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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을 주는 이야기 2
열린교회 (yeolin) 조회수:2787 추천수:16 112.168.96.71
2014-11-20 16:41:50

어머니

도시의 어느 조용한 거리를 키 작은 노인이 천천히 걸어가고 있었다. 가을 오후였다.
낙엽들은 그에게 지나간 다음 여름들을 생각나게 했다.
이제 이듬해 유월이 올 때까지 그는 또다시 길고 고독한 밤들을 보내야만 했다.

그때 고아원 근처의 낙엽들 사이에서 종이 쪽지 하나가 그의 눈에 뛰었다.
노인은 몸을 숙여 떨리는 손으로 그것을 주어들었다.
어린아이의 글씨체로 쓰여진 그 글을 읽으면서 노인은 눈물이 글썽거렸다.
그 단어들이 하나씩 그의 마음을 울렸다.

쪽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누가 이것을 발견하든지, 난 당신을 사랑해요.
누가 이것을 발견하든지, 난 당신이 필요해요.
난 얘기를 나눌 사람이 아무도 없어요.
그러니 누가 이것을 발견하든지, 난 당신을 사랑해요."

노인은 눈을 들어 고아원을 두리번거렸다.
마침내 노인은 창틀에 코를 누른 채 밖을 내다보고 있는
외로눈 여자아이를 발견했다.
노인은 마침내 자신에게 친구가 생겼음을 알았다.
그래서 노인은 소녀에게 손을 흔들며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그들은 알았다. 그들이 그 겨울을
웃으며 보내리라는 것을

그들은 실제로 그 겨울을 웃으며 보냈다.
담장을 사이에 두고 얘길 나누고,
서로를 위해 만든 선물을 주고받으면서
노인은 그 어린 소녀를 위해 장난감을 만들어 주었다.
그리고 소녀는 노인을 위해 크레용으로 초록색 나무와
햇빛에 둘러싸인 아름다운 부인들을 그려 주었다.
그리고 그들은 더 많이 웃었다.

이윽고 여름이 오고 유월의 첫째날이 되었을 때
어린 소녀는 노인에게 그림을 보여주기 위해
담당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노인은 그곳에 없었다.
그리고 어린 소녀는 알았다.

그가 다시는 오지 않으리라는 것을.
그래서 소녀는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
크레용과 종이를 꺼내 써 내려갔다.

"누가 이것을 발견하든지, 난 당신을 사랑해요.
누가 이것을 발견하든지, 난 당신이 필요해요.
난 얘기를 나눌 사람이 아무도 없어요.
그러니 누가 이것을 발견하든지, 난 당신을 사랑해요!"
-마음을 열어주는 101가지 이야기 3권 중에서-

노인과 소년

키작은 소년이 말했다. "전 이따금 숫가락을 떨어뜨려요." 키작은 노인이 말했다. "나도 그렇단다." 소년이
속삭이듯 말했다. "전 이따금 바지에 오줌을 싸요."
노인이 웃으며 말했다. "그것도 나랑 똑같구나" 소년이 말했다. "전 자주 울어요"
노인이 끄덕이며 말했다. "나도 종종 운단다." 소년이 말했다.
"하지만 가장 나쁜 건 어른들이 나한테 별로 관심을 갖지 않는다는 거예요."
그 저자 그 키작은 노인은 주름진 손으로 소년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나도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안다."

누가 이것을 발견하든지

 

모두들 그만 둬요

스위스에서 있었던 실화입니다. 어느 날 관광버스가 손님을 싣고 관광지에서 돌아오는 길에 일어난 사건입니다.
관광객들은 모두가 지쳐 잠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고개를 막 넘어가려던 순간, 운전사는 브레이크에 이상이 생긴 것을 발견했습니다.브레이크가 고장난 채로 내리막길에 접어든 버스는 속도가 점점 빨라졌고 당황한 운전사의 떨리는 눈동자에는 경사가 급한 내리막길에 펼쳐진 다섯 개의 급커브 길이 보였습니다.

버스에 점점 가속이 붙자 눈을 뜬 관광객들은 뭔가 이상이 생긴 것을 눈치 채고는 흥분하여 소리를 지르고 이성을 잃어 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렇지만 운전사는 침착하고 조심스럽게 커브 길을 한 개 두 개 잘 운전해 나갔습니다.
마침내 마지막 커브 길을 통과하였고 모든 관광객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좋아했습니다. 이젠 마을길을 지나 반대편 언덕으로 올라가 차가 자연히 서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때 저 멀리 아이들이 길에서 놀고 있는 모습이 보이는 게 아니겠습니까? 깜짝 놀란 운전사는 경적을 울려 피하라고 경고를 하였습니다.모든 어린이들이 그 소리를 듣고 피했지만 아직 한 아이가 그 자리에서 우물거리고 있었습니다. 순간 운전사는 관광객을 살려야 할지 저 어린아이를 살려야 할지 갈등하다가 결국 그 어린아이를 치고 말았습니
다. 그리고 버스는 예상대로 건너편 언덕에 멈춰 섰습니다. 운전사는 차가 서자마자 그 아이에게로 뛰어갔습니다. 그러나 아이는 이미 죽어있었습니다.

