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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의 둥지
열린교회 (yeolin) 조회수:2457 추천수:18 112.168.96.71
2014-11-25 10:53:09
81년인가 82년이었던가. 대학생이던 나는 거칠게 자른 머리를 쓸어 올리며 어두운 터널을 지나는 지하철의 차창을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 불현듯 아버지의 얼굴을 떠올려보고 싶었다. 하지만 아무리 기억을 하려 해도 떠오르지가 않았다. 아버진 누구나 다 아는 배우였지만 난 오래 전에 본 필름 속 주인공의 얼굴을 기억해 내듯 아버지의 눈, 코, 입을 그려보려 애를 써야 했다. 순간 코끝으로 그리운 향내가 밀려왔다. 어려서 잠시 아버지와 산 적이 있었던 것 같다. 술에 취해 소파에 누운 아버지 옆에 서서 난 아버지의 맥주 냄새를 가슴 깊이 들이마셨다. 아버지의 내음, 그 향이 너무 좋았다.

하지만 어린 날의 기억들은 항상 잘게잘게 쪼개져 내 의식 저 밑에 가라앉고 없었다. 부모님이 헤어진 내 나이 두 살 때부터 나는 나와 상관없는 모습으로 규정되어졌다. 어두운 표정이어야만 하는 아이, 웃음을 몰라야만 하는 아이, 사납기만 해야 하는 아이. 하지만 난 세상을 사랑했다. 잔디에 누워 바라보는 하늘이 너무 아름다웠고 떨어지는 빗줄기가 너무 소중했다. 그러나 난 내 속살을 보이기가 싫어 더욱 표정이 굳어만 갔고 거친 외양을 띄어 갔다.

나를 긍정해 줄 그 누군가를 갈구하면서. 아버지 생각을 떨쳐 버리려 배낭에서 성경책을 꺼내 읽었다. 대학에 온 후 교회에 다니게 되면서 예수전도단의 제자훈련과정을 마쳤다. 하지만 사람들은 반듯하지만은 않은 내 모습에 나를 문제 있는 하나님의 자녀로 보는 것 같았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그런 조건 있는 사랑이 아닐 것 같았다. ‘하나님만은 이 모습 이대로도 나를 사랑해 주시지 않을까?’ 주님께서는 이런 나의 막연한 믿음에 응답하셨다.

1993년 6월, 난 아내를 미스코리아 무대에서 처음 만났다. 당시는 MBC주말 연속극 ‘사랑이 뭐길래’ 이후였기에 내 이름 석자를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나 수많은 사람들이 나를 인기 탤런트라 불러도 나는 채워지지 않는 텅 빈 방에 혼자 있었다. 가슴 저 밑에서 냉기가 스며들 때마다 결코 누구도 나와 온기를 나눠 가지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내의 눈빛을 처음 본 순간, 어려서부터 내 영혼을 감싸 온 눈빛이 거기 있었다. 넘어져 다친 내 무릎을 호호 불어 주던 여인, 허기를 참으며 애써 눈을 감는 밤이면 항상 내옆에서 따스한 손을 내밀던 여인. 엄마 품을 떠나야 했던 그 세월 내내 내게 드넓은 품으로 어머니가 되어 주었던 상상 속의 그 여인의 눈이 거기 있었다.

난 방송국으로 달려가 미스코리아 자료철을 뒤졌다. 강주은. 교포인 그녀는 일주일 후에 캐나다로 돌아가기로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일주일이 다 차기 하루 전, 상상 속의 그 여인이 현실이 되어 내 인생 속으로 걸어 들어왔다. MBC스튜디오에서 주말 연속극 ‘엄마의 바다’를 촬영 중이었다. 막 한 씬을 녹화한 후 다른 사람들의 씬을 찍는 동안 난 숨 돌릴 틈도 없이 다음 장면을 준비하고 있었다. “최민수씨, 잠깐 이분 좀 소개시켜 드릴게요.”“안녕하세요.”하며 손이 내 앞으로 왔다. 그날 무대에서 내가 에스코트했던 그 손. 그녀는 미스코리아 대회를 진행한 연출가의 호의로 방송국을 구경 중이었다.

난 내게 사인을 부탁하는 그녀를 데리고 지하 커피숍으로 갔다. 어떻게 미스코리아에 나오게 되었냐는 둥 유명한 배우인가 보다는 둥 너무도 일상적인 대화가 오갔다. 하지만 내 가슴은 끝없이 다른 말을 쏟아 내고 있었다. ‘놓칠 수 없어. 이렇게 놓쳐 버릴 순 없어!’ 대화 중에 그녀가 자주 기도를 드린다고 했다. “크리스천이세요?” “네.” 분명했다. 단순한 만남이 아니었다. ‘하나님께서 드디어 드디어 내게…’ 돌연 그녀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서로의 영혼이 통하고 있었다.

후에 들으니 그 순간 아내에게 번개가 치듯 커다란 음성이 울려왔다고 한다. 그 음성은 지금 보고 있는 남자의 눈이 영원히 쳐다볼 눈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난 그녀의 손을 잡았다. 나는 바로 청혼을 했다. 그리고 다음 날 그녀는 캐나다로 돌아갔다. 1994년, 우린 아내의 표현대로 하나님의 태풍 속에 휩싸여 결혼을 했다. 하지만 아내와 나 둘 다 아무리 사랑을 받는다 해도 늘 부족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었다. 나는 충분히 받지 못해 주는 방법을 몰랐고 아내는 넘치도록 받기만 해 어떻게 주어야 하는지를 몰랐다.

그런 힘겨운 과정을 통해 비로소 우리는 내가 아닌 상대를 중심에 놓는 희생의 기쁨을 터득하게 되었다. 그리곤 아내가 임신을 했고 나는 아빠가 되었다. 2000년. 지금 내 아들 유성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어쩔 줄을 몰라 하고 있다. 유성이가 포크로 참외를 찍어 내게로 왔다. 난 그런 유성이를 한 팔로 덥석 안고, 또 다른 팔로는 과일을 깎고 있던 아내 손을 잡고는 베란다로 나갔다. 창문을 열었다. 저 멀리서 새가 날아가고 있다. 힘차게, 유유히 그리고 너무도 자유롭게 하나님의 사랑을 누리며 날고 있다.

내 모습 이대로도 사랑하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의 빛이 우리의 둥지를 비추고 있다.

천사의 둥지 / 최민수(영화배우)
-가이드 포스트 2000년 7월 호 중에서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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