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열린말씀 열린설교

열린설교

게시글 검색
예수 앞에 나오면(7) 감사하는 나병환자(눅17:11-19)
김필곤목사 (yeolin) 조회수:4522 추천수:5 112.168.96.218
2018-07-01 10:36:48

 

예수 앞에 나오면(7) 감사하는 나병환자

누가복음17:11-19

 

어제 신문에 보니 “27년간 그의 삶은 절망이 아닌 '감사'였습니다”라는 기사가 실렸습니다. <꼼짝할 수 없는 내게 오셔서>라는 책을 쓴 윤석언 씨에 대한 기사였습니다. 그 책을 제가 사서 읽어 보았습니다. 재미교포인 그는 스물세 살 때인 1991년 큰 교통사고로 목 이하 전신이 마비되었다고 합니다. 의식불명 4개월 있었고, 중환자실 반년이나 있었답니다. 일반 사람은 평생 한 번 들어갈까 말까하는 중환자실을 수시로 드나들었답니다. 지금까지 요양원에 24시간 누워 있으면서 특수 안경 이용해 한 글자씩 입력하여 힘든 분들에게 용기를 주고 싶에 책을 썼다고 합니다. 성대를 다쳐서 대화도 원활치 못한 상황에서도 인터넷으로 목회학 석사 과정을 공부하고 있다고 합니다. 마비된 몸이라 대소변 처리는 물론 이발이나 세수, 심지어 머리 긁는 일까지도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감옥같은 생활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사랑으로 그를 도와 주어 감사한 일들을 열거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 12년 째 자원봉사로 아무런 대가가 없이 그의 대소변을 치워주는 간호사 이야기가 나옵니다. 몸이 마비되어 수시로 가래를 제거해 주어야 하고, 수시로 혈압이 낮아져 누군가 몸을 흔들어 주어야 한답니다. 가장 힘든 것은 주기적으로 대소변 처리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열 번 중 아홉 번은 좌약을 넣지 않으면 대변을 볼 수 없으며, 그 또한 직접 손으로 배주어야 시원하게 변을 볼 수 있답니다.그 일을 대학병원에서 근무하면서도 시간을 내어 예수님의 사랑으로 그 간호사가 천사처럼 자신을 돌보아 준다는 것입니다. 제대로 관리가 되지 않아 극심한 변비로 응급실에 몇 번이나 실려갔는데 그 일을 여러 번 목격한 간호사가 담당 의사에게 허락을 받아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몸이 아프거나 힘들거나, 시간이 있거나 없거나, 변함 없이 와서 자신의 대소변을 봐준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사랑 아니면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가족이라도 단순한 병문안하는 것도 12년 할 수 없는데 돈 받고 하는 것도 아니고, 말 그대로 중노동인데 감사함으로 그 일을 감당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진짜 예수님의 사랑을 알고, 천국을 믿고, 천국의 상급을 믿는 분입니다. 한번은 간호사에게 대소변 치우는 것이 싫지 않으냐고 물었답니다. 그 때 간호사는 "머리 만지기 싫어하는 미용사, 밀가루 만지기 싫어하는 제빵사, 기저귀 만지기 싫어하는 간호사라면 너무 괴로운 인생을 살 것 같지 않아요?"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늘 자신을 돌보아 주는 일을 마치면 감사 기도하고 가시는데 감사절 날 저녁에는 기도하기 전에 갑자기 감사 제목 10개를 나누자고 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감사를 했다고 합니다. 첫째 지난 1년 동안 병원에 한 번도 가지 않았음을 감사합니다. 둘째 부모님과 동생 식구들이 건강하게 지낼 수 있었음을, 셋째 폐렴 없이 숨을 편히 쉴 수 있음을, 넷째 공부하는 동안 심한 욕창으로 고생하지 않음을, 다섯째 입으로 먹고 마실 수 있음을, 여섯째 신학공부를 통해 훌륭한 신앙의 친구들을 만나 교제할 수 있게 하심을, 일곱째 이 큰 머리로 학업을 열심히 좇아갈 수 있는 열정을 유지시켜주심을, 여덟째 부양해야 할 자식이 없고, 잔소리하는 아내가 없음을, 아홉째 주일마다 교회에 가서 예배 드릴 수 있음을, 열째 이러한 삶을 유지하기 위해 수많은 하나님의 천사들을 삶 속에 보내주심을 등을 감사했다고 합니다.

