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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와 구멍가게
열린교회 (yeolin) 조회수:2083 추천수:17 112.168.96.71
2014-11-25 13:39:38
지금 살고 있는 우리 집은 내가 일곱 살 때 일곱 번째로 이사한 집이다. 형편이 그리 어려운 것은 아니었지만 가만히 앉아만 있을 수 없으셨던 어머니는 조그만 구멍가게를 시작했다. 당시만 해도 우리 동네는 무척 가난했다. 지금은 개발이 되어 번듯하지만 그 때는 변변한 바지 하나가 없어 윗도리만 입고 다니는 아이들, 부모님이란 단어조차 모르는 아이들, 열 살이 되도록 초등학교에 다니지 못하는 아이들이 적지 않았다. 우리는 이사를 자주 다녔지만 그렇게 지지리도 가난한 동네는 처음이었다.

어린 나는 동네사람들이 하나같이 거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머니는 달랐다. 가게 앞을 얼씬거리는 아이들에게 우유나 빵을 나눠주기도 하고 어떨 땐 나와 아이들을 별 차이 없이 대하는 것 같아 기분이 나쁠 때도 있었다. 어머니의 후한인심 때문에 자연히 우리 구멍가게는 손님이 아닌 돈에 아이들로 들끓었다. 집에 아들이 넷이나 있는데도 거지꼴을 한 아이들에게까지 신경을 쓰는 어머니에게 점점 화가 났다. 어느 날엔 학교에서 돌아오니 어머니께서 동네아이들과 나를 같은 상에서 밥을 먹으라고 하셨다. 그 애들을 보기만 해도 화가 나는데 같이 밥을 먹으라니…. 불끈 화가 치밀었다.“난 거지랑 같이 밥 안 먹어.”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버럭 소리를 지르자 어머니는 순간 놀라셨는지 한동안 가만히 계셨다. 오히려 아무 말씀도 안 하시는 어머니 때문에 나는 더 마음이 괴로웠다.

잠시 침묵이 흐르고 난 뒤 어머니는, 나를 다독이셨다.“아이고, 내가 우리 아들을 속상하게 했구나, 미안해서 어떡한다니?”착한 어머니와 그 불쌍한 아이들 보기가 부끄러웠다. 울움이 터진 건 그 때문이었나 보다. 울고 있는 나를 품에 안으시며 어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셨다.“우리는 힘들거나 좋은 일이 있을 때 곁에 가족이 있지만 이 아이들은 아무도 없잖니?”나는 어머니의 말씀을 들으면서도 계속 울었던 기억이 난다. 그로부터 15년도 더 흐른 요즘, 우리 동네는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변했다. 윗도리만 입고 동네를 쏘다니던 아이들도 사라지고 허름한 집들도 모두 새 집으로 바뀌었다.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 그 때 그 아이들이 이제는 어엿한 어른이 되어 아직도 우리 구멍가게를 찾아온다는 것이다.

그들은 가끔씩 옛날 이야기를 하며 물건을 고른다. 아직도 우리 어머니 앞에서는 어린 시절 아이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어머니께서는 우리 형제들에게 남을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가르쳐 주셨을 뿐 아니라 행동으로 직접 보여주셨던 것 같다. 그 때 어머니께서 동네 아이들에게 주신 빵과 우유는 결코 돈으로도 살 수 없는 값진 사랑이었음을 나는 이렇게 어른이 되어서야 겨우 깨달아 간다.

어머니와 구멍가게/권영욱/ 낮은 울타리 2001년 1월 중에서-


내가 망설임 없이 그 치과에 가는 이유

초등학교 3학년 때였던가. 어금니 하나가 썩어서 치료를 받아야 하는데, 워낙 병원을 무서워했던 나는 며칠째 병원 가기를 미루어 결국‘끌려갔던’ 기억이 난다. 그런 습관은 장성해서도 계속되어 소독약 냄새가 나는 곳에는 얼씬도 하지 않으면서 살아왔다.

그런데 요즘 나는 충치가 조금만 보여도 망설임 없이 한 치과의 문을 두드린다. 아늑한 인테리어에 잔잔히 흐르는 찬양, 흰 머리의 의사 선생님은 치료가 끝나면 치아 관리법까지 자상하게 설명해 주신다. 그래서일까, 그 곳 치과는 언제나 대기하는 환자들로 넘쳐난다. 병원 문을 막 연 이른 오전 시간에도 사람들은 이미 대기실 소파에 앉아 진료를 기다리고 있다. “이 곳 선생님은 무조건 치아를 뽑으라고 하지 않고 상황에 맞게 양심껏 잘 치료해 주세요. 그래서 집에서 멀더라도 이렇게 찾아오게 되죠.” 진료 순서를 기다리는 한 할머니가 옆에 있는 어느 아주머니에게 이렇게 말을 건넨다. 일 년에도 몇 차례 일 주일씩 치과 문을 닫고, 일 주일에 하루는 오후 진료를 하지 않는 그야말로‘엿장수 마음대로’진료를 하는 치과임에도 이처럼 환자가 넘쳐나는 건 무엇 때문일까. 아마도 이 치과의 원장님에 대한 신뢰 때문이 아닐는지.

그분을 만난 건 몇 해 전, 한 선교 잡지사에서 근무할 때였다. 그분은 치과 치료를 받아야 할 선교사들은 무료로 치료해주는 분이었다. 그래서인지 그 분을 뵙기 위해 치과를 찾아갈 때면 언제나 무료 진료 환자가 많이 있었다. 외국에서 사역하다 잠시 고국에 들른 선교사, 어렵게 사역하는 목회자, 이 땅에서 신학 공부를 하는 동남아시아의 가난한 외국인 유학생 등등. 처음엔 이 사실이 놀랍기도 했고, 한편으론 이렇게 해서 병원이 운영될까 싶은 염려가 생기기도 했다.

그런데 오히려 그분은 이렇게 이야기했다. “일부러 시간을 내서 외국에 찾아가서 진료도 하는데요. 오히려 이렇게 저희 병원에 와 주시니 제가 더 감사한 일이죠.”
그분의 말씀대로 그 치과는 의료선교여행을 위해선 언제든지 치과 문을 닫았고, 찾아오는 환자들 중 ‘복음’을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십자가의 은혜’를 전하기 위해선 다음 환자의 진료를 잠시 멈추고라도 진료실 한 켠에 마련된 탁자 위에서 성경을 펼치곤 한다. 치아치료 만큼이나 ‘영혼 치유’에 관심을 쏟는 풍경이라니…그곳에 가면 자주 생각한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 ‘직업’이란 어떤 의미일까? 나의 직업 속에서 견지해야할 우선 순위는 무엇인가? 그래서 나는 오늘도 즐거운 마음으로, 그 치과에 간다.

-노수진/일하는 제자들 2000년 1월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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