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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래... 예쁘구나
열린교회 (yeolin) 조회수:1682 추천수:18 112.168.96.71
2014-11-25 10:30:52
"어머니 이따가 오후에 찾아 뵐 게요." 이제 막 우리 집 식구가 된 며느리의 전화였다. 주말에라도 한 번씩 들렀다 가려는 마음이 얼마나 기특한지. 아들내외가 온다니까 군에 간 막내와 미국으로 이민간 딸이 눈에 밟히고, 문득 창 밖으로 뚝뚝 떨어지는 노란 은행잎을 보노라니 코흘리개 세 아이들을 데리고 공원 앞에서 사진 찍던 때가 떠오른다. '앨범이나 꺼내 볼까?' 이제는 가고 없는 애들 아버지가 썬그라스에 팔짱을 낀 채 폼 재고 있는 모습. 고추를 내놓고 발가락에 힘을 주고 서 있는 아들녀석, 뒤를 더 넘기자 김밥을 한 입 가득 넣고 V자를 그리며 즐거워하는 큰애. 그리고 졸업식 사진들.

텅빈 방안이었지만 사진을 보노라니 다섯 식구가 다 모인 기분이 들었다. 그 때 초인종 소리가 들렸다. "어머니, 저희예요." "오냐, 나간다." 아들 내외였다. 며느리는 쪼르르 달려와 내가 보던 앨범을 잡더니 큰애의 어릴 적 사진을 가리키며 깔깔대고 웃느라 정신이 없었다. 무슨 장면을 보고 그렇게 웃나 하고 보니 발가봇고 찍은 돌 때의 사진이었다. "너무 귀엽게 생겼어요." 하더니 앨범 비닐 을 벗기고 그 사진을 꺼내는 것 아닌가.

"뭐 하려고?" "가져 가려고요. 저희 앨범에다 끼워 넣어야지요." 가슴이 쿵~ 했다. 아들을 데려 가더니 이젠 사진까지... 하지만 어쩌랴. "얘야, 묵은 사진은 뭐 하려고? 이런 걸 칼라 사진 옆에 끼워 놓으면 작품 버린다.!" 며느리는 내 의중은 생각지도 않고, "괜찮아요, 어머님." 하면서 하나도 거리낌없이 챙기는 거엿다. 사진을 챙겨 넣는 며느리 옆에서 "이것도 집어 넣어!"하는 아들 녀석이 더 서운했다. 아들 내외가 돌아 가고 군데 군데 빼 간 사진 자리 위에 큰애의 모습을 그려 보았다. 품안의 자식이라더니... 세상 부모가 다 겪는 일인데도 나에게는 낯설게만 여겨졌다.

이럴 때 애들 아버지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그렇게 며칠을 허전해 하고 있는데 다시 며느리가 찾아 왔다. "어쩐 일이냐?" 의도한건 아니였지만 며느리를 향한 첫 마디부터 차갑게 튀어 나갔다. "요 앞에 회사 일 때문에 왔다가 전해 드릴 게 있어 들렸어요." "그래?" 그러면서 며느리가 커다란 쇼핑백에서 꺼낸 건 두 내외의 어릴 적 모습들이 멋지게 편집된 액자였다. "저희 앨범에다만 꽂아 놓으려고 가져 갔는데 이렇게 모아 놓고 보니까 멋있잖아요. 그래서 사진을 복사한 뒤 우리 꺼, 어머니, 저희 친정집 꺼 해서 세 개를 만들었어요.

제 어릴 적 모습 처음 보시죠?" 찬찬히 뜯어보니 맨 아래 조그맣게 '이렇게 잘 키워 주셔서 고맙습니다. 저희 열심히 살아가겠습니다.' 라는 글씨. "그래... 예쁘구나!" 방금 전까지 자식 키워봤자 다 소용 없다고 한탄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예쁘고 똑똑한 딸아이가 하나 더 생긴 걸 몰랐으니... 무심한 척 며느리가 주는 액자를 받아 드는데 웬 눈물이 그리도 나오는지...

그 래... 예쁘구나/임영자
낮은 울타리 10월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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