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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집 아주머니
열린교회 (yeolin) 조회수:1893 추천수:18 112.168.96.71
2014-11-25 09:57:41
느닷없이 찬비가 뿌리는 토요일 오후, 결혼식이 있어 종로 5가 여전도 회관으로 왔는데 빨리 서두른 덕분에 차 한잔을 마실 수 있는 시간이 생겼다. 가장 가까운 곳으로 들어갔다. 대로변에 있는 깨끗한 커피숍이다. 그런데 만원이었다. 개중에는 나처럼 비를 피하러 온 사람들이 적잖게 있는 듯 했다. 비 내리는 바깥을 간신히 내다볼 수 있는 자리에 앉아 몸을 녹일 셈으로 뜨거운 우유 한 잔을 시켰다. 잠시 후 나는 냉기
가 가신 손가락으로 펜을 세웠다. 상도동 꽃집 아주머니가 떠올라서였다.

우리 집 근처에 자그마한 꽃집 하나가 있다. 버스 정류소가 있는 곳이라 하루에도 몇 번씩 지나치는 길인데 그 동안 동네 꽃집을 들를 일이 거의 없었다. 평소에 간판도 눈여겨보지 않은 그 꽃집을 찾은 건 오늘로써 두 번째이다. 지난 봄이었다. 사랑하는 교회 언니와 오빠의 결혼식이 있는 날이었다. 결혼을 하는 두 사람을 위해 꽃을 사러 갔다. 축하 꽃을 미쳐 준비하지 못해 가까운 동네 꽃집을 찾게 되었다. 들어선 꽃집에는 아주머니 한 분이 앉아서 꽃을 다듬고 계셨는데 그 모습이 사방으로 둘러싸인 화초들과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미 스무 송이만 포장해 주세요." "꼭 스무 송이여야만 해요?" "아뇨, 장미가 너무 비싸서요. 그런데 왜 물어 보셨어요?" "좋은 일이 있는 것 같아 몇 송이 더 주고 싶어서 그래요." "오후에 결혼식이 있어요. 축하하러 가는 길이에요." 굵고 건강한 장미 묶음을 풀며 올려다보는 그 아주머니께 나는 감사의 표시를 했다. 화창한 햇살 덕분에 그 분의 얼굴을 자세히 볼 수 있었다.사십 남짓 되어 보였는데 후덕한 얼굴이어서 저절로 마음이 가 닿았다. 삶의 그늘이 드리워졌을법한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그 분의 얼굴에선 어떠한 구김도 찾아 볼 수가 없었다.

그때 나는 그 얼굴 위로 펴져 있는 잔잔한 광채를 만질 수 있었다. 서서 몇 마디 나누는 동안 잠시 궁금해하던 것이 풀렸다. 그 분이 하나님을 아는 분임을 알게 된 것이다. 나는 속으로 혼잣말을 삼켰다. '역시 그랬구나' 믿는 사람에게서만 흘러나올 수 있는 밝음이 이해되었다.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믿는 사람은 삶의 질곡 속에서도 빛을 낼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닌가. 그리고 시간이 흘렀다. 여름이 가고 가을이 시작되었다. 잊고 있었던 훈훈한 기억을 떠올려 준 건 또 한 번의 결혼식이었다. 교회 오빠의 결혼식이 있는 가을날, 하나님이 아침부터 축복하는 맘을 부어 주셔서 설레는 오전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여유 있게 집을 나섰다.

종로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동백화원'이라 적힌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몇 달 전에 내가 들렀던 바로 그 꽃집이었다.지난 봄 이후로 까마득하게 잊고 지냈던 곳이다. 그냥 거기서 미리 꽃을 준비해 가는 것이 나을 것같아 그 꽃집으로 들어섰다. 두 번째로 찾은 그 꽃집 안에는 사람이 없었다. 선 채로 잠시 주인을 기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한 사람이 들어왔다. 금방 나를 알아보는 그 분은 내게도 낯익은 얼굴이었다. "지난번에 한 번 오셨었죠? 기억에 남아었어요." "오늘도 결혼식을 가나봐요?" "장미가 꼭 스무 송이여야만 해요?" "몇 송이 더 드리고 싶어서 그래요.

" 순간 나는 놀랐다. 몇 달 전에 들렀을 때와 똑 같은 물음을
건네는 것이 아닌가. 처음 뵈었을 때와 하나도 다르지 않은 한결같은 모습이었다.묻는 말뿐만 아니라 상냥한 목소리며, 환하게 웃는 표정까지도 변함이 없었다. 장가시를 다듬고 있는 그분의 모습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는데 뱃속 깊은 곳에서부터 미열이 올라왔다. 두 번밖에 본적이 없지만 내 속에 어떤 신뢰의 뿌리가 드리우는 것이었다. '이 분은 진실함으로 성실함으로 사람들을 대접하는 사람이구나' 내가 그곳을 찾지 않았던 동안에도 그 분은 늘 이렇게 사람들을 만났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좋은 일이 있으면 꼭 얘기하세요. 우리 함께 나눠요." 포장을 끝내고 꽃다발을 건네주시면서 그분은 내게 깊은 목소리로 한줌의 온기를 쥐어 주셨다. 직접적으로 표현은 안 했으나 그 좋은 일이란 나의 결혼을 말하는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그것은 다른 사람을 진정으로 축복할 줄 아는 '하나님의 사람'을 만난 기쁨이었다. 버스를 타고 결혼식장으로 오는 길, 나는 상도동의 작은 꽃집과 그 아주머니를 생각하면서 마음이 넉넉해졌다. 그 아주머니는 성실한 예배자였다. 마음으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삶의 현장에서 만나는 사람들을 진정으로 사랑할 줄 아는......

꽃집 아주머니 / 박 선 영
광야 98년 11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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