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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울 수 없는 아내의 빈 자리
열린교회 (yeolin) 조회수:3017 추천수:21 112.168.96.71
2014-11-25 16:33:02
아내가 어이없는 사고로 우리 곁을 떠난 지 4년, 지금도 아내의 빈자리는 너무나 크기만 합니다. 스스로 밥 한끼 끓여먹지 못하는 어린아이와 남편을 두고 떠난 심정이야 오죽 하겠습니까 마는 난 나대로 아이에게 엄마 몫까지 해주지 못하는 게 늘 가슴 아프기만 합니다. 언젠가 출장으로 인해 아이에게 아침도 제대로 챙겨주지 못하고 출근준비만 부랴부랴 하다가 새벽부터 집을 나섰던 적이 있었지요. 출장을 다녀온 바로 그날 저녁 8시.. 집으로 돌아온 나는 아이에게 간단한 인사를 한 뒤 너무나 피곤한 몸에 아이의 저녁 걱정은 뒤로 한 채 방으로 들어와 양복상의를 아무렇게나 벗어 던지고 침대에 대자로 누웠습니다.

그순간, "푹!" 소리를 내며 빨간 양념 국과 손가락만한 라면가락이 침대와 이불에 퍼질러지는 게 아니겠습니까? 펄펄 끓는 컵라면이 이불 속에 있었던 것입니다. 이게 무슨 일인가는 뒷전으로 하고 자기 방에서 동화책을 읽던 아이를 무작정 불러내 옷걸이를 집어 들고 아이의 장딴지와 엉덩이를 마구 때렸습니다. "왜 아빠를 속상하게 해! 이불은 누가 빨라고 장난을 쳐, 장난을!" 다른 때 같으면 그런 말은 안 했을탠데 긴장해 있었던 탓으로 때리는 것을 멈추지 않고 있을 때.. 아들 녀석의 울음 섞인 몇 마디가 나의 매든 손을 멈추게 했습니다.

아들의 얘기로는 ...밥솥에 있던 밥은 아침에 다 먹었고, 점심은 유치원에서 먹고, 다시 저녁 때가 되어도 아빠가 일찍 오시질 않아 마침, 싱크대 서랍에 있던 컵라면을 찾아냈다는 것입니다. 가스렌지 불을 함부로 켜선 안된다는 아빠의 말이 생각나서, 보일러 온도를 목욕으로 누른 후 데워진 물을 컵라면에 붓고 하나는 자기가 먹고, 하나는 출장 다녀온 아빠에게 드리려고 라면이 식을까봐 내 침대 이불 속에 넣어두었다는 것입니다. 그럼 왜 그런 얘길 진작 안 했냐고 물었더니 제 딴엔 출장 다녀온 아빠가 반가운 나머지 깜박 잊어버렸다는 것입니다............. 아들 앞에서 눈물을 보이는 것이 싫어 화장실로 뛰어들어간 저는 수돗물을 크게 틀어놓고 엉엉 소리 내어 울었습니다.

한참이나 그러다가 정신을 차리고 나와서는 우는 아이를 달래 약을 발라주고 잠을 재웠습니다. 라면에 더러워진 침대보와 이불을 치우고 아이 방을 열어보니 얼마나 아팠으면 잠자리 속에서도 흐느끼지 뭡니까? 아내가 우리 곁을 떠난지 이제 5년. 이제는 아내의 빈자리가 느껴지지 않을 만도 한데 아직도 아내의 자리는 너무 크기만 합니다. 일년 전에 아이와 그 일이 있고 난 후에, 난 나대로 아이에게 엄마의 몫까지 하려고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아이도 나의 걱정과는 달리 티없고 맑게 커가는 것 같아서 아이에게 정말로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이의 나이 이제 7살, 얼마후면 유치원을 졸업하고 학교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 동안 아이에게 또 한차례 매를 들었습니다. 어는 날 유치원에서 전화가 오더군요. 그날 아이가 유치원에 오지 않았다는 것이었습니다. 너무나 떨린 마음에 회사를 조퇴하고 바로 집에 와서 아이를 찾아 보았지만, 어디에도 보이질 않았습니다. 온 동네를 아이의 이름을 부르며 찾길 한참, 그러다 놀이터에서 놀고있는 아이를 찾아냈습니다. 그런데, 아이는 놀이터에서 신나게 놀고 있었습니다. 너무나도 화가 치밀어 아이를 집으로 데려온 후 매를 들었습니다.

