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열린말씀 열린설교

열린설교

게시글 검색
은혜받은 가정(1) 꿈의 산실(창37:5-11)
김필곤목사 (yeolin) 조회수:3085 추천수:3 220.120.123.244
2020-05-03 03:41:39

은혜받은 가정(1) 꿈의 산실

창37:5-11

 

5월 가정의 달 어린이 주일입니다. 우리 부모님들은 자식들이 다 잘 되기를 바라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습니다. 의지가 강하여 원하는 대로 모든 것을 잘 하는 사람들도 건강과 자식은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리 스트로벨이 지은 <은혜, 은혜, 하나님의 은혜>에 저자의 아버지 이야기가 나옵니다. 아버지는 변호사였답니다. 교회에서도 직분을 받아 열심히 봉사했고, 교인들을 대상으로 무료 법률자문도 해주었답니다. 부유한 마을에서 살았답니다. 아버지는 열심히 일했고 가족들을 물질적으로 아주 풍족하게 해 주었답니다. 충실한 남편이었고, 지역사회에서도 존경받는 인물이었으며, 사람들에게 헌신적인 친구기도 했답니다. 그런데 아버지와 자신과 관계는 늘 냉랭했답니다. 그가 태어난 뒤로 아버지에게는 보이스카우트 활동도 없었고, 그의 야구 시합을 응원하거나 그의 웅변대회를 지켜보거나 그의 졸업식에 참석하는 일도 없었답니다. 부자간에 깊은 대화를 나눈 적이 단 한 번도 없으며, 아버지는 그에게 가장 필요했던 말을 해 준 적도 없었답니다. 자신은 아버지의 관심을 끌기 위해 성적을 잘 받으려 애썼고, 중학교 회장에 당선되었고, 고등학교 때는 교내 신문의 편집자로 일했고, 지역 신문에 칼럼까지 썼답니다. 그런데도 아버지에게서는 따뜻한 말 한마디도 들을 수 없었답니다. 형제가 5명 있었는데 유독 자기에게만 냉냉했답니다. 어렸을 때 온 가족이 함께 교회에 갔던 어느 날, 예배 후에 아버지는 식구들을 다 차에 태우고 집으로 가면서 자시만 빠뜨려 겁에 질려 미친 듯이 온 교회로 아버지를 찾아다니던 일이 기억이 난다고 했습니다. 고등학교 졸업식 전날 밤, 아버지에게 거짓말을 했다가 들통이 났다고 합니다. 아버지는 분노에 찬 눈을 가늘게 뜨고 자신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왼손을 들어 마치 조롱하듯 새끼손가락을 까딱거리며 “너한테, 줄, 사랑은, 이 새끼손가락만큼도, 없어!”라고 했답니다. 그런데 그 말이 비수처럼 와 박혔답니다. 아버지는 자신이 대들거나 변명하거나 울먹이거나 사과하거나 항복할 줄로 알았지만 그는 시뻘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아버지를 가만히 노려보다가 아버지에게 등을 돌리고 문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 나왔답니다. 자신에게는 아버지가 필요 없다고 생각하고 서둘러 싼 짐 가방을 끌고 뒷문을 쾅 닫고 나와 기차역으로 갔다고 합니다. 그는 기자가 되어 보란 듯이 성공해 반드시 아버지에게 복수할 날이 올 거로 생각했답니다. ‘그날 아버지가〈시카고 트리뷴〉지를 펴는 순간, 1면에 독점 기사를 올린 내 이름이 눈에 들어오겠지.’라고 생각하며 분노에 불타올라서 인생 목표를 세웠답니다. 그렇게 그는 집을 떠났고 나중에 기자가 되었지만 신앙도 떠났답니다. 당시에는 자신도 몰랐던 사실이지만, 하나님을 향한 청소년들의 태도는 보통 자기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크게 영향을 받는 것을 알게 되었답니다. 프로이트는 “아버지의 권위가 무너지는 순간 젊은이들은 자신의 종교적 신념을 잃는다.”라고 했는데 역사 속의 많은 유명한 무신론자 프리드리히 니체 데이비드 흄, 버트런드 러셀, 장 폴 사르트르, 알베르 카뮈, 아르투르 쇼펜하우어, 루트비히 포이어바흐, 볼테르 등은 자기 아버지에게 깊이 실망했거나 버림받았다고 느껴 하늘 아버지를 알려는 마음까지 시들해졌다는 것입니다. 자기 친구 조쉬 맥도웰도 아버지가 난폭한 알코올 중독자였답니다. 조쉬는 “어려서부터 내게 아버지란 아픔을 주는 존재였다. 사람들은 하늘 아버지가 나를 사랑하신다고 말했지만, 내게는 그것이 기쁨이 아니라 오히려 고통으로 다가왔다. 하늘 아버지와 육신의 아버지가 구별되지 않았기 때문이다.”라고 말합니다. 그는 나중에 신앙인이 되지만 청년 시절 ‘완고한 불가지론자’가 되어버렸답니다. 지금은 목사님이 되어 <부활의 증거>, <예수는 역사다> 등과 같은 책을 써서 수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주고 있지만, 그는 예일대 법대를 졸업하고 유명 저널리스트로 철저한 무신론자가 되어버렸다고 합니다. 냉소적 회의론자가 되어 신이 인간을 창조한 것이 아니라 인간이 신을 창조했다고 믿었답니다. 죽음을 두려워하는 인간이 막연히 희망이나 얻어 보려고 신과 천국을 지어냈다고 생각했답니다. 신앙은 굳이 시간들여 알아볼 가치조차 없는 말짱 허튼소리였답니다. 