둘러서 있던 사람들이 '살인자! 살인자'하며 운전사에게 야유를 퍼붓기 시작했습니다.운전사는 아무 말 없이 아이의 품에 고개를 묻고는 아이를 안은 채 흐느끼며 옆의 오솔길로 걸어 들어갔습니다.사람들은 쫓아가면서까지 '살인자! 살인자!'하며 야유를 했습니다. 그 순간 어느 젊은이가 외쳤습니다.'모두들 그만둬요. 소리지르지 말아요. 저 아이는 바로 운전사의 아들이란 말입니다.'

■ 부모를 대신한 희생
전라남도에 있는 용정교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한국전쟁 때 공산당의 만행으로 교회는 불이 나서 없어졌고 성도들은 많이 피살당했습니다.수복되자 피난 갔던 성도들이 다시 돌아왔습니다.그러나 교회를 다시 건축하려고 해도 도무지 가망이 없었습니다. 이때 온 성도들이 힘을 모아 건축하기로 결정하고 예산을 세웠습니다..... 시멘트, 목재, 자갈 등 건축 자재의 예산이 나왔습니다. 그러나 그 예산이라는 것도 실재 필요 액에는 못 미쳐 막막한 실정이었습니다.

이 교회에는 부모가 순교하고 혼자 살고 있는 15살 된 성옥이가 있었습니다. 교회 건축자재 중 돌에 대한 예산이 나오자 성옥이는 이 돌을 내가 산에서 머리에 이어서 날라 놓으리라고 결심을 하고서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성옥이는 남의 집에서 일하고 있었기 때문에 밤 11시가 지나서야만 나올 수가 있었습니다. 그 한밤 중에 산에 가서 돌을 예배당 건축터에 매일 날랐습니다.

아무도 모르게 이 일을 행하면서 순교 당하신 부모님을 생각고 "아버지! 어머니! 제가 부모님 대신 예배당 건축을 하는데 참여하고 있습니다........." 하고 울었습니다.
돌이 세 트럭에 실을 만큼 되었습니다. 아무도 누가 돌을 날랐는지 몰랐습니다. 성옥이는 머리카락이 다 빠졌습니다. 교회의 건축은 성옥이의 희생이 함께 했던 것입니다.

 

영혼 구원 외길

토요일마다 교도소로 출근하는 여자. 14년 동안 교도소를 밥먹듯 드나드는 아내를 따뜻하게 격려해주는 듬직한 남편..어느 재소자 부부의 감동적인 다큐멘타리가 아니다. 김영숙 전도사와 두상달 장로. 교도소와는 전혀 무관한 부부 이야기다. 김전도사는 이화여대 약학과를 졸업한 엘리트다. 고려대학교를 졸업한 남편은 건실한 사업가다. 남서울교회 집사였던 김전도사는 인생을 편안하게 즐길만한 나이에 합동신학교에 진학해 대학입시를 준비하는 수험생처럼 열심히 공부했다.

그리고 오로지 한가지 이유,"영혼구원"의 욕심때문에 전도사가 됐다. "84년부터 안양교도소의 재소자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제 사정으로 성경공부를 중단한 적은 한번도 없었어요. 재소자들도 똑같은 신자로 보아주세요"
토요일이면 성경과 전도지를 챙겨들고 집을 나서는 김전도사. 그녀의 14년의 외출은 철저하게 보안이 유지됐다. 입이 무거운 남편도 "토요일마다 아내가 어디에 가는가"라는 친구들의 물음에 웃음만 짓곤 했다.

한국대학생선교회 출신으로 기독교21세기운동 청소년분과위원장을 맡고있는 두 장로도 중동선교회를 이끌고
있다. "재소자선교나 회교권선교가 모두 주변에 알려지지 않기를 바라는 분야지요. 14년 동안 제가 성경을 가르친 재소자들 중 교회에서 봉사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목회자가 된 사람도 있구요. 앞으로도 재소자 선교는 계속될 것입니다"

부부가 모두 이른바 선교의 3D분야로 꼽히는 재소자와 회교권선교에 재미와 보람을 느낀다. 밖으로 알려지지 않으니 오히려 속으로 기쁨이 솔솔하다.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재소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면서 성격도 많이 변했다. "전 원래 끈질긴 면이 없는 사람이었어요. 시련을 극복할 힘이 없었기에 하나님께서 평탄한 길만 예비해 주셨어요. 좋은 남편과 좋은 이웃과 좋은 환경..재소자들과 어울리면서 인생의 새로운 의미를 깨달았어요. 삶이란 나누는 과정에서 행복을 얻더군요"

김전도사는 최근 재소자들의 간증을 모아 "변화된 삶""너는 내 것이라""고난이 내게 유익이라"등의 제목을 붙여 간증집을 냈다. 모두 비매품이고 김전도사의 손때가 묻지 않은 곳이 없다. 그녀는 재소자의 친구가 되고 싶다. 그래서 지금도 토요일이면 다정한 친구를 만나러 가는 기분으로 교도소를 향한다.

