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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마지막 여행
열린교회 (yeolin) 조회수:2135 추천수:18 112.168.96.71
2014-11-25 13:48:42
친정아버지께서는 농부셨다. 해도해도 끝없는 농사일을 자리에 눕고서야 그만두셨다.
"아버지, 저랑 같이 대구에 놀러 가요. 지금껏 기차 구경도 한 번 못하셨잔하요."
"야가 지금 갑자기 무슨 소릴 하노. 단칸 셋방에 너 애들하고 산다고 밥이나 실컷 먹었겠나, 그런데 내가 거길 어디라고 가겠노. 네 말은 고맙지만.." 몇 번을 졸라도 아버지의 대답은 한결 같았다. 어쩌면 나또한 인사치레로 그렇게 말했는지도 모르겠다. 가락국수 한 그릇도 실컷 배불리 못 먹던 시절이었으니까. 그런데 아버지는 정말 외출하고 싶으셨던 모양이다. 몇 번을 마다하시던 아버지께서 그날도 친정에 들렀다 돌아가려는 날 나를 부르셨다. "야야, 니가 정말 나를 대구 구경 시켜줄래?"

어머니도 나도 놀랐다. 안번도 시내구경을 입 밖에 꺼내신 적이 없던 아버지였기에... 요즘이야 시골이라도 전깃불에, 전기밥솥, 심지어 김치냉장고까지 다양하게 갖추어놓고 살며 도시로 오는 것도 마음만 먹으면 하루에도 몇 번씩 드나들 수 있지만 20년 전만 해도 도시에 사는 친척이 없으면 도시에 한번 나오기가 힘들었다. 이튿날 아침, 아버지는 정말로 외출준비를 하셨다. 혼잣말로 '그래도 나 먹을 건 가져가야지.'하시더니 쌀 한 자루를 자루에 담고, 깨끗한 한복 한 벌 꺼내 달라셔서 곱게 차려입으셨다. 그리고는 어디서 그런 힘이 나셨는지 쌀자루를 어깨에 메고는 나를 앞세우는 것이었다. 갑자기 씩씩해진 아버지가 걱정돼 낯을 살피니 신기하게도 병환으로 몹시 상했던 얼굴에 생기가 도셨다. 하지만 온전히 마음을 놓을 수 없었기에 불안한 마음을 애써 숨기며 대구의 우리 집까지 도착했다.

비록 단칸 셋방이었지만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아버지께서 내 집에 오셨다는 것만으로 나는 너무 행복했다. 피곤하실지 모를 아버지를 위해 얼른 자리를 보려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흥분이 가라앉지 않으신 목소리로 만류하셨다. "야야, 괘안타. 사실 난 북북 정류장에서 실컷 더 앉았다 왔으면 좋겠더라. 차가 우째 그래 많노." 공장의 높은 굴뚝부터 미용실, 대형슈퍼까지.. 마냥 신기해하시며 잠을 못 이루시는 아버지와 이야기로 하룻밤을 다 보냈다. 드디어 다음날, 본격적인 대구관광에 나서며 난 제일먼저 달성공원 앞에 있는 안경점으로 아버지를 모시고 갔다. "아버지 이 안경쓰시고 밝은 세상 구경하시면서 오래 오래 사세요." 안경을 껴보며 고맙다는 말을 열 번도 더 하신 아버지, 작은 글씨가 보이는 게 너무 신기하다는 듯 길에 있는 간판을 모두 소리내어 읽으며 달성공원까지 걸으셨다. 동물원이 처음인 아버지는 철장에 바짝 붙은 채 떨어질 줄 모르셨다.

아버지는 내게 지친 기색을 모이지 않으려는 듯 그 많은 계단을 제일 먼저 올라가셨고, 내려올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 많은 힘이 아버지에게 없었을 텐데.. 생각해보니 나는 아버지와 함께 찍은 사진은 단 한 장도 없었다. 보수적이었던 아버지는 사진을 찍으면 영혼을 빼앗긴다고 생각하셨던 것이다. 그런데 마침 이동사진사가 보였다. "아버지, 우리 기념 사진 한 장 찍고 가요. 네?" "야야, 비싼 돈주고 말라꼬 자꾸 찍자 카노. 니 내 사진 안 찍는 거 모르나? 나중에 정 내가 보고싶거든 도민증 사진, 그거 보라. 응." 하시며 아버지는 저만치 도망가셨다. 나도 오기가 생겨 아버지를 뒤쫓기 시작했다. 아픈 노인네가 어찌나빠른지, 달성공원에서 쫓고 쫓기는 추적이 시작되었다. 사람들은 하나 둘 몰려들며 부녀의 이색 추격전을 지켜봤다. 응원까지 하는 구경꾼이 생겼을 때 즈음 아버지는 도망을 포기하셨다.

그렇게 씨름 끝에 찍은 사진 한 장, 또 도망가실까 잔뜩 긴장한 내 얼굴과, 불만을 숨기지 못하고 잔뜩 찡그린 아버지의 얼굴 때문에 웃음을 자아내는 사진이 아버지와 찍은 유일한 사진이 되었다. 그리고 아버지는 대구에 다녀가신 지 꼭 20일 만에 돌아가셨다. 돌아가시기 전에, 정신이 있는 마지막 순간까지 대구여행을 말씀하시면서 막내딸내미 자랑을 하셨다는 아버지, 단 5일간을 모셨을 뿐인 나를 사람들에게 최고의 효녀로 만들어 놓고 가셨다. 아버지의 마지막 여행도 내가 좋아하는 모습을 보고싶으셔서 따라 나서신 것은 아니었을까?

-낮은 울타리 2001년 11월 중에서-

심리학자들에 의하면 사람은 16세까지 자신에 관해 17만 3천개의 부정적인 메시지를 받는다고 한다 이에 반해 긍정적인 메시지는 1만 6천개에 지나지 않는다. 하루
평균 29.6개의 부정적인 메시지에 겨우 2.7개의 긍정적인 메시지를 받는 셈이다. 또 다섯 살까지 '아니'라는 단어를 각 천 번이나 듣게 된다. 우리는 부정에 익숙해져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예가 되는 일이 많이 있다. 예 할 때는 단호하게 예라고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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