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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종을 울리는 친구와 이웃들
열린교회 (yeolin) 조회수:2221 추천수:18 112.168.96.71
2014-11-25 13:36:20
그곳에 가면 누군가 있다, 변하지 않는 모습으로 반기는 얼굴이 있다는 생각이 드는 곳이 있습니다. 내게는 전주가 그런 곳 중 하나입니다. 그곳에는 한 학년에 한 반뿐이던 작은 학교에서 초등학교 1-2학년을 함께 한 꼬맹이 친구가 살고 있습니다. 일곱 살의 우정을 턱없이 믿으며 '뜬금없이' 나타나는 나를 친구는 또 흔연스레 반깁니다. 친구는 21년 전에 교통사고로 남편을 잃었습니다. 30중반으로 막 접어들던 그녀에게 남편의 죽음은 세상이 끝나버린 것 같은 충격이며 슬픔이었습니다. 단란한 가정의 행복과 사랑, 삶의 희망, 그 모든 것을 일시에 잃은 듯 한 그녀는 죽음과 도피의 유혹을 이겨내기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녀에게는 지켜야 할 어린 삼 남매가 있었고, '놀라운 구세주 내 주 예수'(446장)님이 함께 하셨습니다. 절망 속에서 그녀를 붙들어준 것은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사41:10)는 말씀이었습니다. 바로 그 하나님께 그녀는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아이들이 공부를 마칠 때까지 일할 수 있도록 건강을 허락하시고, 믿음 안에서 살게 하여주십시오." '하나님께서 키워주신 아이들'은 잘 자랐습니다. 그때 초등학교에 갓 입학했던 큰아이는 누구보다 엄마 마음을 잘 헤아리는 딸로 엄마와 같은 간호사의 길을 걸으며 일가를 이루었고, 연년생 터울의 아들은 의대를 나와 대학병원에서 인턴으로 일하고, 아빠의 얼굴을 기억 못하는 막내딸은 밝은 성격의 약사가 되었습니다.

다 자란 아이들은 이제 엄마의 든든한 방패며 친구가 되어주고 있습니다. 친구는 막내가 대학을 마치던 해 32년 4개월을 근무한 '예수병원'을 그만두었습니다. 주위 사람들은 아직 정년이 남았는데 그만 두느냐고 만류했습니다. 누구보다 일찍 출근해서 밤사이 환자들의 상태를 점검하고 나서 병실을 도는 일로 하루를 시작하던 그녀를, '간호사를 천직'으로 알고 기쁘게 일하던 그녀를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친구는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키고 싶었습니다. "내 욕심만 더 챙기다보면 나중에 '찌크레기 시간'을 드리는 것 밖에 안 되는 것이잖여. 그러면 하나님께 면목 없어 어쩌겄어. " '찌크레기'란 다 써버리고 남은 쓸 데 없는 것을 말하는 전라도 사투리입니다. 지금가지 살아 온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라는 친구는 자신을 위해서는 '필요한 것이 아주 적은' 사람입니다.

얼마 전에야 아이들이 우겨서 선물한 전자레인지를 가졌을 정도입니다. 지금은 어떻게 보내느냐고 내가 물었습니다. 더 바빠졌다는 그녀는 '좋아하는 일'을 하니까 피곤한지도 모르겠다고 합니다. 그녀의 하루는 여전히 새벽 제단을 쌓는 일로 시작합니다. 이것은 수십 년 간 계속된 일입니다. 아이들은 엄마의 건강을 염려하지만 금식기도도 계속합니다. 본 교회에서는 성가대로, 심방권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심방과 중보기도, '이슬편지'(질병이나 출타로 인해 오래 교회를 나오지 못하는 사람들이나 불신 배우자를 위해 1주에 한 번씩 12번을 이어 보내는 예쁜 엽서편지) 쓰기... 주일 오후에는 <함께 하는 교회>에 갑니다. '92년에 설립된 이 교회는 장애자를 위한 교회로, 대학병원 내과과장으로 있는 의사 선생님을 중심으로 세워졌습니다.

그 당시 휠체어를 타고 들어갈 수 있는 건물은 옛 선교사 숲에 있는 예수병원 부속건물정도였는데, 병원 측에서는 흔쾌히 장소를 빌려주었습니다. 당시 원장 선생님 또한 방글라데시 선교사로 있다 온 분이었습니다. 담임 목사님 없이, 지금까지 자원해서 도우려는 사람들로 교회는 운영되고 있습니다. 이제 100명이 넘는 교인이 모입니다. 말씀, 차량수송 등 여러 돕는 기관 중에서 친구의 몫은 찬양입니다.

노래라면 초등학교 3학년부터 시작한 성가대원 경력에다, 언제라도 모이기만 하면 멋진 혼성중창단이 되는 식구들의 타고난 노래사랑 덕분입니다. 얼마 전에는 완산 구청 사회 복지과에 근무하는 친구가 그녀에게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을 위한 합동결혼식 이야기를 해왔습니다. 이 일 역시 장소를 빌려주는 웨딩 홀에서부터 여러 기관과 사람들의 도움으로 되는 일입니다. 그 결혼식에 축가를 불러줄 '중창단' 제의에 선뜻 OK를 했습니다. 뜻을 함께 하는 친구들 열 명이 금방 모였습니다. 거기다 시간만 허락되면 언제라도 도울 준비가 되어있는 사위와 딸과 회원 남편들이 있습니다. 다섯 쌍이 결혼한 첫 합동결혼식에서 부른 노래는 멋진 혼성 4중창이 된 '사랑의 종소리'였습니다. 이들은 <함께 하는 교회>에서도 성가를 부릅니다. 내 친구 정숙이는 전주를 떠나본 일이 거의 없습니다. 화산동 토박이입니다. 가족과 이웃과 교회와 검소한 생활, 그리고 '좋아하는 일'이 전부입니다.

그렇지만 친구와 그 이웃들은 자기가 사는 곳이 바로 주님이 맡기신 선교지라는 것을 아는 사람들입니다. 살고 있는 곳의 후미진 곳에 사랑의 종소리를 울리기 위해 작은 힘을 모으는 아름다운 사람들입니다. 세상은 친구 같은 사람들이 있어 아직은 살만한 곳인지 모릅니다.

정화신/수필가 /주부편지 2001년 6월 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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