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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인의 용기(6) 유혹을 이기는 용기(창39:7-10)
김필곤목사 (yeolin) 조회수:4528 추천수:4 112.168.96.218
2017-10-01 06:26:02

 

신앙인의 용기(6) 유혹을 이기는 용기

창세기39:7-10

 

어제 모 일간 신문에 이런 내용이 실려 있었습니다. 어느 여대생의 남자 친구가 취직을 했답니다. 그런데 “남자친구가 성접대 업소 출입이 잦은 회사에 취직했다”고 합니다. 남자 친구는 이 사실을 입사준비 당시에는 몰랐기에 지금 무척이나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고 합니다. “연말에 회사 전체에서 성접대 업소 회식이 예정되어있다고 하는데, 남자친구는 신입이라 거부권이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남자친구는 그런 곳에 끌려갈 수밖에 없는 건가”라며 “그리고 여자 친구인 저는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맞는 건가”라는 기사였습니다. 네티즌들은 이 글에 대하여 댓글을 달았답니다. 어떤 사람은 “고민할 필요도 없이 회사를 관둬야한다”는 반응을 보였고 어떤 사람은 “한 번 사는 인생인데 그렇게 살 바에야 그 직장 때려 치는 게 맞다고 봄. 구질구질하게 그 직장에 꼭 붙어있어야겠다는 사람이라면 헤어지는 게 낫다”고 말했답니다. 어떤 사람은 “대한민국 다수 남자들은 여자 없으면 정말 단명할 것 같다. 왜 꼭 회식 자리에서 여자를 끼워야 하나”고 말했다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저런 문화에서 신입은 사실 적극 어울리는 게 최선이지 않나”라고 말했답니다. 우리 성도님이라면, 우리 성도님의 아들딸이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우리가 사는 삶의 현장에는 수없는 유혹이 있습니다. 눈만 뜨면 "욕망을 채워줄 터이니 나를 선택하라."는 광고가 널려 있습니다. 로버트 그린은 "유혹의 기술"에서 "세상의 모든 것은 유혹으로 통한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프랑스의 저명한 사회학자 장 보드리야르는 현대사회를 읽는 첫 번째 코드로 서슴없이 '유혹'을 꼽았습니다. 그만큼 유혹은 남녀관계의 차원을 넘어 정치, 사회, 경제, 문화를 움직이는 키워드로 부상했습니다. 물질의 유혹, 명예의 유혹, 권세에 대한 유혹, 성에 대한 유혹 등 모든 유혹한 달콤하고 매혹적으로 다가 옵니다. 사탄은 광명의 천사(고후11:14)로 가장하고 우리를 유혹합니다. 속임수의 명수입니다. 거짓의 아비입니다. 인간의 욕심과 세상의 풍속이라는 두 날개를 이용하여 유혹을 합니다. 그 중에 특히 성적 유혹은 강력하고 파괴적입니다. 매력을 느끼고 호감을 갖게 만들고 신비감에 사로잡히게도 하고 로맨틱한 감정을 주기도 합니다. 끌리게 하고, 쏠리게 하고 홀려 버립니다. 신앙의 용장이라는 다윗을 보십시오. 골리앗도 용감하게 이기고, 사울의 핍박도 용감하게 견뎠지만 성적 유혹 앞에 꺼꾸러져 간음하고 살인하였습니다. 삼손같이 위대한 장수도 드릴라라는 여인의 유혹에 넘어져 자신에게 주어지 위대한 능력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젊은 나이에 비참하게 인생을 마감하고 말았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요셉은(창39:9) 교묘하고 달콤한 성적 유혹을 이기고 승리하였습니다. 강력한 유혹을 이기는 데는 무엇보다 용기가 필요합니다. 유혹을 이기려면 어떤 용기가 필요하겠습니까?

