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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인생(4) 정서(감정)와 건강(잠언17:22, 시46:1-3)
김필곤목사 (yeolin) 조회수:3309 추천수:4 220.120.123.244
2020-06-28 18:57:09

건강한 인생(4) 정서(감정)와 건강

잠언17:22, 시46:1-3

 

코로나 19로 사람들이 건강의 중요성을 더욱 깨닫습니다. 격언에 “돈을 잃으면 조금 잃는 것이요. 명예를 잃으면 많은 것을 잃는 것이고,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땅에 사는 동안 건강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6월 들어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어떻게 하면 건강한 영혼, 건강한 마음, 건강한 신체를 가지고 건강한 인생을 살 것인가를 살펴보았습니다. 첫 주일에 우리가 요한삼서 1장 2절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라는 말씀을 통해 하나님은 우리가 무엇보다 영혼이 건강하길 원하시고 영혼이 잘 되려면 무엇보다 먼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해야 한다고 말씀을 들었습니다. 두 번째 주일은 신체적 건강으로 잠언3장 7-8절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말지어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악을 떠날지어다 이것이 네 몸에 양약이 되어 네 골수를 윤택하게 하리라”라는 말씀을 통해 신체적 건강을 위해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살아야 한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성경은 인생건강을 위한 최고의 건강 보감입니다. 셋째주일은 마음의 건강을 살펴보았습니다.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라는 말씀을 통해 마음의 건강을 위해 생명의 근원인 마음, 예수님이 주신 마음을 잘 지켜야 한다고 했습니다. 생명을 신체적 생명, 사회적 생명, 영적 생명으로 나누어 마음의 건강은 사회적 생명과 밀접한 관계가 있으며 마음을 잘 지키려면 본문 말씀에 근거해 눈을 지키고, 입을 지키고, 발을 지키라고 했습니다. 오늘은 오늘 읽은 말씀을 근거로 하여 정서적 건강, 감정의 건강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신체의 건강은 감정의 건강과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코로나 19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이 본인과 가족, 친구들의 건강과 안정에 대한 걱정, 불안과 두려움이 증가되고 있습니다. 직업의 불안전성,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초조함, 관심있던 것들에 대한 상실, 재정 및 경제적 문제 등의 스트레스가 정서적인 건강에 영향을 주고 정서적인 건강은 바로 신체적 건강에 영향을 주게 됩니다.

 

1. 감정의 건강은 건강한 인생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잠언서 17장 22절을 다시 한번 읽어 보겠습니다.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를 마르게 하느니라” 우리말 번역은 “즐거운 마음은 병을 낫게 하지만 근심하는 마음은 뼈를 말린다.”라고 번역했고 표준번역은 “즐거운 마음은 병을 낫게 하지만, 근심하는 마음은 뼈를 마르게 한다.”라고 번역하였습니다. 우리의 감정, 정서는 몸의 건강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잠언서 15장 13절에서는 “마음의 즐거움은 얼굴을 빛나게 하여도 마음의 근심은 심령을 상하게 하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정서는 영적 건강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모든 감정은 신체에 영향을 미칩니다.

우리는 누구나 감정이 우리 신체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분노를 해 보면 금방 알게 됩니다. 화가 치밀어 오르면 얼굴이 붉어집니다. 심장이 빨리 뛰고 혈압이 오른다는 징조입니다. 손도 부들부들 떠는 사람이 있습니다. 밤에 산에 홀로 가다 어디서 이상한 소리가 나면 소름이 끼치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긍정적 감정은 건강에 유익하지만 부정적 감정은 건강해 해롭다는 것입니다. 자책, 불안, 분노, 근심, 걱정, 시기, 질투 등과 같은 부정적 감정은 우리 신체를 건강하지 못하게 한다고 합니다. 학자들은 많은 실험을 해 보았습니다. 의과 대학으로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대한인 존스 홉킨스대 연구팀이 감정과 신체가 밀접한 연관을 가지고 있다고 연구 결과를 발표했답니다. 연구팀은 우울증을 경험한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암에 걸릴 위험이 69%나 높다고 했으며, 오래된 우울증은 세포 성장과 세포 주기 통제에 영향을 미치는 호르몬에 영향을 끼쳐 암이 생길 가능성이 높다고 발표한 바 있습니다. 윌램 콥(Willem Kop) 박사에 의하면 우울증을 가진 사람은 만성신부전 발병 위험성이 우울증상이 없는 사람보다 발병 위험성이 20% 더 높다고 합니다.

