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열린말씀 열린설교

열린설교

게시글 검색
하나님의 마음(7) 모든 사람이 선하게 살기를 원하십니다(갈6:9)
김필곤목사 (yeolin) 조회수:6454 추천수:6 112.168.96.71
2016-10-16 07:48:26

 

하나님의 마음(7) 모든 사람이 선하게 살기를 원하십니다

갈6:9

 

지난 13일에 37년 전 한화케미칼에 함께 입사한 동기생들이 고속도에서 버스화재로 10명이 숨지고 7명이 중경상을 입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이들은 퇴직하고 가족처럼 지냈는데 중국 장자제(장가계)로 부부동반 여행을 하고 돌아오다 그런 참사를 당하였답니다. 이 때 불길 속에서 부상자 4명을 살린 분이 있습니다. 묵호고등학교 윤리 교사가 이날 어머니 생신과 아버지 환갑을 맞아 고향인 경남 창원으로 가는 길이었다고 합니다. 자신의 차 앞 70m 앞 지점에서 쾅 하는 소리와 함께 차에 불길이 치솟는 것을 보고 그곳에 가서 출혈로 생명에 위협을 받는 부상당한 4명을 병원으로 후송한 것입니다. 버스는 이미 불길에 휩싸여 있었고 사고 버스에서 기름이 흘러나오면서 도로에도 불길이 치솟고 있었다고 합니다. 자칫 버스가 폭발할 수 있어 현장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쉽사리 승객 구조에 나서지 못하고 있었답니다. 그러나 그 선생님은 "불길이 너무 커 무서웠지만, 버스 안에 있는 사람을 구조하겠다는 생각에 달려들었다"고 합니다.

교회는 주변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이런 선한 사람을 만드는 곳입니다. 악한 사람도 선한 사람으로 만들고, 선한 사람도 더 선한 사람으로 만든 곳이 교회입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모시면 이런 선한 사람들로 변화됩니다. 힘든 사람 격려해주고, 슬퍼하는 사람 위로해 주며, 아파하는 사람들 감싸주고, 실패한 사람들 일으켜 주는 사람들이 됩니다. 삶에 지친 사람들 칭찬해 주고, 외로운 사람들에게 친구가 되어 주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며, 미워하는 사람들 용서해 주고, 상처받은 사람들 치유해 주며, 다툼이 있는 사람들 화해해 주고, 수렁에 빠진 사람들을 건져 주며, 의심있는 사람에게 확신을 주는 사람들이 됩니다.

 

1. 왜 우리가 선을 행해야 합니까?

1) 선하게 살라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간단한 말씀이지만 선한 삶에 대하여 중요한 말씀은 다 해 주고 있습니다. 먼저 “우리가 선을 행되”라고 말씀합니다. 선행을 행하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면 그것은 죄가 되고 그 죄의 대가는 형벌과 징계가 따르는 것입니다. 선하게 살지 않으면 세상이 지옥처럼 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악한 사람들에게까지도 선을 도모하라고 말씀합니다.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롬12:17)” 원수까지도 사랑하신 분이 예수님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악을 선으로 이기며 사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아비멜렉에게 악을 선으로 갚아줍니다(창20:14-18) 다윗이 사울에게 악을 선으로 갚아줍니다(삼상24:17). 엘리사가 아람사람에게(왕하6:22-23) 악을 선으로 갚았습니다. 다윗이 적들에게 악을 선으로 갚았습니다(시35:12-14) 스데반이 자신을 돌로 치는 사람들에게 악을 선으로 갚았습니다(행7:60) 원수도 선의 재료로 활용하면 복이 되고 상급이 됩니다. 보이는 모든 것은 선의 재료입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아멘(롬8:28)”

 

인간이 타락한 이후 하나님이 원래 주셨던 '선함'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악하여졌습니다. 가인은 하나님이 자신의 제사를 받지 않고 동생의 제사만 받는다고 동생 아벨을 쳐 죽였습니다. 그 때 하나님은 가인을 향해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창4:7)”라고 했습니다.