기자로서 최대의 쾌락을 얻는데 최고의 가치를 두고 살았고 자연스럽게 몹시 부도덕하고 술에 찌는 삶이 연속되었답니다. 자아도취에 빠졌고 설명하지 못하는 분노가 부글부글 끓었고 아내와 싸우고 홧김에 발길질 하여 거실 벽이 구멍이 뚫릴 정도였답니다. 아내와 어린 딸은 눈물을 흘렸고 어린 딸은 아버지가 술 먹고 들어오면 자기 방으로 들어가 숨었답니다. 은혜를 받은 가정에서 자란 그는 결국 하나님께 돌아와 과거를 다 회개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증거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는 왜 아버지가 그랬는지를 알게 되었답니다. 어머니가 암에 걸려 천국에 가기전 어머니와 단둘이 진지하게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답니다. 자신이 태어나기 전 3남매를 낳아 아버지는 처음으로 해 보는 아버지 노릇을 열심히 했다고 합니다. 아들들의 야구부에서 코치를 맡았고, 보이스카우트 팀을 이끌었고, 고등학교 후원회 회장이 되었고, 이곳저곳 다니며 가족끼리 휴가를 보냈고, 각종 체조 경기와 졸업식에 참석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오랜 시간이 흐르고 아버지 노릇에 어떤 기대감도, 열정도 사라졌을 때 뜻밖에 자신을 임신하게 되었답니다. 아버지는 난감해 했고 아버지의 장래 계획에 차질이 생겨 버렸다는 것입니다. 세 자녀를 어느 정도 키우고 난 뒤 가정 형편도 넉넉해진 터라 여행도 다니며 더 자유를 누리고 싶었는데 자신은 실수로 태어난 아이가 되어 버렸답니다. 그는 늘 궁금했다고 합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 과연 나는 눈물을 흘릴까?’ 아버지에게 들은 “자신한테 줄 사랑이 새끼 손가락만큼도 없다”는 말이 가슴에 못이 박힌 것입니다. 가출한 후 아버지는 계속 자신에게 연락하지 않았답니다. 어머니는 항상 아버지의 진심은 아니라고 전화와 편지로 말했지만 아버지와는 점잖게 먼 관계를 유지했답니다. 아버지가 등록금을 대 주었지만 한 번도 감사하지 않았답니다. 아버지는 편지를 쓰신 적도 자신의 집을 방문한 적도 없었답니다. 심지어는 졸업식에도 오지 않았고 결혼식 축하 연회를 열 때도 아버지와 흉금을 터놓고 대화하지 않았답니다. 그가 시카고 트리뷴지의 기자가 되었을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답니다. 그는 하염없이 흐느꼈다고 합니다. 열린 관 앞에 오래오래 서 있었답니다. 평생의 생각이 주마등처럼 스치고 지나갔답니다. 깨진 부자 관계에서 자신의 몫만큼은 자신이 책임져야 했지만, 그는 평생 수없이 합리화며 ‘아버지가 먼저 나한테 사과하셔야지.’ ‘내가 왜 굽실거려야 해?’ ‘나중에 해결하면 되지 뭐.’라고 했답니다. 그런데 관에 누워있는 아버지를 향해 “죄송합니다, 아버지.”라고 했답니다. 지난 세월 아버지에게 반항하고 거짓말하고 아버지를 무시했던 게 죄송했다고 합니다. 배은망덕한 자신의 행동이 정말로 죄송했다고 합니다. 마음속에 독처럼 품었던 원한과 앙심 때문에 아버지께 죄송했다고 합니다. 장례식장에는 조문객들이 밤새 찾아와 어머니와 유가족을 위로해 주었다고 합니다. 아버지의 사업 동료 한 분이 다가와 자신 옆에 앉으며 물었답니다. “자네가 리인가?” 예라고 대답하자 “음, 늘 말로만 듣다가 드디어 이렇게 만나니 좋구먼.”라고 말하며 “저 친구는 입만 열었다 하면 자네 얘기였어. 자네와 자네가 하는 일을 끔찍이도 자랑스러워하면서 대단하게 여겼지. 자네의 글이〈시카고 트리뷴〉에 실릴 때마다 그걸 오려서 모든 사람에게 보여 주곤 했다네. 자네가 예일대학교에 갔을 때는 그야말로 좋아서 어쩔 줄을 모르더군. 우리한테 늘 자네 아이들의 사진도 보여 줬다네. 아들 자랑이 끊이질 않았지. 이름만 듣다가 드디어 얼굴을 보니 좋구먼. 아버지한테서 자네 이름을 귀가 따갑게 들었거든. ‘이것도 리가 한 거야.’ ‘저것도 리가 한 거야’, ‘1면에 실린 리의 기사를 보았나?’ 하긴 자네도 이미 다 알고 있는 얘기겠지만 말이야.” 그는 몇 년 후에 예수님의 제자가 되고 나서 깨달았다고 합니다. 하늘 아버지인 하나님의 사랑은 무제한이고 무조건이고 하나님의 은혜는 아낌이 없고 다함이 없음을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자신은 하나님이 만드신 작품이고 하나님의 자랑거리이고 하나님은 가족안에 내가 없으면 차마 영원을 보내실 생각조차 하지 못하시는 분인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뒤흔들었고 온 가족이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크리스천 소설가가 되었고 아들은 탈봇신학교에서 교수를 하고 있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성도님 가정이나 저의 가정에 은혜를 주어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게 하고 자녀를 양육하며 살게 하고 있습니다.

