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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가 시작되는 곳에서
열린교회 (yeolin) 조회수:2211 추천수:16 112.168.96.71
2014-11-25 13:30:01
그 날 아침 나는 텍사코 정유회사 제복을 입지 않았었다. 스물세 살인 내 딸 줄리를 만나 점심을 먹기로 했었기에. 전 날 딸아이는 퇴근하는 길에 내 자동차 정비소에 잠시 들러 두 시간이나 머물더니 딸애는 두 팔로 나를 부둥켜 안았다. 줄리는 사회복지 사무실에서 통역 일을 하고 있었고 보통 8시 정각에 출근했다. 그 직장은 줄리가 대학을 졸업하고 얻게 된 첫 직장이었다. 딸아이는 항상 내게 전화를 걸어 점심식사로 무얼 먹을지 알아보고는 아테네 식당에 전화로 주문을 해 두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식당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점심을 먹을 수 있었다. 나는 주일날이면 교회에서 듣는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씀이나 다른 모든 설교들이 다 옳다고 믿는 정도였다. 그러나 줄리는 언제나 매일 매일 자신의 믿음을 실천하며 살았다. 짬이 날 때마다 생활이 딱한 사람들을 도와 주었고, 주일학교 교사도 했으며, 인권 단체에서 봉사활동도 했다. 그 날도 점심시간이 다되어 딸 아이의 전화를 기다리는데 우르릉 울리던 소리가 나 일어서서 부엌 유리창 밖을 바라보았다.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나는 전화기를 움켜 잡았다. “줄리냐?” 내 동생 프랭크에게서 온 전화였다.“형, 지금 텔레비전 켜져 있어요? 라디오 방송에서 그러는데 시내에서 폭발 사고가 있었대요.”딸 아이가 근무하는 건물 바로 앞이었다. 나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숨을 쉴 수도 없었다. 그 순간 나의 세계는 멈춰 버렸다. 어쨌거나 나는 전화기 옆을 떠날 수가 없었다. 줄리가 곧 전화를 할 것이다. 그날 하루 종일, 밤새, 또 그 다음 날 낮과 밤 내내, 나는 전화기 옆에 앉아 있었다. 반면에 친척들과 친구들은 흩어져 모든 병원을 찾아 다녔다. 전화벨이 두 번 울리더니 줄리의 이름이 생존자 명단 중에 있다는 소식이 왔다! 다시 전화벨이 두 번 울리더니 정정된 소식을 알려 주었다.

그 명단은 생존자들의 명단이 아니라 단지 그 건물에서 근무하던 사람들의 명단이라는 것이었다. 사고가 난 지 이틀째인 금요일 아침, 나는 밤잠도 안 자고 전화기 지키는 일을 포기하고 시내로 차를 몰았다. 줄리를 비롯해서 167명의 무수한 생명은 시신이 되어 있었다. 나는 범인들에 대한 증오심으로 불타 있었다. 그런 짐승 같은 놈들을 어찌 단 하루라도 살아있도록 해야 한단 말인가? 폭발 사고 이후 네 달이 되어선가? TV의 최근 수사 상황 보도를 지켜보고 있었다. 화면에 땅딸막한 백발의 남자가 화단에 몸을 숙이고 있는 모습이 잡혔을 때 나는 화면이 지체되서 화가 났다.“오늘 버팔로의 카메라 맨들이 티모시 맥베이의 아버지 모습을 요행히 포착했습니다…”범인의 아버지였다.

그를 보는 순간에 나는 그에게서 깊은 고통의 표정을 보았다. 나의 고통과 똑같은 고통을. ‘오! 하나님, 이 사람도 저처럼 자식을 잃었군요.’ 그것은 정말 순식간에 번쩍 지나가는 깨달음이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맥베이가 처형 당해도 내 고통 끝나지 않으리라는 갑작스럽고도 분명한 깨달음! 분노와 고뇌와 증오심 때문에 나는 줄리가 베풀던 사랑의 방법과도, 줄리 자신으로부터도 분리되어 멀리 벗어나 있었다. 그러나 그의 아버지를 보는 순간 나는 매일 매일 악행이 저질러지는 이 세상에서 그 악순환을 막기 위해 한 가지 작은 일, 즉 개인으로서 내릴 수 있는 한 가지 결정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맥베이의 처형을 공개적으로 부추기는 일을 그만뒀다. 나는 옛날 텔레비전에서 보았던 범인의 아버지를
만났다.

그의 집엔 가족 사진이 있었다. 아들의 사진이 있었다.“팀의 고등학교 졸업 사진이지요.” 그는 간단히 말했다. “어이구” 내가 감탄을 했다. “참 잘생긴 아이군요!” 미처 입을 막을 틈도 없이 그 말이 튀어나왔다. 빌도 그의 눈에 가득 찬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다. 빌은 제너럴 모터스 공장에서 야간 교대조로 근무하고 있다고 했다. 나와 동갑인 그는 36년째 그곳에서 근무하는 중이었다. 우리는 둘다 육체노동자로서, 아이들을 제대로 키우려고 애써 왔다. 나는 거의 두 시간을 그 집에 머물렀다. 내가 떠나려고 일어서자, 제니퍼가 나를 껴안았다. 줄리가 그랬던 것처럼. 우리는 서로를 꼭 끌어안고 같이 소리를 내어 울었다.

나는 제니퍼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그러나 나는 평생 교회를 다녔지만, 그 순간만큼 하나님이 그렇게 가깝게 느껴진 적은 없었다. 나는 제니퍼와 그의 아버지에게 말했다. “이제 우리는 남은 인생 동안 같은 배를 타게 되었군요. 과거를 바꿀 수는 없겠지만, 미래에 대해선 선택을할 수 있을 겁니다.” 빌과 나 우리 두 늙은이는 지금도 전화로 연락을 주고 받으며, 서로 최선을 다하고 있다.

치유가 시작되는 곳에서-가이드포스트 99년 6월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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