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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색의 폭주족 소년
열린교회 (yeolin) 조회수:1992 추천수:19 112.168.96.71
2014-11-25 10:33:51
차를 몰고 가다 도로변에 물들어 있는 은행잎도 얼마 남지 않은 걸 보니 가을도 서서히 사라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왠지 모를 쓸쓸함에 앙리꼬 마샤스의 '녹슨 총'을 크게 틀어 놓고 분위기를 잡으려는 순간이었다. 갑자기 오토바이 한 대가 나타나더니 내 뒤를 바짝 따라 붙는 게 아닌가. 보라색으로 머리를 물들인 소년은 언뜻 보기에도 겁없는 폭주족 소년 같아서 모른 척하고 운전에만 몰두했다. 그런데도 그 소년은 긴 손을 뻗어 내 차의 문을 자꾸 두드리는 것이었다.

'폭주족, 위험천만' , '오토바이 강도 극성' 등등의 신문 기사가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창문을 내리면 절대 안되지!' 갑자기 겁이 덜컥 났다. 있는 힘껏 엑셀레이터를 밟고 달리기 시작했는데 소년은 자신을 무시하고 지나치는 나를 향해 뭐라 외치며 따라 오고 있었다. 얼핏 욕설을 퍼붓고 있는 듯도 했는데 오토바이라 그런지 이내 뒤쳐지고 말았다. "휴우~" 저절로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바로 그때 자동차 라디오 아래쪽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 오는 게 아닌가. 녹음된 소리는 아닌 것 같아서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순간 갑자기 고무 타는 듯한 냄새가 피어오르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나는 서둘러 도로 가에 차를 정차시켰다.

하지만 그 순간 퓨즈 있는 쪽에서 불이 솟구쳤다. 숨이 막혀 왔다.이제 내가 애지중지하는 차가 타 버리는 것이 문제가 아니었다. 불길이 가솔린에 옮겨 붙으면 큰 폭발과 함께 나도 날라가 버릴 지 모른다는 생각에 미치자 정신이 없었다. 옷을 벗어서 불길을 끄며, "도와주시오." 하며 도로를 향해 한쪽 팔을 휘둘러보았지만 달리는 속도에 이기지 못하고 차들은 그냥 휭하니 지나치고 말뿐. 그 때 아까의 그 소년이 오토바이를 세우며 나를 향해 다가왔다. "아저씨, 차안에 소화기 없으세요? "미처 준비를 못했는데…" 그는 오토바이에서 내리더니 곧바로 입고 있던 잠바를 벗어서 나와 함께 불이 붙은 곳을 끄기 시작했다.

소년은 손에 화상을 입으면서까지 있는 힘을 다해 불 끄는 일에 달려들었다. 우리 둘이 정신없이 애쓴 덕분에 배선은 타 버렸지만 가솔린까지 불이 옳겨 붙지는 않았고, 차의 다른 부분도 무사해서 다행이었다. 그제서야 나는 그 소년 을 돌아볼 겨를이 생겼다. "자네 덕분에 불길을 잡았군. 고맙네!" 불길을 잡느라 온통 검댕 투성이가 된 소년을 보자 아까 차안에서 그를 겁냈던 게 떠올라 쑥스러웠다. "아저씨, 이 정도로 됐으니 천만다행이네요." 소년은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고있었다. "글쎄 말이네. 나 혼자였다면 어떻게 되었을 지 생각만 해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군."

폭주족이 아닌 천사같은 소년에게 몇 번을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아까, 제가 아저씨를 뒤쫓은 것은 차가 좀 이상해서 신호를 보냈던 건데..." 그랬었구나. 어설픈 지레짐작으로 자식과 같은 어린 소년의 친절을 쓸데없는 장난으로 생각을 했다니…. 적지만 치료비에 보태 쓰라는 내 성의를 끝내 거절하고, 다시 오토바이에 올라 붕~ 하고 떠나는 그 소년을 향해 진실로 고맙다는 말밖에는 할 수가 없었다.

보라색의 폭주족 /김태수
소년낮은 울타리 11월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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