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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날의 동이 터온다(2)
열린교회 (yeolin) 조회수:2189 추천수:17 112.168.96.71
2014-11-25 10:43:15
물론, 배는 빙산에 부딪혀 측면이 부서진 것이었다. 배는 빠르게 가라앉고 있었지만, 승객들이 처음 느끼기엔 그저 경미한 사고 정도로 여겨진 모양이었다. 아니면, 어린 로라의 아버지가 진실을 숨기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객실로 급히 돌아갔다. 거기에는 동승객들이 몹시 근심하면서 내가 소식을 갖고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난 내가 들은 대로 이야기를 전했다. 그리고는 침대로 올라가 선반에 있는 구명벨트를 모두 아래로 내렸다. 하나는 내가 착용하고, 나머지는 동승객들에게 건네 주었다.’

아버지와 딸은 서둘러 윗층으로 올라갔다. ‘우리는 신속히 철재 계단을 올라가 이등석 갑판으로 갔고, 꼭대기 문을 지나, 살롱을 거쳐 일등석의 특실로 가서 갑판으로 나갔다.’ 위급한 상황 속에, 나의 증조부는 계층의 구분 따위엔 전혀 얽매이지 않았다. 그저 자신의 아이를 보호하고 있을 뿐이었다. ‘한 선원이 우리에게 오더니, 아버지에게 내게 구명벨트를 채우라고 말했다. 아버지는 즉시 그렇게 했다. 그리고는 나에게 밖으로 나가면 최대한 구명보트 가까이에 있으라고 당부했다.’

여기까지의 이야기에는 막힘이없었지만, 이어지는 말에서 나는 슬픔의 세계를 엿보았다. ‘그런 뒤에 나는 아버지와 헤어졌다. 우리는 당연히 다시 만나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아무 말도 주고받지 않았다.’ 할머니는 아버지와 ‘안녕’이라는 인사조차 나누지 못했던 것이다. 로라는 두 대의 보트가 사람들을 가득 실어 떠난 후에야 비로소 자기도 보트에 올라탈 수 있었다. 그런데 구명보트가 아래로 내려가다가 도르래에 부딪혀 기우뚱하기 시작했다.

‘우리 모두는 보트가 뒤집혀 바다 속으로 빠질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마침내 구명보트는 차가운 바닷물에 내려졌고, 승객들은 노를 저어 나아갔다. ‘우리가 바다에 불과 30분 정도 떠 있었을 때, 타이타닉호의 전기가 나갔다. 곧이어 지금까지 들어보지 못했던 최고로 끔찍하고 엄청난 폭발음. 거기엔 난파당한 그 거대한 배의 잔해 속에 남겨져 속수무책으로 비운을 맞은 승객들의 처절한 비명과 신음소리가 뒤섞여 있었다.’ 로라는 구명보트에서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몇 시간 후 그녀가 깨어났을 때는 대양선 카파티아호가 구명보트에 반쯤 언 상태로 타고 있던 생존자들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할머니는 푸른 바다에 떠 다니는 빙산들 위로 태양이 분홍과 보라빛 그림자를 드리우며 눈부시게 떠오르는 일출을 보았다. 전에 내가 영적으로 다시 태어났던 그날 아침에 보았던 일출, 내 삶에 엄청난 약속을 보여 주었던 그 광경이 기억났다. 눈부시게 빛나는 붉은 하늘이 유리알 같은 해수면 위에 반사되던 장면. 이런 단순한 광경이 나에게 하나님의 임재를 확신시켜 주면서 그렇게도 많은 의미를 전해 주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었다.

아마 할머니도 나와 같은 느낌을 받았으리라. 할머니는 이렇게 적었다. ‘새벽 미명이었는데, 그 모습은 살아 생전에는 다시 볼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운 장면이었다.’그 일출은 그런 끔찍한 비극을 겪은 후에도 할머니의 삶이 지속되리라는 사실을 일깨워 준 희망의 빛이었음에 틀림없었으리라. 카파티아호 위에서 어린 로라는 담요를 덮은 채로 따끈한 커피 한 잔을 받았다. 한 간호사가 몸을 주물러 주었고, 할머니는 곧 잠이 들었다. 충분히 기력을 되찾았을 때, 할머니는 다른 생존자들이 살롱의 게시판에 모여 사랑하는 이들의 소식을 찾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배는 사흘이 지나서야 뉴욕에 도착했다. 그 동안 줄곧 로라는 아버지와 다시 상봉하리라 믿고 있었다. 그녀의 아버지가 다른 구조선을 타고 차가운 바다에서 구조됐을 거라고 굳게 믿었다. 분위기는 침울했다. ‘우리가 카파티아호에 승선했던 처음 이틀 동안, 악단은 연주를 하지 말고 가능한 여자들을 돌봐 주라는 지시를 받았다. 그러나 세째날에는 찬송가와 위안을 주는 곡들을 선곡해 연주했다.’내가 우리 아이들과 함께 교회에서 불렀던 그런 찬송가들이었을 것이다. 카파티아호가 뉴욕의 부두에 닻을 내렸을 때 로라는 아버지가 생존자 명단에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다시 할머니의 글은 자세한 설명이 없었다. 하지만 침착하고 그 모든 상황을 받아들이는 어조였다. ‘그렇게 될 운명은 아니었다.’ 그리고는 이렇게 적었다. ‘하나님께서는 다른 뜻을 가지고 계셨던 것이다.’그 부분은 특히 내가 읽기 어려운 내용이었다. 내가 같은 경우에 처했더라면 나의 믿음은 그런 시험을 견뎌 낼 수 있었을까? 할머니는 감수성 예민한 열여섯 나이에 1500명 이상의 인명을 앗아간 비극적인 사건을 목격했다. 또한 자신의 아버지가 침몰하는 배 속에서 겪었을 그 두려움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영상들을 머리 속에 지니고 있었다.

만일 그런 일이 내게 일어났다면, 나는 하나님의 은혜를 신뢰할 수 있었을까? 나는 글의 마지막 장에 눈을 돌렸다. 거기에는 다른 사람의 필체로 몇 구절의 싯구가 적혀 있었다. 할머니가 타이타닉호에 승선했던 그날, 그녀의 어머니가 전해 준 글귀였다. 이 얼마나 예언자적인 글이었던가!

미래에 다가올 일들은 하나님께서 최선으로 선택하신 일 그분의 따스한 사랑이 강하게 밀려오니 그분께 남은 모든 일들을 맡기리 사랑의 하나님께서 미래에 준비하신 일들을 나는 알지 못하고 말할 수 없네 다만 내 아버지의 돌보심에서 벗어나는 일은 결코 내게 없으리

이 싯구를 수년 동안 고이 간직했을 할머니를 생각해보았다. 어렸을 때 겪은 그 비극적인 일을 되돌아볼 때마다, 할머니는 다시금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상기했을 것이다. 비록 얼음처럼 차가운 바다에서 아버지를 잃었을지라도, 할머니는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의 손길에서는 결코 벗어나 있지 않았다. 평안한 마음으로 원고를 내려놓았다. 난 더 이상 영적인 고아가 아니었다. 그 모든 일들이 할머니와 마찬가지로 내게도 사실로 다가왔다. 내가 하나님을 알기도 전에, 나는 아버지 하나님의 돌보심 속에 항상 있었던 것이다.

새 날의 동이 터온다
(가이드포스트99년 2월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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