'선함'을 잃어버리고 악으로 오염된 인간을 구원시켜 선한 사람을 만들기 위해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셨습니다. 잃어버린 '선함'을 되찾게 하시기 위하여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님 자신의 생활을 통하여 '선함'이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알려 주셨습니다. 마지막에는 원수까지도 사랑하면서 죄인들을 위해 목숨을 내어놓으심으로 선함이 무엇인지를 알려 주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선하심입니다. '선함'은 자신 왕이 되어 항상 자기만을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어려움을 당하는 이웃을 생각하고 그들을 위하여 무엇인가 하고자 하는 선한 마음을 가진 사람만이 선행을 할 수 있습니다.

 

이 세상의 악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마구 날뛰며 선을 공격합니다. 폭력과 사기와 거짓, 부당한 압력과 착취 그리고 권모술수를 가리지 않고 마구 휘두르는 악의 세력 앞에서 선은 때로 무기력하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처럼 선을 행하라고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합니다. 악을 선으로 이기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너희 원수를 사랑하여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아라 하고 이른 것을, 너희가 들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악한 사람에게 맞서지 말아라. 누가 네 오른쪽 뺨을 치거든, 왼쪽 뺨마저 돌려 대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선을 행하되 수고하여 선을 행하라고 말씀합니다(엡 4:28).

“가난한 자에게 구제할 수 있도록 자기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

사람이 일평생 살면서 가장 보람있는 일은 선을 행하는 일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래서 기뻐하며 선을 행하라고 말씀합니다.

“사람들이 사는 동안에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없는 줄을 내가 알았고(전3:12)”

선을 행하는 일에 부자가 되라고 말씀합니다.

“선을 행하고 선한 사업을 많이 하고 나누어 주기를 좋아하며 너그러운 자가 되게 하라(딤전 6: 18, 행 9: 36)”

참으며 선을 행하라고 말씀합니다(롬 2 : 7).

선을 행한다고 당장 보상이 오지 않더라도 참아야 합니다. 그러기에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말라고 말씀합니다(갈6:9). 하나님의 사람들은 원수까지고 사랑하면 선을 행하여야 합니다

 

2) 하나님이 우리를 이 땅에 살게 하는 이유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성경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에베소서 2장 10절은 그 이유를 이렇게 명확하게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엡 2:10)”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믿습니까? 우리는 선한 일을 위해 지으심을 받았습니다. 우리 성도님들이 열심히 선하게 살려고 애를 씁니다. 지난 주에 우리교회에서 노회 목사님들과 장로님들이 모였는데 장로님들은 식사로 대접하고, 권사님들은 간식을 대접하고, 여러 성도님들이 나와 봉사를 하였습니다. 어려운데도 서로 후원금은 선한 일을 하였습니다. 목사님 장로님들이 우리 교인들의 정성이 담김 섬김을 받고 참 만족해 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우리 교인들이 이렇게 선한 일을 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것을 볼 때 참 하나님이 기뻐하시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지난 주에도 어떤 집사님이 많은 돈을 들여 말없이 도로에 교회 표지판을 해 놓는 것을 보았습니다. 몇 달 전에 해 놓았는데 어떤 차가 받아 파손시키고 아무 말 없이 가버렸습니다. 세상에는 그런 악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느 집사님이 지나가다 보고 연락이 와 가보니까 그 무거운 것이 덜렁거리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지나가는 차에 떨어지면 대형 차사고가 날 뻔 했습니다. 그것을 안 집사님이 아무 말도 없이 다시 해 놓으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지난 주일날 예배시에 보니까 어느 성도님이 최빈국 아이들을 돕는 만만만 생명운동 구제통에 동전을 가득 담아 헌금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매일 매일 가난한 아이들을 가르치겠다는 선한 마음으로 동전을 담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우리가 선하게 살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얼마나 많이 쌓아 놓느냐를 보시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선을 행했느냐를 보십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중동의 성자 나스루딘이 거리를 다니면서 소리를 질렀답니다. "여러분 제가 나귀 하나를 잃어버렸습니다. 저에게 나귀를 찾아 주시기 바랍니다. 나귀를 찾아 주시면 그 나귀를 선물로 드리겠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보며 손가락질을 했답니다.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냐? 나귀를 찾았으면 그걸로 된 거지 그걸 왜 선물로 줘. 찾은 나귀를 선물로 줄 거면 찾지를 말지." 이해타산이 밝은 사람에게는 이해가 되지 않는 말입니다. 그러나 자신을 향해 수군거리는 사람을 향해 나스루딘은 이렇게 말했답니다. "아닙니다. 내가 잃었던 나귀를 찾으면 잃었던 것을 찾았기 때문에 기쁘고, 그로 인해 나는 기분이 좋기 때문에 선물을 하는 것이고, 선물을 받은 사람은 그로 인해 또 기쁘게 됩니다. 두 사람이 함께 기쁜 일이 아니겠습니까?" 사람들은 마지막 내 손에 들어오는 결과에만 관심을 가지고 사는 경향이 있습니다. 나스루딘은 나에게 남는 것이 아니라 나를 통해 얼마나 많은 선(善)이 흘러들어 왔으며, 또 얼마나 많은 선이 흘러 나갔는가를 중요하게 생각한 것입니다. 삶은 나에게 얼마나 쌓여있느냐로 평가되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많이 선이 흘러갔는가를 통해 계산되어집니다.

