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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 감사하라(시111:1-10)
김필곤목사 (yeolin) 조회수:5542 추천수:5 112.168.96.218
2017-11-19 09:20:00

 

여호와께 감사하라
시편111:1-10

오래 전에 우리 교회에 기연이와 기호라는 형제가 주일학교에 출석했습니다. 부모님은 다른 교회에 나가시기 집 근처에 있는 우리 교회에 두 형제가 출석하였습니다. 그런데 감사절 때 아이들이 감사헌금을 1000원씩 하고 감사 기도 제목을 적었습니다. 형이 “제 동생을 바보로 만들어 주셔사 감사합니다.”라는 감사 제목과 함께 헌금을 하였습니다. 동생 것을 보니 “하나님 감사해요. 우리에게 많은 좋은 지능을 주어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드리나이다. 아멘”이라고 써서 감사했습니다. 똑같이 천원 감사헌금을 했지만 하나님이 어떤 아이의 감사를 기뻐하시겠습니까? 오늘은 우리 한국교회가 전통적으로 지키는 추수감사절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감사생활을 하여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감사를 잘 표현한 찬양이 있습니다. “날 구원하신 주 감사”라는 감사 찬양입니다. 가사의 내용을 음미하며서 한 번 같이 찬양하겠습니다.
“ 1. 날 구원하신 주 감사 모든 것 주심 감사 지난 추억 인해 감사 주 내 곁에 계시네 향기로운 봄철에 감사 외로운 가을 날 감사 사라진 눈물도 감사 나의 영혼 평안해
2. 응답하신 기도 감사 거절하신 것 감사 헤쳐나온 풍랑 감사 모든 것 채우시네 아픔과 기쁨도 감사 절망중 위로 감사 측량 못할 은혜 감사 크신 사랑 감사해
3. 길가에 장미꽃 감사 장미꽃 가시도 감사 따스한 따스한 가정 희망 주신 것 감사 기쁨과 슬픔도 감사 하늘 평안을 감사 내일의 희망을 감사 영원토록 감사해”
우리가 찬양했듯이 오늘 추수 감사절을 맞이하여 감사를 다짐하는 시간이 되시길 바랍니다. 우리가 감사는 하는 것은 향기로운 봄철에도, 외로운 가을 날에도 감사하는 것입니다. 응답하신 기도도 감사하는 것이지만 거절하신 것도 감사하는 것입니다. 기쁨도 감사하지만 아픔 도 감사하는 것입니다. 길가에 장미꽃을 보면서 감사하지만 장미 가시로 인해서도 감사하는 것입니다. 기쁨과 희망을 주신 것도 감사하지만 슬픔도 감사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앙인의 참된 감사입니다.

1. 누가 감사를 합니까?
1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내가...여호와께 감사하리로다”라고 다짐을 합니다. 다른 사람이 아니라 자신이 모범을 보이면서 하나님께 감사하겠다고 말씀합니다.
이렇게 하나님께 나와 감사 찬양을 하는 나는 어떤 사람입니까? 10절에 보십시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을 지혜의 근본으로 삼은 사람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신실한 믿음이 있는 사람입니다. 말로만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진짜 인격적인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입니다.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복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매뉴얼대로 사는 것이 진짜 행복이라고 믿는 실천적인 신앙인입니다. 훌륭한 지각을 가진 자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과는 차원이 다른 통찰력과 이해력을 가진 사람입니다. 영어에서는 “good understanding”으로 번역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세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첫째는 타율에 의해 사는 사람들입니다. 다른 사람의 법에 따라 사는 사람입니다. 다른 사람이 조정하는 대로 사는 사람입니다. 세상 흐름 따라 변하는 사람들입니다. 둘째는 자율에 의해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신의 법에 따라 사는 사람들입니다. 자신이 하나님이 되어 사는 사람들입니다. 셋째는 신율에 따라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법에 따라 사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내가 진정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습니다.