오늘은 한국교회가 전통적으로 지키는 맥추 감사 주일입니다. 지금 주어진 삶에 대하여 감사하고 살고 있습니까? 무엇을 감사하고 있습니까?

예수님께 나와 예수님을 믿으면 우리의 삶이 변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에도 예수님께 나와 인생이 변한 사람이 나옵니다. 오늘 성경 12절을 한 번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한 마을에 나병환자 열 명이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당시 불치의 병입니다. 사람들에게 조롱받고, 부정시하는 병입니다. 가족과도 같이 살 수 없는 병입니다. 눈만 작아도 왜 아빠가 눈이 작아서 내 눈이 작으냐고 불평하는데 신경조직이 썩어 얼굴이 일그러져 흉측한 모습으로 변해가는데 감사할 수 있겠습니까? 이만 삐뚤어져도 창피하게 생각하고 어릴 때 잘 못 뉘었다고 어머니 원망하는데 고통도 없이 코가 떨어져 나가고 손가락 마디가 떨어져 나가는데 감사가 있겠습니까? 다른 사람이 조금만 서운하게 해도 불평하고 원망하는데 눈이 떨어져 나가고 팔다리가 떨어져 나가고 전염성 때문에 사람들이 외면하는데 감사할 수 있겠습니까? 백성들이 사는 마을에서 쫓겨나 사람들입니다. 사람들이 나타나면 옷을 찢고, 머리를 풀고, 윗 입술을 가리우고, 멀리서서 "부정하다 부정하다" 소리를 쳐야 했던 사람들입니다. 이를 어길 경우 돌로 쳐 죽여도 죄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들에게 희망이 생겼습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그 지긋지긋한 고질병을 고침받을 수 있다는 희망입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불정하다 부정하다고 외쳐야 할 사람들인데 이들은 예수님을 만나자 뭐라고 합니까? 13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고 외쳤습니다. 오늘 고질적인 육신의 질병, 혼자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고질적인 나쁜 습관, 불평과 원망에 사로잡힌 마음의 질병, 하나님께 무감각한 영적 질병이 있으신 분들은 이들이 외친 것처럼 “예수님 나를 불쌍히 여겨주소서”라고 외쳐 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 만나 상한 심령 위로받고, 예수님 만나 아픈 질병 치유받고, 예수님 만나 고질적인 문제 해결 받고 일어서시길 바랍니다.

이 때 예수님께서 무엇이라고 말씀하십니까? 14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라고 말씀합니다. 사실 그들은 제사장에게 나갈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가면 죽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목숨을 걸고 순종을 했습니다. 아마 그들은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았을 것입니다. 당시 나병이 나으면 제사장에게 보이고 최종적인 완치판결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제사장 앞에 가기도 전에 완치를 받았습니다. 상상해 보십시오.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얼마나 감사한 일이겠습니까? 그런데 그 중 한 명이 너무 감사해서 다시 예수님께 왔습니다. 그리고 살려달라고 외쳤던 것보다 더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 감사를 드렸습니다.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었습니다. 혼혈인들이 많아 유대인들로부터 개 취급당한 사람이었습니다.

이 때 예수님은 물어 보십니다. 무엇을 물어 보십니까? 17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고침 받은 9명은 어디 있느냐는 것입니다.

