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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의 열매9-절제(갈5:22 고전9:25)
김필곤목사 (yeolin) 조회수:12085 추천수:13 112.168.96.71
2016-06-05 08:18:09

 

성령의 열매9-절제

갈5:22 고전9:25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화창한 어느 가을날, 한 농부가 토실토실하게 여문 옥수수를 엮어서 앞마당에 있는 나무에 매달아 놓았답니다. 다람쥐 한 마리가 그 광경을 숨어서 지켜보았답니다. 그 다람쥐는 날마다 농부의 눈을 피해 옥수수가 매달려 있는 나무에 올라가 배가 터지도록 옥수수를 먹었답니다. 한 보름쯤 지났답니다. 농부는 나무 밑에 떨어져 죽어있는 다람쥐를 발견했답니다.

다람쥐가 나무에서 내려오다가 그동안 너무 먹어서 둔해진 자기 몸무게를 주체하지 못해 발을 헛디뎌 나무에서 떨어져 죽었답니다. 먹는 것에 절제하지 못한 것입니다. 절제하지 못하면 모든 것이 비극으로 끝납니다. 마음대로 사는 것이 현대인이고 자유인이고, 지성인처럼 보이는 시대입니다. 마음에 끌리면 마음대로 동성과도 결혼하는 것도 자유이고, 제가 좋아하면 마음대로 옷을 벗는 것도 자유이고, 제 먹고 싶은 대로 대마초든 마약이든 무엇이든 먹으면 되는데 왜 법으로 제한을 하느냐는 것입니다. 마음대로 살게 내버려 두는 것이 소수 인권을 보호하는 것처럼 말들을 합니다. 그러나 마음대로 생각하고, 마음대로 감정을 폭발하고, 마음대로 행동하고, 마음대로 먹고, 마음대로 즐기고, 마음대로 가지게 되면 세상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마음대로 하는 세상은 지옥으로 변합니다. 마음대로 하지 않는 것이 절제입니다. 절제라는 말을 우리 말 사전에 찾아보면 “정도에 넘지 아니하도록 알맞게 조절하여 제한함”이라고 설명해 놓고 있습니다. 한자어로 마디 “절”과 마를 “제”입니다. NIV 영어 성경에서는 “self-control”로 번역했습니다. "자기 스스로를 알맞게 잘 조절한다"라는 뜻입니다. 자기 통제력을 말합니다. 자기조절 능력을 말합니다. 즉 생각하거나 말하거나 감정을 나타낼 때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결과를 예측하면서 하는 것입니다. 관계나 일상생활에서 실수하거나 후회하지 않을 수 있도록 자기 통제력을 가지고 하는 것입니다. 누가 그렇게 한다는 것입니까? 자기 스스로 그렇게 통제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의 열매인 절제는 조금은 다릅니다. 헬라어로는 “엥크라테이아”입니다. ‘무엇 아래 머물다’라는 ‘엥’과 ‘권능, 지배’라는 ‘크라토스’의 합성어입니다. 그래서 성령의 열매인 절제는 ‘성령의 권능아래서 지배를 받는 것’을 말합니다. 주체가 자신이 아닙니다. 주체가 성령님입니다. 성령의 통치 영역 안에 있을 때 맺혀지는 성품의 열매입니다. 풀어 설명하면 ‘성령의 지배를 받아 그리스도의 인격으로 자신을 제어하는 힘’이라고 설명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도덕적 의미의 절제는 주체가 자신이지만 성령의 열매인 절제는 주체가 자신이 아니라 성령님입니다. 그래서 성령의 열매인 절제는 단순한 인격적 훈련을 통해 맺혀지는 열매가 아니라 하나님과 관계를 통해 맺어지는 열매입니다. 예수님이 내 안에 살아갈 때 맺혀지는 열매입니다. 성령 충만할 때 풍성하게 맺혀지는 열매입니다. 절제의 반대말은 무절제입니다. 윤리적으로 무절제하다고 말할 때는 절제의 훈련이 덜 된 상태를 말합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무절제는 하나님의 통제에서 벗어난 상태를 말합니다.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면 무절제한 상태가 되어 자기 마음대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게 됩니다.

