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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가 먹고 싶어요
열린교회 (yeolin) 조회수:3358 추천수:20 112.168.96.71
2014-11-25 16:36:05
딸기가 먹고 싶어요

"엄마, 나 왔어요." 가을이 지날 무렵 오랜만에 친정에 들렀다. "이거, 아빠 오시면 같이 드세요. 하우스 딸기가 나왔기에 사왔어. 아빠 드리라고..." 아빠를 위해 딸기를 씻노라니 나는 가슴속에서 무엇인가 뜨거운 것이 울컥 하고 올라오는 것 같았다. 벌써 20년도 지난 겨울이었을 거다. 그때 나는 감기에 심하게 걸려 편도선이 붓고 열은 사십도 가까이 올랐었다. "...으...으...으..." 열이 오르면서 입안이 타고 속은 울렁거렸다. 머리는 깨질 듯 아팠고, 뭔가 허연 것이 눈앞을 지나가는 것 같았다. 헉헉, 하고 숨을 내쉬어도 뜨거운 김만 나왔다. 몸이 붕하고 뜨는 것 같았다. 열에 허덕이다가 겨우겨우 잠이 들었다. 눈을 떠보니 엄마와 아빠가 걱정스런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괜찮니? 이제 좀 열이 내렸네. 밤새도록 얼마나 걱정했는지..." 엄마의 눈에는 눈물이 글썽글썽했다. "뭐 먹고 싶은 거 없니? 아빠가 시원한 거 금세 사 오마" 아빠의 시원한 손이 내 뜨거운 손을 감쌌다. 순간 나는 왜 그런 말을 한 걸까?" "아빠, 나 딸기가 먹고 싶어." "알았어. 아빠가 금방 사 올게." 아빠의 거칠어진 얼굴을 잠시 보다 나는 다시 잠이 들었다. 꿈속에서는 딸기가떠다니고 있었다. 유독 딸기를 좋아해서 딸기철이 되면 아빠는 나를위해 한 바구니의 딸기를 사 오곤 했다. 아빠가 딸기를 사 오는꿈, 내가 딸기를 먹는 꿈을 꾸다가 스르르 잠에서 깨고 말았다. 잠에서 깨니 몸이 한 결 가벼운 것 같았다. 머리가 점점 맑아지면서 차츰 걱정이 됐다. '지금은 딸기철이 아니잖아. 아빠가 어떻게 딸기를 구해와, 어쩌지, 어쩌지." 여남은 살의 나이에도 그게 걱정이 됐는지 다시 잠이 들지 않았다. 그렇게 뒤척이며 얼마가 지났을까? 문 여는 소리가 들렸다. 아빠가 거친 숨을 쉬고 있었다. 아빠의 손에는 까만 봉지가 들려있었다. "미안하다. 아무 데도 딸기가 없어, 아무리 찾아도..." 아빠는 지친 얼굴로 이야기했다. 아빠의 얼굴을 보니 내가 더 미안했다. "괜찮..." 괜찮다고 말하려는 순간 아빠는 까만 봉지를 내미셨다. "이게 뭐예요?" 봉지를 뒤집어 내용물을 바닥에 쏟은 순간 나는 왈칵 눈물이 나고 말았다. 봉지 안에는 딸기맛 사탕, 딸기 우유, 딸기 아이스크림, 딸기맛 과자 그리고 딸기 그림이 그려진 엽서까지 온갖 딸기가 들어 있었는 게 아닌가?
-박소영/ 낮은 울타리 2002년 9월 호 중에서-