우리를 사랑하는 우리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은혜란 받을 만한 자격이 없는 자들에게 아무런 값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물을 말합니다. 죄인들에게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의 호의입니다.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의 선물입니다. 대가를 지불하고 받는 것이 아니라 거저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에는 크게 두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일반은총이라고 말하는 일반적인 은혜입니다. 공기나 비나 햇빛처럼 악한 사람이나 선한 사람이나 모든 사람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시험공부 열심히 한 불신자가 공부하지 않은 신자보다 시험 점수가 잘 나오는 것은 일반은혜에 속한 것입니다. 또 하나는 특별은총이라고 말하는 특별한 은혜입니다. 특별 은혜는 믿는 사람만 받은 것으로 죄로 죽을 수 밖에 없는 인간을 아무런 공로 없이 믿음을 선물로 주셔서 구원해 주시는 것입니다. 구원뿐 아니라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삶의 현장에서 특별히 베풀어 주시는 것도 특별 은혜입니다. 말씀을 깨닫는 은혜도 특별한 은혜입니다. 불신자는 아무리 말씀을 들어도 특별한 은혜를 받지 못하여 말씀을 깨닫지 못합니다. 기도 응답을 받은 은혜도 신자에게만 주시는 특별한 은혜입니다. 용서받을 수 없는 자가 용서받는 것도 믿는 사람만 누리는 특별한 은혜입니다. 절망적인 상황에서 문제 해결을 받고 일어나는 것도 믿는 사람이 누리는 특별한 은혜입니다. 위험한 상황 속에서 보호받은 은혜, 갈길을 알지 못하는 갈림길에서 인도받는 은혜 등도 신앙생활을 하는 신자들이 받는 특별한 은혜입니다. 신학자 토머스 C. 오든은 “은혜가 있어야만 진리를 알고, 죄를 피하고, 바르게 행동하고, 제대로 기도하고, 구원을 갈망하고, 신앙생활을 시작하고, 믿음을 지킬 수 있다”라고 말합니다. 은혜는 바로 “그리스도인의 삶의 원동력”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나와 예배드리는 우리 성도님들의 가정은 이런 특별한 은혜를 받은 가정입니다. 믿습니까? 5월 한 달 동안 “은혜 받은 가정”이라는 주제로 매 주 말씀을 묵상할 텐데 오늘 첫 번째 주제는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를 받은 가정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꿈을 주시고 그 꿈을 하나님이 이루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은혜 받은 가정은 하나님의 꿈의 산실이 되고 꿈이 자라는 인큐베이터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꿈이 죽는 장례식장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1. 특별한 은혜를 받는 가정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꿈을 주십니다.

요셉의 가정은 특별한 은혜를 받은 가정입니다. 그런데 요셉이 살고 있는 가정은 어떤 가정입니까? 참으로 불우한 가정이었습니다. 아버지 야곱은 욕심이 많은 사기꾼이었습니다. 아버지 야곱의 이름의 뜻은 움켜쥔다는 말로 형의 장자권과 축복권을 훔쳐 도망한 사람입니다. 어머니가 넷이나 되었습니다. 어머니들은 시기와 질투가 많았습니다. 일찍 친어머니 라헬이 동생 베냐민을 낳다 돌아가셨습니다. 어머니를 질투했던 세명의 계모와 같이 살았습니다. 열명의 배다른 형제들이 아버지 야곱의 편애로 요셉을 죽도록 미워했습니다. 누이인 디나의 강간당하였습니다. 형인 루우벤이 서모와 동침하였습니다. 오늘날 이런 가정을 은혜받은 가정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이런 가정에서 살면 미치고 돌아버릴 것입니다. 그는 병리적 가족 구족, 과잉보호, 편애, 부도덕, 따돌림, 배척 등으로 어릴 때부터 부정적인 외상경험을 하고 자랐습니다. 16살 이전에 이런 일을 겪으면 왠만한 사람은 극심한 무력감과 심리적 고통, 왜 살아야 하는지 존재론적 갈등을 하게 됩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이런 가정에서 살면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나 트라우마로 미래에 대한 꿈을 꾸지 못하고 좌절과 절망 가운데 가출하던지, 자살해 버리던지, 아무 생각 없이 되는대로 되라하며 막살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가정에서 사는 사람들은 다릅니다. 절체절명의 순간마다 하나님이 도와주시지 않았더라면 몇백 번이나 길에서 죽었어도 이상하지 않을 야곱과 그의 가족들의 삶이었지만 하나님은 그 가정에 특별한 은혜를 주셨습니다.

이런 가정에서 사는 요셉에게 하나님은 무엇을 주었습니까? 7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우리가 밭에서 곡식 단을 묶더니 내 단은 일어서고 당신들의 단은 내 단을 둘러서서 절하더이다” 요셉은 꿈을 꾸고 형제들에게 이야기를 합니다. 요셉의 형들이 요셉에게 언젠가 절을 하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형들이 복종할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8절을 보면 그 해석이 바로 나옵니다. 요셉이 왕이 되고 다스린다는 것입니다. 9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요셉이 다시 꿈을 꾸고 그의 형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또 꿈을 꾼즉 해와 달과 열한 별이 내게 절하더이다 하니라” 이 꿈에 대한 해석도 바로 10절에 나와 있습니다. 요셉의 부모와 형들이 땅에 엎드려 절하는 날이 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버지 야곱의 말에는 “참으로 가서 땅에 엎드려 네게 절하겠느냐”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이 꿈이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는 명백한 기록은 없습니다. 그러나 요셉 이야기 전체를 보면 이것은 하나님이 주신 꿈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요셉이 꾼 꿈은 자기 과시를 위해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보여준 꿈이었습니다. 그는 첫 번째 꿈에서 “보라”라는 말을 세 번이나 합니다. 직역하면 “보소서 우리가 밭에서 곡식을 묶더니, 보소서 내 단은 일어서서, 보소서 당신들이 단은 둘러서서 내 단에 절하더이다”입니다.

