스.....그 때의 크리스마스를 생각하면 타국에서 공부하고 있는 아이들을 손꼽아 기다리던 그 기다림의 기억이 지금도 나를 애틋하게, 또 설레게 만든다. 내가 아프리카에 첫발을 내딛었을 때, 내 옆에는 사랑하는 아내와 6살된 용철이, 4살 된 주애가 있었다. 비행기 안에서 나는 다짐했다. '슈바이처 박사가 의술을 통해 아프리카 대륙에 사랑을 전했다면, 나는 옥수수 씨앗으로 아프리카의 배고픔을 몰아낼 것이다.'

그러나 아프리카에서 우리 가족이 이겨내야 할 어려움은 너무나도 많았다. 외로움, 식생활, 아이들 교육 등등....... 그러나 가장 무서운 적은 말라리아였다. 10여 년에 걸친 고생 끝에 옥수수 재배를 막는 악마의 풀 퇴치법을 찾아내었다. 하지만 말라리아는 끝까지 이기지 못하고 나만해도 9번이나 고생했으며 그중 3번은 목숨까지 잃을 뻔했다. 우리가 아이들 셋을 미국으로 유학 보낸 것도 말라리아의 위험으로부터 떼어놓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 아이들을 1년에 한번이나마 볼 수 있는 때가 바로 예수님이 탄생하신 크리스마스였다.

아이들은 중학교 때부터 부모와 떨어져서 지냈지만 대체로 반듯하게 자라 주었고, 세 아이 모두 미국의 사립 중고등학교에서 1,2등을 다툴 만큼 성적도 좋았다. 그런 사랑스런 내 아이들이 1년 만에 내게 오는 크리스마스. 어찌 기다림의 크리스마스가 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아프리카에서 지낸 지 14년째 되던 크리스마스였던 것 같다. 우리 부부와 아프리카 IITA에 근무하는 전세계에서 온 연구관(대부분 선진국)들과 그들의 가족들이 모여 1년마다 한번씩 만나는 해후를 기념하느라 더욱 파티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선물교환, 크리스마스 트리 만들기, 요리 등등..... 그러나 아프리카에서 눈을 볼 수 없기에 크리스마스 기분이 제대로 안 났다. 또한 1월 10일쯤이면 아이들이 공부하러 다시 떠나야 하기 때문에 애들은 애들대로 부모는 부모대로 서운한 마음을 감출 길이 없었다. "아빠는 아프리카인들을 위해서 사시는지 모르겠지만, 그 때문에 우리 가족 모두가 얼마나 피해를 입고 있는지 아시나요? 다른 아이들의 부모들은 한 달에 두 번씩 기숙사로 찾아와 불편한 것들을 모두 챙겨 주는데, 아빠는 한달에 한번 전화라도 해 주셨나요? 그리고 왜 나는 미국 국적으로 바꾸지 못하게 하는 건가요?

1년만에 만난 주애는 고민을 많이 한 탓인지 얼굴이 핼쓱하져 있었고, 나를 보자 마자 가슴에 응어리진 것을 한꺼번에 다 쏟아 놓았다. 내 마음은 산산조각 나는 것 같았지만 정작 주애에게 해 줄 말이 없었다. 그 때, 옆에 있던 아내가 주애를 안고 나지막히 속삭였다. "주애야. 다른 부모들처럼 자주 챙겨주지 못해 정말 미안하다. 그러나 엄마, 아빠는 가난한 아프리카 사람들을 위해 열심히 일하고 있지 않니? 자랑스러운 아버지란 바로 주애의 아빠처럼 가난하고 약한 사람들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란다. 너를 자주 방문하지는 못했지만 엄마, 아빠는 매일 같이 너를 위해 기도하고 있단다."

다행히 주애는 3개월 정도 우리와 집에서 함께 지내며 안정을 되찾았고, 그 전보다 신앙도 깊어졌으며 부모가 진심으로 자신을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도 확인한 것 같았다. 그후 세인트폴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 주애는 학생대표로 연설을 했다. "우리 학교는 미국 최고 부자들이 다니는 학교입니다. 흑인 아이들은 몇 명 받아주지도 않고, 나 같은 외국 학생에 대해서도 편견이 심하지요. 나는 한국에서 태어나 아프리카에서 살다가 지금은 미국에서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아버지는 미국유학을 마친 후 지금은 아프리카 사람들을 위해 옥수수연구에 몰두하고계십니다. 그 때문에 나와 우리 형제들은 어려서부터 부모님과 떨어져서 살아왔습니다. 나는 늘 내가 한국인인가, 아프리카인인가, 미국인인가 하는 고민에 쌓여 지냈습니다. 아버지로 인해 한때는 많은 고민이 있었지만 나는 아프리카에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연구에 몰두하고 있는 우리 부모님이 이 세상 어떤 부모님보다도 자랑스럽습니다. 우리도 앞으로 우리가 갈고 닦은 실력을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나누어 쓸 수 있는 사람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주애의 연설이 끝나자 박수소리가 터져나왔고, 강당 여기저기서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렸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아내로부터 듣고, '내 고집 때문에 세 아이들에게 너무 많은 희생을 강요했구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몹시 아팠다. 또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강하고 아름답게 잘 자라준 아이들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을 드리게 되었다. 주애가 그 당시 나에게 쏟아놓았던 고백은 우리 가족을 다시금 돌아보게 하고, 상처를 치유하며,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게 되었던, 놀라운 크리스마스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크리스마스의 고백/김순권 교수 (옥수수 박사 경북대 석좌교수)
낮은 울타리 2000년 12월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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