 

1. 우리는 은혜를 받으면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현대인의 심리적 질병 중에 만연되어 있는 것이 감사 불감증입니다. 신문을 보십시오. 감사는 없고 불평과 원망으로 도배되어 있습니다. 너무 풍요로운 세상을 살다보니 감사 불감증에 걸린 세대입니다. 119 구급대의 발표에 의하면 긴급 상황이 생겨 병원에 이송한 사람 중에 '감사하다'고 말을 하는 사람은 3%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오늘 성경에 나오는 비율이 9:1이듯 사람은 잘 감사를 하지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첫째는 사람의 죄성 때문입니다. 왜 사마리아 사람만 왔느냐는 예수님의 말씀은 유대인의 교만한 죄성을 지적하는 것입니다. 본래 사람은 죄악된 습성이 있어 감사 거리보다 원망거리를 찾는 속성이 있습니다. 잃은 것만 보고 원망하고 있는 것 보고 감사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여 없는 것 보면서 불평합니다. 이것이 자연적으로 놓아두면 그렇게 살 수밖에 없는 인간의 속성입니다. “우리 남편은 왜 이렇게 돈을 적게 벌어 오는가? 왜 다정 다감하지 못하는가? 다른 집 남편은 진급을 하였는데, 우리 집 아버지는 왜 이렇게 출세를 하지 못하였는가? 우리 아들들은 왜 이렇게 공부를 못하는가?” 자꾸 남과 비교하며 없는 것 안 되는 것만 보고 원망하고 불평합니다. 있는 것 주신 것을 보고 얼마든지 감사할 수 있는데 그렇게 못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의도적으로 감사 거리를 찾지 않으면 늘 불평하고 원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성경은 감사하지 못하는 인간의 죄성에 대하여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롬1:21)”라고 말씀합니다. 가나안을 향해 가는 이스라엘 백성이 그랬습니다. 먹을 것을 주고 보호하면서 인도하는데 물이 없으면 물이 없다고, 물이 있으면 물이 쓰다고, 밥을 주면 왜 고기를 안주냐고 불평과 원망 거리만 찾아 원망하고 불평을 합니다. 집을 사주었는데 에어컨 없다고 원망하는 아들과 같습니다. 아이들이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부모가 길러 주니까 어릴 때 따뜻한 말 해 주지 않았다고 원망합니다. 아리스토 텔레스가 "인간의 마음 중에 가장 쉽게 늙는 부분이 있다면 그것은 곧 감사하는 마음"이라고 지적했듯이 감사를 의도적으로 훈련하지 않으면 쉽게 입술에서 잊혀지게 됩니다. 감사 불감증에서 벗어나려면 의도적으로 감사 거리를 찾아 감사해야 합니다. 템플턴 상을 제정한 존 템플턴은 그의 책 <열정>에서 감사의 생활을 실천하려면 첫째, 감사할 대상을 찾아 칭찬하고 마음을 전하고, 둘째 우리가 열망하는 좋은 일이 실제로 일어나기 전에 미리 감사하며, 셋째 우리에게 닥친 문제와 도전 과제에 감사하라고 했습니다.

 

둘째는 은혜를 깨닫지 못하는 무감각 때문입니다.

