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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머리 소녀 -> 용감한 아줌마
열린교회 (yeolin) 조회수:3930 추천수:20 112.168.96.71
2014-11-25 17:02:52
긴 머리 소녀 -> 용감한 아줌마

지금도 내 지갑에 넣고 다니는 빛 바랜 사진이 한 장 있다. 의미 없이 손에 잡히기에 넣고 다녔는데, 그 사진을 보고 있자니 아내가 그 사진 때문에 겪은 이야기가 내 마음을 시리게 한다. 그 사진에 찍힌 과거는 슬픔이다. 사진 안의 내 아내는 남자의 노란 줄무늬 셔츠를 입고 있었다. 교사인 나의 아내가 어느 날 학교 근무 중에 동료 여교사가 "아니. 그것은 남자 옷인데... 남편 것 아니어요?". 그 말에 아내는 담담하게 "그래요? 나는 여자 것인 줄 알고 입었는데..." "아니에요. 단추 끼는 방향이 다르잖아요.." "그래 맞아요. 내 남편이 입던 옷이에요." 자신의 옷 사기가 아까워서 남편이 입던 옷을 입고 출근한 것이다. 아내는 퇴근길에 걸어오면서 슬펐다고 한다... 어느 학자인지 이름은 분명하지 않지만 "이 세상의 모든 어머니는 신(神)과 같다"라고 하였다. 이 말을 나는 우리 아내에게 붙여주고 싶다. 대학 시절 YMCA 대학 서클에서 만난 우리는 동갑이지만 선후배로 알고 지내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사랑의 감정은 싹텄고, 사랑의 현실인 결혼을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그 때 내가 가진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인생은 미완성이지만. 그 당시에 나는 다른 또래의 사람들에 비해서 가진 것이, 아니 이루어 놓은 것이 전혀 없었다. 그래서 아내의 집에 갔을 때에 강한 반대에 부딪쳤다. 막막했다. 사랑을 감정이나 낭만으로 생각하는 나에게는 너무나 냉혹한 현실이었다. 그때에 아내는 이렇게 말했다. 자신을 키워 주신 어머니에게 "내가 집을 나가서라도 이 사람과 결혼하겠다" 라고... 어머님께는 충격이었지만, 나에게는 눈물겹도록 고마운 일이었다. 그리고 진짜로 보따리를 챙겼다. 이에 놀란 처가 집안 식구들은 만류하였고, 나도 기도하며 "더 좋은 길이 열리기를 기다려 보자"라고 하였다. 일주일도 안되어 결혼 승낙은 떨어졌고. 그 결정이 다시 번복될 것 같아서 한달 안에 초고속으로 결혼식을 치루었는 데, 그것이 8.15일. 우리에겐 청춘의 해방의 날이며 동시에 새로운 자유를 위해 서로를 꽁꽁 묶어 두는 결박의 날이기도 하였다. 신학대학원 졸업 후 목회를 준비중인 나에게 앞으로 목회의 길은 너무나도 막막했다. 기독교 집안이 아니기에 조언이나, 도움을 청할 곳이 한 군데도 없었다. 혼자 끙끙 앓으며 숱한 밤을 아내 몰래 지새웠다. 그 때에 어린 딸은 나의 아픔을 모른 채 너무나 자주 졸라대어서 심한 손찌검을 한 적도 있었다. 결혼 후 아내의 도움으로 대학원을 나온 나는, 목회가 아닌 평범한 신앙인으로, 직장인으로 살고 싶었다. 그래서 아내에게 이야기를 하자 "당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세요. 나는 당신이 가는 대로 그저 따라 갈 뿐입니다. 그러나 이왕이면 목회의 길을 가는 것이 좋겠어요"라고 하였다. 나의 아내는 인생의 고비 고비마다, 방황하고, 갈등 할 때마다 나의 인생의 획을 긋는 일을 해주었다. 나는 능력이 있거나 잘난 구석이 없다. 그래서 인생을 살아 갈 때에 한점 한점 점을 찍는 마음으로 살아왔다. 그런데 그 생의 고비 고비에 아내는 나에게 굵직굵직한 선을 그어주는 것이었다. 어느덧 나이 50을 내다보는 중년의 여인. 나의 아내를 처음 본 것은 25여년 전 갓 대학에 입학한 1학년생 때였다. 그 날은 내가 군 입대하는 환송회 날. 그 때, 나의 아내의 모습은 고등학생 티를 벗지 못한 청순함, 긴 생 머리의 소녀, 시골 처녀의 풋풋함, 수줍음, 다소곳한 순종형의 여인이었는데, 이제는 거칠고, 억센 여인, 용감하고 씩씩한 아줌마가 되었다. 어느 날 라디오에서 "나는 힘 센 여인과 살아서 좋다" 라는 이야기를 듣고 공감하였다. "나도 힘 센 여자와 살아서 좋다. 무거운 짐도 쉽게 들고 가고, 병마개도 한 번에 따고, 잘 안 풀리는 끈도 쉽게 풀고....." 그런데 종종 젊은 시골 처녀와 같은 청순함과 긴생머리의 소녀의 모습을 보고 싶을 때도 있다. 말을 시켜도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는 수줍음... 현실적인 사랑보다는 낭만적인 사랑을 느끼고 싶을 때도 있다. 눈이 오면 뛰어 나가고, 비 오는 날에는 커피 향내 맡으며 삶의 깊이를 말해 주었던 그 젊은 시절의 아내의 모습이 이따금씩 그립다. 내가 어느덧 중년의 남자가 되어서 그런 것일까? 아니면 세월의 흐름 속에 아내의 감정이 현실적으로 변해가고, 낭만을 가지고 살기에는 너무 힘든 삶이기에 무디어 진 것일까? 아니면 나를 부드러운 남자로 만들어 주려다 보니 자신은 거칠어 질 수밖에 없었던 것일까? 사실 아내의 지금 모습은 나로 인한 억셈이요, 나를 위한 강함인 것을... 괜스레 미안해진다. 그리고 슬퍼진다. 헤밍웨이의 ‘무기여 잘 있거라’ 중에서 헨리 중위와 케서린이 사랑의 열매인 아이를 낳다가 죽어갈 때 헨리가 하는 말 '내가 만약 신을 믿는다면 그것은 종교일 거예요... 그런데 나의 종교는 바로 당신이에요.’ 아이에게 아내는 자주 말한다. ‘이 세상에서 너의 아빠는 나의 전부라고...’ 이 말을 들으면서 문득 문득 슬퍼진다. 내가 준 것 보다 너무나 받은 것이 많은데... 나를 그렇게 불러 주다니... 그런 아내를 위해 마음을 다 해 기도 드린다. "주여! 주님 다음으로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오직 나의 아내가 되게 하소서..."-주부편지 2003년 4월 호 중에서/김철호/늘 푸른 장로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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