 

선행을 하는 것으로 그리스도인이 되지는 못합니다. 어려운 나라에 학교를 지어주고, 교회를 건축해준다고 해서 천국에 가는 것은 아닙니다. 천국을 행위로 가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음으로 갑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믿음을 갖게 되면 선한 사람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이 내 안에 계시기 때문에 선한 목자인 예수님처럼 살려고 노력하게 되고 죄인을 위해 십자가에 돌아가시기 까지 한 예수님의 선행을 본받을 수밖에 없게 됩니다. 선행은 성령을 따라 사는 그리스도인의 합당한 열매입니다. 선행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상을 주시는 근거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를 구원시킨 이유가 선을 행하도록 구원시켰다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여 사람을 근본적으로 선한 사람 만들고 믿는 사람답게 선하게 살도록 하기 위해 우리를 구원시킨 것입니다.

 

2. 어떻게 선을 행하여야 하겠습니까?

오늘 말씀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고 행하라고 말씀합니다.

1) 선을 행할 때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선을 행할 때 낙심은 금물입니다. 낙심하면 선을 행할 수 없습니다. 이 낙심이라는 말은 “아주 기운이 없다, 지치다, 기진맥진하다. 활기가 없어진다”라는 말입니다. 우리말 사전에서는 “바라던 일이 되지 않아 마음이 상하는 것”라고 설명해 놓고 있습니다. 우리가 선하게 살지 못하도록 사탄이 사용하는 중요한 도구입니다. 교회에 열심히 나와 열심히 봉사하던 분이 어느 날 낙심의 덫에 걸리면 선행을 하지 않습니다. 낙심은 선의지를 꺽어 버리는 것입니다. 열심히 노인정에 가서 장애인을 돌보던 사람도 낙심의 덫에 걸리면 그 때부터 봉사하지 않습니다. 열심히 물질을 통해 봉사하던 사람도 낙심의 덫에 걸리면 어김없이 선의지를 꺽어 버립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사탄이 중고 가정용품을 경매하였답니다. 사람들을 골탕 먹이고 위협하고 유혹하고 비난할 때 써먹던 도구들이 탁자 위에 가지런히 진열되어 있었습니다. 각각의 물건들에는 가격이 매겨져 있습니다. 탐욕엔 비싼 가격표가 붙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수군거림의 가격에는 반도 못 미쳤습니다. 교만에는 더 비싼 가격이 붙어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교만이 가장 비싼 가격은 아닙니다. 탁자 한 모퉁이에 평범하고 볼품없고 반들반들 광채가 나기는커녕 낡아 퀴퀴한 냄새를 풍기는 물건 하나가 있었습니다. 바로 그게 나온 물건 중에 가장 비싼 것입니다. 어떤 손님이 물었습니다. "이게 뭐지요? 왜 이렇게 비싼 겁니까?" 사탄이 대답합니다. "아, 그거 말씀이군요. 이건 제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겁니다. 여기 있는 것들 가운데 가장 쓸모 있는 도구이기도 하구요. 시기와 탐욕과 나태와 정욕이 성도들을 꺾지 못할 때 이 녀석이 신통하게 재주를 부려서 목적을 이룬단 말씀이에요. 솔직히 말해서 이 탁자 위에 있는 모든 도구들로 그리스도인들을 넘어뜨린 숫자보다 이 놈 하나로 넘어뜨린 경우가 훨씬 더 많을 겁니다." "이름이 뭡니까?" "네, 그건 낙심이라는 물건입니다." 사탄이 그리스도인을 넘어뜨리려 할 때 쓰는 가장 강력한 무기가 바로 낙심이라고 말합니다. 낙심은 전염성이 아주 강합니다. 열심히 선을 행하는 사람도 “목사가 자기 욕심 챙기고 사모가 악하다” 말을 들으면 금방 낙심이 되어 선을 행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헌금생활도 않하고 예배 생활도 소홀히 합니다. 사탄은 낙심시키는 전문가입니다. 그것 한 방이면 교인들의 선의지를 꺾어 버릴 수 있습니다. 상한 마음 고쳐 주시는 예수님께 나와 낙심을 뛰어 넘고 선을 행하는데 쓰임받는 우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낙심한 마음은 예수님께 나와야 치유가 될 수 있습니다.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시는 주님 하늘의 아버지 날 주관 하소서 주의 길로 인도하사 자유케 하소서 새 일을 행하사 부흥케 하소서 의에 주리고 목이 마르니 성령의 기름 부으소서 의에 주리고 목이 마르니 내 잔을 채워 주소서”