감사해야 할 일이 있는데도 감사하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평생 질병에서 고침을 받았습니다. 얼마나 감사한 것입니까? 그런데 죄인처럼 취급받던 사마리아 인은 감사했는데 유대인들은 당연하게 생각해 버리고 감사하지 못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나만 고쳐 준 것이 아니고 10명 다 고쳐 주었고, 죽은 자도 살리고 수많은 질병 고쳐 주었는데 뭐 대수냐는 것입니다. 말세의 특징을 성경은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딤후 3:2)”라고 말씀합니다. 은혜를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산소가 있는 것을 당연히 생각하니까 산소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땅이 존재하는 것을 당연히 생각하고 물이 있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니까. 교회가 있는 것을 당연히 생각하고 남편이 있는 것, 아내가 있는 것, 자녀가 있는 것 당연히 생각하니까 감사를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은혜를 깨닫지 못한 것입니다. 공기 속에 있으면 공기의 고마움을 모르고, 물고기가 물 속에 들어 있으면 물의 고마움을 모르는 것과 같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교회에 다니면서 많은 은혜를 받았는데도 불구하고 조금 자신에게 힘든 일을 시키던지 마음에 거슬린 말을 들으면 감사하기보다는 교회를 원망하고 비난합니다. 교회 다니면서 자식도 결혼시키고 아버지 어머니 장례도 치르고 직분도 받고 사업도 일어났는데 조금만 서운한 일이 당하면 “사랑이 없다. 돌봐 주지 않는다. 뜨거움이 없다. 말씀에 능력이 없다. 비좁다. 프로그램이 없다.” 등 갖가지 구실을 붙여 원망합니다. 웰즈라는 분은 “완전한 교회를 찾지 마라. 찾을 수 없을뿐더러 찾아낸다 하여도 당신이 그 교회의 교인이 될 자격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사랑이 없는 것을 느끼면 나에게 사랑하라고 하시는 군요라고 감사하세요. 말씀이 능력이 없게 들리면 나에게 더욱 설교자를 위해 기도하라고 하는구나 받아들이고 감사하세요. 그러면 감사의 조건들은 더 많아지고 신앙생활은 더 풍요로워집니다.

 

셋째는 관점과 해석의 기준을 잘 못 가지기 때문입니다.

감사는 일의 결과보다는 해석의 문제입니다. 관점의 문제입니다. 일어난 결과는 해석의 문제입니다. 어떤 일이든 감사로 해석할 수 있고 불평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불평으로 해석하는 것이 익숙해져 있습니다. 바울은 늘 감사로 해석합니다. 이런 사람은 감사할 때만 있을 때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감사할 만한 일이 없는데도 감사하는 사람들입니다. 감사로 해석하면 보약이 되지만 불평으로 해석하면 독약이 됩니다. 신앙인들은 조건적 감사가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때든 무슨 일이든 절대적인 감사로 해석해 버리는 것입니다. 과거의 불행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아픔에도 불구하고 미래의 불확실에도 불구하고 감사로 해석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범사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마이로 H 게이트는 "신앙을 알아보는 가장 정교한 방법은 그 사람이 얼마나 자주, 그리고 실속 있는 감사를 하느냐로 판명될 수도 있다."라고 했습니다.

 

2. 우리는 감사함으로 더 큰 풍요를 누려야 합니다.

감사하면 우리에게 무슨 유익이 주어지겠습니까?

첫째, 감사하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

18절 같이 읽겠습니다. 9명은 고침을 받고도 감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한 명은 감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감사하면 무엇보다 먼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 시편에서는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시50:23)"라고 말씀합니다. 시편 69편 31절에서는 "감사함으로...황소를 드림보다 여호와를 더욱 기쁘시게 함이 될 것이라(시69:31)"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물질로, 시간으로, 말로, 재능으로 감사를 표현하면 그것이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것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사는 우리 신앙인의 인생 목적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고전10:31)" 하는 것인데 우리가 입술로 감사를 표현하면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시간으로 감사하면 그것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물질로 감사하면 그것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재능으로 감사하면 그것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감사하는 것이 황소를 드림보다 여호와를 기쁘시게 한다는 것입니다. 감사 없는 황소는 하나님께 영광이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입니다. 밤낮으로 교회에 와서 봉사하고, 식당 봉사를 하고, 청소를 하고, 수고한다하여도 감사로 하지 않고 불평과 원망으로 그 일들을 한다면 하나님께 영광이 되지 못하고 기뻐하지 않습니다. 집 안에서 부모 역할 힘들다고 불평하며, 원망하고 감당하면 하나님께 영광이 되지도 못하고 기뻐하시지도 않습니다. 교회에서 직분도 마찬가지입니다. 교사, 성가대, 찬양 사역, 주방, 청소, 안내, 주보, 재정, 자원봉사, 선교 등으로 섬길 때 원망하고 불평하지 말고 감사함으로 감당해야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어차피 부모 노릇하고, 어차피 회사에서 일하고, 어차피 예배드리고, 어차피 죽는 날까지는 이 땅에 살아야 할 것이라면 감사함으로 하는 것입니다. 삶의 근본적인 자세를 '감사'로 바뀌어 버리는 것입니다. 어떤 경우도 감사로 해석하고 감사로 표현하고 사는 것입니다. 모든 삶을 '감사'라는 렌즈를 통해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살전 5:18)"라고 말씀합니다. 일이 잘못되어도 감사, 잘 되어도 감사, 건강해도 감사, 병들어도 감사, 성공해도 감사, 실패해도 감사, 잘 생겨도 감사, 못 생겨도 감사, 합격해도 감사, 불합격해도 감사 이렇게 모든 일에 감사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하나님이 우리를 통하여 영광을 받으실 줄 믿습니다.