시카고 대학교에서 실시된 연구에서는 외로운 사람들은 심장마비의 위험이 높다고 합니다. 미국 하버드 의대의 디팍 바트 교수 연구팀에 의하면 혼자 사는 사람들은 가족이나 동거인이 있는 사람보다 일찍 죽는 경우가 많았다고 합니다. 외로움은 신체의 면역기능을 약화시키고 체내 염증에 취약해 진다고 합니다. 체내 염증은 심혈관 질환, 당뇨병, 알츠하이머 병 등 각종 질환을 일으키는 요인으로 작용하여, 수명을 단축시킬 수 있다고 합니다.

심근경색의 14%는 분노한 후 발병한다고 합니다. 갑작스러운 분노와 화가 심근경색이나 부정맥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아산병원 심장내과 최기준 교수님은 "분노나 크게 화를 낼 때 가장 타격을 받는 장기는 심장"이라며 "건강한 사람도 한 번의 큰 화 때문에 급성 심근경색이나 부정맥이 올 수 있다"고 말합니다. 분노는 불면증으로 이어지고 만성적인 분노는 혈액순환 증가로 면역체계가 약화된다고 합니다. 시기, 질투, 미움, 수치심, 근심, 걱정, 슬픔, 비탄, 공포, 두려움, 등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 부정적인 정서는 건강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준다고 합니다.

부정적인 정서 중에 사람들을 가장 건강하지 못하게 하는 정서 중의 하나가 불안입니다. 일반 인구의 약 25%가 불안 장애를 경험하고 있다고 합니다. 여성은 남성보다 약 2배가 많다고 합니다. 요즈음 코로나 19로 인하여 불안해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불안 장애가 오면 잠을 잘 자지 못하고 잠이 들기도 힘드는 불면증에 시달립니다. 근육이 경직과 긴장하여 예민하고 사소한 일에도 지나치게 염려하게 됩니다. 마음이 항상 불안한 생각으로 차 있어 초초하고 쉽게 피로해집니다. 안절부절못하고 벼랑에 선 듯한 느낌이 들고 가슴이 두근거리고 손발이 저리거나 입이 마릅니다. 호흡과 심장박동이 빨라지고 얼굴이나 가슴이 화끈거립니다. 스트레스가 쌓여 면역력을 약화시키는 호르몬을 분비하여 각종 질병을 일으킨다고 합니다.

 

2. 우리가 부정적 감정이 아니라 긍정적인 건강한 정서(감정)를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1) 우리는 하나님이 미래를 보장해 주신다는 긍정적 생각을 가짐으로 건강한 정서를 가져야 합니다.

시편 46편을 보세요. 이 시편 기자가 처한 상태가 어떠했는지 2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땅이 변하는 상태입니다. 산이 흔들이는 바다 가운데 빠졌다고 말합니다. 시적 표현입니다. 3절을 보십시오. 바닷물이 솟아나고 뛰놀든지 그것이 넘침으로 산이 흔들렸다고 말합니다. 지진이 일어난 것과 같은 대단한 사건이 일어난 것입니다. 자신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한계상황을 만난 것입니다. 성경 학자들에 의하면 시편46편은 히스기야 왕 때의 역사적 사건을 배경으로 한 시로 알려져 있습니다. 열왕기하 19장에 보면 나라가 잘 되어가던 어느날 앗수르의 산헤립 왕이 18만 5천명이라는 아주 큰 대군을 거느리고 예루살렘 성을 공격해 왔습니다. 갑자기 나라가 망할 위기에 처한 것입니다. 갑자기 모든 것을 상실하고 죽을 위기에 처했습니다. 당시 상황을 2-3절에 표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인생의 쓰나미, 민족의 쓰나미가 다가온 것입니다. 경제의 쓰나미가 다가 온 것입니다. 누구나 어느 날 갑자기 이런 사건이 벌어지면 불안한 감정에 노예가 되어 버립니다. 불안은 본능적인 감정입니다. 불안한 감정은 생존을 위해 필수적인 것입니다. 적당한 불안은 생존에 도움이 되는 감정입니다. 감정이 없는 정서의 한센씨 병에 걸리면 사람은 생존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 때 시편 기자는 3절 하반절에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로다”라고 말합니다. 부정적인 감정인 두려움과 불안이 아니라 긍정적인 감정인 담대함과 평안을 가진다는 말입니다. 부정적인 불안 정서가 인생을 삼키지 못하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왕으로서 공포에 질려 꼼짝 못할 상황인데 두려워하지 않고 주어진 사명 감당하겠다는 것입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 답이 1절에 있습니다. 1절을 큰 소리로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오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니라” 믿습니까? 오늘 코로나 19로 말미암아 미래에 대한 두려운 감정으로 정서의 병이 들어가고 있는 우리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으시길 바랍니다.