 

1. 우리가 유혹을 이기려면 유혹 앞에서 단호하게 말로 "아니요."라고 거절하는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오늘 성경에 나오는 요셉을 어떻게 용기 있게 성적 유혹을 이겼습니까? 요셉이 17살에 바로의 친위대장 집에 형제들에 의해 은 20에 인신매매되었습니다. 그곳에서 10년 동안 성실히 일하여 그 집의 일과 재산을 관리하는 가정총무가 되었습니다. 미인이었던 라헬의 아들이기 때문에 어머니를 닮아 용모가 빼어나고 아름다웠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잘 생기고 예쁜 사람을 보면 정신을 못 차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정조관념이 흐린 보디발의 아내가 27살 먹은 꽃미남인 자기 집 종을 유혹하는 것입니다. 이 아줌마가 동침을 하자는 것입니다. 말로 노골적으로 유혹을 합니다. 아주 집요하게 유혹합니다. 10절에 보십시오. 날마다 요셉에게 동침하자고 청합니다. 12절을 보십시오. 옷을 붙잡고 강권합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우월적 지위를 가지고 명령하는 것입니다.

이 때 요셉은 어떻게 반응합니다. 8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단호하게 "아니요."라고 용기 있게 거절합니다. 이런 말을 하는데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두려운 일입니다. 위험한 일입니다. 불이익을 당하는 일입니다. “아니요” 한 마디로 친구와 자신의 직장, 직위 뿐 아니라 생명까지도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이제까지 사랑했던 사람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결혼 전에 사랑한다고 하면서 러브 호텔에 가서 자자고 합니다. "누구나 다 하니까", “사랑하는데 이런 정도로야”, "딱 한번만"하면서 속삭입니다. 그럴 때 “아니요”하면 애인을 잃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아닌 것을 아니라고 단호하게 말하고 거절합니다. 자신보다 월등한 지위를 가지고 유혹을 합니다. 그럴 때 “아니요”라고 용감하게 말해야 유혹에서 이길 수 있습니다. “안 돼요, 돼요. 돼요”라고 회색분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인류의 최초의 인간 아담과 하와가 실패한 것은 “아니요”라고 말하는 용기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의 모든 것을 주시고 선악과만 따 먹지 말라고 했습니다. 사탄이 하와에게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더냐?"라고 유혹하자 하와는 "동산 나무의 열매는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라고 말합니다. 죽을까한 것이 아닙니다. 정녕 죽는 것입니다. 그 길로 가면 망하는 것입니다. 유혹에 덫에 걸리면 결국 망합니다. 유혹은 확장성이 있어 한 번이 여러 번으로 되고 결국 중독에 빠져 버립니다. 사명이 이루지 못합니다. 성공하지 못합니다. 가정이 파괴됩니다. 사랑도 잃습니다. 순결도 잃어 버립니다. 추하게 됩니다. 명예와 권력을 잃습니다. 가난해집니다. 질병에 걸립니다. 따돌림을 받습니다. 인생 초라해집니다. 그러니 그 유혹에는 단호히 아니라고 하는 용기가 필요한 것입니다. 예수님 보십시오. 사탄이 유혹합니다.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예수님께 먹는 것으로 시험을 합니다. 이 때 예수님은 단호하게 말씀합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마4:4)" 속으로 “사탄아 물러가라”라고 단호하게 외쳐야 합니다. 다니엘을 보십시오. 뜻을 정하여 단호하게 우상음식을 먹지 않겠다고 결단합니다. 오늘 한 번만 먹고 내일 먹지 말자라고 하면 그것 실패합니다. 유혹은 독약과 같지만 달콤하게 다가옵니다. 재미를 줄 것 같고, 부귀영화를 줄 것같이 보입니다. 그러나 유혹은 늪과 같아 한 발을 들여 놓는 순간 유혹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습니다. 이런 우화가 있습니다. 에스키모인들은 늑대를 사냥할 때 얼음판에 구멍을 뚫고 그 구멍에 피를 묻힌 칼을 거꾸로 세워놓는다고 합니다. 계속 피를 묻혀 놓으면 칼 위에 피묻은 얼음이 쌓이게 되고 늑대들은 피 냄새를 맡고 칼날이 숨겨진 피를 계속 핥는다고 합니다. 그러면 차가운 얼음으로 혀에 감각이 없어지고 감각이 없어진 혀는 칼날에 계속 베여 자신의 피인지도 모르고 칼날을 계속 핥다가 죽는다고 합니다. 요청에 응하게 하는 심리 기법 중에 “문 안에 발 들여 놓기( foot-in-the door technique; FITD)”라는 기법이 있습니다. 일단 열린 문 안에 발을 밀어 넣어 문을 닫지 못하게 하고 고객을 설득할 시간을 벌고 집 안에 들어가 판매에 성공한다는 데서 유래한 기법입니다. 작은 부탁을 하여 승낙을 받으면 큰 부탁도 쉽게 받아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한 번 부탁을 수용하면 그 후의 부탁도 쉽게 들어주는 심리작용 때문입니다. 사탄이 사용하는 이 유혹의 기법에 속아 넘어가면 안 됩니다. “딱 한 번만” 할 때 단호하게 “안돼”라고 거절하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진짜 딱 한 번만”이라고 말하면 “그래도 진짜 안돼”라고 거절하는 용기, “이번 한 번만”이라고 말하면 “이번에 역시 안돼”라고 거절하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쉽게 유혹에 넘어가는 사람들은 거절 장애가 있는 사람들입니다. <거절의 힘(제임스 알투처, 클라우디아 알투처 지음)>이라는 책에서 거절 장애라는 말이 나오는데 들어주기 무리한 부탁에도 두려워서 'No!'라고 하지 못하고 결국 Yes맨이 되어 온갖 큰 손해를 본다는 것입니다. 행복하게 살려면 '아니요'라고 말하는 용기, 거부하고 거절하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7가지를 이야기 합니다. “원하는 대로 살고 싶다면 거절하라. 주변의 쓸데없는 사람을 거절하라. 강요당하는 일을 거절하라. 화나게 하는 일을 거절하라. 부족하다는 생각을 거절하라. 나쁜 소음을 거절하라. 당신 자신을 거절하라”라고 말합니다. 수프에 불순물이 들어 있다면, 아무리 많은 물을 들이붓거나 향신료를 뿌려대도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수프 속에는 여전히 불순물이 남아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럴 때는 불순물을 제거하거나, 아니면 수프를 새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훼방꾼들에게 큰 소리로 '아니요'라고 말하라는 것입니다. 의미 없는 인간관계로 당신의 진을 빼는 사람들, 당신을 울타리 안에 가두고 통제하려는 사람들, 당신을 바보로 만들려는 사람들, 당신을 속이고 거짓말을 하는 사람들에게 '아니요'라고 단호하게 말하라고 합니다. 원하지 않는 일에 '아니요'라고 말하라고 합니다.

