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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백 번째 포옹
열린교회 (yeolin) 조회수:11389 추천수:14 112.168.96.71
2015-12-19 15:14:52

이백 번째 포옹

 

아버지의 얼굴은 황달에 걸린 사람처럼 노란색이었다.

아버지는 외부로부터 철저히 차단된 병실에서 정맥 주사관과 모니터들에 연결되어 누워 있었다.

한때 지나가던 사람들조차 한 번씩 뒤돌아보게 만들던 건장했던 체격은 이제 겨울나무처럼 바짝 말라 있었다.

아버지의 병은 췌장암이었다. 의사들은 최선을 다하고는 있지만 앞으로 석 달에서 여섯 달이 아버지의 남은 삶의 전부라고 말했다.

건장한 체격만큼 빈틈없는 성격의 소유자였던 아버지는 내게 참 어려운 존재였다.

어린 시절엔 다가가려 해도 다가갈 수 없었고 결혼을 하면서 아버지로부터 독립한 후로는 굳이 다가갈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제 야윈 몸으로 가쁜 숨을 몰아쉬는 모습은 아버지가 더 이상 두려움의 대상이 아님을 말해주고 있었다. 며칠 뒤 아버지가 병원 침대에 앉아 있을 때 나는 아버지에게

다가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아버지, 그동안 아버지에게 거리를 두었던 저 자신을 돌아봤어요.

그리고 제가 아버지를 정말 사랑하고 있다는 걸 알았어요.”

나는 몸을 기울여 아버지를 껴안았다.

별것 아닌 행위였지만 내게는

오랜 상처를 내려놓겠노라는 결단이기도 했다.

그러나 아버지의 어깨와 두 팔은 잔뜩 긴장해 굳어 있을 뿐이었다.

“그러지 마세요, 아버지. 아버지를 진정으로 안고 싶어요.”

아버지는 큰 충격을 받은 것처럼 보였다. 아버지와 나와의 관계에서 애정을 표현하는 것은 극히 드문 일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아버지를 좀 더 부드럽게. 그러나 단단하게 끌어안았다. 그러나 아버지는 아까보다 더욱 긴장하고 있었다. 순간 나는 전에 느꼈던 분노의 감정이 내 안에서 다시금 울컥 솟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이렇게까지 할 필요 없어. 아버지가 그토록 원하는 게 차가운 관계라면 그렇게 둘 수밖에.’

사실 내 마음 깊이 늘 자리 잡고

있던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돌아서지 않기로 했다. 아버지를 안아드리는 것이 아버지에게뿐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해서도 필요한 일임을 느꼈기 때문이다. “좀 더 가까이 오세요. 아버지.팔을 저에게 둘러보세요.”

나는 침대 끝머리에 앉아 아버지가 나에게 팔을 두를 수 있도록 몸을 숙였다.

“이제 꼭 껴안아보세요. 바로 그거예요. 다시 한번요. 잘 하셨어요.” 4는 아버지에게 생애 최초로 껴안는 법을 가르치고 있었다. 우리의 어색하고 낯선 포옹은 곧 끝났지만 나는 그 순간 아버지를 사랑하는 감정이 파도처럼 밀려오는 것을 느꼈다.

아버지를 찾아갈 때마다 포기하지 않고 매번 포옹을 시도한 끝에 아버지도 차츰 자신의 마음을 실어 두 팔로 나를 껴안기 시작했다. 나는 그것을 점점 강하게 느낄 수 있었다. 이백 번째의 포옹을 한 후 아버지는 가만히 말씀하셨다.

“애야. 널 사랑한다.”

그것은 내 기억 속에 아버지에게서 들은 최초의 애정 표현이었다.

-낮은 울타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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