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열린마을 열린이야기

열린이야기

게시글 검색
당신은 유니폼 입을 때가 가장 멋있어
열린교회 (yeolin) 조회수:2303 추천수:18 112.168.96.71
2014-11-25 13:59:28
"엄마, 아빠는 언제 일어나? 오늘도 딸아이 은지는 병실 침대 위의 남편을 보며 투정을 부렸다. 남편은 자기가 사랑하는 딸의 목소리를 알아 들을 수나 있는 걸까? 이십 킬로그램이나 줄어든 왜소한 몸을 한 채, 큰 눈을 껌벅이며 초점없이 허공만 바라보고 있는 남편이 어느새 무정하게만 느껴진다. 남편이 갑자기 연거푸 기침을 해댔다. 노랗고 끈적한 가래가 은지의 분홍 원피스에 몇 방울 튀었다. 나는 얼른 남편의 목에 호스를 꽂고 가래를 빼냈다. 불현듯 남편의 눈빛이 나와 마주친다. 혹시...혹시 남편은 은지가 하는 이야기를 알아 들은 것이 아닐까? 그래서 우리에게 무언가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식물인간이 된 채 3년째 지내오고 있는 남편의 눈과 가끔이라도 마주칠 때면 나는 한 가닥 희망이 솟아나는 것만 같다.

"여보, 당신이 있어야 할 곳은 여기가 아니야, 저 넓은 그라운드라고..." 내 남편은 롯데 자이언츠의 백 넘버 20번을 달고 그라운드를 지켰던 포수겸 지명타자 임?수?혁이다. 홈런을 날리며 최고의 공격형 포수로 활약하던 선수. 2000년 4월 18일 잠실 경기장에서 LG와의 경기도중 심장마비로 쓰러진 뒤 남편은 여태껏 침상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사건이 있던 그날 우리 가족은 텔레비전을 보지 못했다. 그 시간에 아들 세현이의 친구이자 남편의 절친한 동료선수 아들의 생일이었기 때문에 우리는 그 파티에 초대되어 갔던 것이다. 한참 촛불을 불고 케이크를 자르고 있는데 아버님으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 "아가 너무 놀라지 말고 들어라. 아범이 좀 아프다." 아버님은 부산에서 서울까지 정신 없이 올라갈 며느리 걱정에, 아들이 얼마나 다쳤는지 자세한 이야기는 하지 않으셨다. '운동 선수들이야 다치는 일이 다반사인데.. 별일 아니겠지..' 하며 달리는 차 안에서 스스로에게 얼마나 위로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왠지 불길한 예감을 멈출 수 없었다. 내가 어떻게 그 정신으로 병원까지 달려갔는지 모르겠다. 도착하자마자 의사 선생님에게 "우리 그이는 어떻게 되는 거예요?" 하고 물었을 때 선생님은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어떻게 될지는 하나님만이 아십니다." 남편의 병명은 저산소성 뇌병증, 늘 건강하기만 했던 남편이 그 날은 경기 도중 갑작스럽게 졸도했고 그 바람에 호흡이 멈추어서 뇌에 들어가는 산소가 4분여 동안 끊겼단다. 이 때 뇌기능이 마비되어 감각과 지각능력을 완전히 상실하고 말았다. 말 그대로 식물인간이었다.

나는 남편이 금방 일어날 것이라고 믿었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도 한동안 아빠가 쓰러졌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아이들이 "엄마, 우리 아빠는 언제와?"하고 물으면, "응, 아빠는 일본에 훈련받으러 가셨어, 좀 있다가 오실거야."하고 둘러대곤 했다. 그렇게 3개월 동안이나 아이들을 속여왔다. 남편이 일어날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아니, 인정하고 싶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7월 18일은 아이들을 병실에 데리고 가지 않을 수 없었다. 왜냐면…그 날은 남편의 생일이었기 때문이다. 더 이상 쓸쓸히 병상에서 보내게 할 수는 없었다. 병실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남편은 여전히 미동도 없었다. 아빠의 침대 옆으로 다가간 은지는 그만, "아빠, 무서워.."하고는 내 치마 뒤로 숨어 버렸다.

하지만 세현이는 첫째라 좀 달랐다. 아빠의 힘없는 손을 꼭 감싸더니 "아빠 생일 축하해요."하는 것이었다. 이미 세현이는 텔레비전 보도를 통해 아빠의 소식을 알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의젓하고 어른스러운 세현이는 작년 4월 18일, 그러니까 남편의 사고가 있던 날로부터 딱 1년 뒤, 부산 사직구장에서 열리는 LG와의 경기에서 남편대신 그라운드에 섰다. 롯데 자이언츠 팀으로부터 아빠를 대신해 경기의 시작을 알리는 '시구'를 부탁 받은 것이다. 전광판에는 '임수혁! 우리는 자이언츠 20번을 기억합니다.'라는 메시지와 함께 남편이 건강했을 때 활동했던 모습이 동영상으로 흘러나왔다. 남편은 전광판 안에서 홈런을 치며 그라운드를 누비고 있었고 동료들한테 헹가래 세례도 받고 있었다. 시구 요청을 처음 받았을 때 세현이는 "엄마, 나 아빠를 대신해서 정말 잘 던져볼래요."하며 방과 후 할아버지와 함께 근처 고등학교의 운동장에 찾아가 매일같이 연습했다.

아빠의 사고이후로는 눈길 한 번 주지 않던 글러브와 공을 다시 잡은 것이다. 세현이가 아빠처럼 롯데 자이언트 유니폼 차림으로 등번호 20번을 달고 공을 던졌고 관중에서는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져나왔다. 사람들은 입을 모아 "임수혁! 임수혁!" 하고 외쳐댔다. 야구를 좋아하는 팬들은 남편이 쓰러진 그 날, 그러니까 매년 4월 18일을 '임수혁 데이'라고 부른다. 남편은 여전히 병상에 누워 허공만 응시하고 있다. 하지만 나에게는 이유를 알 수 없는 평안함이 있다. 남편 때문에 다시 나가기 시작한 새벽기도 때문일까? 매번 나의 기도는 이기적이다. 남편이 손끝 하나 다치지 않은 채 다시 2년 전의 모습 그대로 일어나 주었으면 하는 바람, 그 때 그 시절 우리 가족의 행복을 고스란히 돌려 받고 싶다는 소망, 하지만 하나님은 나의 이런 기도를 물리치지 않으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서야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지금의 상황에서 이렇게 마음이 평안할 수는 없을 테니까. 그리 아니하실 지라도. "여보, 당신은 하얀 유니폼을 입고 그라운드를 뛰어다닐 때가 가장 멋있어. 어서 빨리 그 모습을 보여줘. 응?" 남편의 목에서 다시 가래를 빼내고 난 뒤 나는 남편의 귓가에 속삭인다. 봄기운 탓일까? 문득 시원하게 홈런을 때리고 펄쩍펄쩍 뛰며 승리에 환호하는 남편의 모습이 병실 창문 너머로 어슴푸레 보이는 것이다. 나를 일으켜준 한마디 : 내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과연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히브리서 13장 5절

당신은 유니폼 입을 때가 가장 멋있어/김연주 /낮은 울타리 2002년 3월호 중에서-

댓글[0]

열기 닫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