절대 후회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도 모두 그랬겠지만 저는 정말이지 대학에 가고 싶었습니다. 제 꿈인 사학자가 되기 위해서 대학은 필수불가결한 조건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성적도 우수했고, 담임선생님도 적극적으로 저를 추천했습니다. 하지만 엄마는 대학에 가고 싶다는 제 말을 야멸차게 무시할 따름이었습니다. 몇 년을 두고 아버지께서 남겨 주신 병원비 빚더미를 짊어진 채, 깡시장 한 켠에 생선장수로 나앉으신 어머니의 처지로 저를 대학에 보낸다는 것은 무리일 수밖에 없었죠. 더욱이 제 아래로 줄줄이 셋씩이나 딸린 동생들을 공부시킬 일만 해도 당신으로서는 힘겹기만 한 노릇이었습니다.?3학년이 되면 취업반으로 옮겨 줬으면 좋겠구나, 엄마가 동생들 공부시키기도 너무 힘들어.?엄마의 간절한 부탁에 저는 그러겠노라고 약속했으면서도 대학에의 미련을 버리지 못해 차일피일 미루다가 결국 진학반에 남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엄마 몰래 대학 시험 예비고사를 치르기에 이르렀습니다. 남들은 대학 입시라고 자가용에 모셔오건만 전 엄마 모르게 나오느라 새벽에 혼자 집을 나섰는데 왜 이렇게 춥고 시리던지요. ?시험 잘 봐라, 엿 딱 붙여 놓고 엄마가 빌마.?교문 앞에는 수많은 엄마들이 제 자식을 위해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걸 보는데 왜 그리 가슴이 짠~ 했는지 저도 모르게 코를 몇 번 훌쩍였습니다. 그렇게 오전 시험이 끝나고 점심시간이었습니다. 남들은 엄마가 싸 준 형형색색 고운 도시락을 꺼내 놓는데 전 도시락은커녕 싸 가지고 온 빵 한 조각도 없이 운동장에 나와 멍하니 하늘만 바라보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때는 왜 그리 한스러운지, 부유한 집에서 태어나지 못한 게 안타까워서 몇 번이고 훌쩍였습니다. 찬 바람은 씨잉씽 하며 노래를 부르듯 귓가를 스쳐 지나가고 저는 점점 서러워지면서 아버지 생각이 났습니다. 언제나 저를 집안의 살림 밑천이시라며 많은 사람 앞에서 칭찬하던 아버지, 교복이 조금이라도 구겨지면 손수 다림질해 주시며 내

꿈을 당신 꿈보다 더 소중히 생각하시던 아버지, 살아 계셨더라면 이렇게 대학 입시를 보러온 딸을 자랑스러워 하시며 아침에 맛난 도시락을 손수 싸 주셨을 텐데… 그런 생각을 하니 더욱서러워졌습니다. 그런데 난데없이 교내 스피커에서 제 이름이 들리는 것이었습니다. ?박영애 학생, 지금 바로 교무실로 오세요. 박영애 학생.?순간 겁이 났습니다. 오전 시험에 부정행위를 한 것도 아닌데 갑자기 왜 저를 부르는 건지.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교무실에 가니 선생님 한 분이 보따리 하나를 주더군요.?아까, 학생 어머니가 도시락을 두고 가셨어.?생선 냄새가 나는 도시락. 뭉툭하게 둘둘 말아서 듬성듬성 썰어진 김밥. 벌써 눈에 익은 생김새만으로 어머니의 김밥이었습니다. 혼자 운동장에 앉아 김밥을 먹는데 눈물이 더 흘러내렸습니다. 김밥 그릇 바닥에는 어머니의 쪽지가 있었습니다. 초등학생보다 더 못 쓴 글씨로.?시험 잘 봐라. 우리 딸 장하다….?그리고 저는 그 날, 제 인생에 가장 잘한 일을 했습니다. 오후 시험에 들어가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텅빈 운동장을 가로질러 집으로 들어오는데 어머니의 거친 손등이 떠올랐습니다. 어머니는 김밥을 싸면서 얼마나 우셨을까 그런 어머니의 모습을 생각하니 서러운 눈물만 났습니다. 그렇게 저는 대학 입시를 치르지 않고 꿈을 접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한 번도 그 때 일을 후회하지 않습니다. 그게 제가 저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해 사는 인생을 택한 첫 번째 선택이었으니까요. 저는 절대 후회하지 않습니다.
-낮은 울타리 2002년 10월 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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