 

2) 선을 행할 때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을 보십시오. 갈라디아 교회는 바울이 전도하여 세운 교회였습니다. 그러나 교인 중에는 바울의 사도권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이 생겼습니다(갈1:1) 교인들 가운데도 그 사람들이 말에 현혹되어 그들을 쫓는 사람들이 생겼습니다(갈1:6) 바울을 대적하는 사람들이 들어와 교회를 분열시키고 혼란에 빠뜨렸습니다. 그들은 사도 바울이 예수께 부르심을 받은 사도가 아니며, 동시에 율법과 할례를 따르지 않는 유대인이라면서 바울을 대적했습니다. 결국 바울의 전도를 받고 교회의 중심이 되었던 교인들과 바울을 대적하는 교인들 간에 충돌이 생기면서 갈라디아 교회는 두 그룹으로 나누어졌습니다. 이러면 얼마나 낙심이 되고 포기하고 싶겠습니까? 그러나 바울은 어떤 비난과 어떤 방해, 어떤 장애물을 당해도 선을 행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의 삶을 보면 포기할 만한 것이 수없이 깔려 있었습니다. 가는 곳마다 환영해 주는 사람들도 있지만 대적하는 사람들도 동시에 있습니다. 아시아에서 복음을 전하기 원했지만 마게도냐의 환상을 보고 빌립보에 갔습니다. 점치는 아이를 고쳤다가 감옥에 가 매를 맞습니다. 선한 일 하는데 이런 결과가 오면 우리는 금방 낙심하고 포기해 버립니다. 데살로니에 큰 부흥이 있었지만 계속 깡패 같은 유대인들이 쫓아와 비방하고 때립니다. 베뢰아로 도망을 쳤습니다. 그러나 대적자들은 스토커처럼 쫓아옵니다. 디모데와 실라를 남겨두고 혼자 아테네로 고린도로 가서 교회를 개척했지만 고린도 사람들이 사도 바울을 어떻게 생각했습니까? 이중인격자라고 생각했습니다. 사도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설교 못한다고 조롱합니다. 돈 좋아한다고 비난하였습니다. 얼마나 포기하고 싶었겠습니까? 그러나 사도 바울은 어떻게 고백합니까?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고후 4:8-9)"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도 보십시오. 인류 구원이라는 선한 일을 위해 전파하시고, 가르치고, 치유하십니다. 그런데 얼마나 그 선한 일을 방해합니까? 끝까지 쫓아다니며 괴롭히는 자들이 있습니다. 조롱하고, 협박하고, 고발하고, 모욕을 주고, 배반하고, 비협조적이고 마침내는 십자가에 처형합니다. 그렇다고 예수님이 선한 일을 포기하였습니까? 아닙니다. 인류 구원 사역을 다 이루었습니다. 신앙의 인물들을 보십시오. 모세, 예레미야, 다윗, 이사야, 하박국, 엘리야, 엘리사, 세례요한 등 수많은 사람들이 선한 일을 하다가 얼마나 포기할 만한 상황을 만났습니까? 그러나 그들은 선한 일을 하는데 포기하고 사명을 접지 않았습니다. 다시 일어나고 또 다시 일어나 마침내 하나님이 주신 선한 사명을 이 땅에 이루어 드렸습니다. 우리는 선한 일을 하면서 결코 포기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누가 무엇이라고 말해도, 사탄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대적하여도 끝까지 선의지를 가지고 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선한 일을 한다고 다 환영해주고 인정해 주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도 비난을 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예수님이 그렇게 좋은 일만 했는데 다 환영합니까?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비난하고 제자들도 배신하고 떠나고 심지어는 인신매매한 제자도 있었습니다. 선한 일 하면서 좋은 소리만 들으려고 하면 어떤 선한 일도 지속적으로 할 수 없습니다. 싫은 소리 들어도 그것이 주님이 원하는 일이라면 낙심하지 말고 포기하지 말고 선한 일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우리를 선한 일을 위해 창조하시고 구원했다는 사실을 끝까지 붙들어야 합니다. 그것이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고전10:31)”는 삶입니다.