두 번째 꿈에서 “보라”라는 말을 두 번이나 합니다. “보라 내가 다른 꿈을 꾼즉, 보라 해와 당과 열한 병이 내게 절하더이다”입니다. 꿈으로 얼마나 요셉이 흥분되어 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아버지 야곱은 벧엘에서(창28:10-19) 계시적인 꿈을 꾸어 본 사람입니다. 그 꿈을 듣고 어떻게 반응합니까? 처음에는 책망했지만 하나님의 계시적인 꿈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마음에 담아 두는 것입니다. 11절을 보십시오. 꿈에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첫째는 잠자는 동안 꾸는 일반적인 꿈입니다. 둘째는 하나님께서 꿈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보여주는 계시적인 꿈입니다. 하나님 체험이 많은 야곱은 그들이 목자임에도 불구하고 농부로서 나타나고 있는 것을 보면서 앞으로 양식과 관련된 일이 일어날 것을 마음에 간직했을 것입니다. 당시 해와 달 별은 숭배의 대상이지 파라오를 상징하는 해가 요셉에게 절을 한다는 것은 앞으로 이집트 왕을 비롯하여 많은 높은 사람들에게 경배를 받는 대단한 일이 벌어질 것으로 생각했을 것입니다. 이것은 일반적인 꿈이 아니라 계시적인 꿈이었습니다. 요셉이 위대한 인물이 될 것인데 단순히 가족과 그들의 민족 내에서만 높아지는 것이 아니라 해와 달과 별들까지 경배하는 우주적 사건이 될 일이 아들을 통해 일어날 것으로 마음에 담아 두는 것입니다.

이것은 은혜받은 야곱 가정에 살고 있는 요셉에게 하나님이 주신 꿈이었습니다. 단순한 꿈이 아닙니다. 이미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을 보여 주었습니다. 창세기 15장 13-14절을 찾아 읽어 보겠습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정녕히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게 하리니 그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치할찌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아브라함에게 계시적인 꿈을 통해 보여 주신 것을 요셉에게 계시적인 꿈을 통해 꿈을 꾸게 해 주신 것입니다. 이것을 요셉의 형제들을 몰랐을 지라도 야곱은 아버지로 이삭으로부터, 할아버지 아브라함으로부터 들어서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은혜받은 가정에 하나님의 꿈을 주십니다. 아무리 안 좋은 가정 환경에서 태어나고 아무리 않좋은 일을 만났다고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이 주신 꿈만 가지게 되면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가 아니라 외상 후 성장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좋지 않은 경험과 가정환경이 오히려 하나님의 꿈을 이루는 도구가 되게 됩니다.