사람의 부정적인 감정은 어떻게 생겨납니까?

어제 신문을 보니까 할리우드 억만장자이자 유명 제작자인 스티브 빙이 고급 아파트 27층 자택에서 뛰어내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합니다. 그는 코로나19 사태로 봉쇄 조치와 자택 격리가 길어지면서 외부와의 접촉이 줄자 우울감을 호소했다고 합니다. 코로나가 '불안'과 '외로움'이라는 부정적인 정서 바이러스를 감염시키고 있다는 것입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현재를 "'집단 우울' 발생 직전 단계"라고 진단했습니다. 태국에선 '코로나19발 경기 침체'에 어려움을 겪다 극단적 선택을 한 사람이 지난 3월 한 달에만 38명이 목숨을 끊으려고 시도해 이 중 28명이 숨졌다고 합니다. 미국은 2~3명 중 1명이, 한국은 5명 중 1명 정신건강 '빨간불'이 켜져 있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느끼는 불안과 우울감은 심각한 수준으로 달려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올해 말 확진자가 다시 폭발적으로 증가하거나 경기 침체가 심화되면 더 심각해 질 것이라고 합니다. 아이들도 '코로나 불안'을 겪고 있다고 합니다. 한 5세 아이는 집 초인종이 울리면 방안으로 뛰어들어간다고 합니다. 감염이 두려워 누군가를 만나는 걸 피한다는 것입니다. 또 다른 10세 아이는 매일 많은 시간을 인터넷에 코로나 증상을 검색하고, 가족이 감염될까 걱정하며 보낸다고 합니다. 아이들 가운데는 코로나19 유행으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앓고 있는 아이도 있다고 합니다. 아이들은 매일 전 세계 사망자 수를 접하면서 코로나 바이러스로 사랑하는 부모와 친구들을 잃게 될까봐 걱정하고 있다고 합니다.

모든 세계인들이 코로나 19 상황을 겪고 있는데 왜 어떤 사람은 정서가 병들어 부정적인 정서도 자살을 하고 불안 장애와 우울증을 앓게 되겠습니까? 무엇이 잘못된 것같습니까? 코로나 하면 바로 감염된다라는 잘 못된 생각, 코로나 걸리면 죽는다라는 부정적인 생각이 과도한 불안이라는 부정적인 정서를 만들어 버리는 것입니다. 감정을 만드는 것은 사실이 아니라 사실을 해석하는 생각입니다. 초인 종 울리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대 불안하여 도망갑니다. 그 사이에 무엇이 있습니까? 문열어 주고 저 사람 만나면 코로나 19 걸린다는 생각이 있는 것입니다. 팩트(사건)은 똑같아도 그 사건을 해석하는 생각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감정은 사실이 아니라 사실을 해석하는 생각에 따라 달라지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복도에서 발자국 소리만 나도 강도가 오지 않나하며 불안에 떨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과거 강도 만난 경험이 있는 사람 가운데는 합리적 이성적 판단을 하지 못하고 발자국 소리만 나면 과거 강도당했던 것을 기억하고 뇌의 편도가 전전두엽의 통제를 받지 않고 자동적으로 그렇게 반응을 하는 것입니다. 발자국 소리가 나면 위험한 상황이 왔다고 생각하며 혈압이 상승하고 맥박이 빨라집니다. 호흡 기도가 확장되고 침이 마르고 손에 식은 땀이 납니다. 불안으로 강한 스트레스를 받는 것입니다. 발자국 소리가 문제가 아니라 발자국 소리를 듣는 생각이 그렇게 만들어 버리는 것입니다. 정서가 과거 경험의 노예가 되어 불안장애 공황장애, 우울증을 만들어 버립니다. 정서가 과거의 축을 기준으로 하기 때문에, 정서가 발소리를 들으며 강도가 덮칠 것으로 미래의 축에 붙들기 때문에 불안하게 되는 것입니다.

