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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심스런 17년
열린교회 (yeolin) 조회수:1893 추천수:18 112.168.96.71
2014-11-25 10:07:44
약 한달 전, 남편의 기일이었다. 아이들과 예배를 드리고 늘 그랬듯이 아빠에 대해서 기억나는 것이 있으면 얘기해 보라고 했다. 큰아이는 아빠가 업어 주었던 일, 옛날 이야기 해주었던 일, 작은아이는 색종이로 비행기를 접어서 날리며 함께 놀았던 일이 생각난다고 했다. 남편은 아이들에게 잘 놀아주고 자상했던 아빠로 남아있다.밖을 내다보면서 갑자기 큰 아이에게 "만약에 아빠가 계셨더라면 지금 우리가 어떻게 살고 있을까?" 물었다. 한참을 생각하는 듯 하였다. 잠시 후 '경제적으로는 많이 풍족할지 모르지만 별로 달라질 게 없을 것 같다'고 하였다. 얘기를 하면서 그 동안 흐릿했던 기억들이 누렇게 색 바랜 사진처럼 하나 둘 생각났다.

벌써 17년이 되었다. 결혼생활 6년 만에 남편이 하늘나라에 간 것은 추운 겨울이었다. 경기도 안산, 양지 바른 산에 남편을 묻고 집에 와서 밤새도록 집안 식구들과 찬송가를 뒤적이며 불렀던 기억이 남의 일처럼 생각난다. 그 때 아이들이 둘. 6살, 4살이었다. 아이들이 아빠에 대해서 물으면 어떻게 애기할까? 혼자 며칠을 고민했다. 그러다가 사실대로 얘기하는 것이 좋겠다는 결론을 얻고 아이들을 불러 앞에 앉혔다.

"아빠가 어디 가신 줄 아니?" 물었다. 아이들이 나를 빤히 쳐다 보았다. "아빠는 하늘나라에 가셨다"라고 하면서 아이들에게 토를 달았다. "아빠는 굉장히 훌륭한 분이라서 하나님이 꼭 필요하시기 때문에 일찍 하늘나라에 가셨다"라고 하면서 아이들에게 토를 달았다. "아빠는 굉장히 훌륭한 분이라서 하나님이 꼭 필요하시기 때문에 일찍 하늘나라에 갔단다. 우리가 산에 가면 굵고 좋은 나무를 먼저 잘라서 쓰듯이 말이야. 그러나 너희들도 예수님 잘 믿으면 이담에 한참 후에 하늘나라 가서 하나님도 만나고 아빠도 만날 수 있단다."하고 얘기했더니 제법 알아듣는 듯 하였다.

해가 바뀌어서 큰 아이가 유치원을 졸업하고 초등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 양쪽에 아이들 손을 잡고 학교 가는 길을 가르쳐 주면서 당부했다. "너희들은 꼭 건널목이나 육교를 건너서 학교에 가야 한다. 엄마도 무단 횡단은 절대로 안한단다." 정말이었다. 그때 내 마음 속에는 이 땅에 내가 없으면 이 아이들은 누가 돌보나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내 몸도 조심하며 살았다. 그즈음 나는 사내아이들은 집안에서 아빠를 보면서 가장으로서의 모습을 배울텐데 하는 아쉬움으로 가슴앓이를 하였다.

그때 동생 내외가 함께 살자고 하여서 집을 정리하고 동생 집에서 만 4년을 함께 살았다. 제부는 너그럽고 이해심이 많은 아주 좋은 사람이었다. 그 때의 바램은 우리 아이들이 제부의 모습을 보면서 남자답게 자라기를 원했다.지금 생각해도 나는, 우리 형제 중에 누가 혼자 되었어도 함께 살지는 못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동생 부부에게 늘 감사한 마음이 있다. 몇 가지 일들이 쭉 지나간다. 학교서 반장으로 선출되었던 일, 친구와 싸워서 얼굴이 엉망이 되었던 일, 그 중내 마음에 조그만 뿌듯함이 있다.

작은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 때로 기억된다. 몸이 불편하여서 며칠을 누워 있었다. 아마 얼굴이 많이 부어있었던 것 같다. 밖에 나갔다 오더니 주머니에서 약봉지 하나를 주며 "엄마 이것 먹으면 안 아프대"한다. 신장 약인 '네프리스'였다.
할머니에게 받은 용돈을 가지고TV광고를 보고 약을 사온 것이다. 아이를 와락 끌어안고 많이 울었던 생각이 난다. 아이들은 제법 잘 자라 주었다. 사춘기가 되었을 때 남자아이들은 사춘기를 심하게 한다는데 혼자 고민을 하였다. 목사님께 부탁할까, 비뇨기과 의사에게 부탁할까. 그러나 아이들은 나의 고민과 상관없이 사춘기도 잘 지내고 별 어려움 없이 중학교, 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지금도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있는 것은 비가와도 학교에 우산을 갖다 주지 않은 일이다. 준비물을 빠뜨리고 학교에 가도 마찬가지였다. 또 그 흔한 학원, 과외도 변변히 시키지 못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내 키를 훌쩍 넘어 물론 아빠 키도 훌쩍 넘게 많이 자랐다. 키만 자란 것이 아니다. 마음도 풍요롭게 많이 자랐다. 제법 엄마를 보호하려고 한다. 세 식구가 모이면 집이 꽉 찬다. 벌써 대학교 2학년, 3학년이 된다.

내게는 특별한 빽이 있다. 고아와 과부를 특별히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내게도 이 약속을 하나하나 지켜가고 계신다. 머리털까지도 세신 바 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형편과 처지를 너무 잘 아시기 때문에 하나님께 맡기고 기도하면서 키운다. 아이들에게도 "어떤 어려운 일이 있어도 좌절하지 말고 너희 아빠는 하나님이시니 '아빠'하고 크게 불러라. 하나님은 너희들을 특별히 사랑하신 단다"하면서. 지금까지 건강하고 씩씩하게 믿음으로 잘 자라 가는 두 아들을 보면서 참으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

아빠는 비록 하늘나라에 갔지만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 아이들의 아빠가 되셔서 지금까지도 그랬듯이 앞으로도 먹이시고 입히시고 키우셔서 아름다운 주님의 자녀로 세우실 것을 기대한다. 두 아이와 함께 목청껏 아빠를 불러본다.


조심스런 17년/엄성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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