그런데 아이는 한마디의 변명도 하지 않고 빌더군요... 나중에 알았는데, 그날은 부모님을 모셔놓고 재롱잔치를 한 날 이라고 합니다... 그 일이 있고 몇일 후 아이는 유치원에서 글을 배웠다고 너무나 좋아하며 집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그날부터 아이는 저녁만 되면 제방에서 나오지 않고 글을 써대는 것이었습니다. 아이가 얼마나 귀엽고 기특한지... 비록, 아내는 없지만 하늘에서 아이의 모습을 보고 미소를 짓고있을 아내 생각을 하니 주르르 흐르는 눈물을 참을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일년정도의 시간이 흐르고...겨울이 되어 거리에는 크리스마스 캐롤이 흘러 나올 때쯤 또 한번 아이가 일을 저질렀습니다. 그날 퇴근 준비를 하고 있는데 누군가가 나를 찾는다고 전화를 했습니다. 그 전화는 우리동네 우체국 출장소였는데, 아이가 우체통에 주소도 쓰지않고 우표도 부치지않고 300여장의 편지를 우체통에 넣어 그렇지 않아도 바쁜 연말에 업무에 막대한 지장을 끼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아이를 불러놓고 다시는 들지 않으려던 매를 또 다시 들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엔 아이는 잘못했다는 소리뿐 이었습니다...

난 우체국으로 가서 편지를 받아 왔습니다. 편지를 가지고 와서 아이에게 왜 이런 짓을 했냐고 물어봤습니다. 그러자 아이가 울먹이는 소리로 대답을 했습니다. 엄마에게 편지를 보낸 거라고... 순간 난 눈시울이 빨개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아이가 앞에 있는 터라 태연한 척 아이에게 다시 물어 보았습니다. 그럼, 도대체 왜 이리 많은 편지를 보냈냐고...그러자, 아이는 그 동안 계속 편지를 써왔는데, 우체통의 턱 높이가 높아서 자기의 키가 닿지 않아 써 놓고 넣지 못하다가 요즘 들어 다시 재보니 우체통 입구에 손이 닿길래 여지껏 써 왔던 편지를 한꺼번에 넣었다고 하더군요.

한참 후에 아이에게 이렇게 말을 해주었습니다. 엄마는 하늘에 계시니깐, 다음부턴 편지를 써서 태워서 하늘로 올라 보내라고... 그리고 그 편지들을 모두 가지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주머니 속에서 라이터를 꺼내서 편지를 태우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문득 아이가 엄마에게 무슨 얘기를 하고 싶어 했을까 궁금해 졌습니다. 그래서 태우던 편지 중에 하나를 뜯어 잃어 보았습니다. 보고 싶은 엄마에게...엄마, 우리 지난 주에 유치원에서 재롱잔치 했어...근데, 난 엄마가 없어서 가지 않았어...아빠가 엄마 생각할까 봐 아빠한테 얘기 안했어.

아빠가 나 찾으려고 막 돌아다녔는데, 난 일부러 아빠가 보는 앞에서 재미있게 놀았어...그래서 아빠가 날 막 때렸는데, 난 얘기 안했어. 나, 매일 아빠가 엄마가 생각나서 우는 거 본다. 근데, 나 엄마 생각 이제 안나... 아니...엄마 얼굴이 생각이 않나...엄마 나 꿈에 한번만 엄마 얼굴 보여줘... 알았지?...보고싶은 사람 사진을 가슴에 품고자면 그 사람이 꿈에 나타난다고 하던데, 엄마도 그렇게 해 줄거지?..... 그 편지를 읽고 또 다시 고개를 떨구었습니다. 정말이지 아내가 떠나간 이 빈자리는 너무나 크기만해서 시간이 지나도 채워지지 않습니다. (작자 미상 열린대화방에서 퍼온글)

채울 수 없는 아내의 빈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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