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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성 소화불량
열린교회 (yeolin) 조회수:1677 추천수:17 112.168.96.71
2014-11-21 17:52:04
남편은 원래 설사가 잦은 편이다. 고기와 생선은 원래 좋아하지도 않거니와 조금만 과식했다 싶으면 영락없이 설사를 한다. 참외나 수박 같은 찬 과일을 먹어도 마찬가지이다. 먹은 양보다 훨씬 더 많이 설사로 토해 내고야 만다. 떡국이나 수제비, 만두를 싫어하는 이유로 속이 편하지 않아서이다. 우유 한 잔을 제대로 소화해 내지 못하는 그의 위장이니 가끔 내게서 한 마디 씩 듣는다고 해도 별 억울할 것이 없을 것이다."댁은 밥만 먹고 사우?"그런 남편의 설사가 일주일째로 접어들었다. 이젠 밥만 먹고 사느냐고 농담할 여유를 넘어선 듯하다. 배 한 쪽이 한 번씩 쿡쿡 쑤신다고 증상을 이야기하는 남편의 얼굴은 그래서인지 오늘따라누렇게 떠 있었다.

출근 준비를 하면서 남편이 말했다."토요일이고 하니, 그 녀석 병원에나 가볼까."남편이 말하는 그 녀석이란 남편의 배꼽 친구로, 조그만 개인 병원을 하고 있는 외과 의사이다 "그분은 외과 전문이잖아요"라는 내 말에. "어차피 돌팔이 녀석인걸. 뭐"하면서 씩 웃긴 했지만 어쩐지 그러는 남편의 처진 어깨와 가벼워 보이는 주머니가 한 쪽으로 휘청거리는 듯했다 '용돈이라도 좀 넉넉히 넣어 줄 걸...'멀어지는 남편의 뒷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괜스레 가슴이 저렸다.

워낙 엄살이 심한 그였지만 그래도 여지껏 한번도 병원엔 가본 적이 없던 그였다 그런데 오늘 따라 TV를 봐도, 신문을 펼쳐도 온통 정리 해고와 실업자 이야기뿐이었다. '혹시 매일 출근한다고 나가서는 축 처진 어깨로 공원 벤치에 앉아 있거나 길거리를 하염없이 걸어다니는 건 아닐까 점심을 거르지는 않는지... 나한테 말도 못 꺼내고 힘들어하고 있는건 아닐까... 그래서 몸까지...?' 하루종일 왠지 모를 불안감에 아무 일도 못하고 안절부절 못했다."여보. 나야"창밖에 어둠이 깔릴 즈음. 남편은 대문을 두드렸다. 난 측은한 눈빛으로 남편을 맞았다.

"속은 좀 어떠세요?"내 질문에 답은 않고 남편은 두툼한 돈 봉투를 내게 쥐어 주며 화장실로 들어갔다.'아, 이게 퇴직금인가 보다.' 남편은 소파에 길게 누웠다.'이이가 정말 실직을 한 걸까?' 아무래도 불안했다. 두어 시간이 지났을까 난 더 참을 수가 없어 남편을 흔들어 깨웠다. 부시시 눈을 뜬 그이는 내 얼굴을 보자 '아. 그래. 그래, 알았어'하는 표정으로 말을 꺼냈다."미안해 특별 보너스가 나왔었어, 노동조건 개선의 일환이래나..." 그러면서 그는 연신 '미안해' 연발이다
"돌팔이 녀석이 그러대. 그걸 혼자 꿀꺽하려니까 배탈이 난 거래나 어떻대나. 그것 말고는 전혀 이상이 없대. 그래서 자진 납부한 거야, 한 푼도 안 썼어. 정말이야."

하품 섞인 '미안해'를 연발하며 남편은 다시 소파에 길게 누웠다. 이제야 속이 후련하다는 듯. 하지만 조금은 미련이 남은 듯한 남편의 눈빛을 보며 나는 짐짓 엄숙하게 말했다.'당신, 이 정도도 소화하지 못해 그 야단이셨수? 이깟 돈 몇 푼을..." 나도 모르게 눈물이 고였다. 씨익 웃는 남편 얼굴이 선하기만 하였다. 그런 그가 보란 듯이 지폐장을 팔랑거리며그 거금을 세어 나갔다"돌팔이가 아니라 천하의 명의네. 내 속병까지 다 나은 것 같애"

만성소와불량

-낮은 울타리 중에서 9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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