발자국 소리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그 발자국 소리를 강도의 발자국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여러 가지 가능성이 있는데 그렇게 선택하여 믿어 버리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심리학에서는 인지 왜곡이라고 합니다. 대표적인 것인 과도한 일반화입니다. 한 번 강도를 당했는데 발자국 소리만 나면 강도가 온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초인종 누루는 사람은 다 코로나 19 환자로 생각해 버립니다. 모든 것을 흑백으로 생각하는 흑백논리, 싫은 사람은 항상 나쁜 것 한 가지에만 집중하는 선택적 주의, 칭찬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긍정격하, 실제 일어날 일보다 너무 높은 기대를 하는 비현실적 기대. 실제 근거 없이 바로 부정적인 결론을 내어 버리는 결론으로 바로 건너 뛰기 등이 인지 왜곡을 만든다고 합니다.

 

여기서 부정적 감정인 두려움을 제거하고 긍정적 정서를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감정에 영향을 준 생각을 살펴 그 생각을 바꾸어야 합니다. 감정선을 바꾸어야 합니다.

심리학에서는 이것을 인지행동치료를 합니다. 생각, 감정, 행동은 상호 작용을 한다는 것입니다. 생각은 감정과 행동에 영향을 줍니다. 감정은 생각과 행동에 영향을 줍니다. 행동은 생각과 감정에 영향을 줍니다. 이것을 바탕으로 부정적인 정서를 바꾸는 것은 인지행동치료라고 말합니다. 사실과 감정 그리고 생각을 구분해 부정적인 감정을 만드는 생각을 긍정적 감정을 만드는 생각으로 바꾸어주는 것입니다. 짜능나고 화가 나고 불안하고 두려우면 왜 내가 짜증나고, 왜 화가 났고, 왜 불안하고, 왜 두려운가를 생각해 보고 그것을 긍정적인 생각으로 바꾸라는 것입니다. 감정을 폭발하게 하고 행동에까지 가게 하는 것이 생각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감정일기를 써보면서 생각을 바꾸라는 것입니다.

 

편도가 과활성화 되어 죽을 것이라는 우울증에 걸린 사람에게 절대 죽지 않는다는 생각을 심어 주는 것입니다. 발자국 소리가 모두 강도의 발자국이 아니라는 생각하는 부정적 감정을 만들어 주는 생각을 바꾸어 주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하나님이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고 말씀합니다. 환난을 당하니 자동적으로 나에게 어려움이 올 것이라라고 생각하면 두려움이라는 부정적인 감정이 오는데 환난을 당할 때 하나님이 도와주어 그 환난으로 내가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할 것이라고 생각하며 오히려 용기와 희망과 같은 긍정적인 감정이 생기는 것입니다. 어떤 문제를 만나든 대 전제를 우리의 미래는 하나님의 손에 있다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환난을 당하지만 하나님이 도와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5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하나님이 그 성중에 계시매 성이 흔들리지 아니할 것이라 새벽에 하나님이 도우시리로다”라고 고백합니다. 지진이 나도 시인이 거주하는 성은 하나님이 보호해서 흔들리지 않게하겠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새벽에 하나님이 도우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어떤 심각한 일을 만나든 건강한 정서를 가지려면 하나님이 우리를 도와 주시고 보호해 주신다는 긍정적인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로마서 8:28)” 모든 것을 끝이 아니라 과정으로 보는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에게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이사야41:10)”라고 말씀합니다.

예레미야 선지자에게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는 그 두려워하는 바벨론 왕을 두려워 말라 내가 너희와 함께 하여 너희를 구원하며 그의 손에서 너희를 건지리니 두려워 말라(예레미야 42:11)”라고 말씀합니다.