필립 얀시가 “우리가 아무리 깊이 가라앉아도 하나님의 은혜는 거기까지 찾아온다. 동시에 은혜는 우리를 그 자리에 두지 않고 새로운 고지로 이끈다”라고 말한 것처럼 은혜를 받으면 어떤 어려움도 극복하고 일어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꿈을 가지게 되면 자신과 세상을 보는 관점의 변화가 일어나 자신의 약점을 인식하고 강점을 개발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주신 꿈을 가지게 되면 대인관계의 변화가 일어나고 트라우마를 극복하며 삶을 바라보는 태도가 변화됩니다. 사람들은 외상적 사건 즉 죽음 또는 죽음의 위협, 신체적 상해, 성폭력, 지진이나 화산폭발, 전쟁, 살인, 납치, 교통사고, 화재, 강간, 폭행 등을 만나도 하나님이 주신 꿈을 가지게 되면 살 이유가 있고 견뎌야 할 이유가 있고 버텨야 할 사명감이 생기는 것입니다. 5월 가정의 달에 은혜받은 우리 성도님의 가정은 하나님이 주신 꿈을 가지시길 바랍니다. 은혜받은 노아도, 아브라함도, 모세도, 다니엘도, 느헤미야도, 에스더도, 바울도 한평생 하나님이 주신 꿈을 가지고 하나님의 꿈을 이 땅에 성취하고 살았습니다. 아무리 좋지 않은 가정환경이 주어진다고 해도 하나님이 주신 꿈을 붙들고 살아야 합니다. <은혜, 은혜, 하나님의 은혜>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리 스트로벨가 차를 차고 가다 라디오에서 스테파니 패스트의 이야기를 들었다고 합니다. 1950년에 발발한 한국전쟁에 참전한 미군에 의해 태어났다고 합니다. 혼혈아로 태어나 아버지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어머니에게 버림받아 거리의 아이가 되었다고 합니다. 엄마는 삼촌이 올 거라고 역에 버렸는데 메뚜기와 들쥐를 잡아먹으며 연명했다고 합니다. 먹을 것을 훔치다 잡혀 우물에 던져지기도 했지만 어떤 할머니가 불쌍히 여겨 두레박을 내려 주어 살아나기도 했다고 합니다. 농부들이 물레방아에 묶어 돌려 죽을 지경에 이르기도 했는데 흰옷입은 할아버지가 살려 주기도 했다고 합니다. 대전에 가 남자아이들에게 성추행을 당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콜레라에 걸려 사경을 헤매었는데 스웨덴 출신의 월드비전 간호사에게 발견되어 살아났다고 합니다. 일곱 살 때인데 믿음 좋은 간호사 에릭슨 쓰레기 더미에 있는 그를 지나치려고 했는데 “그 아이는 내 것이다.”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를 고아원에 데리고 왔다고 합니다. 그곳은 아기들만 있는 곳이기에 자신은 갈 수 없는 곳인데 그곳에서 아이들을 안아주고 노래도 불러주며 잔심부름을 하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미국인 부부가 남자 아기를 입양하러 왔다고 합니다. 남편은 아이를 안고 눈물을 흘리더라는 것입니다. 세 번째 아기를 놓고 자신을 보더라는 것입니다. 아홉 살 때였답니다. 온몸에는 종기가 났고, 얼굴도 흉터 투성이인 자신을 어루만져 주었답니다. 그때 손을 확 뿌리쳐 버리고 그분의 눈을 쳐다보며 침을 뱉고 달아나 옷장에 숨었답니다. 그런데 그 부부는 그를 딸로 삼았답니다. 애초에 꿈꾸던 대로 남자 아기도 아이고 고집쟁이 소녀, 마음의 상처와 몸의 병든 아이, 오랜 결핍과 학대의 여파에 시달린 아이를 택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미국에서 갓 도착한 선교사 부부였답니다. 그는 그집의 식모가 된 줄 알았답니다. 그런데 너는 내 딸이라고 ‘스테파니’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답니다. 마을에 나가면 모두 그를 대단한 존재로 대해 주었답니다. 튀기라 놀림받던 아이가 공주 취급을 받았답니다. 그래서 그는 ‘나는 엄마의 딸이에요!’ 라고 물었답니다. 그 때 엄마는 눈물을 흘리며 ‘그래, 스테파니, 너는 내 딸이야!’라고 했답니다. 상상을 초월하는 학대와 고생, 유기와 거부, 치욕과 고통까지 다 품고 어머니는 자신을 딸로 삼아 주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부모가 믿는 예수님을 만났다고 합니다. ‘예수님이 나를 아신다, 그런데도 나를 사랑하신다!’ 그분이 내 모든 수치를 아시고, 내 모든 죄를 아시고, 내 모든 두려움을 아시고, 내 모든 외로움을 아시면서도 날 사랑하신다는 것을 알고 인생이 달라졌다고 합니다. ‘나는 강간당했으니 그분이 사랑하실 수 없어! 학대받았으니 사랑하실 수 없어! 마음속에 지독한 분노가 있으니 사랑하실 수 없어! 아빠는 나더러 용서해야 한다는데 나는 용서할 마음이 없으니 이런 나를 하나님이 어떻게 사랑하시겠어?’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자신을 예수님은 사랑하신다는 것을 깨닫고 변화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는 자신의 삶에 없었더라면 더 좋았을 뻔한 사건은 하나도 없다고 고백합니다. 자신의 삶의 모든 일이 자신을 예수님께 인도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꿈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그는 선교사와 결혼하여 자신과 같이 학대당한 경험이 있는 여성들을 상담하는 꿈을 가지고 사역을 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의 글을 읽으며 “솔직히 고백하건대 제 삶에 없었더라면 더 좋았을 뻔한 사건은 하나도 없습니다.”라는 말이 가슴에 와 다았습니다. 어떤 가정에서 자라던 그 가정이 하나님의 꿈을 키우는 산실이 되면 우리의 삶은 하나도 헛된 것이 없습니다. 오프라 윈프리는 작은 시골마을에서 사생아로 태어나 어린시절 엄한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슬하에서 자랐습니다. 그녀의 어머니는 파출부 일을 하였고 9살 때 삼촌에게 처음 성폭행을 당한 뒤로 몇 명의 친척들과 주변인들에게 성폭행을 당했으며, 14살의 나이에 아이를 낳기까지 했습니다. 아이는 몇 개월만에 죽었고 그녀는 마약을 하기도 했고 비만으로 고통을 당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이 모든 악조건을 극복하고 미국을 움직이는 가장 영향력 있는 100명중 1위로 선정되기도 했고 '하포 엔터테이먼트 그룹'의 대표, 6억 달러(한화 8,775억)의 갑부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렇게 된 그녀의 힘의 원동력은 가난과 아픔을 자신에게 준 하나님의 꿈(사명)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녀는 성경을 읽으며 모세를 자신의 모델로 삼았다고 합니다. 그는 네 가지 사명을 말합니다. "첫째, 남보다 더 가졌다는 것은 축복이 아니라 사명(꿈)이다. 둘째 남보다 아파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고통이 아니라 사명(꿈)이다. 아파 본 사람만이 아픔을 겪는 사람에게 봉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셋째, 남보다 설레는 꿈이 있다면 그것은 망상이 아니라 사명(꿈)이다. 넷째, 남보다 부담되는 어떤 것이 있다면 그것은 사명(꿈)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명을 하나님이 주신 꿈을 바꾸어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2. 특별한 은혜를 받은 가정에 주신 하나님의 꿈은 하나님이 이루어 주십니다.

요셉에게 꿈을 품게 하신 하나님은 어떻게 그 꿈을 이루시게 하였습니까? 요셉은 결국 당대 최고의 나라 애굽의 국무총리가 되었습니다. 2인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형제들이 그에게 실제적으로 절을 하였습니다. 요셉의 나이 39세 쯤 될 때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42장 6절을 찾아 읽어 보겠습니다. “때에 요셉이 나라의 총리로서 그 땅 모든 백성에게 곡식을 팔더니 요셉의 형들이 와서 그 앞에서 땅에 엎드려 절하매” 43장 28절에, 44장 14절에 형제들이 와서 절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누가 요셉의 꿈을 이루게 하였습니까? 요셉이 주도적으로 그 꿈을 이루었겠습니까? 아닙니다. 요셉의 고백을 보십시오. 창45:5절을 찾아보십시오.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창 45:5)" 누가 애굽으로 보내었다고 말씀합니까? 애굽에 팔려온 것이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렇게 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시편 105편 16절 이하를 찾아 읽어 보십시오.

