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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살아 나셨어요?
열린교회 (yeolin) 조회수:3007 추천수:21 112.168.96.71
2014-11-26 09:59:37
어떻게 살아 나셨어요?
- 정찬덕/ 낮은울타리 7월호 중 -

내가 백혈병에서 기적처럼 살아났다는 사실이 투병 중인 사람에게는 큰 희망이었던 모양이다. 어느 날 여러 명이 함께 학교에 찾아와 투병 생활을 자세히 듣고 싶어했다. "병에 걸린 지 얼마 만에 완쾌되셨나요?" "병원에 입원한 지 일 년이 채 안돼 자가이식수술 후 퇴원했구요. 아직까지 큰 이상은 없습니다. 전 좀 빨리 나은 편이지요." "제발 나을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세요. 저는 지금 매우 심각한 상태에 있습니다." 병을 이기는 방법을 그들이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그들이 원하는 건 특별한 처방이나 기적 같은 치료법이었지만, 나는 특별한 처방을 통해 나은 것이 아니었다. "글쎄요…" 남자는 많이 실망한 눈치였다. 더 이상 아무 말도 묻지 않았다. 이번에는 같이 온 여자가 물었다. 이제 갓 스무 살을 넘긴 듯했다. "뭐 특별히 드신 거라도 있나요?" "몇 가지 먹긴 했으나 이미 널리 알려져서 다른 사람들도 다 먹어 본 것일것입니다." "네에…" 그들에게 희망의 말을 하고 싶었으나 그저 치료를 열심히 하고 식이요법을 병행하라는 말 이외는 달리 할 말이 없었다. 나와의 대화가 의미 없다고 판단됐는지 그들은 인사를 건네며 일어섰다. 실망만 한 채 떠나는 그들에게 미안했다. 그래서 집 주소와 약도를 적어 주었다. 3주 후에 그들이 다시 찾아왔다. "저는 결혼한지 3년째 되던 해부터 투병 생활을 했습니다. 아이도 낳고 집도 사고 사회적으로 안정된 시기에 찾아온 병 때문에 평화는 깨져 버렸습니다. 살아있는 식물인간처럼 지내다가 대낮에도 저승사자처럼 검은 물체가 저를 데려가는 헛것을 보곤 했지요. 하루 이백만 원도 넘는 치료비 때문에 3차 치료를 못 받고 지금은 5평도 안 되는 방 한칸에서 식구가 살고 있습니다…." "재생빈혈성백혈병 인데요, 피가 멈추지 않는 병이래요. 고등학교도 휴학하고 투병 생활한 지 이 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백혈구 수치가 좋아지지 않아 잠시 퇴원 중이에요. 아빠와 엄마는 저 때문에 많이 늙어 버리셨어요." 이렇게 한 명씩 돌아가며 자신의 병 상태와 현실을 얘기했다. 아내와 나는 어느덧 흥건히 눈물이 젖어 있었다. 예전 나의 병원 생활이 떠올랐다. 내가 입원한 13층 병실에는 약물 치료로 인해 머리가 빠진 분들이 너무나 많았다. 그들의 얼굴은 창백하다 못해 볼 수 없을 만큼 하얀 색이었으며 수술로 인해 가슴에는 호스를 꼽고 있었다. 결국 나도 무균실에 들어가면서 항암 치료와 히크만 수술을 하게되었고, 중간에 수술이 잘못되어 수술실을 몇 번 더 드나들었다. 나중에 들은 바로는 누워 있는 환자들 중 내 모습이 제일 처참했다고 한다. 결과가 잠시 좋아졌다가 같은 병실 옆 침대에 있는 환우가 죽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아 몸 상태가 악화된 경우도 있었다. '내가 과연 내일 살아 있을까.' 하는 불안감에서 잠 못 이루고 병실 침대에서 뒤척이던 나날들. 환우 중에 건강을 되찾아 퇴원하는 이를 보며 나도 저렇게 될 수 있을지 모른다고 희망을 걸어보던 일들… 나를 찾아온 이들도 그 당시 나의 심정과 같았으리라. 게다가 가정 형편상 비용을 감당할 수 없어 골수이식수술을 못 받는 이는 더 애타는 심정으로 나를 찾아왔을 터였다. 그들에게 내 투병 생활의 세세한 부분까지 설명해 주고 희망을 잃지 말자는 이야기로 인사를 대신했다. 나는 그 분들이 돌아간 뒤에 암 환자들에겐 정보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처음 암이라는 것을 확인한 뒤 관련 서적을 보았더니 책마다 다른 내용이 적혀 있어서 더 혼란스러웠다. 의학적인 지식이 부족한 내가 단지 할 수 있는 것은 건강을 잃은 상태에서 다시 건강한 상태, 즉 하나님이 주신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리기 위해 나와 내 가족과 의료진들이 함께 했던 노력을 알리는 것뿐이다. 첫째, '건강해질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진다.' 여기에서 절망한다면 내가 넘어야 할 산에 가까이 가보지도 않고 포기하는 것이다. 꼭 나을 수 있다는 믿음이 건강 회복의 첫 번째 비결이다. 둘째, '자신의 담당의를 신뢰해야 한다.' 자가이식수술 후 나는 항암제의 부작용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했다. 수술 후 항암제 투여와 상관없이 재발률이 20-40퍼센트라는 데 고민을 많이 했다. 그러나 의사가 항암제 투여를 권하기에 일단 투여를 시작했다. 그 후에 다시 의사와 상의하고 나서야 항암제 투여를 중단하고 내 나름대로 운동이나 식이 요법을 실시했다. 셋째, '잘먹고 잘자고 규칙적인 생활을 해야한다.' 1차 항암치료를 받고 철저하게 자연식 위주로 식사를 했다. 밥은 현미로 가공 식품은 일절 입에 대지 않았다. 암 환자에게는 꼭 필요한 콩이나 된장 뿐만 아니라 달래, 마늘, 무, 쑥과 함께 과일로는 딸기, 바나나를 자주 먹었다. 적당한 운동 또한 기력을 회복시켜 준다기에 꾸준히 하였다. 넷째, '살아야 할 이유를 발견한다.' 아내와 동생 등 가족들의 헌신적인 사랑이 나를 붙잡아 주었다. "여보, 나는 당신을 믿어요." "형, 조금만 더 노력해 보자." "아빠, 사랑해요." 힘든 병실 생활로 절망하고 있을 때에도 밝은 미소와 따뜻한 손으로 나를 위로해 준 가족들, 그리고 주변의 아름다운 사람들은 환자에겐 어떤 항암제보다도 강력한 효과가 분명히 있다. 나도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이 되어야지… 다섯째, '꿈을 버리지 않는다.' 병원 투병 생활 중에도 틈틈이 책을 봤다. 아내는 만류했지만 책을 보고 있노라면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지고 고통도 줄어들었다. 논문을 마무리해서 마침내 KAIST에서 경영정보 박사학위도 취득했고, 미국의 코헨대학에도 박사 논문을 제출하여 통과가 되었다. 꿈을 버리지 않은 것이 정신력을 강하게 해주었다. 여섯째,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로운 일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병상의 내 머리맡에는 하나님이 늘 함께 계셨다. 내가 자고 있을 때에도 독수리처럼 눈을 크게 뜨고 지켜 주셨으며, 고통의 신음을 지를 때에도 함께 슬퍼하며 내 손을 잡아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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