 

1. 왜 우리가 성령의 열매인 절제의 열매를 풍성하게 맺혀야 됩니까?

개역 개정 성경에서 절제라는 말을 찾아보면 12번이 나옵니다. 그 말씀을 읽어 보면 왜 하나님이 우리에게 절제의 열매를 맺으라고 하는지 그 이유를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많은 이유가 있지만 제가 3가지만 성경 구절을 통해 그 이유를 말씀해 드리겠습니다.

 

첫째 시험에 들지 않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절제하지 않으면 금방 마귀가 틈을 타서 시험에 들게 되어 있습니다. 고전7장 5절에 보면 부부가 같은 방을 쓰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면서 그 이유를 설명하기를 “이는 너희의 절제 못함을 인하여 사단으로 너희를 시험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라고 말씀합니다. 절제의 열매가 풍성하지 못하면 금방 시험에 들게 되어 있습니다. 나이와도 상관없고, 신앙의 연륜관도 상관없고, 지위의 정도와도 상관이 없습니다. 노아는 술을 절제하지 못하다 금방 시험에 들었습니다. 하와는 음식을 절제하지 못하여 시험에 들었습니다. 아간은 탐심을 절제하지 못하여 시험에 들었습니다. 다윗은 음욕을 절제하지 못하여 시험에 들었습니다.

 

둘째는 인생살이에서 성공하기 위해서입니다.

어떤 분야에서든지 절제 없이는 승리할 수 없습니다. 고린도 전서 9장 23-25절에서 달리기 하는 운동선수를 비유로 들어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마라톤 영웅, 황영조 선수는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연습 도중에 버스 뒤를 쫓아가다가 너무 힘들어서 버스 바퀴에 들어가고 싶었습니다.” 먹고 싶고, 자고 싶고, 즐기고 싶은 모든 것을 오직 한 가지 목표를 위해 줄이고, 억제하고, 끊고 훈련할 때 금메달의 영광을 획득하게 되는 것입니다. 운동 뿐 아니라 건강도, 사업도, 공부도, 가정생활도,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절제하지 못하면 어느 분야에서도 성공하지 못합니다. 지도자로 성공하려면 절제해야 합니다. 다니엘은 절제함으로 정권은 바퀴어도 지속적으로 성공하였습니다. 요셉은 여인의 유혹에도 절제함으로 성공하였습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감독의 자격을 말하면서 “감독은 책망할 것이 없으며 한 아내의 남편이 되며 절제하며(딤전3;1-2)”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지도자의 필수 덕목 중 하나는 절제입니다. 절제하지 못하여 얼마나 많은 지도자들이 추락을 합니까?

 

3) 성숙한 인격을 갖추기 위해서입니다.

가장 성숙한 인격은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입니다. 그것을 베드로는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것으로 말씀합니다. 그러면서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으니 이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공급하라(벧후1;4-6)”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는 것 중의 하나를 절제를 말씀합니다. 성령의 아홉가지 열매 중 절제는 맨 끝에 언급하고 있습니다. 중요하지 않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성령의 열매는 복수가 아닙니다. 모양만 달리할 뿐이지 단수입니다. 이 절제는 그림의 낙관과 같은 것입니다. 다른 열매들을 담는 바구니와 같은 것입니다. 모든 열매에 맛을 내게 하는 양념과 같은 것입니다. 자녀를 사랑한다고 하여도 절제 없는 사랑은 익애게 되어 버릇없는 아이를 만들어 망치게 합니다. 기쁨의 열매도 절제가 빠지면 초상집에서도 기뻐함으로 다른 사람을 시험들게 하고 아무데나 웃어 미친사람 취급을 받습니다. 화평의 열매도 절제가 없으면 태만이 될 수가 있고 인내의 열매도 절제가 없으면 무감각하고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으로 낙인찍힐 수 있습니다. 자비의 열매도 양선도 절제가 있어야 도움받는 사람에게 거지 근성을 길러주지 않습니다. 충성의 열매도 절제가 없으면 과로로 쓰러질 수 있고, 온유의 열매도 절제가 없으면 싸가지 없는 인간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절제가 있어야 신앙인으로 성숙한 인격자가 될 수 있습니다.

