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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편이 되어 주시는 하나님(시 118:6~9)
김필곤목사 (yeolin) 조회수:4356 추천수:5 220.120.123.244
2020-11-29 12:43:52

내 편이 되어 주시는 하나님

시 118:6~9

 

우리나라에서 한 해에 치러지는 거국적인 행사 중의 하나가 대학수학능력 시험입니다. 올해는 12월 3일 목요일에 있습니다. 이 시험의 결과에 따라 아이들은 자신이 원하는 학교에 들어 갈 수도 있고 못 들어갈 수도 있습니다. “코로나19”라는 험한 환경 속에서 이 시험을 치루는 우리 학생들은 오늘 우리가 읽은 이 말씀을 붙들고 승리하시길 바랍니다. 오늘 말씀은 거듭해서 “여호와는 내 편”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6절 7절 말씀을 다시 한 번 큰 소리로 읽어 보겠습니다. “여호와는 내 편이시라 내가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사람이 내게 어찌할까 여호와께서 내 편이 되사 나를 돕는 자들 중에 계시니 그러므로 나를 미워하는 자들에게 보응하시는 것을 내가 보리로다”

오늘 시편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일 년에 한 번 행해지는 초막절에 성전에 들어가면서 불렀던 찬양입니다. 종려주일 때 예수님이 나귀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불려, 종려주일 찬송으로 사용하였습니다(마21:9; 요12:13). 이번 시험을 보러 가는 우리 학생들도 시험장에 들어가면서 이 말씀을 붙들고 들어가시길 바랍니다. 다 외울 수 없지만 오늘 말씀 “여호와는 내 편이시라 내가 두려워 아니하리니, 여호와는 내 편이 되사 나를 돕는 자 중에 계시니” 시험장에 들어갈 때, 매 시험을 치룰 때 반복적으로 고백하면서 시험을 보시길 바랍니다.

이 말씀은 수험생에게만 필요한 말씀이 아니라 코로나19 상황 속에서 사업을 하시는 성도님이나, 입대를 앞두고 있는 젊은이나, 잉태를 앞 두고 있는 산모나, 수술을 앞 두고 있는 환자나, 부채에 시달리면 경제적 막다른 골목에 서 있는 사업가나, 위기 가운데 있는 모든 사람들, 두려움에 떨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필요한 말씀입니다. 수술을 받기 전에, 면접을 보기 전에, 대출을 받기 전에, 심지어는 죽음 앞에서 “여호와는 내 편이이시라 내가 두려워 아니 하리니, 여호와는 내 편이 되사 나를 돕는 자 중에 계시니”

이 말씀은 종교 개혁을 단행한 루터가 가장 좋아한 시편입니다. 마틴 루터는 이 시편에 대하여 “내가 가장 사랑하는 시편이다. 이 시편은 나를 수많은 환란에서 건져내었다. 제왕과 왕들도, 지혜자와 모사와 성도들도 나를 도울 수 없었을 때, 이 시편이 나에게 큰 힘을 주었다”라고 했습니다. 영국의 유명한 설교자였던 챨스 스펄전 목사님도 "시편의 모든 시가 다 아름답고 큰 영적 의미가 있지만 118편이야 말로 나의 가슴에 가장 많이 와 닿고 용기를 주고 힘을 준다. 시편 118편의 시는 나의 시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예수님도 이 시편을 인용하였습니다. 세상에 가장 경쟁력 있는 사람은 여호와를 내 편으로 삼는 사람들입니다.

여호와는 내 편이 되어 무엇을 해 주십니까?

 

1. 여호와는 내 편이 되어 두려움이 없게 해 주십니다(6).