 

3. 선을 행하면 어떤 결과가 옵니까?

1) 선을 행하면 언젠가 반드시 보상받을 때가 옵니다.

우리가 선한 일을 하다 낙심하지 말고 포기하지 말고 다시 일어나야 하는 이유가 바로 오늘 말씀처럼 "때가 이르면 거두기" 때문입니다. 선의 결과는 보상받을 때가 있습니다.

선을 행하다가 때때로 지치고 피곤하여 포기하고 싶을 때가 있지만 언젠가 적절한 때가 되면 반드시 열매를 거두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다 낙심하고 포기하는 것은 선을 행한 열매가 원하는 때에 맺혀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열심히 선을 행했으면 가정 경제도 좋아지고, 남편도 술을 끊고, 가정도 행복해지고, 마땅히 보상받고 하면 얼마나 선을 행하는 것이 신이 나겠습니까? 그러나 1년 다녀도 2년 다녀도 1년 기도해도 2년 기도해도 별로 달라지는 것이 없으면 낙심을 합니다. "예수 믿어도 별수 없네, 교회 다녀보았자 똑 같네" 그러면서 낙심하고 포기합니다. 지난 주 어느 집사님이 집안 일이 잘 되었다고 점심 식사대접을 해 주었습니다. 처음에는 교회에 나가지 않고 아내마나 나갔다고 합니다. 그런데 아내가 얼마되지 않은 월급 중에 십일조를 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지 말라고 하니까 아내가 5년만 한 번 해 보자고 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랜 세월 살고 보니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습니다. 그냥 선한 일과는 관계없이 사는 집사님의 동료들과 비교해 볼 때 결코 불행한 삶을 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아들 결혼도 시켜 놓고 집도 마련하고 생활할 만큼 경제력도 있고 부부가 자전거를 사서 자전거를 타며 행복하게 생활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교회 다니면서 교회를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집사님은 그렇게 살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사람 사는 곳 다 좋은 점 나쁜 점이 있는데 뭐 그렇게 사느냐고 말씀하였습니다. 연륜이 들어 신앙의 진리를 많이 깨달은 것 같았습니다. 물질로든, 말로든, 행함으로든, 재능으로든, 시간으로든 하나님과 타인을 위해 선을 행하면 결코 손해가 아닙니다. 열매로 드럴 날 때가 있습니다. 상급으로 보상받을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말씀합니다.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 죽일 때가 있고 치료할 때가 있으며 헐 때가 있고 세울 때가 있으며 (전 3:1-3)"라고 말씀합니다.

오늘 시대의 대표적인 특징 중의 하나는 조급증입니다. 냉장고도 '급속 냉각'을 해야 팔립니다. 엘리베이터를 타자마자 2, 3초를 참지 못해 '닫힘' 버튼을 눌러야 합니다. 웹페이지가 로딩되는 1, 2초를 기다리지 못해 '뒤로' 버튼을 클릭합니다. 연애도 번개팅을 해야 합니다. 복권도 즉석 복권을 사야 합니다. 기다리지 못합니다.