● 건달의 회개
젊은 날 유흥계에서 히라소니로 불리며 "악명"을 날린 사람, 결혼식장에서 사기행각이 들통나 장모를 혼절시키면서 2년씩이나 병원신세를 지게 한 사람, 성도들이 제발 다른 교회로 가달라고 할 정도로 백수건달이던 윤병옥(59 천일특수미싱 사장).그가 신앙생활의 달인으로 돌아와 새 세상을 만드는데 앞장서고 있다."아마 나같은 놈도 또 있나 몰라요. 돈 여자 술 등 즐기고 싶은 건 다 해봤습니다. 더 할 일이 없다 싶어 한때 죽어버리려고 부산 태종대를 몇 번이나 서성거렸는지 몰라요"

그의 또 다른 직함은 세계십자가선교회 회장. 그래서인지 그는 개인사업보다 선교활동으로 더 바쁘다. 1년에 5천 만원 정도를 하나님에게 세금으로 뺐긴다고 "투정"하면서도 "그러나 이것도 적지"라며 금새 말을 바꾼다. 윤회장은 그 동안 해외 10여 회를 포함, 35회의 간증집회를 가졌다. 언젠가는 퇴근 후 3개월 동안 무료 주차안내를 해주며 갈비집 주인은 물론 가족과 종업원 모두를 전도, 당사자들로부터 "예수님이 제일 "쎄""라는 고백을 받아낸 적도 있다. 외국에 나갈 때는 반드시 성경책 한아름 들고 나가는 버릇도 있다.

그가 이렇게 예수에 푹 빠진 것은 결혼 후 4년쯤 되던 79년 어느 날. 부인 조동희씨(48)의 성화에 못이겨 성경공부모임에 출석한 걸 계기로 "성경벌레"가 됐다. 이것은 그에게 생애 최대의 충격이자 사건이었다. 평생 집사(명륜교회)를 고집하는 그는 장로가 되면 자신이 죽는 줄 안다. 인생은 전세방 살이. 본향 천국에서나 장로자리 하나 하겠단다. 그는 요즘 "주시옵소서"가 아니라 "무엇을 해야 할까요"라고 기도제목을 바꿨다. 은혜와 축복에 진 빚을 갚기 위해서란다. 망사신발 4년, 양복 14년째. 양복유행이 바뀌면 옆구리를 텄다 꿰맸다 하는 "자린고비"다. "이것도 황송하지" 그는 또 내가 죽어야 주님이 산다고 곧잘 말한다. 그래야 교회가 살고 가정이 살고 회사가 산단다.

하루에 찬송가 15곡을 불러야 속이 시원하고 3시간 정도는 기도해야 직성이 풀린다는 그도 앞못보는 십자가선교회 안일권 목사를 보면 늘 부끄럽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라고 고백하는 모습이 자못 진지하다. "세 가지 소원이 있어요. 사찰집사 한번 돼보고, 맹인 안일권 목사를 모시고 천국 가고, 지극히 작은 자들에게 살아있는 동안 실컷 봉사하는 겁니다" 그는 불평불만이 많은 교계지도자들을 위해 4년 전 경기도 광주에 7억 7천 만원을 들여 선교 치유원 부지를 마련, 건축기도 중에 있다고 덧붙였다.

 

바닷가의 꿈

어머니와 나는 그 때 꿈이 있었다. 날씨가 포근한 날이면 우리는 바닷가로 나가 따뜻한 모래 속에 발을 묻고 함께 앉아 있곤 했다. 바다에서는 커다란 파도가 서서히 다가와 초록빛으로 점점 높아졌다가는 천둥치는 소리를 내면서 하얗게 부서졌다. 우리는 말없이 앉아 있었다. 산들바람이 햇살로 따가와진 우리 얼굴을 간지르며 지나갔다. 그 때 어머니는 34세, 나는 열 살이었다. 어머니는 키가 작고 통통한 몸매를 지니신 데다가 살결이 아주 곱고 부드러운 갈색 머리를 갖고 계셔서 그야말로 여성적이고 얌전한 모습이었다.

나는 어머니가 무슨 꿈을 갖고 계신지 물어 보았다. "넌 별거 다 묻는 구나" 어머니는 웃으시면서 물에 젖은 내 머리를 쓰다듬으셨다. "엄마, 정말 궁금해요"나는 졸았다. 어머니는 당신의 꿈을 얘기하셨다. 언젠가 아버지가 여유가 생기면 어머니에게 다이아몬드 귀걸이를 사주셨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물론 커다란 것을 원하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이것 좀 봐라" 어머니는 당신의 귀를 잡아당겨 보여 주면서 얘기하셨다. "난 열 다섯 살난 소년였을 때부터 벌써 귀에 구멍을
뚫어 놓고 있었단다. 여기에 조그만 다아아몬드 귀걸이를 한다면 내가 얼마나 이뻐 보이겠니" "그래요, 엄마. 정말 그럴 거에요"나는 맞장구를 쳤다.