이런 나는 하나님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4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여호와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다고 기억하는 것입니다. 9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거룩하고 지존하신 분이심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크고(2),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존귀하고 엄위하며 의롭다고 믿는 것입니다(3). 7절에 보십시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한결같이 참되고 의롭다는 것입니다. 진실과 정의로 행하신다는 것입니다. 8절에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께서 인간을 통치하는 법도는 확실하다는 것입니다. 영원토록 흔들림이 없다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법도가 진실함과 정직함으로 제정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사람마다 하나님 경험은 다 다릅니다. 감사하는 사람은 자신이 경험한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입니다. <죽음의 수용소>의 저자 빅터 프랭클은 “자극과 반응 사이에는 공간이 있다. 그 공간에는 자신의 반응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와 힘이 있다. 그리고 우리의 반응에 우리의 성장과 행복이 좌우된다.”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삶의 현장에는 수많은 자극이 있습니다. 그 자극에 어떤 사람은 원망과 불평을 선택할 수 있고 어떤 사람은 감사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감사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펼치는 이 세상 속에서 감사를 선택하는 사람들입니다. 무조건 감사를 선택하는 것입니다. 늘 남아 있는 것을 보며 감사하고, 일어난 일을 다 이해할 수 없지만 늘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며 감사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모법을 보여주었습니다. 요 6:11를 보면 사람들이 장정만 5천명이 있습니다. 아이들과 여자까지 합하면 적어도 2만 명은 될 것입니다. 그런데 먹을 것이 없습니다. 얼마나 불평과 원망이 많았겠습니까? 그런데 예수님은 어떻게 합니까?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를 보며 부족하다고 불평하지 않습니다. 비교하면서 불평하지 않습니다. 현재의 조건에 근거해 미래를 비관하며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을 들고 축사합니다. 감사 기도를 드렸다는 말입니다. 죽은 나사로의 무덤에서도 원망하고 불평하는 자들 앞에서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라고 감사합니다. 실패의 현장에서도 감사했습니다(마 11:20-26). 감사는 선택하는 것입니다. 지난 과거를 원망과 불평으로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신 일을 전적으로 신뢰하며 그냥 감사한 일을 감사로 선택하는 것입니다. 없는 것을 보며 불평과 원망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것을 보며 감사로 선택하는 것입니다. 불확실한 미래를 보며 불평과 원망을 하는 것이 아니라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을 보고 감사로 선택하는 것입니다. 누가 그렇게 합니까? 믿고 신율에 따라 살아가는 내가 그렇게 선택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다짐하는 것입니다. 자꾸 남보고 환경 보고 불평원망하지 말고 내가 감사하는 사람으로 변해야 합니다. 한 라디오 방송에서 아버지와 아들이 얼마나 친밀한가 알아보기 위해서 행사를 했답니다. 아들이 아버지에게 예고 없이 전화를 걸어서 "아버지,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라고 말하면 아버지가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를 알아보는 것이었답니다. 가장 많이 보인 반응이 이것이라고 합니다. 아들이 아버지에게 전화해서 "여보세요? 아버지, 저..."라고 말했을 때 아버지는 아들이 뭐라고 말하는지 듣지도 않고 "엄마 바꿔주마."라고 말하더랍니다. 아들이 "아니에요. 아버지께 드릴 말씀이 있어요. 아버지,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라고 말하면 아버지가 "너, 술 마셨냐?"라고 대꾸하더랍니다. 그 다음에는 아들이 "아니에요. 이 말은 전부터 꼭 하고 싶었던 말이에요!"라고 말했답니다. 그랬더니 아버지는 "너 돈 필요하냐?" 하더랍니다. 그만큼 감사가 익숙하지 않는 것입니다. 매일 나부터 일어나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존경합니다.” 인사를 해 보십시오. 가정이 바뀔 것입니다. 손자 손녀에게 먼저 해 보십시오. 감사는 내가 선택하는 것입니다. 다니엘이 죽음의 위기 앞에서 그렇게 감사를 선택했습니다(단6:10). 감사하면 기적이 일어나고 감사사면 더 받아 감사한 만큼 인생은 행복해집니다(눅17:11-19). 불평과 원망하는 사람들이 “목사는 저런 목사가 되어야 해, 장로는 저런 장로가 되어야 해, 집사는 저럴 집사가 되어야 해, 권사는 저런 권사가 되어야. 아버지는 저런 아버지가 되어야 해. 어머니는 저런 어머니가 되어야 해. 사장은 저런 사장이 되어야 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하나님의 섭리를 바라보며 감사해야 합니다. 성경은 감사를 못하면 우리의 마음이 허망해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져 우둔하게 된다고 말씀합니다.(롬1:21,22) 감사하지 않으면 결국 자신이 손해입니다. 감사가 없으면 인생은 지옥으로 변합니다. 다른 사람은 무엇이라고 말하든 내가 예상치 못한 일에도 무조건 감사하고, 소리 내어, 감사 일기를 쓰고, 감사 편지를 쓰면서 감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말씀합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시 50:23)"

2. 왜 감사 찬양을 합니까?
