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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라우니 때문에 얻은 교훈
열린교회 (yeolin) 조회수:2080 추천수:18 112.168.96.71
2014-11-25 13:39:10
잠깐 들렀다 가신다는 아버지를 기다리며 나는 부엌 개수대에서 옥수수 껍질을 벗기고 있었다. 창 밖을 흘낏 내다보는데 이웃 사람이 우리집 뒷문 쪽으로 달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똑, 똑, 똑.” 그녀가 말했다. “누구 없어요?” ‘왜 저 여자는 항상 노크를 하지 않고 “똑, 똑, 똑”을 말로 하는 거지?’ 나는 짜증스러웠다.“어서 오세요.” 내가 말했다. 그녀가 입을 열기도 전에 난 그녀가 우리집에 왜 왔는지를 알고 있었다. 그녀는 뭔가를 빌리러 온 것이다. “버터 한 토막만 줄 수 있어요?”그녀가 물었다.“물론이죠.”나는 냉장고 쪽으로 향했다. “식품점에 갔다오는 대로 갚아 드릴께요.”“괜찮아요.” 내가 대답했다.

그러나 사실 괜찮치가 않았다. 그녀는 빌려 간 것을 갚은 적이 거의 없었다. 십대인 아이 둘을 기르면서 직장일도 하는 엄마였기에, 그녀는 할 일이 무척 많았다. 그렇다고 해서 그녀의 살림살이에 필요한 모든 것에 대해 내가 비상시 공급자 노릇을 해야 하는 것엔 화가 났다. 문 밖으로 나가다가 아버지와 마주친 그녀는 아버지에게로 달려가 테이프를 좀 달라고 부탁하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마침 차 안에 테이프 한 개를 가지고 있었다. “그 테이프를 다시 보시긴 힘들 거예요.” 아버지가 부엌으로 들어오자, 내가 말했다. 아버지는 그저 어깨를 으쓱하며 웃으셨다. 그 순간 아버지의 눈 속에 담긴 무언가가 30년 전의 어느 날을 생각나게 했다. 난 어린 소녀였고, 아버지는 조그만 뉴 잉글랜드 마을의 구두 수선공이었다. 가게에서 내가 하는 일은 손님이 가져오는 신발에 이름표를 붙이고 봉투에 넣은 후 각 사람에게 수선증을 주는 것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나가면서 내게 손을 흔들어 주었고, 나는 그에 화답했다. 하지만 오직 한 사람, 결코 나와 눈이 마주치지 않는 사람이 있었다. 브라우니, 우리는 그 남자를 그렇게 불렀다. 계절에 아랑곳없이 그는 항상 브라운색 털모자에 누더기 같은 브라운색 재킷을 입고 있었는데, 닳아 빠진 소매가 때에 절어 반들거렸다.

낮 동안에 그는 길거리를 배회하다가 오후가 되어 우리 가게 금전 출납기가 가득해지면 나타나 우리 아버지의 너그러움을 이용하리란 걸 난 알았다. 어느 날, 문 닫을 시간이 점점 가까워지는데, 나는 브라우니 씨가 우리 가게로 오는 것을 발견했다. 내 시계가 5시 30분을 가리키고 있었으므로 나는 재빨리 창문에 걸린 팻말을 “열림”에서 “닫힘”으로 바꿔 놓고 대나무를 쪼개 만든 커튼을 내렸다. ‘이렇게 하면 저 아저씨가 못 들어오겠지.’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브라우니씨는 문을 밀고 들어왔다. 계산대를 지나가면서 그는 쭈글쭈글한 손으로 너덜너덜한 그의 모자 가장자리를 살짝 만졌다.

나는 그의 두볼에 움푹 패인 깊고 슬픈 주름을 볼 수 있었다. 주름들이 마치 담배로 찌든 그의 입 언저리를 둘러싸고 있는 여러 개의 일그러진 괄호 같았다. 내가 키위 구두약 선반을 다시 정돈하려고 돌아서는 동안, 브라우니 씨는 가게 뒤켠으로 걸어갔다. 아버지가 막 기계를 끈 다음이었다. 낮은 목소리로 브라우니 씨가 말하는 게 들렸다. “샐 씨, 이번 주에 돈이 좀 모자라서요. 먹을 것 좀 사게 2달러만 꿔 줄 수 있나요?” 아버지는 망치를 작업대에 내려놓고는 내가 서 있는 계산대로 왔다.“브라우니, 술을 마셔서는 안 되네.”아버지는 엄하게 말했다. “아이들에게 우유하고 빵 좀 사다 주게.”브라우니 씨는 고개를 끄덕이며 돈을 거머쥐었다. 아버지는 브라우니 씨를 가게 문까지 배웅하고는 그가 길 건너 통로가 두 개 있는 스텐씨네 식품점에 들어가는지 확인하기 위해 지켜보았다. 아버지는 아교 묻은 작업용 앞치마 위에 근육질의 두 팔로 팔짱을 낀 채 오랫동안 서 있었다.

브라우니 씨가 다시 모습을 나타냈을 땐, 4리터들이 우유 한 통과 빵 한 덩어리를 들고 있었다. 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이며 가게 뒷편으로 갔다. 아버지 가게에서 일했던 몇 해 동안 나는 이런 장면을 얼마나 많이 목격했는지 모른다. 스무 번? 서른 번? 백 번? 왜 아버지는 한 번도 불평하지 않았을까? 당연히 아버지는 브라우니 씨로부터 “꾸어 간” 돈을 한 푼도 돌려 받지 못했다. 내가 어른이 되고 아버지가 은퇴한 지금에서야, 나는 마침내 아버지께 여쭤보았다.“아버지, 왜 계속 브라우니 씨에게 돈을 꿔 주셨어요? 아버지가 한 푼 두 푼 돈을 주어 봤자 그 사람이 술 마시는데 더 보탬이 되었을 뿐이란 걸 아셨어야죠. 그 사람이 아버지를 이용하고 있다는 걸 전혀 못 느끼셨던 거예요?”아버지는 부엌 식탁에 앉아 있었다.

아버지는 나를 한참 동안 쳐다보았다. "난 결코 브라우니가 돈을 갚을 거라고 기대하지 않았단다.” 아버지가 말했다. “나는 일찍이 그에게 돈을 빌려 주지 않겠다고 다짐했었지. 마음속으로 나는 그 사람에게 그 돈을 ‘거저 주었단다.’ 그 사람이 그걸 빌린 돈이라고 한다면 그건 그 사람 문제지. 하지만 그건 내 쪽에서 볼 땐 그냥 선물이었어.”“그렇게 하는 것이 아버지가 장부 계산하는 데에는 더 수월했을 것 같네요.” 나는 이 말을 하며 미소를 지었다. 왜냐면 아버지의 샐 구두 수선 가게에서는 결코 복잡한 장부 정리를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얘야, 네가 좋은 일을 할 때면 말이다. 그걸 계속 기억하진 말거라.”나는 다시 옥수수 다듬는 일을 했고, 아버지는 손녀가 만든 오두막을 칭찬해 주러 나갔다. 그런데 옥수수 껍질을 몇 개 벗기고 나니 우리집에 옥수수가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식구들에게 다 돌아가고도 남을 충분한 양이었다. 여분이 많았다. 나는 옥수수 여섯 개를 봉지에 넣어서 이웃집으로 갔다. 나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똑, 똑, 아무도 안 계세요?”

부라우니 때문에 얻은 교훈/ 가이드 포스트 1999년 10월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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