하나님이 내 편이 되어 주면 어떤 두려움도 자신을 엄습할 수 없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자신을 대적하여 어떻게 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역으로 말하면 내가 하나님 편에 서 있으니 두려울 것이 없다는 말입니다. 내가 하나님 편에 서 있는 것이 인생의 문제를 푸는 열쇠라는 것입니다. 이 시편은 기록자가 누군지 정확히 모르지만 일반적으로 다윗의 시로 알려져 있습니다. 다윗의 인생에 얼마나 많은 두려움이 엄습했습니까? 10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뭇 나라가 나를 에워샀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11절에서는 그들이 에워싸고 에워 쌌다고 강고하고 있습니다. 12절에서는 벌들처럼 나를 에워쌌다고 말씀합니다. 대적에게 둘러싸인 최악의 상황을 맞이했다는 것입니다.

이때 어떻게 합니까? 10절에도 여호와의 이름으로, 11절에도 여호와의 이름으로, 12절에도 여호와의 이름으로 즉, 여호와를 힘입어서 그들을 끊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가시덤불의 불같이 타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가시덤불의 불은 삽시간에 맹렬하게 타오르지만 잠시 후에 완전히 사라집니다. 누가 물리졌다는 말입니까? “내가”입니다. 저절로 적들이 무너진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내 편이라는 믿음을 가진 다윗이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히 여호와의 이름으로 나아가 그들을 끊었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블레셋 나라의 골리앗이 처들어 왔을 때를 생각하는 말씀입니다. 거구의 용장 골리앗이 너희 가운데 한 사람을 택하여 싸우자고 합니다. 누구에게도 패하지 않은 싸움 참피언입니다. 전쟁의 1인자, 전재의 지존입니다. 내가 지면 우리가 너희의 종이 되고 너희가 지면 너희가 우리의 종이 되어야 한다고 한 판 붙자고 합니다. 이때 사울왕과 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두려워 떨고 있었습니다. 아무도 그 앞에 나가지 못했습니다. 나가지 못했을 뿐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심히 두려워하며 그 앞에서 도망하였습니다. 이때 다윗이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느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삼상17:45)”라고 나아가 물맷돌로 그를 쓰러뜨렸습니다. 그때 다윗은 고백했습니다.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에게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넘기시리라(삼상 17:47)”

다윗은 인생을 살면서 많은 대적을 만나고 많은 어려움을 당하였지만 어느 때나 하나님의 자신의 편에 계시다는 것을 체험했기 때문에 왕이 되어서도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시편 23:4)"라고 고백하였던 것입니다(시 27:1, 56:4). 시편 3편 6절에서는 “천만인이 나를 에워싸 진을 치더라도 나는 두려워하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두려움으로 문제 앞에 위축되지 말아야 합니다. 문제 앞에서 두려워하지 말고 문제를 통해 하나님을 더 견고히 믿고 나아가 승리하라는 말입니다. “세상 흔들리고 사람들은 변하여도 나는 주를 섬기리 주님의 사랑은 영원히 변하지 않네 나는 주를 신뢰해 믿음 흔들리고 사람들 주를 떠나도 나는 주를 섬기리 주님의 나라는 영원히 쇠하지 않네 나는 주를 신뢰해 오직 믿음으로 믿음으로 내가 살리라 오직 믿음으로 믿음으로 내가 살리라”

 

우리는 내 인생의 미래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잘 모르지만 분명한 것 하나는 누가 내 미래를 붙잡고 계신지는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인생의 미래는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자꾸 눈 앞만 보고, 땅만 보지 말고 하나님을 보아야 합니다. 자꾸 스마트 폰 화면만 보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보아야 합니다. 자꾸 세상 뉴스만 듣지 말고 항상 내편이 되어 주셔서 말씀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선하시고 인자하신 하나님이 내 편이 되어 주시는 우리는 어떤 일을 당해도 두러워하지 않고 담대하게 수행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사야 43장 1-3절에서 내 편이신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물 가운데 지나고 강을 건너고 불 가운데 행할지라도 이것이 우리를 해하거나 침몰하지 못하도록 함께 하신다고 분명하게 약속해 주셨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를 불러서 예수 그리스도의 피값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물과 강과 불같은 장애물이 있어도 절대로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사41:10)” 두려워하지 말라고 성경은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계속 강조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도 롬 8:31 이하에서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누가 우리를 송사하리요.. 누가 우리를 정죄하리요...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협이나 칼이랴...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내 편이시기 때문에 세상 보며, 일을 보며, 환란을 보며, 질병을 보며, 죽음을 보며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2. 여호와는 내 편이 되어 도와 주십니다(7).