"감사로 제사 드리는 자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구원 보이시리라 감사드려 감사드리세 아버지께 감사로 제사를 찬송드리세 아버지께 우리의 찬송을 할레루야 할렐루야 우리의 찬송을 할렐루야 할렐루야 영원토록 찬송을 영원토록 감사를 영원토록 감사 찬송을"

 

둘째, 감사를 표현하면 더 받아 감사한 만큼 인생은 행복해집니다.

예수님께서 나아 감사하는 그에게 예수님은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19절 말씀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질병을 치유받을 뿐 아니라 영혼 구원도 받았습니다. 감사한 결과 더 받아 누리는 것입니다. 감사하는 상점이 손님도 많이 오는 것입니다. 사무엘상 2:30에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해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히 여기리라"고 했습니다. 감사하면 손해가 아닙니다. 더 많은 것을 누리게 됩니다. 감사할 줄 아는 자에게 길이 열립니다. 감사하면 행복해 집니다. 행복은 소유에 정비례하기 보다는 감사에 정비례하는 것입니다. 감사는 더 큰 축복을 끌어 오는 자석과 같습니다.

미국 하버드 대학의 의과대학팀이 1937년부터 72년 동안 '잘사는 삶의 공식'을 찾아내기 위해 하버드대학교 2학년 학생 약 300명을 대상으로 조사를 했다고 합니다. 72년간의 연구 끝에 내린 결론은 잘사는 삶의 공식이 바로 '감사하는 자세'라고 합니다. 감사하는데 투자되는 비용은 그리 많지 않지만 유익은 대단합니다.

찬양대원으로 봉사하면서 감사하지 못하고 불평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세계 최고의 암전문 병원인 미국 텍사스주립대 MD앤더슨 암센터에 31년간 봉사한 김의신 박사님이 계십니다. 미국 최고의 의사로 2번이나 뽑혔답니다. 신앙이 암 치료에 실제적인 효과가 있다고 소개하면서 교회 찬양대원들과 일반인들을 비교해보니 성가대원들의 면역세포(일명 'NK세포') 수가 일반인보다 몇 십 배도 아닌, 무려 1000배나 많은 것으로 측정되었다고 합니다. 감사로 찬양하고 사는 것이 그만큼 유익하다는 것입니다. 지휘자 집사님도 짜증 내지 말고 감사함으로 하시길 바랍니다. 세계에서 가장 장수하는 사람들의 직업 중의 하나가 '음악 지휘자'랍니다. 미국 미네소타 의과대학교 데일 앤더슨박사는 지휘봉을 흔드는 것이 심폐기능을 강화시키고 유연성을 길러주며 엔돌핀을 증가시킨다고 밝혔습니다. 레오폴드 스토코프스키는 95세, 아르투로 토스카니니는 89세, 카라얀은 81세, 아드리언 볼트는 93세를 누렸다는 것입니다. 어차피 교회 생활하는 것 매사 불평과 원망으로 하지 마시고 감사로 하시길 바랍니다.