 

2. 우리가 어떤 부분에 절제를 해야 합니까?

하나님은 여러 부분에서 우리에게 절제를 요구합니다. 사탄은 끊임없이 칼을 들고 절제의 바구니를 찢어 버리려고 합니다. 우리가 여러 부분에 절제를 해야 하지만 대표적인 것 세 가지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첫째는 마음을 절제하여야 합니다.

사탄은 아담 때부터 끊임없이 “네 마음대로 하라”고 우리를 유혹합니다. 네 마음대로 하면 참 자유를 누릴 것이라고 유혹합니다. 네 마음대로 하면 진정한 기쁨과 행복을 누릴 것이라고 유혹합니다. 그러나 인간 마음이 그렇게 좋은 것이 아닙니다.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렘 17:9)”라고 말씀합니다. 사탄은 우리의 마음이 고상한 것처럼 추겨 세우며 우리의 생각을 하나님의 통제에서 벗어나게 하려고 합니다. 그것이 교만이고 그것이 죄입니다. 마귀는 사람의 생각을 통하여 역사합니다. 가룟 유다를 보십시오.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라"(요한13:2)

사탄은 우리 마음에 쓰레기를 자꾸 집어넣고 오염시켜 버립니다. 그것을 성경은 탐욕이라고 말씀합니다. 갈다디아서에서는 육체의 욕망이라고 말슴합니다. "육체의 욕망은 성령을 거스르고 이런 일을 하는 사람들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갈 5:17,21)이라고 하였습니다. 또 6장에서는 "자기 육체의 욕망을 따라 심는 사람은 육체로부터 썩을 것을 거두고, 성령의 뜻을 따라 심는 사람은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둘 것"(갈 6:8)이라고 하였습니다. 육체의 욕망을 통제하지 못하면 아간과 같이 됩니다. 엘리사의 종 게하시처럼 나병에 걸리게 됩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처럼 되는 것입니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게 되는 것입니다. 다니엘이나 요셉은 마음을 지킴으로 절제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오직 너는 스스로 삼가며 네 마음을 힘써 지키라(신4:9)”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롬 12:3)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잠언 16장 32절에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사람은 성을 점령한 사람보다 낫다"고 하였습니다.

“자기의 마음을 제어하지 아니하는 자는 성읍이 무너지고 성벽이 없는 것과 같으니라(잠 25:28)”

 

왜 성경은 이스라엘이 망했다고 소개하고 있습니까?

“땅이여 들으라 내가 이 백성에게 재앙을 내리리니 이것이 그들의 생각의 결과라 그들이 내 말을 듣지 아니하며 내 율법을 거절하였음이니라(렘 6:19)” 생각의 결과라고 말씀합니다. 마음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마음이 성령님의 통제를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 4:23)”라고 말씀하십니다.

 

둘째는 감정을 절제해야 합니다.

달리는 자동차에 브레이크가 없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아무리 좋은 차일지라도 브레이크가 있어야 안전합니다. 아무리 좋은 것일지라도 지나치면 망가지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감정은 절제되어야 사고가 나지 않습니다. 슬픈 감정도, 기쁜 감정도, 미움도, 근심도, 염려도, 두려움도 절제되어야 합니다. 분노도 절제 되어야 합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라”(엡4:26) 감정을 절제하지 못하면 혹독한 대가를 치르게 되어 있습니다. 인격수양은 결국 감정절제를 배우는 것입니다.

