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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시간에 슬쩍...
열린교회 (yeolin) 조회수:2530 추천수:16 112.168.96.71
2014-11-25 10:17:24
사랑하는 유목사님
올해는 장마도 시작되기 전부터 불볕이 무척 뜨겁네요.
조금만 기온이 올라가도 더위를 몹시 타는 당신이 한여름 고생할 것을 아니까 벌써부터 염려가 됐어요.그리고 더위 걱정을 하다가 어쩌면 우리 부부는 반대로 생긴 점이 너무 많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운동할 때는 말할 것도 없고 찬밥을 먹으면서도 땀을 주체 못하는 당신과 아무리 더워도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조금만 찬바람이 불어도 문부터 닫아야 하는 내가 한집에서 먹고 자고 같은 차를 타고 다니며 한 교회를 오랫동안 대과없이 섬겼다는 게 참 신기하네요.

그런 당신이 차를 타고가다 에어콘을 풍풍 틀면 나는 비명을 지르며 뒷칸으로 도망가고 예배시간에 가운을 입고 더위와 싸우는 당신과 성도들 더울까봐 냉방 끄자 소리도 못하고 수건으로 어깨를 가리고 찬바람에 떠는 내가 눈을 맞추며 손을 꼭쥐고 사는 부부라는 사실이 참 재미있게 느껴져 혼자 피식 웃었답니다. 그것 뿐인가요. 당신은 초저녁 뉴스를 보다가도 꼬르륵 잠이들어 새벽 두 세시에 깨어나 죽기 살기 엎드려 기도하고 온몸에 은혜가 충만하여 집안 구석구석 돌며 이것저것 손을 보는 한 마디로 부지런하기 짝이 없는 사람이요, 나는 오밤중까지 부스럭거리고 이 책 저 책 뒤지다가 결국 미뤄놓은 설거지며 걸레까지 햐얗게 빨아놓는 야행성 인간이라 그러고는 아침에 못 일어나서 비실거리고 깨어서도 힘이 없어 기어들어 가는 소리로 기도하는 저를 당신이 속으로 무척 한심하게 생각했으리란 것쯤은 둔한 저도 알고 있어요.

그래서 아들이 고 3때나 재수하던 때 새벽에 못 일어나는 것을 깨우느라 법썩을 떠는 우리 모자를 보고 "어이구, 닮을 걸 닮아라"하며 도와주지 않는 당신을 속으로 눈 흘긴 적도 많았답니다. 또 있지요. 식사를 할 때나 걸을 때 당신은 무척 빠르지요. 교인들과 둘러앉아 식사를 하면 당신은 어른 목사님이시니 그 앞에 제일 먼저 음식을 놓기도 하지만 별 말씀없이 얼른 드시고 훗딱 일어나고 싶어하시는 당신과 빨리 먹어야 하느니 차라리 굶는게 낫다며 천천히 먹는 저와 교회에서 집으로 같이 가게 될 때 교회 옆 초등학교 담벼락을 돌아서면 가물가물 없어진 당신과 관절을 앓은 후 더 느려진 걸음으로 씩씩거리며 쫒아 가다가 포기하는 나와 생각할수록 희안하게 만난 것 같지 않으세요?

식당에서 불고기를 먹은 후 종업원이 과일을 예쁘게 담아오면 벌써 차에 가서 기다리고 없는 당신 몫의 후식까지 제가 먹으며 권사님들께 "천천히 드세요, 괜찮아요"하며 안심시킨 적이 어디 한두 번인가요? 엉덩인 가볍고 입은 무거운 당신을 따라 살면서 참 부지런하고 능력있고 신념있는 사나이를 하나님이 내게 주셨다는 생각을 했다면 이런 말 처음 글로 쓰는 제 고백을 믿어주시겠어요? 정말이지 이름난 목사님이 계시던 미아리 큰교회 분규가 났을 때 흥분한 교인들 때문에 원로 목사님까지 손을 놓아 당신이 수습을 맡았을 때 우리 집까지 찾아와 우락부락한 언행으로 그들이 대들었을 때도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남의 교회 성도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훈계하고 나무라며 진정시켜 결국 수습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도록 애쓴 당신과 집앞에 몰려온 낯선 남자들이 무서워 등짝은 내놓은 체 이불속에 머릴 처박고 벌벌 떨던 나는...... 어디 우리 부부뿐일까요,

이 세상 하고많은 남편과 아내들이 이삼십년 자기식대로 살다가 한 가족이 되었는데 다른 것이야 너무나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생긴 것이 다르고 체질이 다르고 물려받은 문화적 배경이 다른 남녀가 사랑하나로 가정을 이루었을 때 인생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이 오히려 이를 아름답게 보시고 조화를 이루도록 섭리하시는 것 아닐까요. 만약 이 세상 모든 남녀가 똑같이 사고하고 행동한다면 그게 어디 로봇세상이지 사람사는 세상이겠어요? 이런 각양의 인간을 만드시고 택한 그들에게 말씀과 사랑을 주시고 축복하셔서 서로의 다양함을 인정하고 지지고 볶으며 칭찬하고 양보하면서 사는 우리를 하나님이 귀하게 보실 거라는 생각을 하니 당신을 만나 복음으로 가정을 이룬 제가 참 복이 많은 것 같아요.

월요일 새벽기도 갔다와서 다음주일 선포할 설교본문 제목 벌써 만들어 넘기는 당신과 원고 청탁 받고도 두어 번 독촉전화에 마감 몇 시간 전 발등에 불이 떨어져야 죽기살기 엎드려 쓰는 내가 한식구 되어 한 사명으로 하나님이 부를 때까지 열심히 달려갈 것을 생각하면 시원찮은 아내를 오늘까지 이끌어 온 당신이 고마울 뿐아니라 하나님의 조화가 정말 오묘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참 사랑하는 목사님! 연필든 김에 부탁하나 할께요 부부는 오래 살면 닮는다는데 우리 공통점이 또 하나 생겼어요. 뭐냐구요? 여름이 힘든거죠, 당신은 더위 때문에, 저는 오나가나 잘돼있는 냉방시설 땜에. 그러니까 여보, 제발 비싼 전기료에다 건강에도 안 좋은 에어컨 좀 줄이고 선풍기 조금 더 틀면 안될까요? 옛날에는 선풍기도 없이 예배를 드렸을 텐데, 우리가 언제부터 냉방없인 못살았느냐고, 기온 뚝 떨어진 밤 시간에도 습관적으로 켜대는 교인들에게 설교시간에 슬쩍 얘기 좀 해 주시지 않겠어요?

설교 시간에 슬쩍...
-주부편지 8월호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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