이번에는 어머니가 내 꿈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나는 어른이 되면 그 바닷가에 집을 사서 매일 바다를 바라보면서 살면 좋겠다고 했다. 그러면 바다가 변화할 때마다 풍기는 각기 다른 분위기를 온종일 즐길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그 집엔 하인이 여럿이 있는데 그들이 할 일이라고는 은쟁반에 젤리와 초콜렛을 가득 담아 가지고 내게 계속 날라다 주는 일밖엔 없을 것이다.어머니는 미소를 지으면서 나를 내려다보았다. 뒤로 묶었던 머리채가 풀어져 내려와 부드럽게 목 위로 흘러내리고 있었다. "원 녀석두......"

나는 그 미소에서 어머니가 내 꿈을 유치하다고 생각하신 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부끄러운 나머지 모래 속에 묻었던 발을 빼고 바다 쪽으로 있는 힘을 다해 달려갔다. 저만치 커다란 파도가 밀려오는 게 보였다.

얼마 후 어머니의 꿈은 이뤄졌다. 아버지가 다이아몬드 귀걸이를 사주신 것이다. 커다란 금으로 만든 갈퀴모양에 , 조그만 다이아본드가 볼록 튀어나온 것이었다. 어머니는 거울 앞에 앉아서 한참 동안 머리를 이리저리 돌리면서 귀걸이를 한 모습을 비추어 보고 계셨다. 나는 어머니의 꿈이 실현된 것이 기뻤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정장을 하고 외출하시려고 할 때면 나는 어머니가 그 귀걸이 때문에 얼마나 아름답게 보이는지를 얘기해 드리곤 했다. 사실 솔직히 말하면 어머니는 별로 미인은 못 되었는데 그 귀걸이를 하고 나가실 때의 어머니는 마치 여왕이나 되신 것처럼 머리를 꼿꼿이 세우고 나가시는 것이었다.

세월이 흘러 아버지가 최악의 상태라고 회상하시는 불경기가 닥쳐왔다. 어머니의 귀걸이는 없어진 지 오래였다. 내가 어떻게 했느냐고 물으면 어머니는 억지로 미소를 지으시긴 했지만 스며 나오는 눈물을 감추지 못하셨다. "아버지가 저당 잡히셨다. 언젠가 꼭 찾아 주실 거야"
순경이던 아버지의 월급은 원래부터 형편없었는데 불경기가 닥치자 그나마 감봉이 되었다. 이제 어머니는 손수 재봉틀을 돌려 우리 옷을 만드셨으며 몇 푼 버느라고 밤늦게까지 실크로 장식용 장미꽃을 만들고 계셨다. 이런 형편에서도 어머니는 해마다 귀걸이를 잡히고 꾼 돈 이자를 갚아 나가고 계셨다.마침내 어느 해 여름 어머니는 기진 맥진해 버리셨다. 사실 그전에 그 빚의 지불만기일이 지났는데 어머니는 그것도 모르고 희망을 갖고 계셨던 것이다."우리 형편에 다이아몬드 귀걸이를 갖는다는 것은 사실 허영일 거야." 어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시면서 체념하셨다.

누구에게나 큰 행운이 한번쯤은 닥치는 법이다. 내게도 그 행운이 찾아왔다. 내가 쓴 책이 16개국에서 베스트 셀러가 된 것이다. 나는 바닷가에 집을 샀다. 내 꿈이 이뤄진 것이다. 은쟁반에 초콜렛을 담아 나르는 하인은 없었지만 여하튼 그 바닷가에다 집을 마련하긴 한 것이다. 그 동안 내 머리는 회색으로 새어졌지만 여전히 파도는 변함없는 그 젊은 힘으로 천둥소리를 내면서 바닷가에 부딪치고 있었다. 그 집에 이사가서 자리가 잡히자 나는 부모님을 초대했다. 나는 빌로오도로 만든 상자를 어머님께 드렸다. "이번엔 어머니의 꿈이 이뤄질 차례입니다." 어머니의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여보......" 어머니는 아버지를 불렀다. "절 좀 도
와주세요. 난 이런 일에 서툴러서......"

아버지는 상자를 열어 보고 우물쭈물 말씀하셨다. "굉장히 예쁜 다이아몬드 귀걸이인데......" 어머니는 내 머리칼을 자꾸 쓰다듬으시더니 그 귀걸이를 귀에 다셨다. "내가 어떻게 보이니?" "멋있는데요!" "아름답소!" 아버지와 나는 동시에 대꾸했다 어머니 스스로는 자신이 어떻게 보이는지를 말하실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어머니는 벌써 몇 해 전부터 눈이 멀어 계셨던 것이다.

노란 손수건 중에서

 

예수, 그 이름을 부를 때 

저는 어릴 때 철저한 유교 집안에서 자라면서 이웃집 언니를 따라 교회에 다닌 적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자라면서 믿음은 식어져갔고 점점 주님을 멀리하게 되었습니다. 그후 직장생활을 하던 중 직장 상관과 결혼을 하게 되었고 건강한 아들까지 출산하여 나는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는 사람이라 여기며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남편이 저와 상의도 없이 오빠에게 많은 액수의 돈을 사업자금으로 빌려주었는데, 그만 그 사업이 부도가 나게 되어 빌려준 돈을 받지도 못하고 많은 빚만 지게 되었습니다. 월급만 가지고는 도저히 빚을 갚을 수가 없게 된 남편은 직장생활을 하는 한편 따로 사업장을 마련하여 밤낮으로 뛰었습니다.