부자가 되고 싶습니까? 감사를 표현해 보십시오. 진짜 부자는 감사하는 사람입니다. 감사는 행복의 원료이며 풍요로운 삶의 재료입니다. 감사는 마치 전기와 같아 단순히 어둠을 물리치는 데만 이용되는 것이 아니라 힘의 원동력이 됩니다. 감사는 물질적인 풍요로움과 사회적인 성공을 끌어들이는 힘이 있고, 감사는 어려운 일이 닥쳤을 때 문제를 해결하고 위기를 극복하는 능력을 강화시켜 주며, 감사는 자부심과 자신감을 높이고, 변화나 위기에 대한 대처 능력을 높여 준다고 합니다.

건강하고 싶습니까? 감사를 표현하십시오. 감사는 스트레스를 완화시킴으로써 건강을 증진하고, 면역계를 강화하며 에너지를 높이고 치유를 촉진할 뿐 아니라 심장이나 몸 그리고 정서에 좋은 반응을 일으켜 혈압이 떨어지고, 소화 작용을 촉진할 뿐 아니라 마음을 편안하게 하여 스트레스를 감소하게 해 준답니다.

행복하게 살고 싶습니까? 감사를 표현해 보십시오.

서양 속담에 "행복은 언제나 감사의 문으로 들어와서 불평의 문으로 나간다."라는 말 있습니다. 감사의 문으로 행복이 들어옵니다. 감사하면 천국이 되지만 불평하면 가정도 지옥으로 변합니다. 행복은 소유에 정비례하기 보다는 감사에 정비례하는 것입니다. 감사는 가정이나 직업에 대한 만족감과 기쁨을 증가시킴으로써, 인간관계를 향상시키고 갈등을 해소하며, 사랑이 넘치도록 만들어 주고, 감사는 직업 환경을 향상시키고, 구성원들이 서로 협력하도록 이끌어 내어 자신이 원하는 인간관계를 갖게 해 준답니다.

 

"날 구원하신 주 감사 모든 것 주신 감사 지난 추억 인해 감사 주 내 곁에 계시네 향기로운 봄철에 감사 외로운 가을날 감사 사라진 눈물도 감사 나의 영혼 평안해. 길가에 장미꽃 감사 장미꽃 가시 감사 따스한 따스한 가정 희망 주신 것 감사 기쁨과 슬픔도 감사 하늘 평안을 감사 내일의 희망을 감사 크신 사랑 감사해... "

 

셋째, 감사하면 불가능이 가능으로 되는 기적이 일어납니다(대하20:20-26)

오늘 성경 19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감사를 표현하는 그의 언행을 보며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그것을 믿음으로 해석해 주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육신적 구원뿐 아니라 영적 구원도 받았다는 것입니다. 앞에 나와 있는 6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믿음을 이야기하시면서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라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어라 라고 하면 그대로 될 것이라고 말씀하였습니다. 그 후에 바로 나병 환자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러면서 믿음으로 하는 감사를 통해 뽕나무를 옮기는 기적이 일어난 것을 보여 주시고 있습니다. 당시 전혀 치료될 수 없는 한센씨 병이 믿음으로 치료된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구원입니다. 인간으로는 불가능한 육신적 구원과 영적 구원이라는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감사를 표현하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불가능한 문제가 있습니까? 믿음으로 감사해 보십시오. 기적이 일어납니다. 불가능이 가능으로 변화됩니다.