왜 시인이 하나님께 감사합니까?
2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여호와께서 행하시는 일” 때문이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행하시는 일을 보면서 감사하는 것입니다. 3절에는 “그의 행하시는 일”, 4절에는 “그의 기적” 6절에는 “ 그가 행하시는 일” 7절에는 “그의 손이 하는 일은”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무슨 일을 행하셨다는 말입니까?
세 가지를 말씀합니다.
첫째는 양식을 주신 것입니다(5)
5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하나님은 자기를 경외하는 자들에게 양식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광야에서 먹을 것이 없었는데 그 때 만나와 메추라기를 주신 것을 기억하고 감사하는 것입니다. 물이 없늘 때 반석에서 물을 주시고, 쓴물을 단물로 바꾸어주신 것을 기억하며 감사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삶의 터전을 주신 것입니다(6).
6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그들은 애굽에서 노예 생활을 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가나안 7족을 몰아내고 그들에게 가나안 땅을 주신 것입니다.
셋째는 속량해 주신 것입니다(9) 죄로부터 구원해 주었습니다. 죽음으로부터 살려 주셨습니다.
9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애굽에서 바로가 노예 생활에서 해방시켜 주지 않았는데 어린양의 피를 뿌려 문설주에 바르게 함으로 애굽의 장자들은 죽었는데 이스라엘 사람의 장자는 죽지 않고 살아나 결국 해방이 된 것입니다. 오늘날 말하면 아무런 공로 없이 우리가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 구원받은 것입니다. 영원한 천국에서 살 수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것을 기억하면서 감사하는 것입니다.
감사에는 세 종류의 감사가 있습니다. ① 상대적인 감사입니다. 타인의 불행을 보고 비교해서 느끼는 감사입니다. ② 결과에 대한 감사입니다. 이루어 진 일을 보면서 감사하는 것입니다. ③ 절대적인 감사입니다. 과거의 불행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아픔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하기 때문에 가능한 감사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뒤돌아 보면 다 감사로 해석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시편을 기록한 시편 기자도 마찬가지입니다. 2절을 보십시오. 쉬운말 성경은 “주께서 행하신 일들이 참으로 크고 놀라우시니, 그 일을 보고 기뻐하는 사람들 모두가 두고두고 그 일을 깊이 생각하고 또 연구하는구나!”라고 번역하였습니다. “기리다”는 말은 “연구한다. 묵상한다.”라는 말입니다. 감사는 해석입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을 신뢰하니까 감사로 해석해 버리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이런 일만 만났습니까? 물이 없어 먹을 것이 없어 원망했습니다. 광야의 삶이 얼마나 고달프고 험했습니까? 인간적으로 볼 때 감사할 일보다 불평할 일이 훨씬 많았습니다. 그러나 후대의 사람인 시편 기자기 그 지나온 역사를 보면서 감사로 해석해 버리는 것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는 삶은 바로 그런 삶입니다. 감사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고 하나님의 명령이다는 것을 믿고 감사로 해석해 버리는 것입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건강하게 학교 잘 다니던 아이가 교통사고로 죽었습니다. 그러면 감사할 수 있겠습니까? 평생 수고하여 그렇게도 잘 나가던 사업이 하루아침에 망했습니다. 그런데도 감사할 수 있겠습니까? 믿었던 친구가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자신을 나쁨 놈이라고 욕하고 다닙니다. 그래도 감사할 수 있겠습니까? 딸이 치한에게 강간을 당했습니다. 어떻게 감사하겠습니까? 평생 무거운 십자가를 짊어져야 하는 장애아가 집안에 있습니다. 감사할 수 있겠습니까? 이력서 수십 통을 보냈는데 면접 한 번도 오라고 하지 않았는데 감사할 수 있겠습니까? 정말로 열심히 했는데 직장에서 요령피우는 사람은 승진했는데 자신은 승진에서 탈락했습니다. 아니 해고되었습니다. 감사할 수 있겠습니까? 욥과 같이 자식들이 죽고 있는 재물 다 없어지고 자신도 병들었다면 감사할 수 있겠습니까? 일을 당할 때 감사하는 것을 쉽지 않습니다. 지난 주 특별 새벽 기도시간에도 열심히 기도했지만 질병이 전이 된 성도님이 있었습니다. 아이가 잘 못된 가정도 있었습니다. 예전에 집사님 질병에 걸렸을 때 신실한 집사님을 살려달라고 1주일 동안 금식기도를 했습니다. 그런데 천국에 갔습니다. 