“그(하나님)가 또 그 땅에 기근이 들게 하사 그들(야곱의 가족들)이 의지하고 있는 양식을 다 끊으셨도다 그(하나님)가 한 사람을 앞서 보내셨음이여 요셉이 종으로 팔렸도다 그의 발은 차꼬를 차고 그의 몸은 쇠사슬에 매였으니 곧 여호와의 말씀이 응할 때까지라 그(하나님)의 말씀이 그(요셉)를 단련하였도다(시 105:16-19)”

하나님이 이루신 것입니다.

자신의 꿈을 다 성취하고 노년이 된 요셉의 고백을 보십시오.(창50:18-21)

"그의 형들이 또 친히 와서 요셉의 앞에 엎드려 이르되 우리는 당신의 종들이니이다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당신들은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더라" 모든 것을 하나님께 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소원이 성취된 것은 하나님의 섭리, 하나님의 돌보심이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 (잠 16:9)" "사람의 마음에는 많은 계획이 있어도 오직 여호와의 뜻만이 완전히 서리라 (잠 19:21)" 은혜로 우리에게 주닌 꿈은 우리 하나님께서 주도적으로 성취해 주실 줄 믿습니다.

어떻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꿈을 주시고 그 꿈을 구체적으로 성취해 주십니까?

 

1) 믿음으로 고난을 극복케 하심으로 꿈을 이루어 주십니다.

꿈은 고난과 기다림을 먹고 자라는 나무입니다. 꿈을 가졌다고 당장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요셉에게 이 꿈이 어떻게 이루어집니까? 5절을 보십시오. 요셉이 꿈을 꾸니까 형제들이 더욱 미워합니다. 꿈을 이루는데 장애물이 가장 먼저 가까운 자기 형제들이었습니다. 8절을 보십시오. 꿈을 이야기 하니까 자신을 지지해 주는 것이 아니라 그를 더욱 미워합니다. 11절을 보십시오. 형들은 시기를 합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꿈꾸면 가장 반대하고 무시하는 사람들은 멀리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가까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꿈이 이루어지면 손해를 보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누군가 마음에 그 꿈을 간직해 주는 사람도 있습니다. 아버지 야곱은 황당한 꿈같지만 마음에 품어 주었습니다. 반대자와 투쟁할 것이 아니라 지지자와 함께 꿈을 꾸는 것이 중요합니다. 언제나 잃은 것 볼 필요가 없습니다. 있는 것을 보아야 합니다. 떠나는 사람보고 불평할 것 없습니다. 남아 있는 사람과 함께 하면 되는 것입니다.

반대하는 사람은 하이에나처럼 끝까지 물고 늘어집니다. 요셉이 하나님이 주신 꿈을 품지 못하도록 반대하는 형들을 보십시오. 형들의 미움과 시기는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요셉이 양치는 형제들을 방문할 때 형제들이 어떻게 합니까? 18절을 보십시오. 요셉을 죽이려고 합니다. 웅덩이에 생매장할 계획을 세웁니다. 그 때 르우벤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졌지만 결국 17살의 나이에 은 20개에 인신매매되어 애굽의 노예로 팔려갔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꿈을 주신 하나님을 한 번도 원망하지 않습니다. 자신을 그렇게 죽이려고 한 형제들을 원망하지 않습니다.

그것으로 끝이 납니까? 아닙니다. 보디발의 집의 노예가 되었지만 보디발의 아내가 꽃미남 요셉을 유혹합니다. 39장 7절을 보십시오. 10절을 보십시오. 이 때 요셉이 어떻게 합니까? 9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요셉은 믿음으로 그 유혹을 과감하게 뿌리칩니다. 만약 요셉이 이 유혹에 넘어갔다면 그의 꿈은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을 것입니다. 요셉이 겪었던 많은 고난은 오히려 요셉의 믿음을 더욱더 하나님만 의지하고 하나님 앞에서 사는 믿음을 강하게 만들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이런 일을 당하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앓게 됩니다. 많은 사람이 인생을 살아가면서 한 번 이상 외상을 경험한다고 합니다. 우리나라는 인구의 78.8%가 한 번 이상의 외상 사건을 경험한다고 합니다. 신체적인 손상 및 생명을 위협할 정도의 강력한 스트레스를 직접 겪으면 외상사건에 대한 지속적이며 반복적인 재경험이 마음속에서 일어나게 됩니다. 외상을 연상시키는 기억, 감정, 대화 주제, 단서 등을 피하고 이로 인해 일상생활의 무기력을 초래하고 대인관계를 회피하게 됩니다. 사소한 반응에도 예민하게 반응하고 감정표현에 있어서도 심한 기복을 보이게 됩니다. 외상 경험 이후의 불안이나 공포, 우울이나 무기력으로 인해 대인관계에서 어려움을 나타내는데 이는 부부의 불화, 이혼, 직장 내 갈등으로 인한 실직 등의 이차적 문제를 야기시키게 됩니다. 삶에 대한 전반적인 흥미를 상실하며 우울과 불안, 분노, 약물이나 술에 의존하게 됩니다. 그런데 요셉에게는 이런 현상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더 하나님을 의지하고 더 믿음을 견고히 하고 하나님의 꿈을 이루어 드렸습니다.