여호수아에게 “너의 평생에 너를 능히 당할 자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던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마음을 강하게 하라 담대히 하라 너는 이 백성으로 내가 그 조상에게 맹세하여 주리라 한 땅을 얻게 하리라(수1:5-6)”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광야길을 가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여호와 그가 네 앞서 행하시며 너와 함께하사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시리니 너는 두려워 말라 놀라지 말라 (신명기 31:8)”라고 말씀합니다. 지금 상황이 아무리 힘들어도 미래는 하나님이 합력하여 선한 길로 이끌어 주신다는 확실한 믿음을 가지고 긍정적인 정서, 긍정적인 감정을 가지고 사는 성도님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2) 우리는 피난처가 되시는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긍정적 정서를 가져야 합니다.

불안감은 모든 사람이 느끼는 위험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경보장치입니다. 그런데 오랫동안 극심한 불안감이 이어지면 신체적 건강과 정신적 건강을 잃어 버립니다. 불안장애는 뚜렷한 원인도 없는데 모호하고 불쾌한 두려움으로 느껴지는 불안이 계속됩니다. 범불안장애라고 합니다. 건강에 대하여, 취업에 대하여, 결혼에 대하여, 자녀교육에 대하여 늘 불안하고 가슴이 두근거리고 떨림과 피로 소화불량이 나타납니다. 천둥 번개 같은 자연현상이나 개같은 동물이나 주사 맞는 것같은 것이나 시험, 발표 등과 같은 것을 무서워하고 홀로 있는 것을 견딜 수 없는 것처럼 두려움의 대상이 구체적인 공포가 일어납니다. 광장공포증, 특정공포증, 사회공포증, 사회불안장애 등이 일어납니다. 요즈음 같은 코로나로 시도 때도 없이 손을 씻는 강박이 생깁니다. 외출하면서 가스레인지 밸브를 제대로 잠겼나 문은 잠갔나 몇 차례 반복을 합니다. 심하면 공황같은 극심한 발작 상태에 빠져 버립니다. 갑자기 들이닥치는 죽음의 공포를 느끼게 됩니다. 공황발작이 생기면 극심한 공포감, 두통, 현기증, 가슴 두근거림, 호흡곤란이 생깁니다. 이런 불안장애를 앓고 있으면 정신과 의사들은 인지행동치료, 심리치료, 약물치료 등을 통해 건강한 정서를 갖도록 만듭니다. 약물로 항우울제와 항불안제를 처방합니다. 이것은 다 자신이 할 수 없으니 타인의 도움을 받아 자신의 정서를 건강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불안장애가 있으면 전문가인 정신과 의사의 도움을 받는 것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신앙인들은 우리를 누구보다 잘 알고 계시는 하나님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히스기야도 불안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습니다. 그는 참 믿음이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앗수르의 산헤립왕이 처들어와 포위하고 있으니 두려움에 질식되어 버렸습니다. 그 두려움으로 자기 조절 능력을 상실하였습니다. 어려움이 다가오자 한순간에 무너져 버렸습니다. 평소에는 신앙생활 잘하던 사람도 사업에 어려움이 오고, 몸에 이상이 오고, 전혀 뜻하지 않는 고난을 당하니까 한 순간에 처절하게 무너져 버릴 수 있습니다. 그는 예루살렘성에 있는 은과 금을 다 주고 그것도 모자라 여호와의 성전의 문의 금과 기둥의 금도 벗겨 바쳤습니다. 애굽에 도움을 청해 보았습니다. 그런데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산헤립은 조롱의 편지를 보내었습니다. 이때 선지자 이사야가 충고를 합니다. 그 때 히스기야는 어떻게 했겠습니까? 열왕기하 19장 14절을 찾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히스기야가 자가의 손에서 편지를 받아보고 여호와의 성전에 올라가서 히스기야가 그 편지를 여호와 앞에 펴 놓고” 무엇을 합니까? 15절을 보십시오. 기도합니다. 어떤 기도를 합니까? 19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원하건데 이제 우리를 그의 손에서 구원하옵소서 그리하시면 천하 만국이 주 여호와가 홀로 하나님이신 줄 알리이다” 하나님께 기도한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시편에서 그는 하나님을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시편 46편을 다시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오"라고 고백합니다. 7절 하반절에도 나옵니다. "야곱의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 11절 하반절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야곱의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 사람은 환난과 위기를 당할 때 피할 곳이 없다고 단정하기 때문에 두려워하며 불안해 하는 것입니다. 도와줄 분이 없다고 하니 불안해하는 것입니다. 야곱이 타지에서 험한 세월을 살며 어려움을 당할 때 우리 하나님이 피난처가 되어주어서 결국 바로 앞에 가 열두 아들을 통하여 민족을 이루었습니다. 피난처라는 말은 대피소와 같은 것입니다. 적의 화살을 피할 수 있는 견고한 요새 바위동굴, 안전한 은신처, 외부의 어떤 공격에서도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장소가 피난처입니다. 하나님이 피난처가 되기 때문에 땅이 변하든지, 산이 흔들려 바다 가운데 빠지든지, 바닷물이 솟아나고 뛰놀든지, 그것이 넘침으로 산이 흔들릴지라도 우리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로다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사업이 흔들려도, 건강이 위협이 찾아와도, 미래가 불투명해도, 앞날이 캄캄해도, 돈이 없어도, 인간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재해가 다가온다해도 두려워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 하나님이 안전한 피난처이기 때문입니다.