아브라함이, 모세가, 유다가 기다리지 못해 어려움 당했습니다. 나무 한 그루 제대로 자라려면 50년 100년 기다려야 합니다. 다니엘은 21일 동안 절식을 하면서 기도를 드리다가 비로소 21일 만에 응답을 받았습니다. 만약 20일 째 낙심하고 그만두었으면 그는 기도 응답을 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죽은 자를 살리고 갈멜산에서 850명의 이방신을 섬기는 자들을 불을 내려 사를 정도로 기적을 일으킨 엘리야도 하나님의 약속을 듣고 비오기를 일곱 번까지 기도하여 응답을 받았습니다. 만약 6번째 낙심하고 그만 두었다면 가뭄을 해갈하는 단비는 체험 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모세가 바로에게 9번 가고 낙심하고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9번 거절해도 선의지를 꺾지 않고 낙심하지 않으며 열 번째 가서 또 다시 기적을 일으켜 애굽에서 백성을 해방시켰습니다. 아브라함을 아들을 준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25년 동안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노아는 120년입니다. 모세는 40년입니다. 다윗은 17년입니다. 요셉이 총리가 되기까지는 그 지루한 세월의 기다림 속에 더하여 3년이라는 감옥생활의 기다림이 필요했습니다. 갈렙은 45년을 기다려 85세에 원하는 산지를 받았습니다. 우리 하나님이 우리의 눈물을 다 씻어 주시고 잘했다 착하고 충성된 중이라고 보상해 주실 때가 반드시 옵니다.

 

2) 사람들은 몰라주어도 우리 하나님은 우리의 선행을 다 알아주십니다.

7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갈 6:7)"

쉬운말 성경은 "스스로를 속이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는 결코 속임을 당하지 않는 분이십니다. 사람이 무엇을 심든지 심은 대로 거둘 것입니다."라고 번역을 했습니다. 하나님은 결코 속임을 당하지 않으신 분이라는 말씀은 하나님은 다 알고 있다는 말입니다.

약은 사람이 출세하고 고약한 사람이 부자가 되고, 착하면 손해를 보고, 경쟁력이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커닝하는 사람이 성적표도 잘 나오고 눈치가 빠른 사람이 현실감이 있고 똑똑한 것처럼 보입니다. 약은 사람은 계산력과 순발력이 빨라 이익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남을 이용하는 능력이 탁월하여 출세할 수도 있고 사람의 마음을 잘 챙겨 환심을 살 수도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해 위선을 떨면서 착한 척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약은 마음은 아무리 잘 포장해도 시간이 가면 이기심으로 꼬인 속마음의 마그마가 흘러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사람은 속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속일 수 없습니다. 사람은 우리의 선행을 몰라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은밀한 중에 한 선행을 다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선한 일을 하다가 왜 낙심하고 포기합니까? 자신의 선행이 인정받지 못하다고 생각하면 쉽게 낙심하고 포기해 버립니다. 사람은 인정받는 것을 좋아합니다. 인정받는 곳에 시간도 내고 돈도 냅니다. 회사에서도 열심을 다해 선행을 행하였는데 이사 승진이 안됩니다. 교회에서도 정말 열심히 선행을 행했는데 임직자 투표에서 사람들이 인정을 해 주지 않습니다. 그러면 선행을 행하는 것을 낙심하고 포기해 버립니다. 신앙인의 선행은 남에게 인정받고자 하는 선행이 아닙니다.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예수님처럼 살기 위해 선행을 하는 것입니다. 오른 손이 모르게 왼손이 모르게 선행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 우리 하나님이 다 보고 계시고 우리 하나님이 다 알고 계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사정, 우리의 형편, 우리의 선행, 우리의 헌신, 우리의 눈물, 우리의 기도 다 알고 계십니다. 아무도 내 사정 몰라주어도 우리 하나님은 우리의 사정을 알아주실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선을 행하다 낙심하거나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세상 사람 다 몰라 준다고 해도 여호와께서 함께 해 주십니다. 여호와께서 선한 자와 함께 하실지로다 하니라(대하 19 : 11). 우리의 선행을 알고 계시는 하나님께 은총을 받습니다(잠 12:2). 우리의 선행을 다 기억하고 계시는 하나님께서 갚아 주십니다(엡 6: 8, 창31 : 9, 시 18: 20, 마6 :4,6,18.에2: 23),

 

“이 세상사람 날 몰라줘도 이 세상사람 날 몰라줘도 이 세상사람 날 몰라줘도 뒤돌아서지 않겠네 뒤돌아서지 않겠네.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 뒤돌아서지 않겠네”

 

3) 선을 행하면 반드시 심은 대로 거두게 됩니다.

