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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닦아 주는 구두를 신고
열린교회 (yeolin) 조회수:2438 추천수:16 112.168.96.71
2014-11-25 13:21:32
지방근무로 인해 주말부부가 된지 어언 1년 반이 되었다. 여러 가지 사정상 매주 상경하지는 못하지만, 가족이 있는 서울로 올라온 주간에는 월요일 아침 비행기로 출근을 하곤 한다. 새벽 여섯 시 조금 지나 집을 나서는데, 내가 간단한 아침식사를 하는 동안 평소 이른 바 올빼미형이라 새벽잠이 많은 아내가 눈 비비며 일어나 내 구두를 닦아놓을 때가 있다.
한 두 주간을 혼자 지방에서 보내야 할 남편에 대한 작은 애정과 격려의 표시일 터이지만, 택시를 타고 겨울철 아침 여섯 시의, 아직은 날이 채 밝지 않은 올림픽 도로를 달리면서, 아내가 닦아준 구두와 언젠가 아드님이신 박동규 교수로부터 들은 적이 있는 시인 박목월 선생의 얘기를 생각하곤 한다.

자녀들이 어릴 적 얘기인데, 생활이 넉넉하지 못하셨던 목월 선생은 설날에 세배를 하는 자녀들에게 양말 한 켤레씩을 선물로 주시고는, 「야 임마, 올해도 이 양말 신고 좋은 데 다니거라」는 덕담을 얹어주셨다고 한다. 비록 값싼 양말 한 켤레지만 자식들을 향한 아버지의 애정이 진하게 배어 있음을 느끼게 한다. 대학 입시생을 2년간 연속으로 거두어야 하는 형편상, 내가 지방점포로 단신 부임하게 되었을 때, 아내가 내심 가장 염려한 부분은 아마도 가족과 혼자 떨어져 지내는 남자들이 흔히 실족하기 쉬운 모종의 유혹에 관한 것일 터이었다.

성적인 문제는 신앙이 좋다는 사람조차 예외이기 어려울 정도로 강한 유혹일 수 있는데다, 여성에게 강하지 못한 나의 약점을 평소 자주 지적하곤 하던 아내의 처지에서 보면, 그럴 만도 한 사안일 것이다. 아무튼 크리스천으로서 지극히 당연한 일이기도 하지만, 혼자서 두 아이들의 입시 뒷바라지를 몸으로 때워내야 할 아내를 위해서도, 특히 이 부분에서 쓸 데 없는 걱정거리를 제공하지 말아야겠다는 것이 처음부터 나의 다짐이었다.

물론 순간순간 도와주시는 성령님의 은혜가 아니면 내가 바로 설 수 없는 것임을 잘 알지만, 월요일 아침에 비록 먼지를 털어내는 정도의 가벼운 것이기는 하더라도, 아내가 닦아준 구두를 신고 나설 때는 박목월 선생의 말씀처럼 「아내가 닦아준 이 구두 신고 아내가 걱정할 만한 곳으로 가서야 되겠는가. 이 구두 신고 좋은 곳,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곳으로 다녀야지.」하고 새삼 마음속으로 다짐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저것 불편하고 힘든 것이 많지만, 혼자 떨어져 지내는 지방근무를 통해 믿음 안에서 사는 우리의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뜻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임과, 아내와 가족에 대한 여러 가지를 다시금 깨달아가고 있다.

특별히 최근 기독 실업인회 성경공부 모임의 <에베소서> 5장 강해를 통해, 「아내를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 남편 최대의 의무임을 잊지 말라」고 강조하시던 강사 목사님의 말씀에 비추어 생각해보면, 지난 20년간의 결혼생활을 통해 아내에게 별로 해준 것 없음이 새삼 자책이 되곤 한다.나이 차가 제법 나는 남편으로서 내가 무엇이든지 받아주고 감싸주어 푸근한 감정을 주기보다는, 날카로운 성격으로 인해 늘 마음 한 구석 불안하게 한 것이라든지, 지나치게 자기 중심적이어서 아내의 입장을 배려하지 아니한 것 등등, 되짚어
보이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아내로부터, 예수님을 「제대로」 믿고 나서 그래도 내가 많이 바뀌었다는 얘기를 들을 때마다,「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라」는 말씀과,「주 안에서 지어져 가는 건축 중 인 건물」이라는 것을 생각하며, 나처럼 부족하고 완악한 자도 거두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할 따름이다. 예수님 안에서의 삶만이 부부간의 근원적인 불안을 치유할 수 있는 유일한 방편임을 재삼 확인하는 한편으로, 부부가 서로 상대방을 위한 기도를 게을리 하지 아니하면서 작은 배려와 희생을 기꺼이 담당할 때, 둘의 관계가 더욱 견고해져 가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항상 큰 믿음으로 때를 따라 격려해주는 아내에게 감사하며, 나는 오늘도 아내가 닦아준 구두를 신고 「좋은 곳」을 다니기 위해 일터의 현장을 부지런히 뛰고 있다.

아내가 닦아 주는 구두를 신고.../권택명(시인.
주부편지 2001년 1월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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