 

셋째는 행동을 절제해야 합니다.

보고, 듣고, 말하고, 만지고, 입고, 먹고, 마시고, 쓰고하는 것을 절제해야 합니다. 담배가 스트레스를 해소해 준다고 절제하지 못하면 결국 그 담배가 자신의 생명을 빼앗아가게 됩니다. 술이 맛있다고 절제하지 못하면 그 술이 인생을 삼켜 버립니다. 말을 하고 싶은대로 하면 그 말이 자신의 인생을 파멸시켜 버립니다. 생각나는 대로, 느끼는 대로, 보는대로, 하고 싶은 말 마구 하면 그 말이 올무가 되어 인생을 살라버립니다. 야고보서 3:6에서 "혀는 불이요 이것은 생의 바퀴를 불사른다"고 했습니다. 무엇이든지 절제하지 못하면 그것의 노예가 되어 버립니다. 중독이 되어 버립니다. 우리 시대는 3 ‘S’의 시대라고 합니다. 스포츠, 스크린, 섹스을 말합니다. 이런 것을 절제해야 합니다. 광고에서는 “그냥하세요(just do it)”라고 우리를 유혹합니다. 생각하지 말고 따라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TV나 오락이나 게임의 수렁에 빠지면 인생 막장으로 달려갑니다. 소비생활도 절제해야 합니다. 화장도 절제해야 합니다. 잠도 절제해야 합니다. 본능에 충실하면 망합니다.

식욕을 절제하지 못하면 에서처럼 장자의 권리와 축복을 잃어버리고 맙니다. 성욕을 절제하지 못하면 삼손처럼 사명을 잃고 멸망의 길을 걷고 맙니다. 분노를 절제하지 못하면 모세처럼 가나안의 축복을 누리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힘을 절제하지 못하면 사울처럼 왕권을 빼앗기고 비극으로 인생을 마감할 수 있습니다. 탐욕을 절제하지 못하면 아간이나 아나니아 삽비라처럼 작은 것 하나 때문에 모든 것을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3. 우리가 어떻게 절제의 열매를 풍성히 맺힐 수 있겠습니까?

첫째 성령님의 통제를 받아야 합니다.

성령의 열매는 성령의 통제를 받을 때 맺혀지는 열매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면 두 마음이 생깁니다. 육체의 소욕과 성령의 소원입니다. 우리 안에 성령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의 통제를 받을 때 성령의 열매는 풍성히 맺히게 되는 것입니다. 생각과 감정, 행동 등 모든 부분에서 성령님의 통제를 받는 것을 성령 충만이라고 합니다. 사울도 성령 충만을 받을 때는 예언도 하고 절제도 잘 하였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통제를 받지 않고 악령에 사로잡히니까 월권을 하고, 질투의 화신이 되어 권력을 남용하고 오용하여 다윗을 죽이려고 쫓아다닙니다. 우리가 성령의 통제를 받지 않으면 우리 마음도 그렇게 변해 버립니다. 성령의 통제를 받을 때는 천사처럼 보였는데 악령의 통제를 받으면 마귀처럼 보이는 것입니다. 세례요한을 보십시오. 성령 충만하여 성령의 통제를 받으니까 얼마나 절제의 열매가 주렁주렁 맺히게 됩니다. 자신은 쇠하지만 예수님은 흥해야 한다고 합니다. 예수님의 신발끈도 자신은 감당하지 못하겠다고 합니다. 사울과는 얼마나 대조적입니까? 자신의 자리와 자신의 사명과 자신의 위치를 정확히 알고 절제된 삶을 사는 것입니다. 다윗도 성령 충만할 때는 죽일 기회가 충분한데도 사울을 죽이지 않는 절제력을 발휘합니다. 자신의 위치를 망각하지 않습니다. 백성이 저주받아도 분노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로 받아들이고 절제합니다. 그러나 성령의 통제를 받지 않자 여인을 보고 음욕이 발동하여 결국 간음하고 그것을 합리화하기 위해 자신의 신하까지 죽여 버렸습니다. 권력을 남용하고 오용하는 것입니다. 두 사람 다윗이 아닙니다. 한 사람 다윗이 성령 충만 받을 때와 악령에 사로잡힐 때 이렇게 차이가 나는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롬 8:5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롬 8:6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절제의 열매가 맺히지 않는다고 낙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령 충만을 사모하기길 바랍니다. 기도하고 회개하고 순종함으로 성령 충만함으로 절제의 열매가 풍성하시길 바랍니다.