하나님은 내 편이 되어 무엇을 하십니까? 7절을 다시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나를 돕는 자 중에 계시니”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시인 자신을 도우실 뿐 아니라 그를 돕는 자들 가운데 함께 계셔서 시인을 더욱 그를 도와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을 미워하는 원수들에게 하나님이 보응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사울이 계속 해서 다윗을 죽이려고 합니다. 자신의 딸을 다윗과 결혼시켜 사위로 삼습니다. 사위를 삼는 조건으로 블레셋 사람 100명을 죽이기를 원합니다. 블레셋 사람과 싸우다가 죽기를 바래서입니다. 전쟁터에서 죽지 않자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온 다윗에게 단창을 던져 죽이려 했습니다. 그것도 안되자 군사를 집에 보내 죽이게 하였습니다. 사울의 딸이 그를 죽음에서 피하게 합니다. 사울의 딸이 하나님 편에 있는 것입니다. 모두가 대적하는 것이 아닙니다. 누군가는 돕는 자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통하여 도와줍니다. 세 번째, 네 번째 식탁에서, 활터에서 죽이려고 합니다. 그런데 그 곳에서도 하나님 편에 있는 사울의 아들 요나단이 도와 줍니다. 돕는 자 중에 계시며 도와 주십니다. 어떻게 보면 다윗과 경쟁자입니다. 요즈음 권력 게임을 하고 있는 정치인들을 보십시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하겠습니까? 하나님이 내편이 되어 도우시면 그런 일이 가능한 것입니다. 아굴람으로, 그일라로, 십 광야로, 엔게디에 있는 굴로 추격대를 보내어 다윗을 죽이려고 합니다. 그 가운데서도 모든 불이익을 감수하면 다윗을 따라 다리는 부하들이 있습니다.

최고의 권력자 왕과 힘있는 그의 추종자들은 다윗에게 등을 돌렸지만 하나님과 하나님 편에 서 있는 사람들은 다윗과 함께 하여 다윗을 도와 주었습니다.

우리는 돕는 자가 없다고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수의 문제가 아닙니다. 골리앗과 전쟁 때 형제들도 도와주지 않았습니다. 수많은 백성들이 모세를 원망하고 불평했지만 하나님이 모세의 편이었고 하나님 편에 서 있는 아론과 여호수아와 갈렙이 있었습니다. 엘리야에게 모든 사람이 등을 돌린 것같았지만 바엘에게 등을 돌리지 않은 하나님 편에 서 있는 7천명이 있었습니다. 내 편에 있는 사람 없다고 원망하고 낙심하며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하나님 편에 있는 사람들을 통하여 도와 주십니다. 하나님 편에 선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고 하여도 낙심하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언제나 내 편에 서 있습니다.

“이 세상의 친구는 나를 버려도, 나를 사랑하는 이 예수 뿐일세. 예수 내 친구 날 버리잖네 온천지는 변해도 날 버리지 않네. 검은 구름이 덮이고 광풍이 일어나도, 괴로운 일을 당하여 낙심이 되어도,”

 

13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너는 나를 밀쳐 넘어뜨리려고 하였으나 여호와께서는 나를 도와 주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도와 주니까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내가 보응하지 않아도 하나님이 보응해 주십니다(7).