인터넷을 하다가 유혹하는 눈길이 있으면 당장에 "아니요" 하고 페이지를 옮겨야 합니다. 그것이 무엇인가 클릭하고 들어가면 그 때부터 그 유혹의 늪으로 빠져버리는 것입니다. 음란물은 단호하게 "아니요"라고 거부해 버려야 합니다. 모든 중독은 유혹에 너그러운 태도를 가지기 때문입니다. 유혹의 가능성을 차단해 버려야 합니다. 마태복음 5장 37절에서 예수님은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고 합니다. 옳은 것은 '옳다'하고, 아닌 것은 '아니라'로 단호하게 말하라는 것입니다. 야고보서(5:12)에도 "너희가 그렇다고 생각하는 것을 그렇다 하고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라 하여 정죄받음을 피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엘리야 선지자는 갈멜산에서 백성들에게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르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를지니라"고 결단을 촉구했습니다. 유혹에서 이기려면 유혹 앞에서 단호하게 “아니요”라고 말하는 용기를 가져야 합니다. 물질의 유혹, 성적 유혹, 명예에 대한 유혹, 권력에 대한 유혹 등이 다가 올 때 단호하게 "아니요"라는 용기를 가져야 합니다.

 

2. 우리가 유혹을 이기려면 유혹 앞에서 신전의식을 갖고 사는 마음의 빗장을 열지 않는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유혹은 권력보다 강력하고 우아해서 우리가 쉽게 유혹 앞에서 단호하게 "아니요."라고 거절하는 용기를 가지기가 쉽지 않습니다. 요셉은 27살의 피가 끓고 있는 젊은이입니다. 아무도 보지 않습니다. 적당히 즐기면 대접도 받고 지위도 유지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부모 형제를 떠나 혈혈단신으로 외롭게 있는데 그 여인의 유혹에 넘어가면 외로움을 달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성적 쾌락뿐 아니라 권력도 적당한 물질적 보상도 받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요셉이 이렇게 철저하게 "아니요"라고 거절하며 유혹을 이길 수 있었던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9절 말씀을 같이 읽겠습니다. "그런데 내가 어떻게 감히 이런 악한 짓을 하여 하나님께 범죄할 수 있겠습니까?" 요셉은 간음하는 것을 단지 사람에게 죄를 짓는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 범죄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신전의식을 가지고 행동하는 것입니다. 유혹을 이기려면 마음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말씀합니다.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 4:23)” 유혹을 이기려면 마음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왜 빠져드는가(폴 블룸저)>라는 책이 있습니다. 우리는 왜 성에 빠지고 음악에 빠지고 물건에 집착하고 음식, 예술, 쇼핑, 영화, 스포츠에 빠지는가에 대하여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쾌락은 단순히 감각기관의 반응만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쾌락은 대상의 심오한 본질이나 본성에 대한 믿음에서 나온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똑같은 와인이지만 하나에는 최고급 와인의 상표를 붙여 놓고 하나에는 일반 와인의 상표를 붙여 놓고 와인 전문가에게 시음을 하고 평가해 보면 40명이 최고 등급이 붙은 와인을 좋은 와인이라고 평가하고 12명만 낮은 등급이 붙은 와인을 좋은 와인으로 평가했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생각하는 본질에 의해서 이미 음식의 맛이 정해져 버린다는 것입니다. 똑같은 그림인데도 유명 화가의 작품이라고 하면 가격이 치솟고 위작이라고 하면 가격이 추락한다는 것입니다. 