내 힘으로 나를 절제시키지 못해도 성령 충만하면 성령님께서 모든 부분에 절제를 시켜 주십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 (스가랴 4:6).

 

둘째는 주님 안에 살아야 합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은 것도 마음대로 하려는 욕심의 결과입니다. 아담 안에서 자연인은 누구나 제멋대로 사는 것입니다. 신앙인도 다 내가 복음대로 살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에베소서 2장에 보면 모든 사람은 세상의 풍조에 따라 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라 살게 되어 있습니다. 육체의 욕심에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당연히 여기며 삽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게 예수님을 믿어 예수님의 사람으로 변했습니다. 이제는 내 안에 예수님이 살게 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모든 성령의 열매가 그렇지만 절제의 열매도 절제하려고 애를 쓰지 말고 주님을 바라보아야 멍에가 되지 않습니다. 자칫 잘못하여 율법적으로 절제하려고 애쓰다보면 엄청난 멍에가 되어 열매도 맺지 못하고 지켜 쓰러질 수가 있습니다. 바리새인이 될 수 있습니다. 완벽주의자, 율법주의자가 되어 자신이 심판주가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히 12:2)”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어떤 분이십니다. 완벽한 절제의 능력이 있으신 분입니다.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고 유혹합니다. 예수님은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말씀으로 살 것이니라"(마4:4)라고 승리하였습니다. 사탄은 인간을 본능에 따라 살도록 유혹했지만 예수님은 말씀을 따라 육신의 정욕을 이기셨습니다.

사탄은 인기를 탐하는 영웅이 되라고 유혹했지만 예수님은 이생의 자랑을 이겼습니다. 사탄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목적을 달성하고 살라고 안목의 정욕을 부추겨 유혹했지만 예수님은 "사탄아 물러가라 주 너희 하나님을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마4:10)고 이기셨습니다. 우리는 모든 유혹을 이기고 승리하신 주님을 바라보고 살다 보면 절제의 열매는 풍성하게 맺히게 되어 있습니다. 나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예수님과의 관계가 더 중요한 것입니다. 예수님과 긴밀한 관계를 맺으면 절제의 열매는 자연스럽게 맺히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니까 무절제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롬1:28-31)

우리게 맺는 절제의 열매는 self-control (스스로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Christ-control

(예수님이 통제하는 것)입니다. 절제란 내 권능과 능력 아래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권능과 능력 아래 있는 것입니다. 내 마음의 중심이 나 자신에게서 예수님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주제권이 바뀌어야 합니다. 내 인생의 왕이 바뀌어야 합니다. 생각이나 감정, 행동의 주제권이 바뀌는 것입니다. 내 마음대로 생각하고 내 마음 대로 느끼고 내 마음대로 말하고 내 마음대로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절제의 열매는 풍성하게 맺혀지게 되어 있습니다. 성령은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 4:13)라고 말씀합니다. 절제하지 못하는 삶을 보면서 낙심할 필요는 없습니다. 주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주님 안에서 얼마든지 절제의 열매를 풍성히 맺힐 수 있습니다.

