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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불에서 찬송가로
열린교회 (yeolin) 조회수:2296 추천수:19 112.168.96.71
2014-11-25 10:28:00
우리 가족은 작은 교회를 섬기지만, 가슴에 햇살 같은 사랑을 가진 사람들이다. 한 달 전, 부교역자인 남편은 오후 예배 설교를 하면서 교인들을 향해 간절히 외쳤다. “사랑의 으뜸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영원한 생명을 얻도록 인도하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을 모르는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그들을 생명의 길로 인도할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모두의 마음에 뜨거운 감동이 일었다. 건축 헌금을 작정하듯이 교인들은 각자 전도할 인원을 작정하고 하나님께 약속했다. 사랑의 으뜸은 ‘영혼 구원’이라고 외치는 남편의 모습을 보면서 이젠 그가 하나님의 사람, 하나님의 종이 되어감을 느낄 수 있었다.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말만으로도 나는 눈물이 쏟아진다.

남편은 불교 집안에서 자랐고, 1985년 2월에 동국대학교 불교학과를 졸업한 사람이다. 모두들 일류 대학에 들어가 판검사가 되는 것만이 가장 큰 성공인 줄 생각하던 시절, 당시 명문고로 이름난 대전고등학교에 다니던 그가 동국대학교불교학과에 진학하겠다고 했을 때 집안은 온통 풍랑에 휩싸였다. 그는 대학 1학년 때 국방부에서 시행하는 군법사 후보생 시험에 합격했고, 대학 생활 4년 동안 불교 학도로서 자부심을 지니고 불교 활동에도 매우 열성적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결혼을 하면서 군법사 후보생 자격을 포기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하나님께서 그를 붙드셨기 때문이다.

하나님께 붙들린 그의 방황과 고뇌는 참으로 눈물겨웠다. 사병으로 군복무를 하는 동안은 물론 제대 후에도 그의 마음속에는 부처가 자리하고 있었다. 교회 출석은 번번이 3개월을 넘기지 못했다. 밤중에 이상한 소리가 들려서 잠을 깨면 남편은 꿈속에서 염불을 하고 있었다. 깨우지 않으면 몇 시간이고 계속했다. 잠꼬대로 염불을 하는 남편의 모습을 보며 나는 너무나 안타까웠다. 그는 절에 가지 않으면 미칠 것만 같다고 말했다. 점점 더 교회와 기독교를 비판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1990년 겨울 하나님께서 나에게 지혜를 주셨다. 나는 남편에게 단호히 말했다. 불교 공부를 한 만큼만 신학 공부를 해보라고. 그러고도 하나님이 믿어지지 않는다면 그 때는 당신이 원하는 길로 가도 더 이상 말리지 않겠다고. 남편은 처음에는 무슨 신학 공부를 하느냐고 펄쩍 뛰었지만, 거듭된 나의 간청을 마침내 받아들였다. 그것은 정말 하나님의 도우심이었다. 남편은 1992년 3월 호서대학교 대학원 신학과에 입학하였다. 남편이 신학 공부를 하는 동안 하나님께서 붙들어 주시리라 나는 믿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어 주시리라는 꿈을 꾸며 울기도 했다. 믿음의 씨가 그의 가슴에 뿌려지고, 그 믿음은 조금씩 아주 조금씩 자랐다. 참으로 많은 이들의 기도가 있었다. 그러나 신학을 공부하면서도 남편의 방황은 계속되었다. 남편은 괴로운 나머지 울부짖었다. “하나님! 하나님이 정말로 계신다면 보여 주십시오.”남편은 울부짖다가 자신의 어리석음을 질책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고 한다.“이 어리석은 놈아,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고 했더냐? 하나님이 없다고 생각하는 너의 그 어리석음 때문에 나를 만날 수가 없는 것이다.”

그 후 남편은 점차 변화를 보이기 시작했다. 하나님께서는 남편의 그릇만큼씩 한걸음 한걸음 인도하셨다. 다시 일 년여의 시간이 지난 후 남편은 기도 중에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께서 자신을 죽음에서 생명으로 구원하시는 환상을 체험하면서 하나님 앞에 완전히 무릎을 꿇었다. 불교 공부를 한 것도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어느 날 자다가 찬송가 소리에 잠을 깨었다. 이게 웬일인가? 꿈속에서 잠꼬대로 염불을 하던 남편이 염불 대신 찬송가 40장을 부르고 있었다. 1절부터 마지막 절까지 찬송을 부르는 남편의 얼굴이 빛나고 있었다.

나는 자꾸만 바보처럼 울었다.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나 감사했다. 1994년 여름 석사과정을 졸업한 남편은 이듬해 일 년 동안 목사 안수를 받기 위해 한신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기장 총회 위탁 교육 과정을 공부하였다. 그 후 부족한 공부를 더하기 위해 1996년 3월 호서대 박사 과정에 입학했다. 그리고 지난 겨울 드디어 학위 과정을 수료하였다. 남편이 공부를 하는 동안 경제적인 고통은 말로 다하기 어려웠다. 등록금을 낼 때마다 울어야 했다. 그러나 그 시간들은 하나님께 가까이 가는 시간이었고, 하나님의 손길을 마주하는 시간이었다. 울며 기도할 때마다 예수님께서 힘을 주셨다. 어느 날은 울면서 기도하고 있는 나를 예수님께서 피 묻은 옷자락으로 감싸 주셨다.

남편은 학위 논문을 준비하면서 이 여름을 보냈다. 이제 곧 목사 안수도 받게 될 것이다. 남편은 예수님을 영접하기까지 오랜 시간을 방황하였다. 그래서 복음을 듣고도 예수님을 영접하지 못하는 사람을 보면 자신의 옛 모습을 보듯 무척이나 안타까워 한다. 특히 불교권 전도를 위해 하나님께 기도한다. 그러한 남편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하나님의 사랑과 인도하심에 감사와 찬양을 드린다.

염불에서 찬송가로/ 박은자 글
-목마르거든 99년 9월 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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