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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스토예프스키 일화
열린교회 (yeolin) 조회수:2419 추천수:18 112.168.96.71
2014-11-25 13:52:19
톨스토이를 읽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와 같은 러시아 작가 도스토예프스키를 알게 되었다. 그들 둘은 같은 시대에 활동한 작가였고, 당대의 러시아 작가들 중에 가장 많은 문학적 업적을 남겼으며, 가장 널리 알려진 작가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서로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데 어쩌면 그것은 당연할 수도 있다. 그들은 모든 면에서 대조적인 사람들이었다. 톨스토이의 소설은 밝고 낙관적인 데 비해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은 음침하고 어둡다.

톨스토이는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금욕적인 수행을 하며 지냈지만, 도스토예프스키는 술과 도박으로 건강과 재산을 모두 탕진한 사람이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많은 죄를 저지른 사람이었지만, 그의 소설에는 톨스토이가 보여준 신앙의 의지력과 함께 용서와 신의 은총이 나타나 있다. 진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것은 아니지만, 젊은 시절 도스토예프스키는 실질적으로 부활을 경험한 적이 있었다. 그는 당시 러시아 황제, 짜르가 반역적이라고 한 어떤 단체에 가담했다가 체포되었다. 당시 짜르였던 니콜라이 1세는 사실 말뿐이었던 젊은 급진주의자들에게 그들의 잘못이 얼마나 큰 것인지 깊게 각인시키려고 사형을 내리고는 모의 처형장을 만들었다. 도스토예프스키를 비롯해서 공모자들에게 죽음을 상징하는 하얀 수의가 입혀졌다.

그리고 총을 든 병사들이 대기하고 있는 광장으로 끌려 나왔다. 군인들은 그들의 눈을 가리고 양손은 뒤로 단단히 묶은 다음 하얀 수의를 입힌 채로, 멍하니 쳐다보는 군중들 앞으로 끌고 나와서 말뚝에 매어 놓았다. "사격 준비, 조준!"이라는 구령이 들려 오자 병사들이 그들에게 총을 겨누었다. 바로 그때 전령이 말을 전속력으로 몰고 와서 미리 준비된 짜르의 칙서를 낭독했다. 짜르가 자비를 베풀어서 사형을 강제노역으로 감면해 준다는 것이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결코 그때의 경험을 잊을 수가 없었다. 그는 목전까지 다가왔던 죽음의 사자를 보았던 것이다.

그 순간부터 도스토예프스키에게 인생이란 도무지 예측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 내 삶은 변화될 것이다.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시베리아로 호송열차를 타고 가는 중에 신앙심 깊은 여인이 그에게 신약성서를 건넸다. 성서는 시베리아 감옥에서 유일하게 허락된 책이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하나님이 자신에게 부여한 사명을 완수할 또 한 번의 기회를 준 것이라 믿고 그 여인이 준 성경책을 읽고 또 읽었다. 십 년 후 시베리아 유배형에서 풀려 나왔을 때, 도스토예프스키는 신실한 신앙인이 되어 있었다. 다음과 같은 유명한 말을 통해서 그는 자신의 신앙을 표현했다.
"누군가 내게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이 진리가 아님을 증명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하라. 그래도 나는 여전히 진리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을 것이다." 시베리아 유배생활은 정말 또 한 번의 기회를 준 것이다.

유배생활 동안 도스토예프스키는 절도범과 강도들, 알코올 중독 상태의 농부들과 함께 지내야 했다. 그 사람들과 함께 지낸 경험은 소설 <죄와 벌>에서 전당포 노파를 살해한 라스콜리니코프 같은 인물을 탁월하게 형상화하게끔 했다. 유배생활 초기에 도스토예프스키는 감옥에서 함께 지내는 사람들이 얼마나 추악한지 목격하면서, 인간의 본성은 원래 선하다는 그의 가치관이 산산이 무너져 내림을 느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그는 가장 비천하게 보이는 죄수에게도 하나님의 형상이 깃들여 있음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는 인간은 사랑을 받게 되면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존재라고 믿게 되었다. 그것은 사도 요한의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요일 4: 19)는 말과 통하는 것이었다.

도스토예프스키 일화/필립 얀시/ 필립 얀시 저 <내가 알지 못했던 예수>(요단) 중에서

낙관론자

생김새가 똑같은 쌍등이의 이야기다. 한 아이는 언제나 희망으로 가득한 낙관론자였다. 그 아이는 말하곤 했다 "모든 일이 잘 되어 가고 있어!" 다른 아이는 늘상 슬프고 절망적인 비관론자였다. 그 아이에 비하면 머피의 법칙에 나오는 머피는 오히려 낙관론자였다. 걱정이 된 부모는 아이들을 데리고 정신과 의사를 찾아갔다. 의사는 부모에게 아이들의 성격에 균형을 가져다 주기 위해 한 가지 제안을 내놓았다. "다음 번 아이들의 생일날, 아이들을 각자 다른 방에 넣고 선물을 열어 보게 하십시오. 비관적인 아이에겐 당신들이 사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을 주고, 낙관론자인 아이의 선물 상자에는 거름을 넣어 주십시오." 의사의 제안대로 두 아이에게 선물을 준 다음 부모는 비관론자인 아이의 방을 몰래 들여다보았다. 그러자 아이가 큰소리로 불평을 해대고 있었다 "이 컴퓨터는 색깔이 맘에 안들어· . 이 계산기는 틀림없이 금방 고장이 날 거야‥‥ 이 게임은 정말 싫어‥ 내가 아는 다른 아이는 이것보다 훨씬 큰자동차를갖고 있단 말야‥‥‥ 부모는 몰래 복도를 지나 낙관론자인 아이의 방으로 다가가 안을 들여다보았다. 그 아이는 신이 나서 거름을 공중에 내던지며 이렇게 킥킥대고 있었다. "날 놀리지 말아요! 이렇게 많은 거름이 있다면 틀림없이 당나귀를 한 마리 사 오신 거죠?"

-브라이언 카바노프의/씨 뿌리는 사람의 더 많은 씨앗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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