위르겐 횔러는 늑대를 만났을 때의 비유를 들어 '두려움의 상대성'을 설명하였습니다. 혼자 숲 속을 걸어가고 있는데 갑자기 100미터 앞에 굶주린 늑대가 나타났습니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고, 등에서는 식은땀이 흘러내립니다. 만약 이때 느낀 두려움의 정도를 1부터 10까지 중에서 책정하라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10이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손에 칼이나 창이 있다면 9정도로 낮아지게 될 것입니다. 만약 옆에 동행자가 있다면 두려움의 정도는 5나 6정도로 낮아지게 될 것입니다. 여섯 명이 똑같이 무장하고 있다면? 혹은 손에 창 대신에 총이 들려 있다면? 바로 옆에 나를 이런 위험에서 탈출하게 도와줄 오토바이나 자동차가 있다면?뭔가 자신을 방어할 수 있는 수단 많다면 두려움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것입니다. '방어 수단'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우리가 가진 두려움의 정도는 그에 비례해 줄어들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피난처 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얼마나 많은 방어 수단을 주었습니까? 믿는 자에게 능치 못함이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마19:26)" 라고 말씀하십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약 1:5)" 확신을 가지고 기도합니다.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마 7:7)" 불안하면 불안할수록 더욱 하나님께 부르짓어 기도하면 우리의 정서는 건강한 정서가 됩니다.

 

3) 우리는 지금도 하나님이 힘이 되신 하나님이 함께 행함으로 긍정적 정서를 가져야 합니다.