본질이나 본성에 대한 믿음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빠져드는 것은 대상이 주는 기쁨보다는 인간만이 가지는 상상력에 기인한 것이고 쾌락은 상상력의 또 다른 일면이라는 것입니다. 인간은 곤충이 영양가가 없어서 먹지 않는 것이 아니라 곤충을 징그럽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먹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마음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없는 것같은 세상에서 하나님이 지금 나와 함께 하고 있다는 신전의식을 가지고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당시 애굽 때나 지금이나 얼마나 하나님을 부정하는 문화입니까? 유혹 앞에 신전의식을 가지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마음의 용기가 필요합니다. 사탄은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고 욕심과 세상 풍속이라는 두 날개로 성도를 유혹합니다. ‘누구나 다 하는 일이니까’라고 유혹합니다. ‘뭐 대수롭지도 않은 일인데’라고 유혹합니다.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으니까’라고 유혹합니다. ‘이번 한번뿐이니까’라고 유혹합니다. 해외 여행 가면 대만 야시장에 가서 뱀의 독이나 뱀 고기를 먹으려고 줄서 있는 여행객을 봅니다. 그 중에는 목사님도 장로님도 있을 것입니다. 태국의 나체 쇼 현장에는 목사님도 장로님도 있을 수 있습니다. 남들이 다 하는데 뭐 나도라고 마음의 고비가 풀리는 것입니다. 그 순간 무너지는 것입니다. 그 때 마음을 변화시키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이 보고 있다.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아무도 보지 않은 것 같지만 하나님이 지금 나를 보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강력하고 우아한 유혹 앞에서 “아니요”라고 단호하게 거절하는 용기를 발휘할 수 있는 힘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몸은 그리스도의 피값으로 산 거룩한 성전입니다. 하나님이 유혹에 넘어가 쓰레기장을 만들어 스트레스 쌓이고, 질병에 걸려 빨리 죽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유혹에 넘어가는 순간, 순간의 쾌락을 맛볼 줄 모르지만 수많은 갈등과 문제가 생깁니다. 결혼하지 않고 사랑이라는 명목으로 유혹에 넘어가 같이 잠을 자다보면 아이가 생깁니다. 그 때부터는 인생이 지옥이 됩니다. 낙태를 합니다. 씻을 수 없는 상처를 가지고 살게 됩니다. 설령 모든 것을 극복하고 결혼했다고 해도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은 이기적인 성욕의 노예가 되어 산다면 결코 가정은 행복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시선을 끌기 위해 유혹의 언어들이, 유혹의 그림들이, 유혹의 영상들이 춤을 추고 있습니다. 사탄은 우리를 욕망의 그물로 낚기 위해 감각과 본능에 미끼를 던져 놓고 있습니다. 거친 듯 하면서도 부드럽게, 순진한 듯 하면서도 교활하게 다가와 관심과 욕망을 자극하며 허영심을 부추기고 있습니다. 채워지지 않은 욕망의 호수에 낚싯대를 던져 놓고 있습니다. 그것을 물으면 색다른 즐거움을 줄 것이라고 매일 매일 유혹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유혹을 이기려면 신전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혼자 책상위에서 인터넷을 하고 있는 것 같지만 하나님이 지금 나를 보고 있다고 생각하며 인터넷을 하는 것입니다. 둘만 있고 아무도 없는 것 같지만 하나님이 지금 나를 cctv로 찍고 있다고 생각하며 행동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유혹을 단호하게 물리칠 수 있는 용기가 생깁니다. 사장님이 2차 3차를 요구할 때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했을까를 생각하며 단호하게 물리치는 용기를 가져야 합니다.