참 힘들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을 때도 많지만 그래도 이런 일들을 통해 독생자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게 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진정한 은혜가 무엇인지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지난 주 특별 새벽기도시간에 저는 계속 “은혜 아니면 살아갈 수가 없네”라는 찬양을 불렀습니다. 계속 눈물이 나왔습니다. “ 크신 계획 다 볼 수도 없고 작은 고난에 지쳐도 주께 묶인 나의 모든 삶 버티고 견디게 하시네”라는 가사가 저의 심금을 울렸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크신 계획 다 볼 수도 알 수도 없고 작은 고난에 지쳐도 그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은혜로 산다는 사실을 고백하며 감사해야 합니다. “ 은혜 아니면 살아갈 수가 없네 나의 모든 것 다 주께 맡기니 참된 평안과 위로 내게 주신 주” 인 것을 믿어야 합니다.
지난 모든 일은 감사로 해석한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의 신실성을 믿고 영원한 천국을 믿기 때문입니다. 내 뜻대로 되지 않아도 주님의 뜻이 이루어진 것을 보며 감사하는 것입니다. 세상사는 동안 내 뜻이 다 이루어지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75억 인구의 욕심덩어리인 인간 각자의 뜻이 이루어지면 세상은 지옥으로 변할 것입니다. 예수님 말씀합니다.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마10:29)" 사람의 생로병사가 다 하나님의 통치하에 있다는 것을 믿고 감사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왜 아들이 빨리 천국에 갔는지 모르지만 그것 역시 하나님의 섭리 속에 들어 있다는 말입니다. 왜 우리가 실패했는지, 왜 우리가 감옥에 갇혀있는지, 왜 우리가 병들었는지, 왜 우리 아이가 장애인지 잘 몰라서 불평불만을 하지만 그것 역시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이루어지는 일이라고 믿어 버리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자주 감사를 말씀하면서 따라오는 말씀이 있습니다.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대상 16:34)"
"찬양으로 화답하며 여호와께 감사하여 이르되 주는 지극히 선하시므로 그의 인자하심이 이스라엘에게 영원하시도다(스3:11)"
"할렐루야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시106:1)"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28)"
그래서 욥은 건강도 잃고 재산도 잃고 자녀도 잃었지만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지 아니하니라(욥1:21-22)"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오히려 감사했습니다. 조건을 초월한 감사생활이란 무조건 과거의 일은 감사로 해석하여 감사하는 것입니다. 지나간 과거는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닙니다. 원망과 불평을 한다고 죽은 아들이 살아오지 않습니다. 원망과 불평을 한다고 슬픈 과거가 바뀌지 않습니다. 원망과 불평을 한다고 과거의 상처가 치유되지 않습니다. 지나간 과거는 감사로 해석해 버리는 것입니다. 조건이 아닙니다. 해석의 문제입니다. 지난 세월 아픔들이 있다면 감사로 해석하고 조건을 초월하는 감사로 일어서는 추수감사절이 되시길 바랍니다. 감사는 기준의 문제입니다. 기준을 0으로부터 출발하면 어떤 경우도 감사할 수 있습니다. 지금 잃어 버린 것 어차피 0에서 시작했습니다. 아직 남아 있는 것 많이 있습니다. 감사는 시각의 문제입니다. 자신보다 위를 바라보면 불평과 원망이 나올 수 있지만, 자신보다 아래를 바라보면 감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면 어떤 경우에도 초월절 감사가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욥의 고백처럼 우리는 0에서 출발한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조그마한 상실로 불평과 원망을 하지만 생각해보면 얼마나 감사한 것이 많이 있습니까? 구원받은 것도 감사, 가정을 주신 것도 감사, 예배드릴 수 있는 것도 감사, 일을 주신 것도 감사, 집을 주신 것도 감사, 생명 주신 것도 감사... 얼마나 감사할 것이 많이 있습니까? 조건을 초월한 감사생활을 하면 감사한 만큼 인생은 행복해집니다. 조건을 초월한 감사생활을 하면 불가능이 가능으로 되는 기적이 일어납니다(대하20:20-26) 다니엘이 감사하니까(단6:10) 사자굴에서도 살아나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정권은 바뀌어도 총리자리를 계속 유지합니다. 유다의 4대 왕 여호사밧이 세 나라가 연합군이 쳐들어왔는데도 "여호와께 감사하세 그 자비하심이 영원하도다."라고 감사하니까 인간이 상상할 수 없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조건을 초월한 감사생활을 하면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습니다.
