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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길
열린교회 (yeolin) 조회수:1951 추천수:16 112.168.96.71
2014-11-25 10:59:41
우리 아버지는 자갈이 대부분인 44에이커에 달하는 작은 농장을 갖고 있었다. 그 농장 덕분에 먹는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었고 나를 포함한 6남 2녀의 우리 형제는 별다른 어려움 없이 자랄 수 있었다. 농장 일은 우리 모두에게 열심히 일하는 것과 결단력을 갖는 것이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가를 가르쳐 주었다. 부모님은 그것을 풍작만큼이나 중요하게 여겼다. 어머니는 초등학교 6학년까지 다녔지만 아버지는 1학년도 채 마치지 못했다. 아버지는 교회에서 성경 구절을 들은 다음 어머니와 그 성경구절을 반복해서 공부하며 글을 깨쳤다. 결국 아버지는 우리들이 다니던 주일 학교의 교장 선생님이 되었다.

당시 인종 차별 정책을 쓰던 남부에서는 물론 흑인에게 거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부모님은 두 분 다 교회 일에 헌신했고 교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되었다. 자식들에게 주고자 했던 부모님의 교훈은 분명했다. 그것은 바로 부당하게 기회의 문이 닫힐지라도 굽히지 말고 열심히 일하면서 최선을 다하다 보면 언젠가 결실을 맺게 될 거라는 것이었다. 인종 차별은물론 나쁜 것이었지만, 나는 부모님이 그것을핑계삼는 것은 결코 들어본 적이 없다. 사실상 내가 살던 곳에 흑인 의사라곤 잭슨 박사 한 분밖에 없었다.

그러나 잭슨 박사는 내게 커다란 영향을 미쳤고 덕분에 나는 요즘도 매일 의사로서의 본분을 새롭게 느끼며 일에 임하곤 한다. 내가 애니스턴을 떠나 워싱턴으로 입성하게 된 에피소드를 하나 들라면 아마도 1943년의 어느 날 밤에 일어난 일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때 나는 두 살이었고 도무지 세 돌은 맞지 못할 것 같았다. 어머니가 내게 들려 주던 그 이야기는 너무 자주 듣다 보니 그 장면이 마치 어제 일처럼 눈에 선하다. 나는 우리 농가의 구석방에서 백일해에서 오는 고열로 몸부림치고 있었다. 항생제나 백신이 없던 그 당시에 백일해는 특히 가난한집 아이들이 걸리기만 하면 으레 목숨을 잃는 병이었다.

나는 방 밖에 모인 사람들의 기도 소리와 찬송가 부르는 소리를 들었던 것을 분명히 기억한다. 그 기도와 찬송은 산들바람을 타고 들어와 내 눈썹에 맺힌 땀을 식혀 주는 것 같았다. 분명 우리 집 현관과 뜰에는 십여 명이나 되는 이웃과 교회 사람들이 모여 있었을 것이다. 모두가 그날 밤 내가 목숨을 잃을 거라고 생각했다. 잭슨 박사는 사람들 틈을 뚫고 천천히 내게 다가왔다. 그의 검은색 왕진 가방 귀퉁이의 낡아빠진 가죽과 나를 부드럽게 진찰하던 손길, 그리고 청진기의 서늘한 감촉, 그의 온화하지만 심각하기만 한 표정 등이 그 뒤에 서 있던 부모님의 모습과 함께 떠오른다.

“폐렴으로 진행됐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는 중얼거리면서 부모님에게 밖으로 따라 나오라고 손짓했다. 거기서 그 의사는 부모님에게 “아드님은 별로 가망이 없습니다. 이번 주를 넘기기가 힘들 겁니다.”라고 말했다. 아버지가 붙잡아 끌어당기지 않았더라면 어머니는 바닥으로 쓰러졌을 것이다. “새처 부인, 제가 매일 들르겠습니다.” 잭슨 박사는 약속했다. “아드님을 이번 주만 넘기게 한다면 가망이 있을 것 같습니다.”그 훌륭한 의사는 실제로 그가 말한 대로 했다.

매일 그의 낡은 자동차가 붉은 먼지 구름을 일으키며 언덕을 급히 올라와 우리 농장에 당도했다. 잭슨 박사가 얼마나 많은 희생을 감수해야 했을지 나는 겨우 상상만 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그는 매일 와서 나를 돌봤고 한 주가 지나자 나는 비로소 고비를 넘기고 회복되기 시작했다. 내가 병상에 있는 동안 어머니는 내내 기도를 멈추지 않았으며 이후엔 오랫 동안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잭슨 박사는 우리 집안에선 일종의 영웅이었다. 그분이 어떻게 나를 죽음 직전에서 구해냈는지 아버지가 하도 자주 얘기하다 보니 그 이야기는 우리 집안의 전설이 되었다.

나는 자라면서 그 이야기에서 커다란 감명을 받았다. 그러나 내가 잭슨 박사를 다시 만나 뵙기도 전에 그분이 뇌졸중으로 돌아가셨다는 소식이 들려 왔다. 그날은 애니스턴 일대가 슬픔에 잠긴 날이었다. 내가 의사가 되고 싶다는 마음을 먹게 된 것도 그 즈음이었다. 나는 의과대학을 졸업하였고 지금은 미국의 공중 위생국 장관이 되었다. 난 집무실 창 밖을 내다보면서 어머니가 말해주곤 하던 잠언 구절을 떠올린다.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의뢰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나의 길이 시작된 곳을 다시 돌이켜 본다. 더불어 낡은 가죽 진료 가방을 들고 우리 집 앞뜰에 모인 사람들 틈을 뚫고 천천히 다가오던 그분, 먼지 구름을 헤치며 우리 집 앞을 올라오던 격무에 시달리던 시골 의사를 나는 떠올리게 된다. 난 앞으로도 하나님께서 나의 길을 지도해 주시리라는 것을 확실히 안다.

나의 길/ by David Satcher, U.S. Surgeon General
-가이드 포스트 2000년 8월 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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