친정오빠 때문에 이와 같은 고생을 해야하는 남편이 너무도 안쓰럽고 미안했던 저는 시댁이 불교집안이니 나도 그 보답으로 열심히 부처를 믿어야겠다는 생각에까지 이르렀고, 부적도 사서 곳곳에 붙여 두고 불서를 구해 열심히 읽기도 하였습니다.하지만, 이와 같은 저의 노력도 아무런 소용도 없이 남편의 사업은 외형적으로 승승장구 잘 되어가는 듯 했어도 한 달 동안의 결산을 해보면 터무니없는 적자가 나 있는 것이었습니다. 빚은 빚대로 늘어만 갔고 급기야는 우리의 생활까지 위협을 받게 되니 남편은 매일 짜증에 술에, 좋던 성품이 날로 약해만 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시아버님 제사를 지내러 갔다가 작은아들이 이층에서 떨어져 뇌를 다치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컴퓨터 촬영을 해보니 작은 골이 갈라져 있었고 의사마저도 내일 결과를 보고 살면 수술이고 아니면 포기라하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날 저는 중환자실에서 죽어 가는 아들을 바라보면서 염치없는 무릎을 꿇어 두손 들고 통회자복으로 회개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섬기고 불평불만을 일삼았던 것을 철저히 회개하면서 아들만 살려주신다면 열심히 예수 그리스도만 섬기며 증인으로서의 삶을 살기로 서원하는 제 눈에는 쉴새없이 눈물이 흘러나오는 것이었습니다.

사랑의 주님께서는 그토록 악했던 죄인마저도 돌아온 탕자를 반기듯 맞아 주셨고 예레미야서 33장 3절 말씀을 통하여서도 저의 심령에 한줄기 섬광과도 같은 복음의 빛을 발하여 주셨습니다."너는 내게 부르짖어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얻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는 그 말씀을 부여잡고 저는 밤새도록 울다가, 주를 찬양하다가, 이렇게 밤을 지새웠습니다. 새벽이 되어올 때 이윽고 저의 마음에는 평안히 스미어 들었으며 넘치는 소망으로 가득 차게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참으로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17시간만에 깨어난 아들이 수술도 받지 않은 채 급속히 회복된 것이 아니겠습니까? 할렐루야! 의사는 후유증을 염려했으나 저의 마음속엔 깨끗이 나았다는 성령의 세미한 음성과 함께 치료에 대한 확신과 기쁨으로 충만하였고, 나의 확신대로 아들은 후유증 없이 건강하게 회복되었습니다.

저는 기쁨으로 만나는 이들에게 마다 이 일을 간증하며 복음을 전하며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이렇게 주님 앞으로 온전히 돌아오고 보니 주님께서는 어느새 물질의 문제도 해결해 주시어, 실패를 거듭하던 오빠의 사업이 어느 순간부터 성공에 이르러서 결국 우리의 모든 빚을 청산해 주었으며,남편에겐 더 좋은 직장과 잃어버렸던 장막도 되찾게 되었으니, 저는 지금도 꿈인가 생시인가 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부르짖으며 예수, 그 이름을 부를 때 절망을 소망으로, 혼돈을 안정으로 변화시키시는 참으로 좋으신 그 분에게 이제 나는 십자가의 빚을 갚기 위해 더욱더 확실한 증인으로서 제 삶을 주님께 드립니다.


-주부편지 2월 호 중에서 발췌-

 

오늘도 손가락이나 긁고 계시지는 않은지.. 

우리 어머니는 거제도 조그만 외딴 섬에서 8남매 중 둘째로 태어났습니다. 먹을게 귀했던 시절의 어머니는 동생들의 뒤치다꺼리로 어리광 한번 부리지 못했다고 합니다. 스물 넷에 강원도에서 약초 재배를 하시던 아버지에게 시집온 어머니. 겨울이면 무릎 위까지 덮이는 눈 속에서 옥수수와 감자로 연명하며 신혼 생활을 하셔야 했답니다. 추운 겨울 빨래만 해도 하루 해가 저물 정도였지만 시집살이가 다 이런 것이겠거니 불평 한번 하지 않으셨답니다. 둘째 언니가 태어나고 강원도 생활이 익숙해질 무렵 아버지는 그 동안 익히신 약초에 대한 견문을 바탕으로 한약방 경영을 계획하셨고 모든 전답과 집을 정리한 돈을 가지고 온 가족이 기차를 타고 부산으로 향했습니다. 기차 안에서 이삿짐 정리에 잠을 설친 식구들이 모두 꾸벅꾸벅 졸고 있을 때 갑자기 어머니의 비명 소리가 들렸습니다.