성경은 진정한 감사는 황소를 드리는 것보다도 여호와를 더욱 기쁘시게 한다고 하였습니다.(시69:30-31) 감사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한다고 하였습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시50:23)"
밤낮으로 교회에 와서 봉사하고, 식당 봉사를 하고, 청소를 하고, 수고한다하여도 감사로 하지 않고 불평과 원망으로 그 일들을 한다면 하나님께 영광이 되지 못하고 기뻐하지 않습니다. 집 안에서 부모 역할 힘들다고 불평하며, 원망하고 감당하면 하나님께 영광이 되지도 못하고 기뻐하시지도 않습니다. 교회에서 직분도 마찬가지입니다. 교사, 성가대, 찬양 사역, 주방, 청소, 안내, 주보, 재정, 자원봉사, 선교 등으로 섬길 때 원망하고 불평하지 말고 감사함으로 감당해야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모든 삶을 '감사'라는 렌즈를 통해 바라보는 것입니다. 일이 잘못되어도 감사, 잘 되어도 감사, 건강해도 감사, 병들어도 감사, 성공해도 감사, 실패해도 감사, 잘 생겨도 감사, 못 생겨도 감사, 합격해도 감사, 불합격해도 감사 이렇게 모든 일에 감사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하나님이 우리를 통하여 영광을 받으실 줄 믿습니다.

"감사로 제사 드리는 자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구원 보이시리라 감사드려 감사드리세 아버지께 감사로 제사를 찬송드리세 아버지께 우리의 찬송을 할레루야 할렐루야 우리의 찬송을 할렐루야 할렐루야 영원토록 찬송을 영원토록 감사를 영원토록 감사 찬송을"

3. 어떻게 감사 찬양을 합니까?
1) 공적 모임에서 감사하여야 합니다.
1절을 보십시오. “정직한 자들의 모임과 회중 가운데서” 감사하겠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말하면 믿는 사람들의 모임 중에서 불평하고 원망하기 보다는 감사하겠다는 것입니다. 비판하고, 경멸하며, 변명하고, 회피하기 보다는 교회에서 무조건 감사찬양하겠다는 다짐입니다. 교회 다니면서 늘 감사 찬양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모이면 험담하고 불평하고 원망하시 쉽습니다. 마귀가 이것을 노립니다. 감사하지 못하고 교회까지 나와 원망하며 불평하는 교인들이 간혹 있습니다. 입만 열면 원망과 불평이 쏟아지는 교인들이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설령 마음대로 되지 않는 집에서 힘든 회사에서 불평과 원망을 한다하더라도 교회 예배에 나와서는 평생 감사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믿음의 사람이 감사 공동체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사탄이 지배하는 곳은 불평과 원망의 공동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는 감사 공동체입니다. 그래서 감사는 하나님의 명령에 따르는 나의 결단입니다. 조건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느냐 불순종하느냐의 문제입니다. 내가 감사하면 공동체는 감사 공동체로 변합니다. 감사는 전염됩니다. 감기만 전염되는 것이 아니라 감사도 전염이 됩니다. 심리학 용어에 "전염현상(contagion phenomena)"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코미디 프로를 보면 가짜 웃음을 삽입시킨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가짜 웃음을 삽입시키는 것만으로도 시청자들은 더 재미있게 보며 웃기 때문입니다. 조지타운 대학의 생물 물리학 교수인 캔더스 퍼트 박사는 ‘감정의 분자’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감사는 우리 몸속에서 생화학 반응을 일으킨다는 것입니다. 생각이나 감정은 몸 안에서 특정한 화학 물질로 변해 분비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파동으로 다른 사람에게도 영향을 준다는 것입니다.
