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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한 번의 기적
열린교회 (yeolin) 조회수:2282 추천수:18 112.168.96.71
2014-11-25 13:54:12
우리 어머니는 다른 어머니들과는 달랐다. 학교 친구들은 미친 엄마와 산다고, 또 아빠가 안 계시다고 나를 놀려 댔다. 내가 두 살 때 어머니는 아버지의 학대에서 도망쳐 오빠와 언니, 나를 데리고 고향인 애틀란타로 돌아갔고, 거기서 외할아버지와 함께 살았다. “너희 엄마에게는 만사가 다 힘들단다.” 어머니가 힘들어하는 날이면 외할아버지는 오빠 브라이언, 언니 테리, 그리고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희들이 좀 더 나은 삶을 살게 하려고 엄마가 저렇게 열심히 일하는 거란다.”그건 여덟 살밖에 안 된 나도 알 수 있었다. 때로 어머니는 비서 일에 완전히 지쳐서 집에 들어오곤 했는데, 그럴 때 어머니의 몸은, 아니 어머니의 모든 것은 우리 집의 낡은 소파보다도 더 축 늘어지곤 했다.

하지만 주말이면 자신을 간신히 추스르고는 우리들을 여기저기 데리고 다녔다. 물질적으로는 가난했지만 어머니는 우리가 풍부한 경험을 쌓기 원했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내가 갈망했던 것은, 내가 필요로 할 때 내 옆에 앉아서 나를 꼭 안아 주며 위로해 주는 그런 어머니였다. 기분이 좋은 날이면 어머니는 정원에 있는 장미도 돌보고 우리에게 근사한 음식도 만들어 주었다. 하지만 다른 때 어머니는 멀쩡한 우리 얼굴에 상처가 있다고 상상하기도 하고, 언니와 내가 같이 있다가 울기라도 하면 사정없이 폭언을 쏟아 부었다. 어머니가 먹는 약도 별로 효험이 없는 것 같았다. 내가 열세 살 때, 어머니는 내가 몰래 남자 친구를 만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를 밖으로 절대 내보내지 않았고 심지어 학교도 못 가게 했다.

어머니에게 몹시 분노했고 하나님께는 더 그랬다. ‘하나님께서 정말로 우리 삶의 모든 것을 주관하고 계시다면, 왜 어머니를 도와주시지 않는 거지요?’ 난 화가 치밀어 올랐다. ‘왜 제가 필요로 하는 그런 어머니를 주지 않으시는 거죠?’ 우리 모두를 비참하게 저버리는 그런 하나님은 필요 없다고 단정했다. 비가 내리던 어느 날, 석 달째 ‘외출 금지’ 당한 채 지내던 나는 시끄럽게 덜컹거리는 소리가 들려 살그머니 거실 쪽을 엿보았다. 현관문이 활짝 열려 있었고, 어머니가 식탁 의자를 계단 아래로 떠밀고 있었다. 어머니는 꺼낼 수 있는 건 뭐든지 다 꺼내 놓았다. 어머니는 당당하게 우리 집 물건들을 모조리 내갔다. '찌이이이익!’ 어머니가 커튼을 찢었다. 나는 전화기로 달려가 오빠 학교로 전화를 걸었다.

어머니가 호통을 치며 내게로 성큼성큼 다가왔다. “엄마, 그러지 마세요!” 어머니가 가위를 들고 내게 오는 것을 보고서 내가 외쳤다. 전화기를 떨어뜨리고, 나는 본능적으로 어머니의 양팔을 붙잡아 가위 끝을 어머니 쪽으로 돌려 꼼짝 못하게 했다. 어머니의 두 눈은 그 광기로 이글거리고 있었고, 항상 나를 무섭게 만들던 그 삼켜 버릴 것 같은 어두움을 뿜어내고 있었다. 어머니가 스스로 지쳐 떨어질 때까지는 놓지 않는 것이 안전하다고 생각했다.

오빠가 집에 올 때까지 나는 방문을 잠근 채 방안에 틀어박혀 있었다. 경찰이 도착해서 어머니를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널 증오할 거야!” 경찰차의 문이 닫힐 때 어머니는 소리지르며 나를 빤히 노려보았다. “엄마, 미안해요!”나는 울며 소리쳤다. 담당자들은 어머니를 주립 정신병원에 넣었고, 나는 내 자신에게 죄책감을 느꼈다. 시간이 흐른 후 결혼하여 아들과 두 딸을 낳았다. 그러나 어머니는 자살을 기도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기도록 내버려 두실 수 있습니까?’ 나는 하나님께 대답해 달라고 부르짖었다. 정신병원의 침대 위에 누워 있는 저 연약하고 망가진 여인이 바로 우리 어머니라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어머니께서 드시던 약을 모두 다 끊겠습니다.” 어머니의 담당의사가 말했다. 의사는 엄마에게 양극성 장애라는 진단을 내렸다.“몇 년 전에 어머님께 내려진 진단은 오진이었던 것으로 사료됩니다. 약도 잘못 드셨고요.” 의사는 어머니에게 새 약을 처방했다. 정말 기적 같았다. 어머니는 오래 전 정원에서 손수 키우던 장미처럼 화사하게 피어났다. 여러 해 동안 정신병이라는 덫에 걸려 있던 어머니의 내면에서 부드럽고 온화한 인격체가 뚫고 나오려고 버둥거렸던 것이다.

결국 난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어 주셨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1997년 크리스마스가 지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어느 날 밤에 나는 TV를 보고 있었다.
그런데 화면 속의 이미지들이 발톱을 곧추세우고는 내게로 달려들었다. 나는 숨조차 쉴 수가 없었다. 남편이 달려왔지만 나를 어떻게 도와야 할지 몰랐다. ‘어머니.’ 숨이 막혀 헐떡이는 와중에 떠오른 생각이었다. ‘어머니가 필요해.’ 나는 전화기를 움켜잡고 어머니 집 전화번호를 눌렀다. “엄마, 미칠 것만 같아요!” 나는 소리쳤다. “나 좀 도와줘요, 엄마.”“게일리, 너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엄마는 너를 위해 있단다.” 어머니의 목소리는 부드러웠지만, 힘이 있었다. 공포증 및 우울증이라는 진단을 내린 전문가들도 내가 무슨 일을 겪고 있는지 완전히 파악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어머니는 알고 있었다. 하나님께 “왜 저를 낫게 해 주시지 않나요?”라고 외칠 때에도 어머니는 알고 있었다. 어머니를 찾아갔다. 어머니는 당당한 걸음으로 다가오더니 바로 내 옆에 앉았다.

“저 좀 안아 주실래요, 엄마?”어머니는 두 팔로 나를 감싸더니 꼭 껴안아 주었다. 우리 사이를 그렇게 자주 가로막던 거리감이 스르르 녹아 없어졌다. “게일리야, 널 정말로 사랑한다.” 그 순간 나는 어머니를 치유하신 하나님, 내가 의심했던 하나님께서, 내가 어머니를 가장 필요로 하는 순간에 어머니를 다시 돌려 주셨음을 알았다. 그리고 그분께서 나도 치유해 주시리라는 것을 확실히 알았다.

딱 한 번의 기적/by Gayle Childers Gullick, Maysville, Georgia/가이드 포스트 2002년 2월호 중에서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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