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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닮아서
열린교회 (yeolin) 조회수:1769 추천수:18 112.168.96.71
2014-11-25 10:34:21
지난 주일 예배 후 점심 식사엔 음식이 다른 때보다 많이 남았었다. 아직은 적은 인원인 청소년 성도 중 식사를 하지 않고 간 사람, 조금만 먹고 간 사람이 누구인지를 떠 올리면서 울고싶을 정도로 섭섭해진다. 다들 사정이 있었으리라고 스스로를 달래며 웃음이 솟아 나옴을 참기 어렵다. 지금은 칠순을 바라보는 친정 어머니가 생각나서이다. 엄마는 지금까지도 손님접대의 척도가 음식 대접이고 내 집에 온 손님이라면 누구든지 당신 표현대로라면 푸짐하게 배가 벌떡 나오도록 반드시 먹여서 보내야만 한다는 신조를 굳세게 고수하고 계시기 때문이고 그런 우리 엄마를 내가 꼭 닮아 간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내 어린 시절 기억의 앞마당엔 늘 한약 내음과 헝클어진 머리카락에 창백한 얼굴로 누워 계시던 엄마의 모습으로만 가득 차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게다. 아버진 매일 엄마 약을 달여 짜대시느라 손이 익어서 굳은살이 되면 면도칼로 자주 도려내시곤 하였으며 언니와 난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부엌일 등 집안 일을 해야 했다. 엄마가 큰 병원에 입원해 계시던 어느 겨울날 저녁, 아마도 내가 여덟 살쯤이었나 보다. 고무 장갑도 없던 그 시절 바깥이나 다름없는 재래식 부엌에서 언니는 그릇을, 나는 솥을 씻고 있었는데 손이 시리다못해 빨갛게 얼어 터져 버릴 지경이었다.

갑자기 언니가 "엄마, 엄마아..." 하면서 서럽게 울어대기 시작했다. 금새 이중창이 되어 앙앙 훌쩍훌쩍 엄마를 부르며 청승에다 설움덩어리가 되어 서로를 부둥켜안고 있었는데 마침 동네 아주머니께서 방문하셨다가 놀라시며 우리를 다독거려 놓고 어린 것들이 정말 고생이 심하다고 혀를 차시며 설거지를 말끔히 해 주시고 가신 일은 잿빛 자화상이 되어 기억 속에 선명하다. 돌아보건대 재롱을 부려야 할 나이부터 난 항상 엄마 사랑에 배고픈 아이였었고 오랜 병으로 인해 신경질적이던 엄마는 내 잠재의식 속에 원망스러운 존재로 자리잡아가고 있었나보다.

사랑은 받아도 받아도 갈증이 여전하고 내 안으로만 침잠 하는 외로운 아이는 성장할수록 엄마를 관찰하고 비판하는 눈을 키우며 결단코 엄마를 닮지 않을 것이며 더더욱 엄마 같은 인생은 살지 않겠노라고 주먹을 불끈 쥐곤 했었다. 언니는 여전히 학교에 다녀오면 빨래며 가사 일을 해야했으며 난 매일 동생을 업어 주어야 했다. 체구가 작은 언니를 보면서 그것마저도 내 생각엔 어린 아이 때부터 너무 일을 많이 시켜서 그런 것이라고 믿어 왔고 심지어는 산후 후유증으로 그렇게도 골골하시면서 동생들을 또 낳아 고생하시는 엄마가 정말이지 못마땅했었다. 게다가 히스테리와 잦은 잔소리는 혐오스러울 지경이었다.

스무 살이 넘자 회의적이 되어버린 내 신앙과 엄마의 신앙을 조소하며 염세와 허무주의에 빠져 스스로 고립된 영혼을 안고 자학으로 비틀거리던 시절도 있었다. 사실 아버지를 닮은 점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잦은 치통과 날카로운 이 성깔 등 나쁜 것은 죄다 엄마 탓이요, 엄마를 닮은 듯해서 부끄럽고 못 견디게 싫었다. 그런데, 허물투성이 못난 내가 몇 해 전부터 작은 힘이나마 남편의 청소년 사역을 돕기 시작하며 자의든 타의든 버림받고 상처 입은 어린 영혼들을 가슴으로 안으려다 보니 비로소 내 무의식 속에 자리잡은 어린아이 같은 역기능을 끌어내게 되었던 것이다.

그 누구보다 먼저 치유 받아야 할 사람은 바로 나 자신이 아니던가? 영혼으로, 뼈로 눈물 흘려 본적 있는가? 주여! 나를 고쳐 달라고 매달리며 짐승처 럼 울부짖어야만 했던 순간들... 철이 들고 결혼을 하면서 같은 여성으로서 연민하며 엄마의 일생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어도, 또한 나를 닮아오는 내 딸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늙고 기죽은 엄마에게 괴퍅을 떨어 슬프게 해드린 일들이 생각나 더욱 통회해야만 했던 것이다. 그리고 진정으로 과거 속의 나를 용서하며 엄마의 모든 것을 감싸 안을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은 주님 안에서만 가능한 치유요 회복이었다.

요즘도 자식들을 향한 염려와 그리움을 애끓는 기도로 달래시는 우리 엄마, 이 달이 가기 전에 찾아 뵈야겠다. 늘 자녀들의 약한 부분이 모두 다 당신 탓이라며 기도하신다는 것을 알게 되고 부터야 철이 들어 이젠 같이 늙어 가는 징그러운(?) 이 딸년에게 이번에도 뭐 한가지라도 싸 주시려고 동동거리시겠지. 내 어머니의 순백의 어린아이 같은 무조건적인 신앙을 닮기 위해 애쓰는 지금 난 행복하다. 사람들이 좋다. 이웃을 배부르게 하고 나눠주는 삶을 살고 싶다. 우리 엄마, 울 엄마를 닮아서.

엄마 닮아서/최 봄 샘(시인)
주부편지 12월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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