신약 성경은 이런 요셉의 믿음의 삶에 대하여 한 마디로 이렇게 정리해 주시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요셉은 임종 시에 이스라엘 자손들이 떠날 것을 말하고 또 자기 뼈를 위하여 명하였으며 (히 11:22)" 요셉은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하나님의 언약 애굽으로 내려가지만 400년 후에 약속의 땅으로 갈 것을 믿음으로 바라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의 가정 환경, 아버지와 결별 등은 결국 요셉의 믿음을 크게 만들기 위한 하나님의 훈련이었습니다.

Flower는 신앙의 발달단계를 7단계로 구분합니다.

0단계는 미분화된 신앙단계로 3세 미만의 영아기 영유아들에게 해당됩니다. 이 시기는 사

고의 개념능력이 갖추어지기 이전 단계이므로 언어 구성이 형성되기 이전 상태입니다.

1단계는 직관적-투사적 신앙단계이며 3세로부터 6세에서 7세의 어린이에게 해당됩니다. 투사적 신앙은 아동이 밀접하게 연관된 어른들의 신앙의 모습, 분위기, 실천 행동, 이야기들이 매우 큰영향을 미칠 수 있는 환상에 의한 모방적 단계입니다. 이 단계의 어린이는 분별력이나 이해하는 능력이 없고 아직 내적 구조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2단계는 신화적-문자적 신앙단계인데 6세에서 7세부터 11세에서 12세 사이에 일어납니다.

이 연령의 어린이는 자신의 힘으로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설화와 신조, 종교의식에 대한 이해가 시작되는 단계입니다.

3단계는 종합적-전통적 신앙단계, 사춘기에 접어드는 12세에서 17, 18세에 해당하는 청소년신앙의 단계입니다. 가치, 믿음, 신념의 종합이 가족, 지역, 신앙공동체 내에서 주요한 타자들에 의해서 형성되는 단계입니다.

4단계는 개별적-성찰적 신앙단계, 17세에서 18세 이후에, 좀 더 개인적으로 선택되고 독립적인 신앙의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형들에 의해 애굽으로 팔려가는 고통의 외상경험은 분명 요셉으로 하여금 나만의 하나님을 경험하고 체험하는 개인적이고 독립적인 신앙의 첫걸음으로 작용하였을 것입니다. 타인의 신앙적 요구에 맞추어 살게 된 내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진정한 나를 돌아보게 되는 성찰적 신앙을 갖게 되는 계기가 되었을 것입니다.

5단계는 결합적 신앙단계, 이 단계의 신앙은 30세 이전에는 거의 나타나지 않고 중년기에 나타나는 신앙의 발달단계라 할 수 입니다. 이 신앙의 특징은 자기 자신의 입장을 넘어서 보다 타인의 입장에서의 수용이 일어납니다.

6단계는 보편화된 신앙단계로 현실의 사건보다도 궁극적인 관심과 만남에 초점을 기울입니다. 세상 안에 살면서 초월적인 모습으로 삽니다. 하나님과 연합한 삶을 통해 하나님의 유일신 신앙과 하나님의 주권이 강조하고 사는 신앙입니다. 요셉은 하나님의 꿈을 품고 고난을 통해 이런 신앙으로 성장한 것입니다.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로마서 11:36)”라는 진리를 삶으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에 있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리 위함입니다. 하나님의 꿈을 이루어드리는 것이야 말로 가장 가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주신 꿈을 품으면 어떤 어려움과 고난, 역경이 와도 믿음으로 이겨야 합니다. 믿음이 결국 승리하게 하는 것입니다.

꽃은 흔들리면서 피는 것입니다. 터널이 길어도 반드시 끝이 오는 것입니다. 밭에 뿌린 씨앗이 열매를 맺기까지는 거름도 주고 물도 주고 적당한 햇빛과 바람이 필요하듯이 꿈이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시간과, 노력, 인내, 도전이 필요합니다. 씨를 뿌려 열매를 거두기까지는 태풍도 오는 것이고 가뭄도 있고 벌레도 달려들고, 때로는 한파도 다가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믿음으로 극복하고 나아가면 하나님이 주신 꿈은 반드시 하나님께서 이루어 줍니다.

 

2) 하나님이 함께 하심으로 꿈을 이루어 주십니다.

요셉에게 꿈을 주신 하나님은 요셉을 그대로 방치하지 않았습니다. 39장 2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하게 되었다고 말씀합니다. 그 주인도 그것을 인정합니다. 3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하심으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집 모든 일을 요셉에게 맡겼습니다. 요셉 때문에 그 집에 하나님이 복을 주십니다. 요셉이 감옥에 갔습니다. 그 때 하나님은 또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21절을 보십시오. 감옥에서도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셨습니다. 어느 정도 함께 하셨습니까? 23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하니까 범사에 형통한 것입니다. 꿈을 이룰 수 있도록 하나님이 보호해 주신 것입니다. 여건을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당시 고난을 이해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억울한 일을 당한 것입니다. 부도를 맞은 이유를 모르는 것입니다. 실직된 이유를 모르는 것입니다. 낙방한 이유를 모르는 것입니다. 취업이 안 된 이유를 모르는 것입니다. 왜 하기 실은 일을 해야 하는 지 그 이유를 모르는 것입니다. 왜 감옥에 갔습니까? 하나님께서 바로를 만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바로의 신하가 감옥에 들어 와 그 사람을 만나게 되고 결국 그 신하를 통해 바로를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당시 30살에 국가 공무원이 될 수 있는데 그때까지 감옥에 있다 석방되어 순식간에 나라 살림을 총괄하는 총리로 발탁이 된 것입니다. 이러한 요셉의 삶에 대하여 신약 성경에서는 한 마디로 이렇게 정리하고 있습니다. "여러 조상이 요셉을 시기하여 애굽에 팔았더니 하나님이 그와 함께 계셔 그 모든 환난에서 건져내사 애굽 왕 바로 앞에서 은총과 지혜를 주시매 바로가 그를 애굽과 자기 온 집의 통치자로 세웠느니라(행7:9-10)"

요셉이 많은 고난을 이기고 믿음을 지키며 꿈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궁극적으로는 요셉의 인간적인 힘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 많은 시험 속에서도 항상 요셉과 함께 동행하시고 그에게 고난을 이길 힘을 주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에게 꿈을 주신 우리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하셔 우리의 꿈을 이루게 만들어 주십니다.

