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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고통스러울 때
열린교회 (yeolin) 조회수:1993 추천수:18 112.168.96.71
2014-11-25 13:36:52
마싸를 처음만났을 때 그녀는 매력적인 스물 여섯의 여성이었다. 그렇지만 자신이 루게릭 병에 걸렸다는 것을 안 날부터 그녀의 인생은 영원히 변화되었다. 루게릭 병은 신경계를 파괴한다. 처음에는 자유 의지로 움직이는 팔과 다리를 공격하고, 그 다음에는 손과 발을 공격한다. 점점 진행하여 마침내 호흡에 영향을 미치면서 죽음으로 몰아 간다. 때로 한 사람의 육체가 빨리 무너지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한다. 마싸가 자신의 병에 대해 내게 처음 말했을 때는 완전히 정상인 같아 보였다. 그렇지만 한 달 후 그녀는 휠체어를 사용하고 있었다.

그녀는 대학 사서직에서 해고당했다. 다음 달 그녀는 오른 팔을 쓸 수 없었다. 곧 다른 팔도 사용할 수 없고 손도 거의 움직일 수 없어서 새로운 전기 휠체어에 앉아야 했다. 재활 병원으로 마싸를 찾아가기 시작했다. 그녀를 휠체어에 태우거나 내 차에 태우고서 잠깐씩 드라이브를 했다. 그녀가 경멸을 느끼는 그 고통에 대해 알게 되었다. 그녀는 옷을 입거나 베개에 머리를 두거나 요강을 비우는 등 모든 움직임에 도움을 필요로 했다. 그녀가 울 때 누군가 그녀의 눈물을 닦아 주고 그녀의 코에 티슈를 받쳐 주어야 했다. 그녀의 몸은 그녀의 어떤 명령에도 순종하지 않았다. 우리는 죽음에 대해, 그리고 기독교 신앙에 대해 간단히 말했다.

그러나 영생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큰 소망, 궁극적인 치유, 부활과 같은 말들은 마싸 같은 사람 앞에서는 공허하고 나약하며 연기처럼 희미하게 들린다는 것을 서슴없이 고백한다. 그녀는 천사의 날개가 아니라 풀썩 쓰러지지 않는 팔을, 침 흘리지 않는 입을, 허탈해지지 않는 폐를 원했다. 고백하건대, 영원이라는 것, 심지어 고통이 없는 영원이라는것이 마싸가 느끼는 고통과는 맞지 않는것 같았다. 마싸는 물론 하나님에 대해 생각했다. 그렇지만 '사랑의 하나님'에 대해 생각하기는 어려웠다. 그녀는 임종의 회심에 대해서 완강히 거부하면서, 두려움이 아니라 단지 사랑에서 하나님께 돌아가고 싶다고 고집했다.

그녀를 그토록 고통받게 내버려둔 하나님을 어떻게 사랑할 수 있겠는가? 10월쯤 루게릭 병이 마싸의 온몸에 급속도로 퍼졌음이 분명해졌다. 숨쉬기조차 힘들었다. 그녀의 머리에 산소 공급이 줄었고 말하는 도중에도 잠을 잤다. 때로는 밤에 질식할 것 같은 공포 속에서 깨어났지만 도움을 청할 수도 없었다. 마싸의 마지막 소원은 적어도 2주 만이라도 병원에서 나와 시카고에 있는 자신의 아파트에서 지내는 것이었다. 그녀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음을 보고 친구들을 한 사람씩 불러 작별 인사를 하고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러나 그녀의 아파트에서 보낼 2주간은 문제였다. 24시간 계속되는 간호를 누가 한단 말인가? 병원에서는 정부의 도움을 받을 수 있지만 집에서는 아니었다. 살아 있기 위해 그녀에게 필요한 집중 간호를 받을 수 없었다. 그래서 몇 명의 그리스도인들이 마싸에게 필요한 정성스런 간호를 무료로 하겠다고 나섰다. 그들은 마싸를 하나의 과제로 받아들이고 그녀의 마지막 소원을 이루는 데 필요한 모든 것들을 자원 봉사하기로 했다. 열여섯 명의 여성들이 그녀를 위해 자신들의 삶을 재조정하였다. 그들은 작업반을 나누어 서로의 자녀들을 교대로 봐주면서 그녀의 집으로 들어갔다.

마싸와 함께 하면서 그녀의 발작과 불평에 귀를 기울이고 목욕시키고 그녀가 일어나 앉도록 도와주었으며 그녀를 사랑하였다. 그들은 그녀와 함께 하면서 그녀의 고통에 의미를 부여하였다. 마싸에게 그들은 하나님의 몸이 되었다. 그 여성들은 또한 마싸에게 그리스도인이 가지고 있는 희망에 대해서도 설명해 주었다. 그녀에게 하나님은 무자비하고 심지어 잔인하게 느껴졌음에도 불구하고, 마침내 마싸는 하나님의 사랑이 하나님의 몸 곧 자신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서 나타나는 것을 보면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는 하나님께로 나아왔다. 그리고 자신을 위해 돌아가신 그분을 믿는 믿음에 자신을 드렸다. 그녀는 두려움 가운데 하나님께 나아오지 않았다.

그녀는 드디어 그분의 사랑을 찾았다. 마침내, 자신을 돕는 그리스도인 여성들의 얼굴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읽을 수 있었다. 에반스턴에서 드린 아주 감동적인 예배에서 그녀는 몸이극도로 쇠약한 가운데 간증을 했고 세례를 받았다. 추수 감사절 전날 마싸는 죽었다. 폭삭 내려앉고 쭈그러지고 허약해질 대로 허약해진 그녀의 몸은 지난날 아름다운 모습에 비하면 형편이 없었다. 마침내 몸이 더이상 기능을 하지 못했을 때 마싸는 그 몸을 떠났다. 오늘 마싸는 온전하고 승리에 가득 찬 새로운 몸 안에 살고 있다.

예수님이 고통과 죄와 고난과 죽음을 이기셨기 때문에 마싸는 살아 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가 실제적으로 그녀에게 승리를 보여 주었기에 마싸는 그 승리를 찾았다. 그녀는 고통을 통해, 진실로 자신이 누구인지 알았다. 주위에 있던 그리스도인들의 사랑과 자비 속에서 그녀는 바로 하나님 그분의 사랑을 보았고 받아들였다.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그녀의 의심은 점차적으로 사라졌다. 사도 바울은 틀림없이 이런 사실을 마음에 두고 이 구절을 썼을 것이다.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같이 우리의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 도다"(고린도후서 1: 4-5) 삶이 고통스러울 때 제기하는 질문들에 대한 최선의 대답은 그리스도의 몸, 곧 교회에서 발견된다. 고통받는 사람들을 돌보면서 우리는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위로를 흘려 보낸다. 이런 일을 하면서 우리는 세상으로 하여금 하나님이 진짜 누구이신지 알게 하는 것이다.

- 필립 얀시의 <삶이 고통스러울 때>(두란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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