다윗은 엔게디 동굴에서 용변을 보는 사울을 죽일 수도 있었고, 십 광야에서 잠든 사울을 죽일 수도 있었지만, 심지어 다윗을 따르는 부하들이 사울을 죽일 수 있도록 하나님이 기회를 주신 것이라고 설득했지만, 다윗은 이를 단호히 거절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이 내 편이고 선하시고 인자하신 하나님이 하나님의 방법으로 자신을 도와 줄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삼상 24:4, 6; 삼상 26:8-9) 결국 어떻게 됩니까? 사울은 블레셋과 전투에서 치명적인 상처를 입고 스스로 칼에 엎드려 자살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이 구원해 주십니다(14).

여호와의 오른 손이 권능을 베풀어 주십니다(15,16). 세 번 반복해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든든히 힘이 되어 주신다는 상징적 표현입니다. 오른 손으로 붙잡아 주십니다. 오른 손으로 일으켜 주십니다. 오른 손으로 세워 주십니다. 능력의 오른 손으로 안아주십니다. 오른 손으로 인도해 주시고, 오른 손으로 세워주십니다. 믿습니까?

죽지 않고 살아납니다(17). 어느 목사님은 불치의 병에서 고침받고 이 말씀은 성경 구절 중 가장 좋아하는 말씀으로 삼았다고 합니다. 질병에 걸려 염려하는 성도님이 계시다면, 죽음의 공포에서, 질병의 염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노예가 되어 있는 성도님이라면 이 말씀을 하루에 10번씩 외워 보시길 바랍니다. 이 말씀이 보약이 되어 이 말씀이 그대로 응답되는 역사가 있을 줄 믿습니다.

하나님이 심히 자신을 경책했지만 죽음에는 넘겨 주지 않았습니다(18). 다윗도 범죄하였습니다. 부하의 부인을 간음하고 아이까지 낳았습니다. 자신의 죄를 은폐하기 위해 부하를 전쟁터에 죽게 만들었습니다. 어쩌면 사울보다 더 큰 죄를 저지른 것입니다. 하나님을 내편으로 삼는 사람도 자신이 하나님 편이 되지 못하고 그런 못된 짓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윗이 사울과 다른 점이 무엇이겠습니까? 사울은 끝까지 회개하지 않았고 다윗은 나단 선지자의 말씀을 듣고 철저히 회개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을 용서하고 그들 죽이지는 않았습니다.

22-23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기이한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건축자의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는 것입니다. 자신이 왕이 되고 이것은 후대에 메시아 왕국을 이루를 초석이 된 것입니다. 이는 여호와께서 행하신 것입니다(24). 이날은 여호와가 정하신 날이라는 것입니다(24). 다 때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21장 42절에서 예수님이 십자가를 통하여 세울 예수님에 대한 예언으로 해석해 주신 것입니다. 성경은 예수님이 구원 공동체인 교회의 초석이 될 것을 예언한 말씀으로 해석해 주고 있습니다(엡2:20,21; 벧전2:4,5)

우리는 내 편이 되어 주시는 하나님이 왜 이렇게 고통과 어려움을 방관하느냐고 질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모르는 기이한 세계입니다. 그의 실수와 실패까지도 사용했습니다. 어느 목사님은 아들이 대학에 떨어져 외국에 보냈답니다. 그런데 거기에서 한 자매를 만난 것입니다. 그래서 그 자매와 사귀게 되고 결혼을 하였는데 그 자매는 외동딸이었고 그 자매 아버지는 큰 사업을 하시는 사장이었답니다. 결국 결혼을 시켰는데 사모님에게 좋은 차 타보시라고 외제 승용차를 사주었다고 합니다. 아들이 장인을 이어 회사를 맡아 운영하게 되었답니다. 원하는 학교에 들어가지 못했는데 다른 학교에서 가서 백마타고 오는 공주를 만날 수 있고, 천리마 타고 오는 왕자를 만날 수 있습니다. 마침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 이해 못 할 일을 겪을지라도 아무도 나를 도와주는 이 없다고 불평과 원망 가운데 포기하지 마시고 내 편이 되어 도와주시는 하나님을 믿으시고 승리하시길 바랍니다.