왜 사람이 쉽게 유혹에 넘어갑니까? 유혹은 매혹적이고 매력적이기 때문입니다. 손해될 것같고 재미없고, 지루하고, 무섭고 싫증나게하면 유혹에 넘어가지 않습니다. 스릴있고, 낭만적이고, 새롭고 즐거움을 줄 것같으니까 유혹에 넘어가는 것입니다. 사탄이 아담을 유혹할 때처럼 속삭이는 것입니다. “먹어보라” 산다는 것입니다. 눈이 밝아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처럼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돈을 벌게 하고 출세하게 하고 기쁨과 쾌락을 줄 것이라고 속삭이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요셉은 진정한 행복을 하나님이 주신다는 사실을 체험한 사람입니다. 요셉이 이렇게 노예로 팔려왔지만 이만큼 출세한 원인이 무엇 때문이라고 성경은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까? 2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주인도 여호와께서 함께 그가 하는 일이 잘 되는 것을 알았습니다. 3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함께 하여서 하는 일 마다 잘 되었습니다. 보디발의 집이 왜 복을 받았습니다. 5절을 보십시오. 요셉을 위해 복을 내려 그의 집안 일이 잘되고 재산이 날로 늘어난 것입니다. 좋은 것은 사탄이 주는 것이 아닙니다. 유혹에 빠지면 좋은 것이 주어지지 않습니다. 쾌락을 줄 것이라고 인터넷에 들어가 포르노를 탐닉하고 사이버 섹스, 원조 교제를 한다고 진정한 성적 만족을 얻는 것이 아닙니다. 심리학자 제임스 맥가우(James L. McGaugh)는 인간이 감정적인 자극을 받게 되면 그 인상이 아드레날린 호르몬과 에피네프린에 의해 '두뇌에 각인되면서' 기억이 형성되는데 그렇게 형성된 기억은 잘 지워지지 않는다는 연구 자료를 발표했습니다. 그래서 유혹에 빠지면 점점 빠져들어 중독의 길로 들어간다고 합니다. 더큰 자극을 받아야 만족을 하기 때문에 중독에 빠집니다. 중독이 되면 그것으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단계적 확대된다고 합니다. 게임중독에서 포르로 중독으로 도박중독으로 확대된다는 것입니다. 더 강렬한 자극을 필요로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무감각해진다는 것입니다. 점점 합법적인 것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입니다. 양심과 도덕적 신념이 마비되어 '누구나 다 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갖게 되고 그러다 보면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비정상적인 행동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온갖 좋은 것은 하나님이 주십니다. 사단이 유혹으로 주는 것은 결국 불행과 파멸, 죽음입니다.

