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열린마을 열린이야기

열린이야기

게시글 검색
병들었을 때 돌아 보았고...
열린교회 (yeolin) 조회수:2118 추천수:17 112.168.96.71
2014-11-25 13:47:45
나환자들을 치료하기 시작하면서 나는 마음속에 깊이 자리잡은 편견이나 두려움과 싸우지 않으면 안되었다. 환자들은 정말 끔찍하게 곪은 상처들을 치료해 달라고 내밀었다. 종종 코를 찌르는 고름 냄새와 썩는 냄새가 창고를 가득 채웠다. 나는 당시 나병과 씨름하며 일하던 대부분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항상 감염을 걱정했다. 나는 내 두 손의 지도를 그려 두기 시작했다. 수술 도중에 우연히 바늘이나 날카로운 뼈끝에 손을 찔리면 그때마다 손을 그린 지도에 찔린 곳을 표시했다. 치료하던 환자의 이름과 수술 시간을 적어 둠으로써, 내가 나병에 걸릴 경우 그 원천을 추적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찔리고 베이고 긁힌 자국들이 열세 개에 달하면서 나는 그 방법을 포기하고 말았다. 나의 아내 마거릿은 내가 나병과 가까이 접촉하는 데 대한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도록 앞장서 도와 주었다. 어느 주말 내가 출타했을 때, 인력거 한 대가 벨로아의 의과 대학 구내에 있는 우리 집 앞에 멈추어 섰다. 이십대 초반인 야윈 남자가 인력거에서 내렸고, 마거릿이 나가서 그를 맞았다. 아내가 보니 그의 구두 앞쪽이 입을 벌리고 있었고 그의 두 발은 붕대로 칭칭 감겨 있었다. 하얀 흉터가 한쪽 눈언저리를 거의 대부분 덮고 있었고, 그는 강렬한 햇빛을 피하기 위해 눈을 계속 내리깔고 있었다. "실례합니다, 부인." 그는 매우 공손하게 말했다. "폴 브랜드 박사님 좀 만나 뵐까 해서 왔는데요." 마거릿은 남편인 브랜드 박사가 화요일이 되어야 돌아오니 아직 사흘이나 남았다고 말해 주었다.

맥이 풀려 버린 그는 아내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는 돌아서서 가려고 했다. 그가 타고 온 인력거가 이미 떠나 버려서, 그 사람은 절름거리는 불편한 걸음걸이로 시내 방향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금 같은 마음을 소유하고 있는 나의 아내는 궁핍한 사람을 돕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었다.
아내는 다시 그 사람을 불러서 물었다.
"갈 곳은 있는 거죠?" 그 사람을 구슬려서 입을 열게 하는 데는 시간이 좀 걸렸지만 몇 분 안에 마거릿은 가까스로 그 청년, 새던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것은 배척과 학대라고 하는 나병환자에게는 너무나도 전형적인 이야기였다. 그가 처음으로 피부 반점들을 발견한 때는 여덟 살 때였다.

학교에서 쫓겨난 후 그는 사회적으로 버림받은 사람이 되었다. 이전의 친구들도 그를 길에서 마주치면 일부러 피해 갔다. 음식점이나 상점들도 그를 얼씬도 못하게 했다.
그렇게 6년이라는 세월을 허비한 후 그는 마침내 자기를 받아 주는 미션 스쿨을 발견했다. 그러나 졸업장을 받고 나서도 아무도 그를 고용해 주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있는 돈을 모두 긁어모아 가까스로 벨로어까지 오는 기차 삯을 마련했다. 그러나 일단 벨로어에 도착하자 이번에는 버스들이 그를 태워 주지 않았다. 그래서 새던은 남아 있던 돈을 다 털어 인력거를 빌려 타고 의과 대학까지 6km 이상을 달려왔다. 정말이지 그에게는 갈 곳이 없었다. 설령 호텔에서 그를 받아 준다 해도 방 값을 낼 수 있는 처지가 못 되었다. 순간적으로, 마거릿은 새던에게 우리 베란다에서 자라고 권했다. 아내는 그를 위해 편안한 잠자기를 만들어 주었고 그는 내가 돌아올 때까지 사흘 밤을 거기서 보냈다. 좀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나는 아이들이 달려와서 우리의 새로운 손님인 나병에 걸린 그 훌륭한 청년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을 때, 좋은 반응을 보이지 못했음을 인정한다.

그것은 곧 나의 아이들도 그 병에 노출되었다는 말이 아닌가? 마거릿은 단 한마디로 있었던 일을 설명했다. "하지만 여보, 갈 데가 없다잖아요." 잠시 후 아내는 내게 그날 아침에 읽은 신약 성경 구절을 이야기해 주었다.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었다.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아보았고..."(마 25: 35-36). 아내는 그런 마음으로 새던을 우리 집에 들어오게 한 것이다. 지금도 그리고 영원히 내가 감사하게 생각하는 결정이었다. 새던은 우리에게 우리가 가진 지나친 두려움을 깨닫게 해주었을 뿐만 아니라, 우리의 가장 소중한 친구들 중 하나가 되었다.
또한 그 무렵 물리 치료사인 루스 도마라는 여자 선교사도 내게 두려움의 모든 장벽을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그녀는 중국에서 선교활동을 하다가 모택동의 공산주의 혁명으로 인해 최근 빠져 나온 사람이었다. 원래 그녀는 일단 홍콩으로 나와 거기서 다시 고국인 영국으로 돌아가려고 차표를 예약했었다. 그러나 떠나기 직전 그녀는 인도에 있는 한 정형외과 의사가 나환자들을 데리고 실험적인 일을 하고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 즉시 그녀는 일정을 바꾸어 벨로어로 왔다. 루스는 우리 진료소에 물리 치료소를 설치했다. 그녀는 나환자들을 돌보는 세계 최초의 물리 치료사들 중 하나였고 그 분야의 개척자였다.

루스는 손으로 나환자의 손을 힘차게 마사지하면 손이 뻣뻣하게 굳는 것을 예방할 수 있다는 사실을 믿었다.
그래서 매일 그녀는 구석에 앉아 나환자들의 손을 쓰다듬고, 또 쓰다듬고, 또 쓰다듬었다. "루스,그렇게 하면 살갗과 살갗이 너무 직접적으로 접촉하게 됩니다!" 내가 그녀에게 경고했다. "장갑을 끼고 해야 할 거예요." 그녀는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나환자의 손을 어루만지곤 했다. 루스 도마는 그같은 간단한 치료법으로 놀라운 성공을 거두었다. 나는 그 성공이 어떤 마사지 기술 덕분이라기보다는 인간적인 접촉이라는 그녀의 은사 덕분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폴 브랜드/고통이라는 선물/ 두란노 중에서-

댓글[0]

열기 닫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