다니엘이 바벨론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다리오 왕이 그를 총리로 삼았습니다. 세 명의 총리 중 으뜸이 되어 권력 서열 2위가 된 것입니다. 노예 출신인 다니엘이 이 자리에 올랐으니 페르시아의 대신들이 가만히 둘리가 없습니다. 그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알고 왕 외에 누구도 30일 동안 섬기지 못하게 합니다. 만약 다른 신을 섬기면 역적으로 몰려 사자굴에 들어가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다니엘은 어떻게 합니까? 원망하지 않습니다. 매일 매일 하루에 세 번씩 믿음으로 감사를 표현합니다. "다니엘이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단6:10)" 감사하는 다니엘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죽지 않았습니다. 사자굴에서도 살아나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정권은 바뀌어도 총리자리를 계속 유지합니다. 감사하면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유다의 4대 왕 여호사밧도 감사로 기적을 체험하신 분입니다. 아주 하나님을 잘 믿는 신앙 좋은 왕이었습니다. 종교 개혁을 단행하고 사법 개혁을 단행하였습니다. 그런데 세 나라가 연합군을 조성해서 여호사밧 왕을 치기 위해 쳐들어왔습니다. 이 때 여호사밧 왕은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않습니다. 민족적 위기 앞에서 여호사밧 왕은 성가대를 세워 거룩한 옷을 입혀(21) 군대 앞에 세우고 찬양하게 했습니다. 찬양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여호와께 감사하세 그 자비하심이 영원하도다."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감사 찬양을 합니다. 죽음의 위기 앞에 있는데 감사 찬양을 드리는 것입니다. 감사에 놀라운 비밀이 숨겨져 있었습니다.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여호사밧이 위기 앞에 감사하니까 인간이 상상할 수 없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적군들이 피차 살육합니다. 전쟁에서 승리하고 즐거움과 평화가 찾아 왔습니다. 예수님을 보십시오. 나사로 무덤 앞에서 감사 기도하자 어떤 일이 벌어졌습니까? 나사로가 살아나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5000명이 굶주릴 때 물고기 2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를 놓고 감사하고 기도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모두 배불리 먹고 12바구니를 거두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오늘날도 감사를 표현하면 내가 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납니다. 감사는 기적의 통로입니다. 감사하면 불가능할 것 같은 인간관계가 풀리는 기적이 일어납니다. 감사하면 돌아가실 때까지 풀리지 않을 것 같던 시어머니 마음도 열리게 되는 기적이 일어납니다.

 

세브란스 병원에 입원해 있던 어떤 감리교 교회의 한 사모님의 간증을 읽어 보았습니다. 위암 판정을 받고 수술을 하려고 의사가 개복을 했답니다. 그런데 너무 암이 커져서 손을 댈 수가 없었답니다. 크리스천 의사였던 주치의는 공책과 볼펜을 가져다주며 '사모님! 특별히 할 일도 없으시니까, 일생을 돌아보면서 감사했던 일이 있으면 열심히 적어 보세요.'라고 했답니다. 그래서 감사를 적으려고 하는데 처음에는 그것도 쉽지 않았답니다. 그래도 의사선생님이 하라고 하니까 하자고 감사를 적기 시작했답니다. "첫 번째, 예수 믿어 구원 받게 하시니 그 은혜에 감사합니다. 두 번째, 못된 성격이지만 이렇게 목사 사모가 되어서 교인들의 사랑을 받으며 살아오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세 번째, 우리 아이들이 믿음 안에 건강 안에 잘 자라게 하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며칠 만에 137개를 적었답니다. 그렇게 감사를 적었을 때 의사가 더 이상 할 일이 없으니까 '사모님 이제 복수에 물이 차면 와서 한 번씩 빼시면 될 것 같고 이제 집에 가서 쉬시는 게 낫겠다고' 퇴원을 시켰답니다. 그런데 퇴원하며 매일 감사일기를 적었답니다.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면서 감사한 것을 계속 적기 시작했답니다. 계속 감사를 적다 보니 은혜가 충만해졌답니다. 내 삶이 얼마나 하나님의 축복 가운데 살았는가에 감격하게 되고 기쁨이 샘솟기 시작했답니다. 그래서 사모님이 그냥 있을 수가 없어 아픈 몸을 이끌고 다니면서 교인들을 심방하고 불신자에게 가서 전도도 하고 또 기도도 해주고 이런 일을 반복했답니다. 교인들은 걱정했답니다. '사모님이 곧 돌아가신다는데 저러고 돌아다니시면 어쩌나?' 그런데 사모님의 얼굴에서는 광채가 나기 시작했고 미음이나 죽을 먹고 또 밥을 먹으면 소화도 못 시키는데 어떨 때는 그냥 밥을 먹는데도 소화가 잘 되었답니다. 식사를 정상적으로 하기 시작했답니다. 너무나 정상적으로 식사를 하여 몇 달 후 병원에 가서 다시 검진을 받았답니다. 검사를 한 의사는 "사모님!! 암이 기적처럼 다 나았습니다."라고 놀라워했다는 것입니다. 다니엘에게 이러난 감사의 기적이, 여호사밧 왕이 경험했던 감사의 기적이, 예수님이 행하셨던 감사의 기적이 그 사모님에게도 일어난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범사에 감사를 표현하면 이런 감사의 기적이 일어날 줄 믿습니다.