 

3) 하나님은 재능을 주시고 재능을 극대화하여 꿈을 이루어 주십니다.

요셉이 꿈을 성취하게 하는 결정적인 요인이 되는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40장 8절을 보십시오. 꿈입니다. 꿈을 해석해 주는 것입니다. 감옥에 들어온 바로의 술 맡은 관리와 떡 굽는 관리의 꿈을 해석해 준 것입니다. 바로의 술 맡은 관원장이 꿈을 꾸었는데 자신 앞에 포도나무가 있는데 그 나무에 세 가지가 있고 싹이 나서 꽃이 피고 포도가 열리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따 포도즙을 만들어 바로에게 바쳤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요셉이 해석해 준 것입니다. 3일 후면 복직된다는 것입니다. 요셉의 말대로 신비하게 그대로 된 것입니다. 2년이 지났습니다. 술 맡은 관원장은 옛날 일을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잊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를 통해 꿈을 꾸게 한 것입니다. 자신이 나일강 가에 서 있는데 아주 건강한 암소 7마리가 갈밭에서 풀을 뜯어 먹고 있는 것입니다. 그 후에 아주 파리한 소 7마리가 나타나 아름답고 살진 소를 잡아먹는 것입니다. 이상한 꿈이다고 생각하고 일어났는데 다시 잠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꿈을 또 꾼 것입니다. 한 줄기에 무성하고 충실한 일곱 이삭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 후에 가늘고 마른 일곱 이삭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가는 일곱 이삭이 무성하고 충실한 이삭 일곱을 잡아먹어 버리는 것입니다. 바로 왕이 이상하여 현인들을 불러 그 꿈을 해석해 달라고 하자 아무도 해석하는 사람이 없는 것입니다. 이 때 술 맡은 관원장이 요셉을 기억한 것입니다. 요셉이 바로에게 불려갔습니다. 이 때 요셉이 뭐라고 합니까? 41장 16절을 보십시오. 내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해몽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꿈을 해몽하는 재능이 자신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분명하게 말합니다. 28절을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앞으로 하실 일을 바로에게 보여주었다는 것입니다. 일곱 해 풍년이 들고 일곱 해 흉년이 들터인데 풍년 때 흉년을 대비하라는 것입니다. 이때 바로가 어떻게 합니까? 38절을 보십시오. 그래서 요셉은 어떤 지휘를 얻게 됩니까? 41절을 보십시오. 애굽 온 땅을 다스리는 총리가 되었습니다. 30세에 그 꿈이 이루어졌습니다(46) 구체적으로 어떻게 요셉이 꿈이 이루어졌는가를 보십시오. 42장 6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하나님께서 결국 요셉의 꿈을 이루어 주었습니다. 무엇을 통해서입니까? 단순합니다. 우리 하나님이 요셉에게 주신 재능, 요셉의 꿈을 해석해 주는 재능을 통해서입니다. 아무것도 아닌 것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별 볼 일 없는 것같이 보이는 나에게 주어진 최대화할 때 그것을 통해 꿈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꿈을 일루고 싶다면 내 가진 재능으로 작은 일에도 꾸준히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각 개인들에게 재능을 주어 하나님의 꿈을 이루십니다. 닉 부이치치를 보십시오. 송명희 시인을 보십시오. 그들은 자신에게 주신 재능을 통해 하나님의 꿈을 이루었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권력과 부, 실력 모든 것이 갖추어졌다고 하나님의 꿈을 이루는 것이 아닙니다. 주어진 재능 하나님이 쓰시면 됩니다. 대부분 꿈을 이룬 분들은 그 분야에서 미련할 정도로 우직하게 몸담은 사람들입니다. 처음에는 보잘 것 없이 시작했지만 우직한 노력을 통해 하나씩 이루어가는 사람들입니다. 요셉의 꿈은 어느 날 순식간에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자신의 재능을 최선을 다하여 활용한 사람입니다. 꿈은 장식품으로 생각하지 않고 실제의 삶에서 실행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세상엔 쉬운 일도 없지만 안 되는 일도 없습니다. 묻어두었던 핵심 역량을 총동원하여 잠재력을 개발하면 됩니다. 요셉은 넘어지고 또 넘어졌지만 오뚝이 같이 일어났습니다. 꿈을 품고 인내하였습니다. 꿈을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성실한 삶을 살았습니다. 꿈을 이루기 위해 유혹을 이겼습니다. 하나님께서 항상 함께해 주신다는 확신에 찬 삶으로 꿈을 이루었습니다.

 

은혜받은 가정에서 사는 우리들에게 하나님은 하나님의 꿈을 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꿈을 품게 하시고 이루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 성도님의 가장이 하나님의 꿈을 이루는 산실이 되시길 바랍니다. 같이 따라해 보겠습니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빌 2:13)

 
열린교회/김필곤목사/2020.5.3.

댓글[0]

열기 닫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