사람이 불안해하고 두려워하는 것은 당면한 문제를 지금 해결할 능력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신의 지혜로 문제를 풀려고 했지만 결국 이사야 선지자의 충고를 듣고 하나님의 힘을 의지하여 결국 그 많은 군대를 물리치고 승리하였습니다. 그래서 오늘 시편 1절을 통해 하나님은 우리의 힘이시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5절에서는 하나님이 그 성 중에 계시다고 말씀합니다. 7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니”라고 고백합니다. 11절을 보십시오.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니” 계속 하나님이 함께 계시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여서 어떻게 해 주었다는 말입니까? 4절을 보십시오. 시냇물이 흘러들어 옵니다. 포위되어 먹을 물이 없는 사람들에게 해갈의 기쁨을 줍니다. 생명이 살아나는 것입니다. 자금이 막힌 사람들에게 자금 줄이 열리는 것입니다. 피가 막힌 사람들에게 피가 흐르는 것입니다. 인간관계가 막힌 사람들에게 관계의 터널이 뚫리는 것입니다.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성전의 금까지 뜯어 조공하였는데 지존하신 하나님의 성소를 기쁘게 하는 일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힘으로 의지하면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으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5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성중에 계시매 성이 흔들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집에 계시매 우리 집이 위태롭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교회에 계시매 교회가 평안해집니다. 하나님이 내 사업터에 계시매 사업이 안정됩니다. 새벽에 하나님이 도와주십니다. 아무도 예측하지 못하는 시간입니다. 어둠이 물러가고 빛이 들어오는 시간, 사람들이 잠자고 있는 시간 그 새벽에 하나님이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히스기야가 기도하던 날 그 밤에 여호와의 천사가 앗수르 군대의 진지 앞으로 내려와서 18만 5천명을 몰살시켜 버렸습니다(왕하19:35). 아침에 일어나 보니 온통 사방에 시체로 가득찼습니다. 6절은 바로 그 상황을 시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앗수르 같은 최강의 나라가 흔들리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힘 앞에 당시 패권국의 힘도 무기력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힘 앞에 흔들리지 않고 버틸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여호와의 힘 앞에 다 녹아 버리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힘 앞에 우리를 둘러싼 원수 마귀 사탄의 힘도 무기력한 것입니다. 실존주의 자들은 두려움은 "뒤탈-가능성"의 "뚜렷함"에 대한 기분이라고 말합니다. "뒤탈의 불가능성의 사실"이 뚜렷해진다면, 두려움은 사그라질 것이라고 합니다. 사람이 불안해 하고 두려워하는 이유는 능력이 없어 결국 실패할 것이라고 미리 예단하기 때문입니다. 정신과 의사들은 불안장애나 우울증 등과 부정적인 감정을 치료할 때 마음 챙김 훈련(마인드 풀 mindfull)을 시킵니다. 불안증에 시달리는 사람에게 순간순간 자신이 어떤 생각에 주의를 기울이는 태도입니다. 우리가 평소에 자주하는 것을 의식하지 못하도록되어 있습니다. 자동적으로 의식하지 않고 돌아가는 자동조정자치가 되어 있습니다. 생각이 미래와 과거로 가게 됩니다. 회사에서 실수로 인하여 어려움을 당하고 불안한 가운데 집에 와 텔레비전을 보면 텔레비전을 보면서도 자동적으로 회사일을 생각하며 불안해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회사 일을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채야 한다는 것입니다. 과거에 대한 자책이나 미래에 대한 걱정을 하며 자기 비난을 하고 자책하는 것이 아니고 현재에 초점을 맞추라는 것입니다. 이미 실수하여 내 손에서 떠나 어쩔 수 없는 것은 고민한다고 불안해 한다고 해결되거나 바꾸어지지 안는다는 것입니다.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하여 걱정하며 불안해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현재로 주의를 집중하는 훈련을 시킨다고 합니다. 자꾸 과거와 미래의 일을 끌어들여 불안해 하지 말고 자동조정 상태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합니다. 의식의 초점을 현재의 감각에 초점에 맞추라는 것입니다. 현재에 집중하라는 것입니다. 심리치료를 하시는 분들은 마음챙김을 위해 호흡법,근육이환법, 명상법 등을 사용합니다.

그러나 우리 신앙인들은 마음 챙김을 우리의 힘이 되신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행하면 마음은 담대해집니다. 불안증으로 우울증에 걸리지 않습니다.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우리를 구원해 주시고 우리와 영원히 함께 하시는 예수님의 마음을 가지고 사는 것이 마음 챙김입니다. 생각만 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 마태복음 6:34)”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태복음 11:28)”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린도후서 5:17)”

 

지난 과거 지나간 것입니다. 잘한 일도 잘못한 일도 다 지나간 것입니다. 그것의 노예가 되면 건강한 정서를 가지지 못합니다. 미래는 내 손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손에 있는 것입니다. 미래를 끌어당겨 두려워하며 걱정하고 불안해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 된 것입니다. 힘의 근원되시고 함께 하시는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는 것입니다.

신앙인들은 나는 힘이 없어도 우리와 함께 하시는 여호와는 힘이 있다는 사실을 믿고 그 하나님과 함께 담대히 주어진 일을 수행하며 현재를 살아가는 것입니다. 미래에 그것이 잘 되는 잘 못되는 상관이 없습니다. 죽어도 주의 것이고 살아도 주의 것인 것이 우리 인생입니다. 스데반처럼 두려워하지 않고 복음을 전하다 순교한다고 해서 하나님이 안계신 것도 하나님 침묵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를 보는 사람은 애처롭게 생각할 수 있으나 스데반은 그에게 주어진 사명을 다 이루고 가신 것입니다. 담대히 하나님이 주신 사명 감당하다 일찍 천국가면 죽음도 고통도 눈물도 없는 곳에서 참 안식을 누리는 것입니다. 다윗을 보십시오. 블레셋의 골리앗 앞에 다 두려워 떨고 있을 때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삼상17:45)”라고 담대히 나아가 승리하였습니다. 위기와 장애물 앞에 우리가 능력 없다고 돈이 없다고 재능이 없다고 학력이 없다고 두려워하고 불안해 하면서 부정적인 정서를 가지지 말아야 합니다. 과거에도 함께 하신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가 천국 가는 날까지 우리와 함께 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고아가 아닙니다. 이 천지 만물의 주인인 우리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입니다.