 

셋째는 목적의식을 가지고 훈련해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은 믿으면 절제의 권세가 주어집니다. 그렇다고 완전하지는 않습니다. 절제의 씨가 뿌려진 것입니다. 그대로 방치하면 안됩니다. 훈련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디모데전서 4:7에서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경건에 이르도록 네 자신을 연단하라"고 말씀합니다. 고린도전서 9:25에서는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그들은 썩을 승리자의 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라고 했습니다. 결과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분명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훈련을 해야 합니다. 목적의식을 가진 사람들은 지금의 유혹보다 미래의 상급을 보는 것입니다. '지금'은 차갑게 보고 '나중'은 뜨겁게 보는 것입니다. 장자의 명분을 팥죽 한 그릇에 판 에서는 지금의 욕구에 충실하여 절제하지 못하여 축복을 잃어 버렸습니다. 대부분 절제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지금 욕구에 충실하기 때문입니다. 미래에 주어질 장자의 명분을 가볍게 생각한 것입니다. 충동 시스템이 현재에 지나치게 치중하니까 절제에 실패하는 것입니다. 담배 피우는 분들이 '지금'에 초점을 맞춰서 "기분이 정말 좋아질 거야"라고 생각하면 절제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나중'에 초점을 맞추면 달라집니다. "폐암에 걸릴 수도 있어" 자신의 암세포가 있는 폐의 X선 사진을 의사가 보여주는 것을 생각하면 절제할 수 있습니다. 자신 때문에 고통당하는 가족들을 생각하면 절제할 수 있습니다.

 

스탠포드 대학의 심리학자 미셸(W. Mischel)박사는 1966년에 만났던 653명의 네 살배기 꼬마들을 15년 후 십대가 된 다음에 다시 만났는데 마시멜로를 먹지 않고 절제한 아이들이 성적도 우수했고, 비만, 약물중독, 사회 부적응 등의 문제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기다릴 수 있는 힘, 참는 힘, 자기 통제력, 절제력, 만족 지연력이 인생 성공의 중요한 요소인 것은 실험을 통해 밝혔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어떻게 하면 마시멜로 앞에서 15분을 버티게 하는 훈련을 시킬 수 있는가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마시멜로 실험에서 단지 뚜껑만 덮어 놓았는데 평균 6분 이하를 기다린 아이들이 11분 이상을 기다렸다고 합니다. 아이들에게 세 종류의 지시를 했습니다. 어떤 아이들에게는 선생님이 돌아 올 때까지 재미난 일을 생각하라고 했습니다. 어떤 아이들에게는 생각하기에 관해 아무런 지시도 하지 않았습니다. 어떤 아이들에게는 기다린 다음 받게 될 두 개의 마시멜로를 생각하라는 지시했습니다.

재미난 생각을 하도록 지시 받은 아이들은 마시멜로가 눈에 보이건 보이지 않건 간에 큰 차이 없이 평균 13분 정도를 기다렸습니다. 생각에 관해 아무런 지시도 듣지 않은 아이들은 기다리지 못했습니다. 선천적인 성품도 중요하지만 훈련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요셉처럼 유혹이 올 때 절제하려면 피해 버리는 것입니다. 타고난 성향(trait)이나 타고난 두뇌 활동성(innate brain activity)도 중요하지만 아이의 양육환경도 중요합니다. 절제도 훈련하여 습관화시켜야 합니다. 작은 것부터 절제를 해야 합니다. 말할 때 입에 제갈을 물리라고 했습니다. 보고 싶을 때 피하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반드시 선물을 준다는 신뢰관계가 형성되면 아이들이 평균 12분을 더 기다린다고 합니다. 14명의 아이들 중 9명은 15분이 끝날 때까지 마시멜로를 먹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비신뢰 환경의 아이들은 평균 3분을 기다렸고, 15분까지 기다린 아이는 단 한 명이었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은 분명하게 약속하고 있습니다. 고전 9장 25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그들은 썩을 승리자의 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절제하면 썩지 않는 영원한 면류관이 우리 앞에 예비되어 있습니다.

열린교회/김필곤목사/2016.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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