유혹에 넘어간 아나니아 삽비라 부부, 아간 가족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비참하게 온 가족이 죽었습니다. 유혹에 넘어간 능력의 사람 삼손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눈이 뽑혀 연자 맷돌을 돌리다 죽었습니다. 유혹에 넘어간 아브라함이 첩을 통하여 이스마엘을 낳았고 끝없는 비극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가장 좋은 것으로 주시는 분임을 믿고 신전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유혹 앞에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를 생각하는 용기를 가져야 합니다. 우월적 지위를 가진 상사의 어떤 위협이 있다 해도 사람 무서워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말씀합니다.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약 1:17)"

 

3. 우리가 유혹을 이기려면 유혹자와 과감하게 격리되는 행동하는 용기를 가져야 합니다.

우리가 유혹을 이기려면 유혹받을 기회를 사전에 차단해야 합니다. 방화벽을 쳐야 합니다. 안전지대에 머물러야 합니다. 개인적인 경계선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울타리를 쳐야 합니다.

요셉이 거절했는데도 불구하고 이 여인은 날마다 요셉에게 치근거립니다. 유혹이란 집요한 것입니다. 10절을 보십시오. 계속 치근거리니까 요셉이 어떻게 합니까? 요셉은 거절하며 그녀와 잠자리를 같이 하지도 않고 그녀와 함께 있지도 않았습니다. 그러자 포기합니까? 아닙니다. 12절을 보십시오. "나와 함께 잠자리에 들자" 강요를 합니다. 그러자 요셉이 어떻게 합니까? 요셉은 자기 옷을 그 여자의 손에 버려 둔 채 뿌리치고 밖으로 뛰쳐나갔습니다. 도망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비겁한 것이 아닙니다. 유혹을 이기는 용기있는 행동인 것입니다. 감옥에 갈지라도, 직장을 그만둔다고 해도, 사랑했던 사람과 해어진다고 해도, 어떤 불이익이 다가온다해도 피해버리는 것입니다. 유혹을 이기려면 현장에서 과감하게 피하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인간은 머물러 있으면서 유혹을 이길 만한 능력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말씀합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시 1:1)"

유혹의 현장에서 바동거리며 만용을 부리며 무모한 짓을 하며 머뭇거리지 말아야 합니다. 인간의 본능적 욕정은 다루기 쉬운 것이 아닙니다. 옛날 수도자들 중에도 어떤 이는 수도에 정진하다가도 성적 욕정이 미친 듯 일어나면 억제 못하여 일어나 알렉산드리아 거리 창녀집에 달려간다고 합니다. 범죄하고 나서야 크게 뉘우쳐 눈물을 흘리며 사막으로 되돌아 와서 한번 실수에 3년의 벌을 받았다고 합니다. 모든 것을 포기한 수도자들도 성적 유혹을 이기기가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생불이라던 지족선사도 기생 황진이의 색에 여지없이 넘어가고 도승 원효대사도 신라 요석공주에게 파계하고 말았습니다. 바울도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라고 고백했습니다. 유혹은 피하면 이기게 되어 있습니다. 노련한 항해사라도 암초가 깔려있는 해역을 시험 삼아 지나지는 않습니다. 유혹에 넘어질 때 어떤 환경 하에 놓여있습니까? 그 환경을 피하여야 합니다. 인터넷에 들어가면 음란 도서, 음란 비디오, 음란 영화가 즐비하게 유혹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성령의 전인 우리를 마귀의 소굴로 만들려고 하는 유혹들이 쌓여 있습니다. 이것을 피하는 것을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피하는 용기를 가져야 합니다. 컴퓨터를 통해 유혹을 받으면 공개된 장소에서 컴퓨터를 하고, 방문 잠그지 말아야 합니다. 숨기지 말고 투명해하게 하는 것입니다. 스마트 폰이 유혹이 된다면 유혹의 영상들을 볼 수 없도록 방지 앱을 깔아 놓는 것입니다. 유혹을 스스로 이기려고 하면 넘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사탄이 그렇게 우리의 힘으로 이길 정도의 만만한 존재가 아닙니다.