<감사의 힘>이라는 책을 쓴 넬슨은 감사는 파동으로 전달되어 감사는 감사를 부른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뇌과학과 양자물리학의 발달로 감사도 에너지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감사감정도 파장이 있다는 것입니다. 동조현상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우울한 사람과 함께 있으면 우울해 지고, 슬픈 사람과 함께 있으면 슬퍼지고, 불평하는 사람과 함께 있으면 불평을 하는 것처럼 감사하는 사람과 함께 있으면 감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감사는 에너지라는 것입니다. 그 책에 〈식물의 신비한 생애>를 쓴 피터 톰킨스가 실험한 내용이 나옵니다. 동일한 식물을 세 개의 동일한 화분과 흙에 나눠 심은 후 같은 장소에 나란히 놓았습니다. 그리고 물과 거름과 햇볕의 양도 동일하게 조절했답니다. 그러나 한 가지 다른 조건은 각 화분마다 다른 말을 건네며 길렀답니다. 첫 번째 화분에는 칭찬만 했답니다. “넌 어쩌면 이렇게 아름답니 ! 새로 돋아나는 이 앙증맞은 새잎 좀 봐. 뿌리도 땅속 깊이 튼튼하게 자라고 있구나.”라고 했답니다. 두 번째 화분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답니다. 세 번째 화분에는 비난과 불평을 늘어놓았답니다. “넌 정말 못생기고 볼품없구나. 너 같은 꽃은 공들여 가꿀 가치조차 없어.”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후 비교했을 때 칭찬을 받은 식물은 튼튼하고 싱싱하게 자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식물은 그 저 그런 상태를 유지하는 반면 비난을 받은 식물은 비실거리며 자라지 못했답니다. 감사의 파동을 일으키라고 합니다. 감사는 협력을 촉진한다고 합니다.
그 책에서 20년 이상 커플들의 행동을 연구해 온 워싱턴 대학의 심리학 교수 존 고트만 박사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의 저서〈결혼이 성공하거나 실패하는 원인〉에서 비판, 경멸, 변명, 회피라는 이 네 가지가 결혼을 실패하게 하는 중요한 요소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네 가지의 해독제가 감사하는 것입니다. 감사는 사랑과 존경을 실천하게 만드는 원동력이라는 것입니다. 비판과 경멸의 강력한 해독제인 감사는 서로 상처를 주는 관계를 사랑이 충만한 관계로 변화시키는 힘을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서로 감사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독일 역사상 존경받는 정치가 중의 한 사람인 마티바덴의 일화입니다. 그가 돈이 없어 값싼 여관에서 하룻밤을 지내게 되었는데 밤새 신발을 도적맞고 말았답니다. 화가 잔뜩 나서 "어느 놈이 내 신발을 훔쳐 갔느냐" 욕을 하면서 "하나님도 무심하시지 나같이 가난한 사람의 신발을 훔쳐 가게 하시다니" 하고 하나님을 원망했답니다. 그때 친구 하나가 헌 신발을 빌려 주면서 주일이니 교회에 가자고 했답니다. 마티는 마지못해 교회에 끌려갔답니다. 그런데 그 교회 의자에 두 다리가 없는 사람이 앉아 예배를 드리는데 눈물을 흘리면서 감사 기도를 드리는 것을 목격했답니다. 그 순간 마티는 부끄러움을 느꼈답니다. "나는 고작 신발 하나를 잃고서 사람을 욕하고 하나님까지 원망했는데 저 사람은 두발을 잃고도 감사를 드리다니" 그로부터 마티의 인생은 달라졌답니다. 언제나 감사하는 생활, 감사할 것을 찾는 생활을 하게 되었답니다. 늘 감사생활을 한 그는 국가에 봉사하고 국민의 존경을 받는 정치가가 되었답니다. 감사생활을 하면 내 인생도 다른 사람의 인생도 달라집니다. 미국 하버드 대학의 의과대학팀이 1937년부터 72년 동안 '잘사는 삶의 공식'을 찾아내기 위해 하버드대학교 2학년 학생 약 300명을 대상으로 조사를 했다고 합니다. 72년간의 연구 끝에 내린 결론은 잘사는 삶의 공식이 바로 '감사하는 자세'라고 합니다. 감사는 기적의 문, 축복의 문, 사랑의 문, 관계의 문, 미래의 문, 형통의 문, 행복의 문을 열어 줍니다. 너무 풍요로운 세상을 살다보니 감사 불감증에 걸린 세대입니다. 119 구급대의 발표에 의하면 긴급 상황이 생겨 병원에 이송한 사람 중에 '감사하다'고 말을 하는 사람은 3%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속담에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사람은 배우는 사람이고,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감사하며 사는 사람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감사하는데 투자되는 비용은 그리 많지 않지만 유익은 대단합니다. 성경에는 "범사에 감사하라"라는 것과 같은 감사 명령이 33번이나 기록되어 있습니다. 서로 만나면 감사하는 생활을 하여야 합니다. 감사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5:18)"

2) 전심으로 감사하여야 합니다.