 

감사는 기적을 창조하는 재료입니다. 감사는 어려운 일이 닥쳤을 때 문제를 해결하고 위기를 극복하는 능력을 강화시켜 주는 기적을 일으킵니다. 감사는 가정이나 직업에 대한 만족감과 기쁨을 증가시킴으로써, 인간관계를 향상시키고 갈등을 해소하며 사랑이 넘치도록 만들어주는 기적의 힘이 있습니다. 감사는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을 사랑하게 만드는 기적을 일으킵니다. 감사는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을 용서하게 하는 기적을 일으킵니다. 감사는 시기하는 사람을 사랑하게 하는 기적을 일으킵니다. 감사는 막힌 담을 헐어 형통케 하는 기적을 일으켜 줍니다. 감사는 비판과 원망과 불평의 마음을 녹이는 기적의 힘이 있습니다. 감사는 고칠 수 없는 내 성품을 아름답게 만들어 주는 기적의 힘이 있습니다. 감사로 내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일을 하나님의 능력으로 해결 받는 기적을 체험하시기 바랍니다. 절벽 앞에서도 감사하면 문이 열리는 기적을 체험받을 수 있습니다.

 

오늘은 맥추 감사주일입니다. 우리 아무 공로 없지만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우리를 구원해 하나님의 자녀 삼아 주었으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삶이 힘들다고 불평하고 원망하시는 분이 있습니까?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풀 수 없는 장애물 앞에 불평과 원망으로 좌절하시는 분이 있습니까? 앞으로 다가올 불행을 예측하며 두려움과 근심의 늪에 빠져 계신 분 있습니까?

지금 주어진 조건이 마음에 들지 않고 나쁘다고 도피하고 싶으신 분이 있습니까?

내 마음대로 되어지지 않았다고 포기하고 싶은 분이 있습니까?

지금 주어진 짐을 벗어버리면 새로운 세계가 올 것이라고 현실을 피하고 싶은 분이 있습니까? 불평한다고, 원망한다고, 도피한다고, 포기한다고, 염려한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내가 감사하는 사람으로 변하면 감사 조건은 더 많아 집니다. 감사를 하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으로 변화됩니다. 감하사면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삶으로 나아갑니다. 감사하면 기쁨이 넘칩니다. 감사하면 언제나 생기가 있습니다. 감사를 하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감사하면 우울증이 치료됩니다. 감사하면 마음의 질병, 육신의 질병, 영적인 질병이 치료됩니다. 감사하면 근심걱정이 없어집니다. 감사하면 공허하지 않습니다. 감사하면 매력적인 사람이 됩니다. 감사하면 분노가 사라집니다. 감사하면 시기와 질투가 사라집니다. 감사하면 탐욕이 사라집니다. 감사하면 나누고 싶어집니다. 감사하면 상처를 받지 않습니다. 감사하면 상처받아도 사랑합니다. 감사하면 원망과 불평이 사라집니다. 감사하면 감사한 만큼 미래가 보장됩니다. 감사를 하면 더 받아 감사한 만큼 인생은 행복해집니다.(눅17:11-19)

 

"감사 감사 감사 감사 감사 감사 감사 감사 예수 내맘에 감사 감사 감사 감사 감사 감사 감사 감사 예수 내맘에"


열린교회/김필곤목사/2018.7.1.

댓글[0]

열기 닫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