"어어어... 우리 돈. 우리 돈." 어렵게 기차를 세우고 도둑을 뒤쫓아가신 아버지는 몇 시간이 지나서야 허탈한 모습으로 돌아오시고.... 결국 무일푼으로 부산에 도착한 우리 가족은 달동네에 단칸방을 얻어 살기 시작했습니다. 좌절감에 술로 시간을 보내던 아버지는 어느 날 갑자기 집을 나가 버리시고, 먹고살기 위해 어머니는 할 수 없이 장사를 시작했습니다. 물건을 어떻게 사고 파는지조차 모르던 어머니는 주위 분들의 도움으로 어렵게 장사하는 요령을 배웠지만 "많이 드릴게 사가세요"라는 말을 하기가 어려워 고생을 하셨다
고 합니다. 당시 저를 배고 있던 어머니는 몸은 고달팠지만 울고 있는 자식을 위하여 하루도 쉴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이십 년이 흘렀지만 오늘도 어머니는 여전히 어시장 노점에서 새우와 미더덕을 팝니다.

상고를 졸업하고 회사를 다니며 생계를 돕던 큰언니가 결혼을 하고 둘째 언니와 나는 대학에 다니고 있지만 아직도 어머니의 손에는 물기가 마를 날이 없습니다.언젠가 주민등록증을 소매치기 당해서 재발급 신청을 하신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동사무소에 가기 전, 어머니께서 이상하게 망설이며 당황스러워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자꾸 손을 내려다보며 '아이고, 이 일을 어쩔까나...'하시는 어머니의 모습에 유심히 살펴보았더니 열 손가락 어느 한 군데에도 지문이 남아 있지 않았던 것입니다. 손가락 마디마디에 가시가 박혀 있고, 손톱은 다른 사람보다 세 배는 두꺼워 보였습니다. 여기저기 갈라진 손등에는 피까지 맺혀 있었습니다.

하루종일 바닷가 근처에 앉아 차가운 바닷바람을 맞으며 새우와 미더덕을 손질해온 어머니. 손과 발에 심각한 동상이 걸려 고생한 지 벌써 십 년이 넘었다고 대수롭지 않게 말씀하시는 어머니. 그렇게 어렵게 번 돈은 모두 우리의 학비와 큰언니의 결혼 자금으로 다 써 버리고 당신 앞으로는 아무 것도 남은 게 없지만, 오히려 자식들을 못 먹이고 못 입힌 것을 한스러워 하시는 어머니. 얼마나 가렵고, 고통스러웠으면 지문이 다 닳도록 긁어야 했을까 생각하니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 언제쯤이면 어머니의 손에 다시 지문이 생겨날지... 혹 오늘 같은 날도 바닷가에 앉아 손가락을 긁고 계시지나 않는지...

-낮은울타리9802 발췌 / 김선경-

● 돌아눕는 행복
어머니가 심한 화상을 입고 병원에 입원하셨다. 부엌에서의 부주의로 하반신에 끔찍한 화상을 입으신 것이다. 어머니는 꼼짝도 못한 채 누워 계셨고, 어쩌다 잠결에 몸을 잘못 움직이면 상처가 침대 천에 닿아 쓰라린 아픔을 토해 내셨다. 그렇게 보름이 넘도록 어머니는 몸 한번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하고 병상에서 치료를 받아야 했다. 하루는 작은형이 어머니의 귀에 대고 조용히 물었다."어머니, 얼마나 아프요?" "천 번 죽고 천 번 사는 아픔이구나." 우리 형제들은 모두 눈물을 글썽거리며 어머니의 고통을 같이 나눠 갖지 못하는 안타까움에 가슴이 아팠다.

어느 날인가는 옆에서 지켜보고 있는 내 손을 잡고 어머니가 조용히 말씀하셨다. "얘야, 나는 지금 너희들을 위해 기도 드리고 있다. 너희들의 아픔을 모두 나에게 주십사고 말이다. 지금 나의 이 고통에 너희 고통까지 모두 합쳐서 내가 다 받겠다고 말이다. 내 기도가 이루어져서 앞으로는 너희들이 고통을 받지 않게 되기를 나는 지금 빌고 있단다" 며칠 후 어머니는 말없이 숨을 거두셨다.

어느덧 7년이 흘렀고,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한 가지 행복을 느끼는 버릇이 생겼다. 그것은 밤에 잠자리에 들어서, 돌아누울 때마다 느끼는 행복감이다. 아, 내 몸이 이렇게도
자유스럽게 움직일 수 있구나. 돌아눕는 행복, 이것은 어머니가 내게 물려주신 값비싼 선물이다.


-낮은울타리9802 발췌 / 김상호-

 

 

믿어지지 않는 기적

외할머니는 어미 잃은 나를 불쌍히 여기시고 내가 원하는 것이면 무엇이든지 다 들어주셨습니다. 외삼촌이며 이모들도 나의 뒷전이었고, 그 중에 제일 힘들었던 사람은 나보다 3살 위인 막내 이모였습니다. 옷이며 신발 등 무엇이든지 내가 우선이었지요. 내가 중학교에 갈 무렵, 아버지는 당신 곁으로 나를 데려가셨어요. 그런데 새어머니도 내 마음에 안 들었고 셋씩이나 되는 동생들도 싫었습니다. 당연히 맏이가 되는 나에게 돌아오는 동생들의 뒷바라지며 청소, 빨래 등 나 는 갑자기 콩쥐가 된 것 같았습니다. 수없이 가출하여 어른들이 질색하게 만들다가는 외할머니께로 아주 갈 수밖에 없는 형편에 이르렀습니다.