오늘 시편 기자는 무엇을 다짐합니까? “여호와께 감사하리라”라고 다짐합니다. 어떻게 감사하겠다고 다짐을 합니까? “전심으로”입니다. “전”은 히브리어로는 “콜”입니다. 영어로는 “with all”입니다. “전체, 모두 것, 충분히”라고 번역할 수 있습니다. “심”은 “레바브”라는 말로 “마음”을 말합니다. 온 마음을 다해 인생 전체로, 인생의 모든 것으로 충분히 감사하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감사하는 생활을 먼저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 그러나 마음에서 멈추어서는 안됩니다. 우리의 재능, 우리의 시간, 우리의 물질을 통해 감사생활을 해야 합니다. 올해 들어 우리 교역자들이 교회 청소를 토요일 마다 합니다. 한 분도 불평하지 않고 감사한 마음으로 하고 있습니다. 저도 같이 청소를 하는데 사람들이 가장 하기 싫은 일이 무엇일까를 생각해 보니 화장실 청소일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화장실 청소를 자원하여 합니다. 그런데 할 때 마다 감사합니다. 담임목사로서 화장실 청소를 한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제가 영적으로, 마음과 육신이 건강하지 못하면 어떻게 화장실 청소를 할 수 있겠습니까?
전신 전력을 다하여 감사하면 절대 손해되는 것이 없습니다.
감사하는 사람들이 건강하게 잘 산다고 합니다. 미국 하버드 대학의 의과대학팀이 1937년부터 72년 동안 '잘사는 삶의 공식'을 찾아내기 위해 하버드대학교 2학년 학생 약 300명을 대상으로 조사를 했다고 합니다. 72년간의 연구 끝에 내린 결론은 잘 사는 삶의 공식이 바로 '감사하는 자세'라고 합니다. 갤리포니아 데이비스 대학 로버트 에먼스는 감사를 습관화한 학생과 그렇지 않은 학생을 16년 동안 추적했답니다. 그 결과 우선 감사를 습관화한 학생의 연평균 수입이 그렇지 않은 학생보다 2만 5천 달러나 많은 것을 발견했답니다. 뿐만 아니라 감사를 습관화한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평균수명이 9년이나 길었답니다.
 식사할 때 감사 기도는 암세포를 줄인다고 합니다. 미국 존 자웨트 박사는 감사기도 호용론을 발표하였습니다. "감사 기도를 하고 식사를 하는 사람에게는 질병을 예방하는 신비한 백신이 몸 안에서 생성된다."는 것입니다. 그는 감사 기도를 하고 식사를 하는 사람에게 3가지 장수 물질이 형성된다고 발표했습니다. 존 박사는 식사할 때 감사하는 마음을 갖춘 기도를 하게 되면 질병을 예방하고 치료하는 물질인 기도 백신이 생성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항독소(抗毒素)'는 항체 역할을 수행하여 질병의 진행을 막고, 살균의 역할을 하고 있으며 안티셉틴은 위장 내에서 음식물이 부패하는 것을 방지하고, 소화 흡수를 돕는 등 3가지 장수 물질이 생성된다고 주장했습니다.<운명을 바꾸는 기술 감사(오스티엄)>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감사의 과학>을 쓴 심리학 교수인 로버트 에몬스는 실험을 해 보니까 "감사하는 사람은 훨씬 살아있고, 경각심을 가지며 매사에 적극적이고 열정적이며, 다른 사람들과 더 맞닿아 있다고 느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12살에서 80살 사이의 사람들을 상대로 한 그룹에는 감사 일기를 매일 또는 매주 쓰도록 하고, 또 다른 그룹들에는 그냥 아무 사건이나 적도록 했답니다. 한 달 후 감사 일기를 쓴 사람 중 4분의 3은 행복지수가 높게 나타났고, 수면이나 일, 운동 등에서 더 좋은 성과를 냈답니다. 그저 감사했을 뿐인데 뇌의 화학구조와 호르몬이 변하고 신경전달물질들이 바뀌더라는 것입니다.