사람은 역경을 당하고 위기를 당하면 떠나 버립니다. 친구도 버리고, 자식도 버리고, 부모도 버리고, 심지어는 아내도 버립니다. 욥이 위기를 당하니까 아내까지 욥을 버립니다.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고 합니다. 다윗이 왕으로 있을 때는 수많은 사람들이 따랐지만 아들에게 배신당하고 위기를 당하니까 수많은 사람들을 다윗을 외면합니다. 시므이는 산비탈로 따라가면서 저주하고 그를 향하여 돌을 던지며 먼지를 날렸습니다(삼하16:13). 바울이 노년에 감옥에 갇혀 어려움을 당하자 바울 주변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떠나 버렸습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그들을 끝까지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우리 하나님이 히스기야와 함께 하셔서 무엇을 하신 것입니까? 8절을 보십시오. 그는 하나님입니다. 땅을 황무하게 하였다는 것은 시적인 표현으로 깜짝 놀랄 일, 놀라운 일을 베풀었는데 그 막강한 권력을 가진 산헤립을 죽게 하고 영원히 망하지 않을 것같은 그 나라를 망하게 했다는 것입니다. 9절 보십시오. 전쟁을 끝내 버린 것입니다. 활을 꺾어 버리고, 창을 끊어버리고 수레를 불살라 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된 것입니까? 10절을 보십시오. 가만히 있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라고 말씀합니다. 뭇 나라 중에 높임을 받으실 분이시고, 세계 중에 높임을 받으실 분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결코 조롱받으실 분이 아니십니다. 여러분과 저를 통해 높임을 받으실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경우도 부정적인 정서인 두려움, 낙심, 불안 등과 같은 것을 가지고 주어진 사명을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셔서 결국 높임을 받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공간적으로 어디에서나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은 시간적으로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극한 상황에서도, 건강할 때도, 질병에 걸려 있을 때도, 부도의 위기에 처했을 때도, 수술을 받을 때도, 성공했을 때도, 실패했을 때도 어디에서나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모세가 죽고 모세 대신 민족을 인도하여 가난 땅으로 들어가야 하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 여호수아에게 하나님은 "내가 네게 명한 것이 아니냐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수 1:9)"라고 말씀합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바로 왕에게서 나왔을 때 바로가 마음 바꾸어 이스라엘 사람들을 죽이기 위해 애굽의 모든 전차를 동원하고 군인들을 거느리고 추격합니다. 앞에는 홍해가 놓여 있습니다. 백성들을 미래의 불확실성 앞에 부정적인 정서인 두려움과 공포에 쌓여 모세를 원망합니다. 이 때 하나님은 모세의 입술을 통해 뭐라고 말씀합니까?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또다시는 영원히 보지 못하리라"(출 14:13) 홍해 앞에서 두려워하고 있습니까? 미래의 불확실성 앞에 두려움의 늪에 갇혀 절망하고 있습니까? 불안함으로 아무것도 시도하지 못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힘의 근원이 되어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지팡이를 힘껏 홍해를 향해 내미는 것입니다. 다윗과 함께 하신 하나님, 모세와 함께 하신 하나님, 여호수아와 함께 하신 하나님, 히스기야와, 아브라함과 야곱과 요셉과 함께 하신 하나님이 오늘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두려움이란 부정적 정서 가운데 있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마 28:20)"라고 말씀합니다. 우리와 영원토록 함께 하시는 하나님과 함께 주어진 사명을 불안하거나 두려워하지 말고 담대하여 성취해 나가시길 바랍니다.

열린교회/김필곤목사/2020.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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