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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와 함께 이 길을 걷고 싶었어
열린교회 (yeolin) 조회수:2030 추천수:17 112.168.96.71
2014-11-25 09:57:21
모처럼 주말에 여유가 생겨 아내와 아이들을 이끌고 시골집에 내려왔다. 12년 전 아버님이 돌아가신 후 어렵사리 키운 4남매마저 다 타지로 떠나보내고 혼자 작은 밭을 일구며 살아오신 어머님. 언제나 안타까운 마음은 있었지만 나 살기에도 바빠 전화도 제대로 드리지 못했던 것이 얼마나 죄송스럽던지…. 밤 늦도록 두 아이의 재롱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으시는 어머니의 주름진 얼굴에 지금까지의 불효를 조금이나마 만회한 것 같아 한결 마음이 좋아졌다.

이튿날은 교회에 가기 위해 아침부터 온 가족이 부산했다. 그런데 막상 출발할 때가 되자 어머님은 차로 20분쯤 거리에 있는 교회를 굳이 걸어서 가겠다고 하시는 게 아닌가.“어머니, 그냥 제 차를 타고 가지요. 꽤 먼 거린데….”나는 포장도 안 된 들길을 한 시간도 넘게 걸어서 다녔던 옛날의 기억을 되살리며 말했다.“아니다. 예배 시작하려면 아직 시간도 많이 남았고 하니 그냥 걸어서 가자.”더 이상 토를 달지 못
하고 어머니의 뒤를 따라 나섰다. 둘째는 내가 안았고, 첫째는 뭐가 그렇게 좋은지 혼자서 겅중겅중 뛰어다녔다.

집을 나선 지 20분…. 아직 갈 길은 멀었는데 아이를 안은 팔뚝이 저려오기 시작했다. 주체할 수 없이 흐르는 땀에 와이셔츠는 이미 흠뻑 젖어 버렸고, 신나하던 첫째도 지쳤는지 저만치 뒤쳐져서 터벅터벅 따라오고 있었다. “여보, 도대체 얼마나 더 가야 해요?”아내 역시 입이 한 자는 나와 손등으로 연신 이마를 훑으며 투덜거렸다. 나는 뒤도 안 돌아보고 묵묵히 길을 가시는 어머님의 뒷모습을 원망스러운 눈길로 바라보았다. 마침 길 양 옆으로 미루나무가 가지런히 심어져 있는 언덕길이 시작되고 있었다. 햇빛을 받아 아름답게 반짝이는 나뭇잎, 가지를 스치고 지나가는 시원한 바람소리…. 마치 외국 영화에서나 나올 것 같은 분위기 있는 길이 까마득하게 이어졌다.

나는 나도 모르게 큰소리로 어머님을 불러세웠다.“어머니, 여기서 잠깐만 쉬었다 가죠.”어머님의 대답은 기다리지도 않은 채 그냥 길가에 주저앉았다. 아내와 아이들도 내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제서야 어머님은 천천히 뒤를 돌아보시더니 우리 있는 쪽으로 다가와 나무에 기대 앉으셨다.“이 길 생각나니?”어머님이 감회어린 눈길로 여기저기를 돌아보시며 내게 말을 건네셨다. 나는 어머님의 시선을 쫓아 사방을 둘러보고 나서 대답했다.“어머니 일 나오시는 곳이잖아요.”

어머님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시더니 말을 이었다.“아버지가 살아 계실 때만 하더라도 이 일대가 다 우리 땅이었단다. 너희들 가르치느라고 조금씩 팔아서 지금은 구석에 작은 땅밖에 남지 않았지만…. 이 가로수도 다 아버지께서 직접 심으신 거야.”그러고 보니 내 어린 시절 기억 속에는 나무를 심고 계시는 아버지의 모습이 언제나 자리잡고 있었다“아버진 왜 하필 열매도 안 열리는 미루나무를 이렇게 많이 심으셨을까요?”나는 아버지의 수고가 너무나 헛된 것처럼 느껴져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그런 나를 바라보시는 어머니의 얼굴에 잔잔한 미소가 떠올랐다. “너희 아버진 나무를 심으실 때면 항상 친구에게 얘기하듯이 중얼거리곤 하셨단다.”“뭐라고 하셨는데요?”아내가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끼어 들었다.“나무들아, 빨리 자라서 우리 아이들이 이 길을 걸을 때 시원한 그늘이 되어 주렴….”
“….”끝없이 계속될 것 같은 침묵이 얼마나 흘렀을까? 어머님께서 헛기침과 함께 입을 여셨다.“그래… 그래서, 언젠가는 너희들과 함께 이 길을 걸어 보고 싶었어.”


너와 함께 이 길을 걷고 싶었어 /전 은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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