다행히, 진학한 고등학교가 미션 스쿨이어서 채플시간에 특송을 해가며 피아노와 바이얼린 등 악기와 가까워졌고, 바이얼린 전공으로 대학 진학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서울에서 대학생활로 시작된 독립형태는 일부 학비 부담을 위한 아르바이트, 고독과 같은 방황 등으로 학교 공부를 충실하게할 수 없을 정도 였습니다. 다만 기독학생회 모임만이 위로요, 활력이 되었고, 바로 그 곳에서 배우자도 만난 것입니다. 기계공학도인 남편은 말없고 충직한 신앙인입니다. 그저 아내와 자식 그리고 교회와 회사가 전부요, 아내의 재주를 대견해하며 무엇이든지 아내의 뜻을 받들었습니다.

어렸을 때는 엄마 잃은 설움을 방패삼아 내 멋대로였고, 시집가서는 순전하고 우직한 남편의 조건 없는 사랑 속에서 지나치게 당당했습니다. 신혼이 시작되면서 나는 음악학원을 개설했습니다. 그럭저럭 운영이 되기에, 나는 부자가 된 듯이 어려운 사람들을 계획성 없이 돕기 시작했습니다. 교회에서 만난 사람들, 재활원, 고아원, 양로원 등 딱한 처지를 보면 앞뒤 분별없이 구제금을 드렸습니다. 살림은 뒷전, 그런데 어느 시점에 이르자, 나는 집과 음악학원 상가를 다 처분해도 메꾸어지지 않을 만큼 엄청난 빚더미에 올라앉아 있었습니다. 막막하고 기가 막혔습니다.

그 동안 그저 기계적으로 오가던 교회, 그리고 말씀 앞에 옷깃을 여미지 않을 수가 없었고, 남들이 다닌다는 기도원을 먼발치에서만 바라보다가 급기야 나도 찾아가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어디서 무엇이 잘못되었는가. 주님 앞에 드러난 내 모습은 자기의 덩어리 고집, 아집 투성이였습니다. 통곡의 통회, 벼랑 끝 같은 빚더미를 어떻게 해야 할는지 그저 아빠에게 매달리 듯 매어 달려 데굴데굴 구르면서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산에서 내려온 뒤에 언제나 새벽 2시에 일어나 기도하며 내 삶의 새로운 길을 구성하며 나 자신의 변화를 간구했습니다.

자신이 생각할 때 모든 것이 옳았던 것 같으나 하나님 아버지의 기준하고 맞지 않을 때, 복을 부어 주시려는데 그릇이 깨끗하지 않을 때, 아버지께서는 그 그릇을 청결하게 만들기를 기다리신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나는 매일 새벽 기도하면서, 기르치고 있던 학생들로 현악단을 만들어 아름다운 음률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한 달쯤 되었을 때, 이상하리만큼 학원을 찾는 학생들이 걷잡을 수 없이 늘었습니다. 학원 수업이 없는 토요일, 퇴근 후, 시간을 쪼개다 못해 새벽에 레슨을 받겠다는 학생까지 생겼습니다. 마치 남편은 런던 지사 근무 발령을 받았습니다. 나는 2년 안에 빚을 정리하고 뒤따라가겠다는 제의를 했습니다. 언제나 나를 철석같이 믿어주는 남편은 두말없이 승낙했습니다.

나는 학원 학생들로 '현악 앙상블 팀'을 만들고 시골 교회, 고아원, 재활원, 양로원 등으로 위문을 다녔습니다. 방문 받는 분들께도 위로가 되었지 만, 다녀온 학생들이 놀라운 변화를 보였습니다. 근검, 절약, 인정이 생기고 효도를 깨닫고, 자립정신과 인내심이 생겼습니다. 주님께서 동행하시며 기뻐하시고 생명수를 부어 주시어 우리 모두의 영혼이 빛 속에서 자라게 하시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2년 작정을 했던 빚 청산은 1년 이상 단축되었습니다.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기적이었습니다.

나는 남편이 근무하고 있는 영국으로 건너가 음악 공부를 마음껏 할 작정입니다. 그런 뒤에 귀국하면 먼저 신앙의 음악인을 양성하여 이 세상 곳곳에 찬양을 심겠습니다. 그리고 돈이 없으면 음악 교육을 받기가 너무도 어려운 우리 사회에서 교육비에 굴하지 않고 음악공부를 할 수 있는 음악학원을 설립하는 것이 나의 소원입니다. 아마 주님께서 이 일을 나에게 맡기시려고 훈련을 시키셨을 것입니다. 음악의 어머니가 되게 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땅에 보내주신 음악의 인재들에게 돈 없이 값없이 가르치게 하시기 위하여 나를 단련하셨으리라 믿습니다. 나는 승리의 길을 향하여 달려갈 것입니다.