 

3. 여호와는 내 편이 되어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게 합니다.(8-9)

8절에서는 여호와가 내 편이 되어 주심으로 하나님께 피하는 것이 사람을 신뢰하는 것보다 낫다고 말씀합니다.

9절에서는 여호와가 내 편이 되어 주심으로 하나님께 피하는 것이 고관들을 신뢰함보다 낫다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8절의 사람은 일반적인 사람을 말하고 9절의 고관은 힘있는 사람을 말합니다. 어려움을 당할 때 이들이 피난처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직 여호와 하나님이 피난처가 되신다는 것입니다.

위기를 만났을 때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보다 눈에 보이는 사람을 의지하기 쉽고 힘이 있는 사람을 신뢰하기 쉽습니다. 다윗은 10년 동안 유랑과 피난 생활에 지쳐 이민갑니다. 기다림에 지친 것입니다. 시간이 오래가고 마음대로 되지 않으면 좌절하고 의기소침해져 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지연이 하나님의 거절은 아닌데 거절로 알고 힘이 빠지고 의욕이 상실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더 큰 은혜를 주시기 위해 뜸을 들이고 계시는데 그것을 모르고 성급하게 잘못된 길로 가버립니다. 다윗은 하필이면 철천지원수 블레셋 나라로 갔습니다. 인간인지라 여러 가지 계산이 있었겠지요. 아기스에게 갑니다. 미친 체합니다. 대문짝을 긁적거립니다. 침을 수염에 흘립니다. 비굴해집니다. 그렇게 하면 더이상 사울의 위협을 받지 않고 평안히 살 것으로 생각했을 것입니다. 아기스의 도움으로 1년 4개월을 있었습니다(삼상 27:7). 그러나 아기스의 도움은 영원한 도움이 될 수 없었습니다. 아기스가 사울의 위협으로부터 방어해줄 피난처가 될 수 없습니다. 아기스가 이스라엘과 전쟁터에 다윗을 참여하게 합니다. 이때 다윗이 거주하는 마을에 아말렉이 쳐들어와 다윗을 따르는 부하들의 아이들과 아내들을 모두 다 잡아 가버렸습니다. 열받은 부하들이 다윗을 쳐 죽이려고 합니다. 누구도 의지할 자가 못된다는 사실을, 누구도 피난처가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체험한 것입니다. 부모를 의지해도 세월 지나면 힘도 없어지고 내가 도와주어야 할 분이 됩니다. 자식을 의지해도 질병 앞에서, 죽음 앞에서 나의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건강, 실력, 재력, 경력, 명예가 피난처가 될 것같지만 불가항력적 상황을 만나면 다 무용지물입니다. 막장에 갇혀 30일만 되어 보면, 의학으로도 고칠 수 없는 불치의 병에 걸리고, 죽음 앞에 서 있으면, 씻을 수 없는 죄를 저지르면 학위가 무슨 피난처가 되고 재력이 무슨 피난처가 되겠습니까? 부모가 자녀가 아픈데 경제하가 박사가 무슨 피난처가 되겠습니까? 문제를 끊어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10-13절까지 세 번 끊는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는 사람들은 승리 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나는 합격한다. 나는 이긴다. 나는 잘된다. 내가 성공한다. 나는 고침받는다. 나는 승리한다. 나는 정복한다. 하는 형통한다. 나는 행복해진다.” 믿습니까?

 

그래서 다윗은 무엇을 합니까? 영원히 변함없이 내 편이 되어 주신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크게 다급하여 하나님 여호와를 힘입고 용기를 얻었습니다(삼상30:6),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이 군대를 추격하면 따라 잡겠느냐”고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추격하라는 응답을 받고 추격하여 이기고 잃었던 것을 찾고 찾아왔습니다.

오늘 성경 5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위기 가운데 우리는 무엇을 합니까?

