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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부르고 싶은 노래
열린교회 (yeolin) 조회수:2151 추천수:19 112.168.96.71
2014-11-25 10:48:27
해마다 부활절이 오면 부활 후 주님과 함께 만나게 될 육신의 부모님이 생각납니다. 기억도 없고 불러보지도 못한 어머니를 마음껏 부르며 만날 생각을 하노라면 상상의 날개는 나를 기쁨과 소망의 항구, 천국까지 안내하곤 합니다. 나를 낳으실 때까지 새벽 기도를 다니셨다는 어머니는 제가 백일 때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그 후 아버지는 주색잡기로 저에게 많은 아픈 기억을 남기셨습니다. 아버지는 나를 돌보지 않으셨으며, 저는 외가에서 자라야 했으니까요.

아버지 때문에 생긴 아픔은 미움을 낳았고, 내 삶이 고달플수록 아버지가 살고 있는 옆집에서 아름다운 집을 짓고 보란 듯이 살아보는 것이 나의 어리석은 꿈이었습니다. 지우려고 애써도 끓어오르는 미운 감정을 지울 지우개는 없었습니다. 결혼 후 어렵게 학업을 계속하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초췌한 모습의 아버지가 나를 찾아와 애처롭게 도움을 청하는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꿈은 거듭되었고, 마침내 아버지가 작은댁과 살고 있는 집으로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결혼을 앞두고 찾아갔던 기억 때문에 발걸음은 더욱 무거웠습니다.

길러주지는 않으셨지만, 결혼을 결정하고 찾아가 뵙는 것이 도리라 생각되어 갔을 때 그분들은 재산을 탐하여 온 것으로 나를 오해하셔서 흠뻑 두드려맞고 쫓겨났던 적이 있었습니다. 다시는 안 찾겠노라 다짐했던 집으로 갔을 때 작은댁이 낳은 아들이 낮잠에서 부시시 일어나 ‘아버지는 멀리 갔다’며 더 이상 말하기를 꺼리는 것이었습니다. 많은 망설임 후에 아이는 아버지가 교통 사고를 내고 교도소에 갔다는 것을 알려주었습니다.

그 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버지에게는 작은댁이 몇 분 있었습니다. 그 중에 한 아들이 있었는데 그 아들은 아버지를 원망하며 ‘나도 아버지처럼 살아보리라’는 복수의 마음을 품고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아들 내외가 명절 귀향길에 즉사하고, 아버지는 그 재앙의 광경을 목격한 후 정신이 이상하게 되셨습니다. 일본에서 자동차 기술을 도입하여 우리 나라 자동차 문화를 선도하던 분이 교통 사고를 내고 교도소에 가기까지 이른 것이었습니다. 주일 학교 시절의 목사님을 모시고 아버지가 계시다는 부산 주례교도소를 찾아가게 되었습니다.

여름날 답답한 오후, 면회소 창으로 보이는 그분의 모습은 3년 전 나를 때리던 사납고 당당한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머리가 하얗게 세어 버린 병들고 초라한 노인의 모습이었습니다. 망연히 바라보고 있는 나를 발견한 그분은 창피한 탓인지 ‘여길 뭐하러 왔노?’ 두어 번 호통을 치곤 안으로 모습을 감추어 버렸습니다. 교도소를 찾아갈 때만 해도 어떤 분을 전도하러 가듯이 단순한 마음으로 갔지만, 사라지는 뒷모습을 보며 내 마음에는 다시 속앓이가 시작되었습니다.

출소 후 식구들을 괴롭힐 것이라는 이유로 작은댁과 가족들은 출소를 돕지 않았으나, 나는 돈을 마련하여 그분의 출소를 서두르게 되었습니다. 그 때부터 내 마음은 이전과 달랐습니다. 자식인 나도 버리게 했던 작은댁은 한때 서로 사랑했던 아버지를 창고에 가두고 말았습니다. 창고 안에 갇혀 식은 죽을 받아 먹고 계신 그분을 볼 때 나에게는 갚아야 할 미움도 노여움도 남아있지 않게 되었습니다. 대소변에 젖은 담요를 갈아 드리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시다가 잠시 정신이 맑아지실 때면 긴 한숨같은 한마디를 하셨습니다.

"나 죽어서 니 어머이 못 만나면 어짜냐?”그럴 때면 아버지와 나를 위하여 기도하고 계실 어머니가 생각났습니다. 아버지께 기도를 가르쳐 드리게 되었습니다.“그런 생각이 날 때마다 기도하세요. 내가 지은 죄를 용서해 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곡기를 끊은지 삼일, 혀는 타서 말려 들어가고 긴 숨을 들이셨다 내뱉는 고통이 계속되고 있을 때, 나는 그분의 손을 잡아드렸습니다. 내 손을 힘있게 잡으시며 내 눈을 응시할 때 내 영혼의 깊은 속에서 탄식같은 기도가 터져 나왔습니다.

그 기도는 너무나 간절하여 내 안에 기도를 막고 있던 많은 잘잘못의 벽을 허물고 튀어나와 하나님께로 올라가고
있었습니다.“하나님 아버지, 이 분이 많은 죄를 지었습니다. 많은 사람들 특히 자식과 아내를 아프게 하였습니다. 저를 용서하여 주시고 구원하여 주시옵소서. 내 어머니 눈물의 기도를 부디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내 속의 모든 감정은 눈물로 깨끗이 씻겨지고 흐르던 눈물은 계속 솟아나는 용서와 화해의 샘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이 기도가 끝나자 놀랍게도 지옥불에 삼키워지는 고통 같은 거친 숨소리가 잦아들며 곤한 잠에 빠지시는 것 같았습니다.

교도소에 동행해 주셨던 목사님께서 오셔서 예배를 드려 주신 후 주무시는 것처럼 영원한 안식에 들어가셨습니다. 그 때로부터 세월이 훌쩍 지난 지금, 아버지를 창고에 가두고 죽음을 재촉했던 작은댁도 주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교회 다니는 것이 유일한 즐거움이 되셨다고 합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셔서 죽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주님의 사랑과 용서가 사랑할 수도 용서할 수도 없었던 우리 가족들을 화목케 하셨습니다. 주님의 부활을 기리는 이 계절 천국에서 사랑과 기쁨으로 만나게 될 어머니 아버지를 생각하면 내 마음 설레입니다. 땅에서 부르지 못한 어머니 아버지를 어린아이같이 실컷 부르렵니다. 그 날에는….

내가 부르고 싶은 노래/박희송
-목마르거든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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