-주부편지 98년 2월 호 중에서 발췌 / 주영실 집사-

■걸어가야 할 곳■
큰 공업도시에 한 여직원이 빈민가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12살 소년을 알게 되었습니다. 소아마비였습니다. 그녀는 그를 불쌍히 여겨 시내의 유명한 정형외과 의사를 찾아 호소하였습니다. 의사는 감동이 되어 그를 수술하여 정상인으로 만들었습니다. 여직원이 중년이 되어 어느 날 그 의사를 우연히 길거리에서 만났습니다.

그녀는 소아마비 아이에 대하여 물었습니다. 지금 의사가 되었습니까? 과학자, 선생님....... 아무 말을 하지 않던 의사는 매우 진지하게 대답하였습니다. "그는 지금 여기에 없습니다. 감옥에 있습니다. 우리는 그에게 걷는 법만 가르쳤지 걸어가야 할 곳을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새벽예배

신혼시절이었습니다. 새벽 깊은 잠에 빠져있는 나를 옆에서 잠자던 아내가 급히 깨웠습니다. 성경 중에 욥기라는 부분이 있느냐는 물음이었습니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는 말이 있지만 잠을 자다말고 성경에 대한 질문을 하는 것이 너무 엉뚱하게만 느껴졌습니다. 잠에 취한 목소리로 대답하며 의아해 하는 나에게 아내는 방금 전에 꾼 꿈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꿈속에서 어떤 사람이 욥기 1장 1절을 펴보라고 하면서 성경말씀을 읽어주기 시작하였는데 욥 이라고 하는 동방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자세하게 들려주더라는 것이었습니
다. 아내는 결혼한 후부터 예수님을 영접하였기 때문에 성경에 대해 잘 알지를 못하고 있었습니다. 욥기가 성경에 있는지, 욥기의 내용이 욥 이라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인지는 더욱 알지 못하였습니다.

우리는 성경의 내용과 꿈의 이야기가 같은지를 알아보기 위해 성경을 찾아보았으며 꿈속의 내용과 똑같은 것에 대해 놀랐습니다. 욥과 같은 아들을 주시겠다고 하는 태몽은 아닐까? 하는 기대감도 가지면서, 이런 꿈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하는 궁금증을 가지고 주일날 목사님께 말씀을 드렸습니다. 목사님은 꿈을 꾼 날이 무슨 요일이며 언제인지를 물어 보신 후에 그날 새벽예배부터 욥기 1장을 강해하기 시작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성경 읽는 소리가 잠자는 아내의 귀에까지 들린 모양이라고 하시며 웃으셨습니다. 교회의 강단
에서 목사님이 읽으시는 성경 말씀이 집에서 잠자고 있는 사람의 귀에까지 들려 진다고 생각하니 영적인 세계는 무척 신비스럽다 라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아내는 이일을 통하여 믿음이 성장하기 시작하였고 나 또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달았습니다. 그동안 열심히 다녔던 새벽예배를 피곤하다는 핑계로 한동안 쉬고 있었음을 발견하였고,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새벽예배를 통하여 다시 친밀한 교제와 영적인 대화를 나누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새벽 오히려 미명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서 거기서 기도하시더니"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어라"

주님께서 새벽기도의 본을 보이시며 깨어 있기를 얼마나 당부 하셨는지를 생각 할 때마다 새벽기도를 게을리 하고 영적
으로 깊은 잠에 빠져서 기도하지 못하고 있는 내 모습에 대해서 죄송스럽게 느꼈습니다. 때때로 새벽예배에 대해 나태해질 때면 예전에 들었던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어떤 사람의 옆집에 무당이 살고 있는데 새벽 3시경이면 어김없이 일어나 마당에서 찬물로 목욕하며 정성을 드리는데, 엄동설한 살을 에이는 듯한 추운 겨울에도 찬물을 머리에서부터 쏟아 부으며 귀신을 섬기더라는 것이었습니다. 헛된 우상이고 잡신이며, 악한 귀신을 섬기는 사람들도 그런 정성이 있는데, 하물며 전지전능하시며 온 우주를 창조하시고 나의 생사 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섬기며 예배드리는 일에 게으르고 나태해서야 되겠는가 하며 반성을 하곤 합니다.

사슴이 시냇물을 찾듯, 항상 말씀의 갈증을 느끼는 나에게 새벽예배 시간에 목사님을 통하여 주시는 말씀은 메마른 영혼을 적시는 은혜의 단비입니다. 새벽 예배를 통하여 지난 하루의 삶을 반성하며 신앙의 자세를 새롭게 가다듬을 수 있어서 매우 좋습니다.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고 약속해 주신 주님의 말씀을 의뢰하며 마음껏 간구 할 수 있다는 것은 여간 행복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번 고난 주간 동안에 있게되는 특별 새벽예배를 통하여 약속해 주신 기도의 특권을 누리고자 합니다. 요한 계시록 5장 8절의 말씀과 같이 하나님 보좌 앞에 거룩하고 향기로운 향을 많이 올려 드리고 싶습니다.

"책을 취하시매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들이 어린양 앞에 엎드려 각각 거문고와 향이 가득한 금 대접을
가졌으니 이 향은 성도들의 기도들이라." ●

조순연 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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