대학생들 192명을 감사 그룹, 짜증 그룹, 일상 그룹으로 나누어 일주일에 한 번씩 감사 그룹에게는 감사 제목 5가지, 짜증 그룹에게는 짜증스런 일 5가지, 일상 그룹에게는 일상적인 일만 5가지 기록하게 했답니다. 실험은 10주간에 걸쳐 진행해 보니까 감사 그룹이 가장 삶의 질이 높아 졌고, 더 건강해졌으며 다른 그룹보다 1주일에 40분 이상 운동을 더한 것으로 나타났답니다. 더욱 낙천적인 성향으로 변했다고 합니다.
다시 만성지병 환자들인 신경근육장애자 성인들 65명을 대상을 실험해 보았답니다. 역시 감사 그룹이 삶의 만족이나 미래에 대한 낙천성이 더 높았으며 30분 정도 잠을 더 많이 그리고 잘 잤다고 합니다. 청소년 221명을 대상으로 동일한 실험을 2주 동안 해 보았는데 역시 감사 일기를 쓴 학생들은 그렇지 않은 학생들에 비해 높은 성적을 얻고 삶의 만족도와 사회성이 높으며 덜 질투하고 덜 우울했다고 합니다.
성경에는 "범사에 감사하라"라는 것과 같은 감사 명령이 33번이나 기록되어 있습니다. 감사를 선택하면 무슨 일을 만나든지 감사할 수 있습니다. 감사로 해석하면 무슨 일을 겪었든지 감사할 수 있습니다. 감사를 찾아 감사하면 범사에 감사할 수 있습니다. 욕심만 조금 내려놓아도 감사할 수 있고, 조금만 낮은 곳을 보아도 입술엔 감사의 열매가 맺힐 수 있습니다. 집에 전기만 들어와도 전기 혜택 없이 사는 20억의 사람보다 감사할 이유가 있습니다. 수돗물만 먹을 수 있어도 아무 물이나 마시는 10억의 사람보다 감사할 수 있는 이유가 있습니다. 하루 천 원 이상으로만 생활해도 천원미만으로 살고 있는 12억 명의 사람들보다 감사할 수 있는 이유가 있습니다. 하루 한 끼라도 따뜻한 음식을 먹을 수 있다면 8억 명의 영양실조로 고통받는 사람들보다 감사할 이유가 있고, 몸이 건강하다면 이번 주를 넘기지 못할 백만 명의 환자들보다 감사할 이유가 있습니다. 만일 냉장고에 음식이 있고, 몸에 옷이 걸쳐져 있고, 잠을 잘 수 있는 집이 있다면, 그렇지 못한 75%보다도 감사할 이유가 있습니다. 감사는 주어진 것이 아니라 찾는 것입니다. 감사는 선택이며 해석입니다. 감사는 찾는 것만큼 보입니다. 작은 일에 감사하다 보면 우리의 삶은 더욱 풍요롭게 되는 것입니다. 감사하지 않으면 죄입니다(롬1:21,22). 감사하지 않으면 자신이 손해입니다. 원로 작가 한말숙씨는 자녀들에게 유언장을 남기면서 묘비명을 “평생 감사하며 살다가 한 점 미련없이 생을 마치다”로 써라고 했다고 합니다. 우리 성도님은 마지막 인생을 마감한다면 어떤 유언을 남기겠습니까?
오늘 감사를 다시 한 번 다짐하는 추수감사절이 되시길 바랍니다. 1절 말씀 “내가”에 자신의 이름을 넣어 읽어 보겠습니다.
 

열린교회/김필곤목사/2017.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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