오늘 성경에 보면 거둔다는 말을 계속 반복하고 있습니다. 7절에 "그대로 거두리라" 8절에 "거두고 거두리라" 9절에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라고 말씀합니다. 8절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갈 6:8)" 선한 것을 심었으면 반드시 선한 열매를 거둔다는 것입니다. 육체의 열매는 5장 19-21절까지 나와 있습니다. 성령의 열매는 5:22-23절에 나와 있습니다. 믿음을 심으면 믿음의 열매를 거둡니다. 소망을 심으면 소망의 열매를 거둡니다. 사랑을 심으면 사랑의 열매를 거둡니다. 용서를 심으면 용서의 열매를 거둡니다. 예수님은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소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마 10:42)"라고 했습니다.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요 (마 10:40-41)"라고 했습니다.

선을 행하면 결국 영광과 존귀와 평강을 얻습니다.

“선을 행하는 각 사람에게는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있으리니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라(롬2:10)”

최후의 승리를 얻습니다(잠 14: 19, 삼하 19:10-19, 에 6: 13, 7:8),

 

(주)영성 회장이자 서울 서대문 결핵병원 내 베데스다교회 설립자인 이장로님이 계십니다. 그의 전재산 800여억을 출연하여 사회복지 법인 "사랑의 보금자리"를 설립했습니다. 이 장로님은 33세 때인 69년 각혈을 하며 쓰러졌다고 합니다. 당시로서는 치명적인 결핵이라 의사들은 "가망이 없다."고 했답니다. 마지막으로 찾은 곳이 시립 서대문 병원. 많은 결핵환자들이 죽어 나가는 모습을 보며 이 장로는 "살려만 주시면 여생을 결핵환자를 위해 바치겠다. "며 하나님께 필사적으로 서원기도를 했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그의 눈물을 보고 계셨고 그의 고통을 아셨습니다. 기적같이 완쾌된 이장로님은 그때부터 '빛을 갚는 심정'으로 결핵 환자들을 돕는 데 온 힘을 기울여 왔다고 합니다. 힘든 일이 있어도 선의지를 꺾지 않고 지속적으로 결핵환자를 돌보았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이 장로님은 지난 40년 간 매월 평균 200명 이상 지금까지 모두 7만 명 이상의 결핵환자들을 돌보았다고 합니다. 선을 심으로면 선을 거두게 되어 있습니다. 반드시 심는대로 거두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일반 법칙이고 자연의 법칙입니다.

 

그러니 어떻게 하라는 것입니까? 6절을 보십시오. 가르치는 자에게 선한 일을 하라는 것입니다. 10절을 보십시오. 기회 주어졌을 때 모든 사람에게 착한 일을 하되 특히 믿음의 식구들에게 선한 일을 하라는 것입니다. 가르치는 자 비방하고 교인들을 악한 사람을 만들면 안 됩니다. 교회는 이런 선한 사람을 만드는 곳입니다. 악한 사람도 선한 사람으로 만들고, 선한 사람도 더 선한 사람으로 만든 곳이 교회입니다. 가끔 보면 교인들 가운데는 목회자나 장로 교인들을 나쁜 사람으로 만드는데 열심인 사람들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보면 참 좋은 사람들인데도 불구하고 잘못된 점을 찾아내거나 지어내어 다른 사람들에게 나쁜 사람이라고 소문을 냅니다. 그러면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은 그 사람을 진짜 나쁜 사람으로 알고 부정적으로 대하게 됩니다. 이런 사람들은 예수님을 악한 사람으로 만들려고 했던 바리새인들과 같은 사람들입니다. 상대를 나쁜 사람을 만들므로 자신은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드러내고 자신의 말을 듣는 사람을 자기편으로 만들려는 아주 나쁜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함께 하나님의 가족이 되어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서로에게 선한을 일을 하여야 합니다.

 

"우리가"에 내 이름을 넣어 9절 말씀을 크게 다시 한 번 읽겠습니다.

열린교회/김필곤목사/2016.10.16.

댓글[0]

열기 닫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