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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발을 씻기고
열린교회 (yeolin) 조회수:3539 추천수:23 112.168.96.71
2014-11-26 09:51:02
아내의 발을 씻기고
- 전용선 집사 (2남전도회) -

결혼한 지 24년이나 되었지만 그 짧지 않은 세월 동안 남편이요 가장(家長)이라는 이름으로 아내로부터 섬김만을 받아왔고, 아내를 위해 진정 섬기지 못했던 내가 난생 처음으로 아내의 발을 씻겨 주면서 왜 안하던 짓을 하느냐는 아내의 당혹스럽고 의아해 하는 표정과 이내 눈을 감고 내어맡기는 아내의 양같은 모습에서 만감이 교차함을 어찌 다 필설로 표현할 수 있으랴! 아내는 남편인 나와 두 아이 그리고 부모님, 우리 가정을 위해 헌신하며 섬기며 살아왔는데...더구나 귀한 집 딸을 데려다가 고생만 실컷 시키고 나는 그런 아내를 위해 해 준 것이 별로 없고 오히려 많은 어려움과 고통만을 안겨 주었는데...가슴이 저미고 미안함과 고마움이 교차하는 야릇한 회한이 솟구침을 이루 말할 수 없다. 아내의 여린 발을, 긴 세월과 함께 이젠 투박해진 아내의 발을 닦아주면서 그 발로 나의 가족들을 섬겨왔던 아내의 지나온 시간들을 기억하며 아내에게 감사했고 그런 과분한 아내를 배필로 허락하신 주님께 진정으로 감사했다. 분명 예수님은 이 땅에서 섬김을 받으려 하지 않으셨고 철저하게 섬김의 길을 걸으셨다. 창조주 하나님, 만 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되신 그분께서 멸시와 천대를 몸소 받으시고 끝까지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시고 섬겨 주셨는데... 주님을 좇는 삶을 살겠다고 다짐했던 나는 과연 어떤 섬김의 삶을 살아왔던가? 내가 그동안 진정 낮아진 자세로 온유하고 겸손한 심령으로 아내를 사랑하고 섬기고자 했는지, 그리고 주위의 다른 형제, 자매들을 얼마나 섬기고자 했는지, 그들의 고통과 아픔을 함께 하는 위로자의 삶을 살아왔는지 되돌아보며 주님께 다시금 다짐하는 소중한 <세족식>이 되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 천국에서 뵙지요>
- 정동우 집사 (2남전도회) -

주일 아침이면 샛별마을에서 안필분 권사님을, 수내동 주택단지에서 김덕명 할머님을 모시고 간다. 김덕명 할머니는 돌아가신 어머니와 갑장(동갑)이시므로 특별한 생각이 들며, 안권사님은 우찌 그리 체면이 많으신지 우리 장모님 같으시다.
그런데 안필분권사님이 대구로 이사 가신다며 지난 주일에 차에서 내리시면서 "이제 우리 언제 볼꼬?" "내가 나이 많아 차를 타고 분당에 잘 오지도 못할텐데..." 그래서 나는 "천국에서 만날텐데요. 너무 섭섭케 생각지 마세요"


< 확실한 응답>

나는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 때면, 수년 전에 한 친구가 가르쳐 준 다음과 같은 기도를 한다. ‘하나님, 문을 완전히 닫아 버리시든지 아니면 활짝 열어 주세요. 그렇게 해야 하나님의 응답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 수 있을 테니까요.’ 하나님의 응답이 그 어느 때보다도 분명하게 들렸던 것은 그리 오래지 않은 어느 봄날 밤이었다. 학교에서 무척이나 피곤한 하루를 보낸 날이었다. 그 날 밤에 졸업반 학생들의 연극발표가 있어서 나는 학생들에게 참석하겠노라고 약속했다. 나는 시작 시간 직전에야 간신히 체육관에 도착해서 두 번째 줄에 있는 내 자리로 비집고 들어갔다. 드디어 막이 올랐다. 사실 무척 피곤했지만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학생들이 그 어느 때보다 노래도 잘하고 연기도 잘 했던 것이다. 막간 휴식 시간이 되어 조명이 커졌다. 터져 나오는 하품을 삼키면서 시계를 들여다 보았다. ‘지금 나가면 한 시간 뒤에는 집에 가서 잠을 잘 수 있을 텐데' 나는 속으로 기도했다. ’주님 저는 정말로 나가고싶습니다. 제발 문을 활짝 열어 주시든지 아니면 꼭 닫아 주세요. 그래야 제가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있으니까요‘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주차장으로 통하는 옆문으로 다가가 손잡이를 밀었다. 문은 열리지 않았다. 다시 열어 보았지만 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나는 자리로 되돌아와 앉으며 생각했다. ’기도의 응답을 받은 것같군‘ 연극이 끝난지 몇 분도 되지 않아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학생들이 내게로 앞다투어 다가와 모두 한꺼번에 조잘거렸다. “선생님이 기다리고 계실 줄 알았어요” “무대에 올라가자마자 선생님을 봤어요!” “선생님, 우리 엄마가 못 오셨어요. 선생님이 엄마 대신 오실 줄 알았다니까요.” 나는 아이들의 따끔거리는 의상과 땀에 젖은 몸도 아랑곳하지 않고 모두를 따뜻이 감싸 안았다. “내가 있어야 할 곳은 다른 어디도 아닌 바로 이곳이구나!”

-멜러디 바네트/가이드 포스트 2004년 5월 호 중에서-


인생이라고 하는 것은 승차권 하나 손에 쥐고 떠나는
기차 여행 같은 것 아닐까요? 출발하면서 우리는 인생이라는 기차를 한번 승차하면 절대 중도 하차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떠납니다. 시간이라는 것은 탄환과 같아서 앞으로만 갈 뿐 뒤로 되돌아 오는 법이 없듯 인생이라는 기차 또한 마찬가지 입니다.
가다 보면 강아지 풀이 손 흔드는 들길도 있고
금빛 모래 사장으로 눈부신 바다도 만나게 됩니다.
그때 우리의 얼굴엔 기쁨에 겨운 아름다운 미소가 번지겠지요. 하지만 이 기차는 그런 길 뿐 아니라 어둠으로 가득찬 긴 터널을 지나갈 때도 있습니다. 허나 고통과 막막함이 느껴지는 곳을 지난다고 해서 우리의 손에 쥐어진 승차권을 내팽개쳐 버리거나
찢어 버리면 안 됩니다. 지금 빛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목적지에도 채 도착하기 전에 승차권을 찢어버리고 중도 하차 하려는 인생만큼
어리석은 인생은 없습니다. 우리 모두 기다릴 줄 알아야 합니다. 긴긴 터널을 통과하고 나면 보다 아름다운 햇살이 나의 머리 맡에 따스하게 내려 앉는다는 믿음을 늘 가슴에 심어 두고...

-기차 여행같은 인생/전용선 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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