사탄은 우리의 약점을 다 알고 있고 그것을 노려 유혹을 합니다. 노아는 술에 약한 것이 약점이고, 에서는 배고픈 것 못 참는 것이 약점이었습니다. 유다는 돈, 모세는 의분을 참지 못하는 것, 베드로는 겁이 많은 것, 바울은 건강이 약한 것이 약점이었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물질 욕심이, 삼손과 솔로몬은 이성이 약점이었습니다. 그래서 처음부터 유혹의 통로를 차단해 버려야 합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음행을 피하라 사람이 범하는 죄마다 몸 밖에 있거니와 음행하는 자는 자기 몸에 죄를 범하느니라 (고전6:18)"

계속 유혹에 넘어지게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들을 제거하여야 합니다. 유혹에 넘어지게 하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그를 멀리해야 합니다.

피하면 불이익을 볼 것같습니다. 자신의 성적 욕망을 채워주지 않으니까 이 아줌마가 무엇을 합니까? 14절을 보시시오. 집안 종들을 불러 말합니다. "이것 좀 보아라. 주인이 데리고 온 이 히브리 사람이 우리를 희롱하였다. 그가 나를 겁탈하려고 내 방에 들어왔으나 내가 소리를 지르자 그의 옷을 내 곁에 벗어 둔 채 달아나고 말았다." 남편에게 화살을 돌리고 요셉에게 화살을 돌립니다. 그리고 남편에게 동일하게 말합니다. "당신이 데리고 온 히브리 종이 나를 희롱하려고 내 방으로 들어왔으나 내가 소리를 지르자 자기 옷을 내 곁에 벗어 두고 달아났습니다."

주인은 분노하고 요셉을 감옥에 쳐 넣었습니다.

그러나 불이익을 받았습니까? 21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이 그에게 복을 주십니다. 하나님이 복을 주시는데 누가 방해할 수 있겠습니까? 간수장의 사랑을 받습니다. 감옥 안에서 제반 업무를 맡습니다. 전혀 간섭하지 않을 정도로 신뢰를 얻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23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하셔서 그가 모든 일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하셨기 때문입니다." 감옥에 가서 왕의 신하를 만나게 되고 그 일로 결국 바로에게 발탁되어 국무총리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완수한 것입니다. 요셉이 보디발의 집에 팔려온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에게 언약한 언약을 이루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을 실현하기 위해 온 사람입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반드시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히리니 (창 15:13) 그들이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벌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창 15:14)"

요셉은 모든 유혹으로부터 탈출하여 이 사명은 완수했습니다. 국무총리가 되었고 형제들을 애굽으로 오개 하여 출애굽할 때 까지 살게 만들며 출애굽할 하나님 나라의 백성을 만들었습니다. 유혹을 이기면 결국 인생은 성공적으로 살 수 있습니다. 유혹을 이기면 인생을 행복해 집니다. 유혹을 이기면 하나님의 상급을 받습니다. 유혹을 이기면 그리스도의 향기를 드러내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게 됩니다. 왜 나만 유혹을 받으냐고 불평하지 말고 유혹도 기회로 활용해야 합니다.

 

유혹을 이기려면 어떤 유혹 앞에서도 단호하게 "아니요."라고 말하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유혹을 이기려면 유혹 앞에서 신전의식을 가지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예수님이라며 어떻게 하실까라는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유혹을 이기려면 유혹으로부터 피하는 용기 있는 행동이 필요합니다. 용기 있는 말, 용기 있는 마음, 용기 있는 행동을 통해 유혹을 이기고 승리하는 신앙인이 되어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풍성한 복을 누리시는 신앙인이 되시길 바랍니다.

열린교회/김필곤목사/2017.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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