“내가 고통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내라는 말에 우리 성도님들의 이름을 넣어 보십시오. 막다른 골목까지 쫓겨난 것입니다. 그때 사람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하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사람을 피난처로 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피난처로 삼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무슨 기도를 드렸습니까?

25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여호와여 구하옵나니 이제 구원하소서 여호와여 우리가 구하옵나니 이제 형통하게 하소서”

 

우리가 내 편이 되어 주신 여호와를 믿고 신뢰하며 부르짖고 부르짖으면 어떤 결과가 주어집니까? “여와와께서 응답하시고 나를 넓은 곳에 세우셨도다” 우리 성도님들에게도 이런 고백이 있으시길 바랍니다. “나를 원하는 대학에 세우셨도다” “나를 원하는 직장에 세우셨도다” “나를 원하는 직급에 세우셨도다” “나를 원하는 자리에 세우셨도다”

 

그래서 어떻게 합니까?

21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주께서 내게 응답하시고 나의 구원이 되셨으니 내가 주께 감사하리이다”

내 편이신 우리 하나님은 우리의 작은 신음 소리에도 응답하여 주십니다. 어떤 위험한 곳에서도 우리와 함께 하셔서 두려움을 다 제거하여 주시고, 도와주시고, 언제나 우리가 피할 피난처가 되어주십니다. 믿습니까? 내게 정답이 없다고 하나님께도 해답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은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은 방법이 없다고 말할 수 있지만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는 방법은 많이 있습니다. 코끼리보다 냉장고를 더 크게 만들면 되고, 코끼를 잡아 나누어 넣도 됩니다. 내게 답이 없다고 하나님께도 답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면 됩니다.

 

계속 감사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19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성전에 들어가 감사하는 것입니다.

1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내 편이 되어 주시는 우리 하나님은 영원히 선하시고 인자하십니다.

29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다시 강조합니다.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그래서 우리가 비록 하나님 마음에 쏙 들지 않아도 우리가 기도할 때 응답해 주시는 것입니다. 응답받은 우리는 감사하는 것이고 감사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22절을 보십시오. 건축자의 버린 돌이 집 모퉁의 머릿돌이 되엇습니다. 예수님이 인용하신 말씀입니다(마21:42). 오늘 시편에는 예수님이 인용하신 말씀이 두 구절이 나옵니다. 26절도 마21:9절에서 인용하였습니다.

23절을 보십시오. 여호와의 행하신 것이 기이한 것입니다. 추격할 때 병들어 버림받은 아멜렉 사람의 종을 만나 인도받았습니다. 그것으로 인하여 이스라엘과 전쟁을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만약 이스라엘과 전쟁에 참전했다면 그는 매국노가 되어 왕이 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알지 못하지만 하나님의 방법으로 기이한 일을 행하십니다. 하나님이 피난처가 되어 주신 것입니다.

“나의 피난처 예수 의지해요 나의 피난처 예수 의지해요 나의 가는 길에 거센 바람 몰아쳐와도 나의 피난처 예수 의지해요. 아바 아버지 나를 사랑하시니 나의 모든 것 주께 드려요 아바 아버지 내가 여기 있으니 주님 영광 위하여 써주세요”

그래서 24절을 보십시오.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입니다.

28절을 보십시오. 감사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주를 높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세상 모두가 다 우리 편이 아닐지라도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나를 위해 십자가에 내어 주신 우리 하나님은 영원히 어떤 경우에도 내 편이 되어 주십니다.

내 편이 되어 나를 지켜보고만 계신 하나님이 아니라 삶의 현장에서 실제 여호와는 내 편이 되어 두려움이 없게 해 주십니다(6). 여호와는 내 편이 되어 도와 주십니다(7). 여호와는 내 편이 되어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하게 합니다(8-9).

6-7절의 내라는 단어에 우리 성도님의 이름을 넣어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열린교회/김필곤목사/2020.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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